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녕부(江寧府: 지금 강소성 일대)에 서생인 곽형(郭亨)은 기묘(己卯)년 과거시험에 응시하였다. 그런데 급제자 명단이 발표되기 전에, 그에 친구인 양(楊)씨 서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근래에 음부(陰府: 저승)에 재판관을 지냈네.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일세. 자네가 본래는 이번 과거에 제57등으로 급제할 운수였네. 그러나 자네 집안에 한 하녀(여종)가 자네에게 억지로 몸을 내맡기고, 모욕과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비명(非命)에 죽은 뒤, 음부(저승) 재판관에게 여라 차례 찾아와 하소연하였네. 그런 까닭에 결국 자네 이름을 급제자 명단에서 삭제하게 되었다네.”
곽형은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급제자 명단이 발표되어, 락제(落第) 시험답안을 받아 들고 나와야 했다. 그리고 자기 답안을 심사한 시험 위원이, 본디 자신을 급제자로 추천했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몹시 후회하고 한탄하였다. 곽형은 평생 충실하고 후덕하였는데, 단지 그때 한번 조심하지 않은 일 때문에, 종신토록 실의(失意)에 잠겨 지내야 했다.
평: 공과격(功過格)에 따르면, 하녀(여종)를 첩으로 삼으면 30점 과실(過失)이 된다. 이는 단지 일반 원칙으로 말한 것일 따름이다. 만약 구체 정황과 형세를 참작한다면, 끝없는 과오가 존재할 수도 있다. 무릇 남녀 간에 결합이란, 제아무리 가난하고 미천한 신분계급이라 할지라도, 각자 스스로 원하는 대상을 맞이해야 한다. 따라서 자기 명령과 지시에 따르는 미천한 하녀라고 해서, 강제로 억압하여 첩을 삼는다면, 남녀 결합에 기본 원칙인 자원(自願)에 이미 어긋나게 된다.
게다가 가장 감당하고 참기 어려운 일은, 아리따운 젊은 처녀가 돈 때문에 늙은 남자를 모셔야 한다든지, 또는 연약하고 착한 녀자가 거칠고 사나운 녀자한테 질투를 당하여, 속마음 하소연할 곳도 없이 답답하게 억눌려 지내다가, 마침내 하늘까지 사무치는 막대한 원한(철천지원한: 徹天之怨恨)을 머금고 죽는 것이다. 이러한 독기(毒氣)를 당하면, 정말로 불쌍하고 가련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 근본 원인을 따져 보면, 결국 한 사람이 자기 욕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초래한 참극들이다. 본처와 첩(妾: 小室) 사이에, 서로 말 다투고 욕하며 싸우는 걸 보라. 두 방 살림 문제는 더럽고 볼썽사나운 꼴을 덮을 수도 없으며, 그로 말미암은 근심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로부터 집안에 대를 잇기 위하여, 정말로 꼭 부득이한 경우에만 첩을 들이는 것이 인정되어 왔다. 하지만 그저 욕정을 채우기 위하여, 돈이나 권세로 이러한 짓을 하면, 끝없는 죄업을 짓는다. 이런 일은 결코 없도록, 삼가고 또 조심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