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창(建昌)에 라(羅) 아무개는 집안이 가난하여 아내를 맞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강(江)씨에게 개가(改嫁: 재혼)하면서 받은 돈으로 장(章)씨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라씨는 어머니 때문에 차마 신부와 잠자리를 같이할 수가 없었다.
신랑이 자기와 동침하지 못하는 이유를 캐물어 알게 된 신부 장씨는, 자기 비녀와 귀고리․옷가지 등을 내어주며, 신랑에게 가지고 가서 어머니를 다시 모셔 오도록 당부하였다. 이 말을 들은 신랑 라씨는 뛸 듯이 기뻐하며, 곧장 어머니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그곳에서 하루 저녁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의붓아버지 강씨에 전처(前妻) 소생 아들인 강실(江實)이 모자(母子) 간에 나눈 대화를 몰래 엿들었다. 강실은 그날 밤으로 라씨 집에 찾아가, 자기가 라씨인 것처럼 행세하며 문을 두드리고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신부가 내놓기로 한 패물들을 받아 챙기고, 게다가 신부와 동침하기까지 하였다.
장씨는 사기 행각인 줄 전혀 눈치 채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강실이 모든 패물을 가지고 떠나 간 뒤, 날이 밝아 신랑이 되돌아오자, 신부는 비로소 자기가 감쪽같이 속은 줄 알았다. 그리고 부끄러움과 분함(憤恨)을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이에 신랑이 슬픔을 머금은 채, 관을 마련하고 시신을 렴(殮)하였다. 장례를 치르려고 관을 메고 교외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천둥 번개가 번갈아 내리치더니, 어떤 사람 하나가 벼락 맞아 죽는 것이었다. 그는 손에 비녀와 귀고리․옷가지 등을 받쳐 든 채, 관 앞에 꿇어앉은 모습으로 죽었다. 그 사람 등에는 ‘간적강실(奸賊江實)’ 네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나무 관(木棺)이 부서지면서, 죽었던 신부 장씨가 살아났다. 그리고 길옆에 번듯 서더니, 신랑을 보고 그간에 일을 물었다. 그리고는 둘이 함께 대성통곡을 한 뒤, 서로 부축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의붓아버지(繼父)인 강조(江潮)도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후처 아들인 라씨 부부를 데려다가 함께 화목하게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