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삼(張明三)은 아버지 벼슬길을 따라 경애(瓊崖: 海南島)에 갔다가, 이웃집 지휘(指揮: 중하급 군관)에 둘째 딸을 간음하였다. 나중에 그 녀자를 몰래 데리고 바다를 건너 나오려는데, 녀자 아버지가 알고 부랴부랴 추격해 왔다. 그러자 장명삼은 궁지에 몰린 나머지, 둘째 딸을 물속에 밀어 넣어 죽게 하고, 자기 혼자만 도망쳤다. 그 뒤 10년이 지나, 장명삼은 심한 허리 질병을 앓았다. 손(孫)의사를 불러다 치료하여 제법 차도가 있었다. 근데 그날 밤 손의사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바로 물에 빠져 죽은 지휘에 둘째 딸이, 자기를 이끌고 물속에 들어가 탄원하는 것이었다.
“소녀는 본디 경애(해남도) 사람으로, 이제 장씨한테 찾아와 목숨을 달라고 요구하는 판입니다. 헌데 당신은 어찌하여 내 보복을 가로막습니까?”
손의사는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난 뒤, 꿈 내용을 장명삼에게 알려 주었다. 장명삼은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치면서, “업장(業障)이 왔구나. 내가 갈 때가 된 모양이로다.” 하고 탄식하더니, 한 달쯤 지나 죽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