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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등(李登)은 나이 18세에 향시(鄕試)를 수석으로 통과했으나, 그 뒤 50세가 되도록 중앙 조정에 과거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섭법사(葉法師)를 찾아갔다. 법사는 그가 찾아온 까닭을 물은 뒤, 문창제군(文昌帝君)께 예배드리고 여쭈었다. 문창제군이 담당 관리에게 장부(功名과 祿位를 기록한 책)를 가져오도록 분부하여 보여준 내용은 이러하였다.
“리등은 태어날 때, 상제(上帝)께서 본디 옥인(玉印)을 하사하시면서, 18세에 향시를 통과하고 19세에 본 과거에 장원 급제한 뒤, 52세에는 관직이 우승상(右丞相)까지 이르도록 예정하셨다. 그런데 그가 향시를 통과한 뒤, 이웃집 녀자를 몰래 엿본 짓이 징벌(懲罰)에 화근이 되었다. 그 일은 비록 남녀 결합으로까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로 말미암아 그 아버지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 일 때문에 그는 과거 급제가 10년이나 늦춰지면서, 등수도 장원에서 2갑(二甲: 甲科에 두 번째로 榜眼에 해당)으로 한 등급 낮춰졌다. 그 뒤 그는 또 자기 형님 집터를 침범하여 소송까지 몰고 갔다. 그래서 다시 10년이 늦춰지면서, 3갑(三甲: 甲科에 세 번째로 探花에 해당)으로 한 등급 더 낮춰졌다. 그런데 그 뒤에 또 장안(長安)에 한 저택 안에서 한 량가(良家) 부녀자를 간음하여, 다시 10년이 더 늦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최근 또 이웃집 녀자를 도둑질하였다. 이렇듯 죄악을 회개할 줄 모르고 계속 반복하므로, 마침내 그 과거 운수는 천상에 공명을 기록한 장부(祿籍)에서 완전히 지워졌고, 죽을 날도 머지않아 곧 닥칠 것이다.”
법사가 그 내용을 사실대로 일러주자, 그는 마침내 부끄러움과 회한(悔恨)을 품은 채 죽고 말았다.

評: 리등(李登)이야말로 이른바 질곡(桎梏: 옛날 죄인 몸에 채우던 형구刑具)을 반복한 자다. 가령 그가 조금만 일찍 회한에 마음을 내고 공덕을 닦아 허물을 속죄하였더라면, 장원하여 재상이 되는 부귀공명에 관운(官運)은 조금도 흠집 내지 않고 온전히 되찾았을 것이다. 설사 그렇게까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한번 잘못으로 이미 막심한 죄악인 줄 알아 그 다음 죄업만 짓지 않았더라면, 갑과에 급제하여 현저히 영달하는 운명을 그래도 절반 정도는 건질 수 있지 않았겠는가? 어찌하여 천지신명께서 그토록 아끼고 길러주신 사랑과 조상 대대로 쌓아 온 공덕을, 한 사람이 깡그리 깎아 없애버리고, 천상과 인간에 크나큰 기대를 끝없이 저버린단 말인가?
또 사음(邪淫) 행위는 갑과 급제에 비하면, 만분에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종신토록 누릴 부귀영화를, 단지 한 순간 달콤한 쾌락과 맞바꾸다니, 너무나도 어리석지 않은가? 오호라! 장원 급제하여 재상까지 되는 이는, 수백 년에 겨우 한둘이나 나올까 말까 한데, 이렇듯 사음한 죄업 하나로 통째로 남김없이 날려 버리다니….
하물며, 다른 보통 사람에 운명이야, 리등에 만분에 일도 안 될 텐데, 그 같은 죄업을 수없이 짓고 있으니, 어찌할 것인가? 아마도 복록(福祿)을 담당한 신명이, 단지 과거 등수만 낮추거나 급제 시기만 늦추면서, 회개하기만 기다리지는 않을 것 같다. 위태롭고도 위태롭도다! 지금도 재주가 빼어나고 박학다식하면서도, 늙도록 생계를 잇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자신도 일찍이 이러한 죄악을 저지른 적은 없는지, 스스로 한평생을 반성해야 마땅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