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明)나라 때 항희헌(項希憲)은 원래 이름이 덕분(德棻)이었다. 하루는 꿈에 자기가 젊은 하녀 둘을 욕보인 죄로, 계묘(癸卯)년 향시(鄕試)에 급제자 명단에서 빠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앞으로 사음을 끊고 선행에 힘써, 지난날에 저지른 허물을 보속(補贖)하기로 서원을 세우고 실천하였다.
그 뒤 꿈에 자기가 어느 곳에 이르렀는데, 노란 종이에 쓰인 여덟 번째 이름이 항(項)씨 성(姓)인 걸 보았다. 가운데 한 글자는 흐릿하니 잘 보이지 않고, 아래 글자는 원(原) 자인 것이 분명했다. 그때 옆에 있던 한 사람이 이렇게 일러주었다.
“이것이 그대에 천상 과거 급제 명단(天榜) 등수일세. 그대가 근래 행실을 착하게 고쳐, 다시 이러한 문운(文運)이 점지된 것이라오.”
그래서 이름을 몽원(夢原: 꿈에 原자를 보았다는 뜻)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과연 임자(壬子)년 향시에서, 순천부(順天府: 북경 지역)에 제29등으로 급제하였다. 7년 뒤인 기미(己未)년 회시(會試)에서는 제2등으로 합격하였다. 그래서 자기가 전에 꿈에서 본 급제 등수가 어긋난 게 아닌가, 자못 의심하였다.
그런데 조정 전시(殿試)에서 이갑(二甲)에 제5등으로 급제하였다. 그때사 바야흐로 이갑(二甲) 위에 있는 정갑(鼎甲) 세 사람까지 합치면, 전시 성적이 총 서열로 꼭 제8등이 됨을 깨달았다. 향시와 회시에 급제자 명단은 흰색 종이로 방(榜)을 작성한다. 그런데 오직 전시에 급제자 명단만 노란 종이로 방을 내거는 사실도 꿈과 일치하였다.
평(評): 꿈속에 불길한 조짐으로 깜짝 놀라 깨닫고, 스스로 통절히 회개하는 사람은, 그래도 복덕이 모여들 기상(氣象)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명단에서 지워진 놈이 어떻게 다시 과거급제에 명예를 점지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하늘에 도(天道: 자연에 인과응보 원리)가 비록 사음에 죄악을 엄중히 처벌하긴 하지만, 자기 죄를 회개하는 사람까지 화(禍)를 내리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뜻이 있는 자는, 설령 한번 실수로 발을 헛디뎠다 할지라도, 그 과오를 끝내 되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자포자기하지는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