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明)나라 숭정(崇禎: 마지막 황제인 思宗에 년호. 1627~44년 재위) 년간에 진사 조치도(曹穉韜)는 아직 글공부를 하던 선비였다. 당시 그는 이웃집 부녀자와 사통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녀자에 지아비가 그들을 죽이려고 작정하고, 자기 아내에게 거짓말을 냉큼 던졌다.
“나 내일 멀리 출장 나갔다가, 여러 날 뒤에나 돌아오겠소.”
그 말을 들은 아내는 정말인 줄 알고 속으로 몹시 기뻐하였다. 그리고는 부리나케 정부(情夫)인 조치도에게 달려가, 자기를 찾아오라고 약속을 청했다. 그런데 마침 그날은 조치도가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독서회(讀書會)에서 미리 약속한 모임 날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친구들이 찾아와 함께 가자고 조치도를 끌어당겼으나, 치도는 한사코 사양하였다. 사양하는 까닭을 알게 된 친구들은, 그를 강제로 독서회 장소까지 끌고 가서, 독서회 주관책임자에게 이렇게 요청하였다.
“오늘 독서회 작문(作文)은 정식 과거시험 방식대로 실시한다. 그리고 끝난 뒤 저녁 회식자리에서는, 누구나 반드시 술에 취해야 집에 돌아가는 걸 허용한다. 이 약속을 어긴 자는 엄중히 처벌한다.”
그리고는 주관책임자에게, 집 대문에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근 뒤, 어떤 서생도 임의로 출입하지 못하도록 요구했다. 치도는 아주 난처한 궁지에 몰렸다. 하는 수 없이 모의 과거시험 답안을 한 편 한 편 차례대로 완성한 다음, 먼저 귀가하려고 나섰다. 그러자 여러 친구들이 큰소리로 외쳤다.
“아침에 공표한 약속이 있는데, 어찌 그리 서둘러 귀가하려 하는가?”
저녁에 술을 마실 때에도, 치도는 마음속에 일 때문에, 주량(酒量)을 채우지 않고 조금만 마시려 하였다. 그러나 여러 친구들이 그를 가만 놔두지 않고, 억지로 벌주(罰酒)를 엄청 마시게 하였다. 마침내 치도는 크게 만취하고 말았다. 밤늦게 친구들이 그를 부축하여 집에 데려다 주었으나, 치도는 이미 밀회를 약속한 곳 나갈 수 없었다.
이웃집 녀자는 오랫동안 대문에 기대서서, 치도가 오기만 눈 빠지게 기다렸다. 그때 그 녀자에 평소 행실을 알고 있던 한 무뢰한(無賴漢)이, 녀자가 문에 기대어 바깥을 오래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틀림없이 약속해 놓고 오지 않는 사람을 그녀가 기다리는 것이라고 판단한 뒤, 그 무뢰한은 녀자에게 치근거렸다. 녀자도 별로 싫어하는 기색 없이 그를 받아들였다. 몰래 숨어 엿보고 있던 그 지아비는 단번에 도끼로 그 남자를 쳐 죽인 뒤, 아내까지 함께 죽여 버렸다.
이튿날 이 사건 소식을 들은 조치도는 깜짝 놀라며 크게 두려워하였다. 마침내 여러 친구들에게 증인 서 줄 것을 요청한 뒤, 천지신명께 맹세하였다. 앞으로 착한 일을 하여, 지금까지 잘못을 보속(補贖)하며, 다시는 사(邪)된 길을 결코 가지 않겠다고 서원을 한 것이다. 그 뒤 몇 년 만에 치도는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다.
그 당시 치도가 삶에서 죽음으로 빠지느냐, 아니면 죽음에서 삶으로 나오느냐 갈림길에는, 터럭 끝 하나도 용납할 수 없는 좁은 틈밖에 없었다. 다행히 훌륭한 친구들 덕택에, 죽음에 화를 모면한 것이었다. 반면, 그 불쌍한 무뢰한은 욕심을 일으키는 상황을 보고 마음이 꿈틀 움직여, 코앞에 엄청난 재앙이 은밀히 잠복해 있는 줄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끝내 도끼날에 찍혀 죽고 말았다. 속담에 “간음은 반드시 살인을 부른다(姦必殺)”고 하더니, 과연 정말이로다.
옮긴이 보충해설 : 명청률(明淸律 : 명나라 때 기본법인 明律은, 조선시대 경국대전에서 그대로 의용(依用)하였고, 청률도 거의 그대로 답습함) 형률(刑律) 인명(人命)편에는, ‘살사간부(殺死姦夫)’라는 전문조항을 두었다.
“무릇 처나 첩이 다른 남자와 간통하는 것을, (본 지아비가 발각하고) 간통하는 장소(현장)에서 간부(姦夫)와 간부(姦婦)를 직접 붙잡아 그 자리에서 즉시 죽인 경우에는, 죄를 묻지 아니한다. 만약 간통한 남자(姦夫)만을 죽인 데 그친 경우에는, 간통한 녀자(姦婦)는 률(律)에 따라 죄를 처벌하고, 지아비가 팔아넘기게 허용한다. 처나 첩이 간통으로 말미암아 (간통한 남자와 함께) 자기 지아비를 살해하려고 모의한 경우에는 릉지처사(陵遲處死)하고, 간통한 남자는 참형(斬刑)에 처한다. 만약 간통한 남자(姦夫)가 혼자 간통한 녀자에 본 지아비를 죽인 경우에는, 비록 간통한 녀자가 그 사정(내막)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교수형(絞首刑)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