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辛卯)년에 절강(浙江) 지방에서 과거시험을 치르기 직전에, 어떤 사람이 이상한 꿈을 꾸었다. 여러 천지신명들이 모여, 이번 과거시험에 급제할 사람들을 비교 평가하여 선택하는 장면이었다.
맨 처음 수석(장원)으로 종랑(鍾朗)이란 이름이 불려졌다. 그런데 어떤 녀자가 앞에 나와 원한을 하소연하였다. 그러자 한 가운데 앉은 신(神)이, “이 사람은 (장원에) 급제시킬 수 없다.”고 거부해 버렸다. 그래서 그 자리를 대신할 후보를 물색하는데, 옆에 있던 한 신이 “유자(孺子: 어린애라는 뜻)로 대신하면 어떻겠소?”라고 제청하였다.
그 말까지 듣고 그 사람은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는 꿈에 내용을 종랑에게 일러주며, 도대체 무슨 곡절이 있었는지 자세히 캐물었다. 알고 보니, 종랑이 일찍이 묵고 있던 집안에 한 하녀와 정을 통해, 하녀가 임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주인집 마님이 그를 용서하지 않자, 그만 물에 뛰어들어 자살해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종랑은 그 사건 때문에 늘 마음이 찜찜하니 불안하였는데, 그 사람이 전해주는 꿈 내용을 듣고는, 더욱 깜짝 놀라며 두려움이 심해졌다. 그 해 과거에 과연 종랑은 급제하지 못하고, 여순(余恂)이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꿈속에서 들었던 ‘유자(孺子)’는, 다름 아닌 여순에 자(字)였다. 그 뒤 얼마 안 되어 종랑에 아내가 병으로 죽자, 종랑은 더욱 두려워졌다. 그래서 잘못을 회개하고 선행을 힘써 부지런히 해나갔다. 그러더니 3년 뒤인 갑오(甲午)년 과거시험에는 다시 장원으로 당당히 급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