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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 3. (2) 번뇌업장대치방도 煩惱障對治道

새 책 소개. 부처님 마지막 가르침 유교경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3. 1. 14. 23:41

본문

둘째로 번뇌업장대치방도(煩惱障對治道)입니다.

 

經曰:

汝等比丘! 當自摩頭, 已捨飾好, 著壞色衣, 執持應器, 以乞自活, 自見如是. 若起憍慢, 當疾滅之. 增長憍慢, 尚非世俗白衣所宜, 何況出家入道之人, 爲解脫故, 自降其身, 而行乞也?

?비구 여러분! 항상 스스로 빡빡 깎은 머리를 만져보며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좋은 옷과 장식을 이미 벗어버리고, 무채색 옷을 걸친 채 공양 받을 그릇을 들고 걸식(탁발)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스스로 바라보십시오! (그런데도 교만심이 일겠습니까?) 만약 교만심이 일어난다면, 마땅히 재빨리 사그라뜨려야 합니다. 교만심이 일어 커짐은 일반 세속 범부한테도 오히려 용납하기 어렵거늘, 하물며 해탈을 위해 출가 수도하며 스스로 몸을 낮춰 걸식하는 수행자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論曰:

3. (2) 둘째 번뇌업장대치방도(煩惱障對治道)는, 스스로 존귀하고 잘났다는 마음 없고(自無尊勝心), 자신을 가볍고 비천하게 여기는 마음수행(輕賤身心行)을 성취하며, 기고만장한 교만 번뇌(貢高煩惱)를 멀리함(遠離)을 나타냅니다.

1) 여기에는 일곱 가지(구절) 멀리 떠남(遠離: 對治) 수행이 있습니다.

①?汝等比丘, 當自摩頭?는 가장 위에 있는 높고 뛰어난 곳(上上尊勝處)에서 제일 먼저 조복하고(最先折伏), 항상 스스로 잘 알아야 함을 나타냅니다.

②?已捨飾好?는 그밖에 곳에서 장엄한 수식을 사용하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③?著壞色衣?는 의복 대치對治를 잘하라는 뜻입니다.

④?執持應器?는 자기가 받아쓰는(受用) 도구는 항상 자기가 지님을 뜻합니다.

⑤?以乞自活?은 안팎으로 받아쓰는 일에 허물이 생기는 다른 방편을 행하지 않고 스스로 조복調伏하기 위함입니다.

⑥?自見如是?는 지혜를 성취하여 항상 스스로 관찰함을 의미합니다.

⑦?若起憍慢, 當疾滅之?는 대치對治를 성취하여, 희미하게 일어날 때 얼른 멀리함을 나타냅니다.

【절요】무릇 재가자는 용모와 위의威儀에 의해 자신이 남(사물)보다 잘났다고 스스로 뻐깁니다. 그래서 관면冠冕으로 머리를 장엄하게 꾸미고, 칼이나 패물로 몸을 장식하며, 자줏빛 옷으로 눈부시게 빛내고, 머슴이나 하인(僮僕)으로 제 몸을 시중들도록 부리며, 돈으로 재물을 쌓아 저장합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고(富而無驕: 論語) 자신을 낮춰 수양하기에(卑以自牧: 주역 겸괘) 힘씁니다.

하물며 우리는 지금 네 가지 백성(四民: 사농공상)을 훌쩍 뛰어 벗어나, 성인 과위果位에 이르길 기약하지 않습니까? 머리를 밀어 몸을 훼손하고 물들인 옷을 걸친 모습은 교만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摩頭?는 손으로 머리를 만져 장엄한 관면冠冕이 없음을 알고,?已捨飾好?는 자신이 이미 칼이나 패물 장식을 놓아버렸음이며,?壞色?은 무채색 옷을 돌아보며 눈부신 자줏빛 화려함을 끊었음을 알고,?執持應器?는 공양 받을 그릇을 몸소 지녀, 부릴 머슴이 없음을 뜻하며,?以乞自活?은 빌어먹어 목숨을 이으며 쌓아 갈무리하는 재물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여기까지 다섯 구절은 교만을 부려서는 안 됨을 밝힙니다.

