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신종(神宗) 만력(萬歷) 26년(戊戌: 1598) 과거시험에 장원 급제한 조병충(趙秉忠)은, 아버지가 읍(邑)에 아전이었다. 한번은 조상 관음(官蔭)을 물려받은 지휘(指揮: 거리 治安을 담당하는 하급 군관)가,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힌 일이 있었다. 병충 아버지는 이를 알고, 온갖 노력을 다해 그를 구해내었다. 지휘는 너무 감격하면서도, 마땅히 보답할 게 없어 안타깝게 여겼다. 그러다가 자기 딸을 병충 아버지에게, 키질하고 청소하는 첩으로나 삼으라고 바쳤다. 그러자 병충 아버지는 손을 내저으며, “부릴 수가 없습니다.(使不得)”는 답변만 반복한 채, 지휘가 바친 간청을 끝내 받아주지 않았다.
나중에 그 아들 병충이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마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도중에 어떤 사람이 수레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부릴 수 없는 사람이 장원에 적중할 것이다.(使不得的中狀元)”라고, 두 번이나 되풀이해 소리치는 것이었다. 병충이 그 과거시험에서 장원에 급제한 뒤, 집에 돌아와 아버지께 그 일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크게 탄식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는 20년 전에 있었던 일로, 내가 일찍이 누구한테도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떤 신명(神明)께서 너한테 일러주시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