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淸)나라 세조(世祖) 순치(順治: 1643~61 재위) 년간에, 가흥부(嘉興府: 지금 절강성 일부에 해당)에 전(錢) 아무개가 있었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기 전에, 같은 고을 주민 아무개 집에 학관을 열었다. 그 집에 열일곱 살 딸이 있었는데, 때마침 청명절(淸明節)을 맞이하여, 온 집안 식구가 산에 성묘하러 가고, 딸 혼자만 집을 지키게 되었다. 이 틈을 타서 전씨가 그 딸을 간음하였다.
나중에 딸에 배가 점점 불러오자, 부모가 까닭을 캐물었다. 딸이 사실대로 대답하자, 그 부모는 전씨가 아직 장가들지 않았으므로,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 추문을 덮어 감추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전씨를 찾아가 상황과 의향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전씨는 일부러 낯빛을 크게 바꾸면서 퉁명스럽게 소리쳤다.
“그래, 당신네 보잘것없는 딸을 가지고 내 인생을 망치려고 하시오?”
이 말을 들은 처녀 아버지는 격분하여, 집에 돌아온 뒤 딸에게 욕을 퍼부어댔다. 마침내 딸은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그 뒤 전씨는 그 처녀가 아이를 품에 안고 자기 앞에 와 서 있는 꿈을 자주 꾸었다.
전씨는 과거에 급제한 뒤, 강녕부(江寧府: 지금 강소성 南京을 중심으로 한 일대)에 사리(司理: 사리참군(司理參軍)에 준말로, 소송과 형옥(刑獄)을 담당하던 관직)에 임명되었다. 때마침 진강부(鎭江府: 강소성 진강시를 중심으로 한 일대)에 변란이 일어났는데, 반역에 가담한 죄인들을 심문하는 직책이 전씨에게 내려졌다. 그러나 전씨는 심문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죄로 교수형(絞首刑)을 심판 받게 되었다. 사형 집행 명령이 내려지던 날, 전씨는 다시 그 처녀가 빨간 수건으로 자기 목을 묶어 끌어당기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이튿날 곧바로 교수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