그 다음?自見如是?는 지혜를 성취하여 항상 스스로 관찰함을 밝힙니다. 마지막 한 구절은, 설사 교만이 일더라도 마땅히 재빨리 사유 관찰하여 허망한 마음을 그쳐 다스려야 함을 밝히므로,?當疾滅之?라고 합니다. 정색正色도 아니고 간색間色도 아니므로?壞色?이라 부르는데,《사분률》에 따르면?壞色?은 청색ㆍ흑색ㆍ목란색木蘭色입니다.

?應器?는 곧 발우(鉢)인데, 법에 응하는 그릇이라 붙여진 이름입니다.?교만憍慢?이란, 스스로 추어올리는 우쭐함을?憍?라 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거드름을?慢?이라 합니다.《구사론俱舍論》에는?慢은 남을 대하여 마음에서 일고, 憍는 오염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이는 법이다.(慢對他心擧, 憍由染自法.)?고 합니다.

 

2)?增長憍慢, 尚非世俗?이하 나머지는, 무슨 이치를 밝히려고 보인 것인가 하면, 스스로 자신을 항복降伏하는 수행인을 세속인과 비교하여, 교만憍慢은 현재ㆍ미래 공덕에 장애가 되므로 마땅히 일으키지 말라고 경계함입니다.

【절요】《주역》에 보면?사람은 찬 것을 싫어하고 겸손한 자를 좋아한다.(人道惡盈而好謙)?고 합니다. 로자는 부드럽고 무른 것은 살고, 굳세고 강한 것은 죽는다고 말합니다. 즉, 교만은 세속사람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자신을 낮추고 빌어먹음(降身行乞)은, 앞에?摩頭?등 다섯 가지가 모두 降身이고, 간추려 요점만 들었지만 다 빌어먹음(行乞)으로 귀결합니다.

【보주】빌어먹는 사람이 갓을 쓰고 칼을 차고 눈부신 옷을 입고 머슴을 거느리는 걸 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해설】첫째?當自摩頭?는 머리를 장엄할 관면冠冕이 없고, 둘째?已捨飾好?는 몸을 장식할 칼이나 패물이 없으며, 셋째?著壞色衣?는 눈부시게 화려한 오색 의복이 없고, 넷째?執持應器?는 시중들거나 부릴(使役) 머슴이나 하인(僮僕)이 없으며, 다섯째?以乞自活?은 쌓아 저장한 돈이나 재물이 없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응용하여 항상 스스로 관찰하여, 만약 교만이 일면 곧장 재빨리 소멸시켜야 합니다.

?壞色衣?는 세 가지 가사와 일체 바지ㆍ방석 같은 좌구坐具 등도 모두 청색ㆍ흑색ㆍ목란색木蘭色의 세 무채색(壞色)을 사용한다는 뜻입니다.?應器?는 곧 발다라鉢多羅인데, 재질ㆍ빛깔ㆍ크기 세 가지 모두 법에 맞아야 합니다. 재질(體)은 오직 질그릇과 쇠 두 가지만 쓰며, 빛깔(色)은 비둘기 색을 띠며, 크기(量)는 식량(腹: 위장)에 따라 정합니다. 그 다음 문장에서는 백의白衣를 들어 비교하고 있습니다.

【강의】맨 앞에서,?비구比丘?는 첫째?악마가 두려워 떪(怖魔)?, 둘째?빌어먹는 선비(乞士), 셋째?악을 쳐부숨(破惡)?이라는 세 가지 뜻을 머금고, 또?기근 제거(除饉)?라는 뜻으로 곧 복전福田을 일컫는다는 풀이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스갯소리로?거지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금강경》첫머리에서 생생히 펼쳐지듯이, 부처님께서 몸소 제자들을 거느리고 사위성舍衛城에 탁발하러 다니시며 솔선수범으로 가르치신 뜻은, 비구들한테 중생에 복전福田이 되라는 뜻뿐만 아니라,?걸사乞士?라는 이름에 걸맞게 스스로 하심下心하고 항복기심降伏己心하여 교만한 아상我相을 여의고 겸손한 덕성을 함양하라는 뜻도 컸습니다.

