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山東)에 서생 모(某)씨는, 과거시험 보기 전날 저녁 갑자기 집안 머슴이 죽자, 우선 시신을 어느 방 안에 잠시 넣어 두고 시험 보러 갔다. 그런데 첫날 시험을 마치고 돌아오자, 죽은 머슴이 되살아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제 내가 정신을 잃은 뒤, 주인을 따라 과거 시험장에 들어갔는데, 주인이 이미 몇 등에 급제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급제자들에게는 모두 붉은 깃발이 한 개씩 있었는데, 주인에게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인 모 서생은 매우 기뻐하였다. 이때다 싶어, 머슴은 집주인한테, 급제한 뒤 자기에게 마누라를 하나 얻어 달라고 청했다. 이에 주인이 “우리 대문 맞은편 집 딸을 얻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머슴이 너무 과분하여 감당하기 어렵다고 겸손히 사양하자, 주인은 이렇게 큰소리쳤다.
“내가 과거에 급제하고 나면, 어찌 그가 딸을 시집보내지 않을까 두렵겠느냐?”
그런데 두 번째 시험 볼 때도, 머슴이 또 죽었다가 다시 되살아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화난 기색을 띠고서는, “주인어른이 급제하지 못했습니다.”고 말했다. 주인이 깜짝 놀라 그 까닭을 캐묻자, 머슴은 이렇게 대답했다.
“관청에 시험관이 급제자 명단을 점검하다가, 주인 이름에 이르러서 갑자기, ‘아무개는 아직 급제가 확정되기도 전에 김칫국부터 마시고, 벌써 나쁜 짓 할 마음을 품었도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담당 관리에게 조(趙) 아무개로 바꿔 적어 넣으라고 명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주인어른이 앞에서 울부짖는데, 주인 앞에 있던 붉은 깃발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인 모 서생은 이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면서, 급제자 명단이 발표되기만 기다렸다. 그런데 원래 자기가 급제할 것이라던 몇 등 자리에, 정말로 조 아무개가 적혀 있었다. 나중에 사연을 알아본 즉, 자기 시험답안을 보고 평가한 담당 시험관이, 본디 자기 시험답안 7편에 모두 동그란 점(훌륭한 문장 옆에 우수하다는 평가를 강조하는 부호)을 가득 찍어, 시험 위원장에게 추천 보고하려고 했다. 헌데 뜻밖에 세 번째 시험답안이 등잔 그을음에 절반쯤 타 버려, 결국 상관에게 올리지 못하고, 락제(落第) 답안 중에 가장 나은 것을 하나 가려 대신 보충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모 서생은 한없이 후회하고 괴로워했다.
이 이야기는 래양현(萊陽縣: 山東省 동부에 있음)에 송려상(宋荔裳) 선생이 친히 구술(口述)한 내용으로, 모 서생과 같은 고향 사람인 관계로, 그 성명은 밝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