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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 3. (3) 업장대치 業障對治

새 책 소개. 부처님 마지막 가르침 유교경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3. 1. 14. 23:41

본문

다음으로 셋째 업장대치業障對治를 설한다.

 

經曰:

汝等比丘! 諂曲之心, 與道相違. 是故, 宜應質直其心. 當知諂曲但爲欺誑, 入道之人, 則無是處. 是故, 汝等宜當端心, 以質直爲本.

?비구 여러분! 굽실굽실 아부하는 마음은 도道와 서로 어긋납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자기 마음을 질박하고 정직하게 지녀야 합니다. (환심 사고 비위 맞추기 위한) 아부와 아첨은 단지 서로 속이는 짓임을 아십시오. 도에 입문한 수행자는 이러한 짓이 없으므로, 여러분은 마땅히 마음을 단정히 갖고, 질박과 정직을 근본바탕으로 삼아야 합니다.?

 

論曰:

3. (3) 셋째 업장대치(第三障對治)는 근본이 되는 정직한 마음(根本直心)을 나타냅니다.

1)?汝等比丘, 諂曲之心, 與道相違?는, 아첨하고 굽실거리는 번뇌업장(諂曲煩惱障)은, 입(口: 말)과 뜻(意: 생각) 모두에서 자신한테도 어긋나고 남한테도 어긋나므로(自違違彼), 멀리하라(遠離)고 일깨우십니다.

【절요】그 뜻을 바라면서 (비위를 맞추려고 그에 맞는) 그 말을 하는 걸 첨諂이라 합니다. 그래서 아첨하는 말을 하는 자는 반드시 그 마음이 굽기 마련입니다. 도는 질박하고 곧은 걸 숭상하므로, 도와 서로 어긋난다고 합니다.

【보주】《유마경》에 이르기를, 처음 마음을 낸 때부터 도량에 앉을 때까지, 순수하게 한결같이 곧은 마음이며, 중간에 어떠한 굽은 모습도 전혀 없다고 합니다.

 

2)?是故宜應質直其心?은 도에 어긋나는 업장 대치(違道障對治)를 다시 보인 것입니다.

【절요】마음을 질박하고 곧게 지키면 아첨이 일지 않습니다.《능엄경》에서도 생사를 벗어남은 모두 올곧은 마음으로 한다고 합니다.

 

3)?當知諂曲但爲欺誑, 入道之人則無是處?는, 서로 어긋나는 법이라, 도를 닦을 때 있어서는 안 될 것임을 나타냅니다. 여기서?欺誑?은 마음(心)과 입(口)이 동시에 진실하게 쓰이지 못함을 뜻합니다.

【절요】도는 질박하고 올곧음에 힘쓰는데, 굽은 마음으로 도에 들어가면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4) 그밖에?是故, 汝等宜當端心, 以質直爲本?은, 올곧은 마음(直心)이 바로 도심에 근본(道心本)임을 강조합니다.

【절요】올바른 길(正道)을 올곧다고 부릅니다. 가장자리를 떠나 가운데를 보거나, 구체 사물을 떠나 추상 이치를 구하는 것은, 모두 첨곡諂曲이라 부릅니다.

【보주】가장자리에 나아가서도 가운데를 이루어야 합니다. 단지 가운데만 지키는 것도 오히려 비난하거늘, 하물며 다시 한쪽에 치우쳐 집착하면 오죽하겠습니까?

구체 사물에 나아가서도 추상 이치에 맞아야 합니다. 단지 추상 이치만 지키는 것도 오히려 비난하거늘, 하물며 다시 구체 모습에 집착하면 오죽하겠습니까? 이와 같은 게 참으로 질박하고 올곧음이거늘, 어찌 근근이 성실한 걸 일컫겠습니까?

【해설】환심을 사고 비위를 맞추는 말을 아첨(諂: 빌붙음)이라 부르고, 경우에 따라 이리 저리 맞추려는 생각(마음)을 왜곡(曲: 굽힘)이라 일컫습니다. 아첨하면 질박하지 못하고, 굽히면 올곧지 못합니다.

이런 마음은 단지 자신을 스스로 속일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도 속이는 것이니, 도에 들어가 수행하는 사람이 지닐 게 결코 아닙니다.

올곧은 마음이 바로 도량입니다.(直心是道場) 마음과 말이 올곧기 때문에, 영원토록 어떠한 굽실거리는 짓도 전혀 없습니다. 가령 진여를 올바르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단정한 마음(端心)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여기까지 세간과 공유하는 법의 요점을 밝혔습니다.

【강의】영어 속담에도?정직이 최상에 정책!(Honesty is the best policy.)?이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위대한 영혼이란 뜻으로?마하트마?칭호를 받은 간디도, 한평생 영국 변호사로서 활동하면서 이 격언을 자기 생활신조로 삼았다고 합니다. 영국은 섬나라로 본디 노르만 해적 소굴이었을 텐데, 이런 격언이 있다는 것은 일찍이 도道의 본질을 깨달은 성현의 교화가 일반대중 생활 깊숙이 배었음을 암시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런 언어관용이 이루어졌겠지요.

?영국 신사?를 떠올리는?noblesse oblige?와도 상통하는 귀족문화의 고상한 자부심이 아닐까요? 우리 세간에서도 학문을 굽혀 권력에 아부하는?곡학아세曲學阿世?무리들은?어용학자?라는 딱지를 붙여 천시합니다. 세간 학문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출세간 도덕道德수행이야 오죽할까요?!

한편?절요?와?보주’말씀을 보노라면, 유교에서 그렇게도 어렵다는?시중時中?이 떠오릅니다. 유가에도?어진 도는 류하혜柳下惠처럼 유들유들하지도 않고 백이伯夷처럼 곧게 세차지도 않은 사이에 있다.(仁在不惠不夷之間.)?는 명언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불교에는 교만하지도 않고 비굴하지도 않은 가운데 반야의 도가 있습니다. 모두 중도中道 실상實相을 일깨우는 가르침입니다.

 

여기까지 세간공덕을 닦아 쌓는 부분(修集世閒功德分)을 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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