자기 수양이 안 된 상태에서 남에 모범이 되고 중생에 복전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탁발 걸식은 2천년 동안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수행전통이었고, 특히 두타頭陀행은 부처님도 지극히 찬탄하신 수행방법이었습니다.

근데 오탁악세五濁惡世에 지극히 혼란스런 말법시대가 된 탓이겠지만, 우리 불교는 사회적 부작용을 방지하고 종단을 정화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탁발?을 금지하여, 부처님 본디 가르침에 정면으로 거슬러 어긋나는 역주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역설逆說입니까?

그런 탓인지, 요즘 일부 스님들은?승속僧俗?을 차별하여 군림하는 듯한 교만한?아상我相?과?법상法相?이 가히?기고만장氣高萬丈?이라 부를 만합니다. 물론, 속기俗氣가 강한 일부 돈 많은 아녀자들이 삼보를 공양하는?보살?이란 미명 아래 산림 절간에까지 치맛바람을 드세게 일으킨 탓도 크겠지만, 요즘에는 스님들도 우바이건 우바새건 가리지 않고 재가불자들한테 으레 앉아서 에헴 하고 큰 절로 삼배를 받고 공양 받는 일이 적지 않은가 봅니다.

몇 년 전, 어느 우바새(청신녀)가 출가하기 직전에 나한테 들려준 얘기입니다. 어느 스님이 참으로 진솔하게?중이 중상(僧相: 法相)만 없으면, 그 자리가 곧 부처다.?고 고백하더랍니다.《금강경》에서 그렇게 되뇌는?무상無相?에 이르기 위해 탁발걸식을 하신 건데, 지금 그 전범典範이 물구나무서기를 한 탓은 아닐는지요?

가끔씩 화면으로 남방불교나 티벳ㆍ부탄 스님들이 탁발‧걸식하는 행렬을 보노라면, 그렇게 청정하고 장엄하며 아름다운 인간 띠가 없다는 감동을 받습니다. 현지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본 분 말씀으로는 더더욱 장엄한 감동이라고 합니다.?진선미眞善美’삼위일체감이 느껴진답니다.

우리 불교계도 그런 장엄한 집단 탁발행렬만 되찾는다면, 교계 정화는 물론 사회 정화도 크게 이루고, 무슨 범불교대회 같은 세속적 집회로는 얻기 어려운 막강한 법력法力 자장磁場이 저절로 이루어져, 그토록 극성떠는 기독교계도 위압威壓당해 제법 수그러질 거라고 기대해봅니다. 탁발수행 행렬보다 더 장엄하고 막강한 평화시위는 드물 것 같습니다. 항상 개인 탁발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다른 종교단체에서 포교 다닐 때, 항상 두어 사람씩 짝지어 함께 다님도 음미하고 본받을 만합니다.

한편, 유가나 도가도 겸허한 덕을 아주 중시합니다. 삼현三玄에 하나인《주역周易》에서, 64괘 중 유일하게 여섯 효사爻辭가 모두 길한 괘는 겸괘謙卦 하나뿐이랍니다.

“하늘 도는 찬 것을 일그러뜨려 겸손한 자를 보태주고, 땅 도는 찬 것을 변화시켜 겸손으로 흐르게 하며, 귀신은 찬 것을 해치고 겸손한 자를 복 주며, 사람은 찬 것을 싫어하고 겸손한 자를 좋아한다.(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

《서경(書經: 尙書)》에는“꽉 차면 덜어냄을 초래하고, 겸허하면 보탬을 받는다.(滿招損, 謙受益.)?는 말이 있습니다.

로자老子는 자신이 지닌 삼보三寶가?자비’와?검박儉朴?과?감히 남들 앞에 나서지 않음?이라고 고백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다가 천하 모든 강물에 왕이 되어 다 받아들이는 것은 가장 낮기 때문이라며, 천하에 왕도 바다처럼 가장 낮추어 모든 사람을 포용하라고 가르칩니다.

요컨대, 겸손은 만덕萬德에 으뜸이요, 오만은 악마에 왕입니다. 겸허는 도덕 수양을 완성하는 화룡점정畵龍點睛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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