선서(善書: 慈善을 권장하는 책)를 인쇄 증정(法布施)하는 것은, 대중들이 미혹의 갈림길에서 완전히 벗어나, 모두 깨달음의 정도(正道)로 복귀하도록 인도하기 위해서다. 또 풍속을 순박하고 선량하게 감화시키고, 사회의 평화로운 안녕 질서를 증진하기 위한 목적도 함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죄악을 버리고 선량으로 향하도록 인도하는 감화 역량이, ‘료범사훈’만큼 큰 책도 실로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의 요지는 ‘입명(立命)’에 있다. “운명이란 자아가 창조하고, 복록이란 자기가 추구한다.(命由我作, 福自己求.)”는 진리를 선양하여, 사람 사람마다 모두 분발하여 선을 행함으로써 일생의 운명을 개조하고, 재앙과 험난을 복록과 평안으로 전환시킬 수 있도록 깨우쳐준다.
‘운명이 확고히 결정지어져 조금도 인간의 자유 의지가 없다’든지, ‘생사와 영욕(榮辱)이 모두 정해진 운수를 피할 수 없다’는 숙명론의 사고를 견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틀림없이 종신토록 천명과 운수에 얽매여, 시종 하늘의 뜻만 따른다는 핑계를 댈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력에 의해 운명을 개선하거나 변화시키려고 시도조차 할 줄 모를 것이다. 이러한 자는 바로 운곡 선사가 말한 것처럼, 한낱 세속 ‘범부(凡夫)’에 지나지 않는다.
‘료범사훈’ 책은 일찍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과거에 이미 상해(上海)의 굉대(宏大)․불학(佛學)․도덕(道德)․명선(明善) 등 서점에서 각자 발행하여 널리 보급한 적이 있다. 또 열성 있는 인사들이 끊임없이 복인(複印)하여 증정함으로써, 전국의 각 시와 현(縣)에까지 두루 퍼져 있는 정도다. ‘양선(揚善)’ 잡지사 창업 초기에, 신죽(新竹: 臺灣의 한 市)에 사는 주(朱)씨라는 한 독자가 ‘료범사훈 백화해설’본을 인쇄하여, 본 ‘양선’ 잡지를 간행 배포할 적에 함께 곁들여 증정 보급하기를 원하였다. 이에 편집자가 시간을 내어 자세히 읽어보았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이 매우 위대하여, 실로 귀머거리의 귀와 봉사의 눈도 번쩍 뜨이게 할 만큼 교화공덕이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단지 기꺼이 대신 증정 보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도 스스로 자금을 갹출하여 인쇄 증정을 일삼게 되었다.
그 뒤 이 책을 증정 받은 수많은 독자들이, 또다시 마음을 내어 인쇄 증정을 계속 이어 가서, 갈수록 더욱 널리 보급하게 되었다. 작년 가을에는 사법원(司法院: 우리나라 司法府)의 림양항(林洋港) 원장(院長: 대법원장)이 료범사훈에 대해 강연하였다. 당시 중앙일보(中央日報)에서 그 강연문 전부를 게재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또 한 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보시하는 열기에 휩싸였다.
현재 대만(臺灣)에서 법보시하거나 시판하는 ‘료범사훈’은 대략 10여 종 판본이 있다. 중국 대륙으로부터 전래한 것으로는 계미(癸未: 1943?)년 황지해(黃智海) 거사가 주해(註解)한 판본과, 민국 초기 절강(浙江) 영가(永嘉)의 주군쟁(周群錚) 거사가 부록을 정리 편집하고 원문에 간략한 주를 달아 인쇄 유통시킨 판본과, 민국 32(1943)년 북경 하인화(夏仁華) 거사가 민국 11(1922)년 상해 불학추행사(佛學推行社)본의 원주(原註)에 약간 손질하여 유통시킨 판본이 있다.
그밖에는 모두 선량하고 인자한 인사들이 근래에 새로이 번역한 것이다. 더러는 원문을 곁들이지 않은 순 백화 해설본이고, 더러는 백화문에 주음부호(注音附號: 중국어 발음기호)를 덧붙이거나, 또는 원문을 보류한 채 간단한 백화 번역을 함께 수록하거나, 아니면 원문에 주음부호를 달고 황지해 거사의 원 주해를 농축시켜 만든 요약본 등이 있다. 또 하나 비교적 독특한 음성 료범사훈은 고승 정공 법사(淨空法師)가 강의 해설한 녹음테이프다. 이밖에도 다른 선서(善書)에 함께 수록한 것으로는,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과 ‘성심집(省心集)’, ‘음질문(陰騭文)’, ‘안사전서(安士全書)’ 등이 있다.
본사에서 맨 처음 인쇄 증정(法布施)하기 시작한 ‘료범사훈 백화 해설’은, 원판에 ‘넙운대 경심재 수필’(聶雲臺耕心齋隨筆)과 ‘유정의 선생이 조왕신을 만난 실화 기록(兪淨意公遇竈神記)’을 부록에 싣고 있었다. 그러나 ‘원료범거사전(袁了凡居士傳)’과 ‘운곡선사전(雲谷禪師傳)’은 없었다. 그 뒤 다른 서적에서 두 전기를 찾아 수록하고, 다시 진계승(陳癸丞) 거사가 경신록(敬信錄)으로부터 ‘료범공과격(了凡功過格)’을 뽑아 제공하기에 이를 덧붙였다.
이 세 가지는 료범사훈과 모두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책 뒤에 함께 수록한다. 이는 독자들이 더욱 온전한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하고, 아울러 료범사훈이 긴 세월 동안 전해 내려옴에도 불구하고, 누락하거나 고증이 사라지지 않은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앞으로 이 책을 인쇄 증정하고자 하는 선량하고 인자한 인사들도, 출판 시에 료범사훈의 원문을 보존함은 물론, 상술한 두 분(료범과 운곡선사)의 전기 및 ‘료범공과격’을 꼭 함께 수록하여, 선서(善書)의 원본을 완전하게 유지시켜 주길 간절히 바란다. 혹시라도 이들을 임의로 생략하면서, “물고기를 얻으면 통발을 잊고, 뜻을 얻으면 말을 잊는다.(得魚忘筌, 得意忘言.)”는 명분을 내세우는, 유감스러운 (애석한) 상황이 벌어지는 일은 결코 없도록 유념해 주길 신신 당부한다.
1994년 한가을(中秋) 타이뻬이 시(臺北市)
중경북로(重慶北路) 장외루(章外樓)에서
동산(桐山) 정강굉(鄭康宏)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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