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때 모록문(茅鹿門)은 약관(弱冠)인 스무 살 즈음, 여요현(餘姚縣: 지금 절강성 동부 姚江 유역)에 유학(遊學)하면서 마을 사당 앞 전씨(錢氏) 집에 묵었다. 그런데 그 집에 한 예쁜 하녀가 모록문이 건장한 모습을 보고 흠모한 나머지, 하루 저녁에는 모록문 서재 앞에 와서, ‘마오 마오’ 하고 고양이(貓) 부르는 소리를 흉내 냈다. (고양이 貓(묘)는 옛날 음이나 지금 발음이나 茅(모)와 같아, 소리가 같고 뜻만 다른 동음이의同音異義 글자로, 중의重義적 비유를 통한 상징적인 유희를 꾀한 것임. 옮긴이 해설)
그래서 모록문이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혼자 와서 스스로 ‘마오 마오’ 하고 고양이를 부르느뇨?”
그러자 하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하였다.
“저는 작은 고양이(小貓)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큰 띠풀(大茅)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이에 모록문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우리 아버지께서 나를 글공부 시키려고 멀리 유학 보내셨소. 그런데 만약 례절에 어긋나게 그대를 가까이한다면, 나중에 내가 아버지를 어떻게 뵈오며, 또 무슨 낯으로 집주인 어른을 대한단 말인고?”
이 말을 들은 하녀는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모록문은 나중에 세종(世宗) 가정(嘉靖) 17년 무술년(戊戌年: 1538)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관직이 부사(副使)에 이르렀고, 90세까지 장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