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앙(徐昻)은 양주(楊州) 사람인데, 봄에 과거시험 보러 서울에 올라갔다. 그때 서울에는 왕(王)씨라는 관상쟁이가 있었는데, 대부분 신기하게 적중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에 서앙도 왕씨를 찾아가서 한번 맞혀 보라고 청했다. 왕씨는 서앙에 얼굴을 보더니, “그대 관상에는 후손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소?” 라고 탄식하는 것이었다.
서앙은 그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서안군수(西安郡守)로 임명되었다. 부임하러 가던 길에, 한 녀자를 첩으로 맞이하였는데, 자못 예쁘고 아름다웠다. 서앙이 성씨를 묻자, 그 녀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옛날에는 전통 례법상, 처는 물론 첩까지도 동성同姓 혼인을 엄격히 금지하였었다. 따라서 첩을 살 때는 반드시 먼저 그 姓氏를 확인하여야 하고, 성씨를 모르는 경우에는 점을 쳐서 신명께 동성 여부를 물어보는 것이, 혼례에 기본 원칙이었다. 옮긴이 해설)
“저희 아버지는 아무개로, 어떤 관직에 재임하다가 몇 년도에 돌아가셨고, 저는 지난번 흉년으로 기근을 만나, 포악한 도적들에게 약탈당해 여기까지 팔려 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서앙은 그 녀자를 몹시 불쌍히 여겼다. 그리고 곧장 매매 계약서를 불사른 뒤, 그 녀자를 첩으로 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마침내 임지에 도착하자, 곧 혼수를 마련하고 좋은 선비를 물색하여, 그 녀자를 시집보내 주었다. 임기가 끝나고 다시 서울로 되돌아 왔을 때, 왕씨가 다시 그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이렇게 감탄했다.
“그대 관상이 아주 달라졌습니다. 자식에 별들(운수)이 얼굴에 가득 찼어요. 이 어찌 음덕을 쌓은 결과가 아니겠소?”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서앙에 처와 첩들이 한두 해 사이에 아들을 다섯이나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