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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3. 대인원리공덕 大人遠離功德

새 책 소개. 부처님 마지막 가르침 유교경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3. 1. 14. 23:39

본문

다음에는 셋째로 대인이 멀리 떠나는 공덕(大人遠離功德)을 설합니다.

 

經曰:

汝等比丘! 若求寂靜無爲安樂, 當離憒鬧, 獨處閑居. 靜處之人, 帝釋諸天所共敬重. 是故, 當捨己衆他衆, 空閑獨處, 思滅苦本. 若樂衆者, 則受衆惱. 譬如, 大樹, 衆鳥集之, 則有枯折之患, 世閒縛著, 沒於衆苦. 如老象溺泥, 不能自出. 是爲遠離.

?비구 여러분! 고요하고 괴괴한 무위안락을 구하고 싶거든, 시끌벅적하고 번잡한 곳을 벗어나 홀로 한적하게 머무십시오. 고요한 곳에 있는 사람은 제석帝釋을 비롯한 여러 천인天人이 다함께 공경하고 존중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대중이나 남의 대중을 모두 놓아버리고, 텅 빈 한적한 곳에 홀로 거처하며, 괴로움 뿌리를 뽑아버리려고 사유하십시오. 대중을 좋아하면 반드시 대중의 번뇌를 받기 마련입니다.

비유하자면, 큰 나무에 수많은 새들이 모여들어 깃들면,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환난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세간 속박과 집착은 온갖 괴로움으로 함몰하고 맙니다. 마치 늙은 코끼리가 진흙탕 수렁에 빠져들어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듯이! 이것이 바로 멀리 떠남(遠離)입니다.?

 

論曰:

3. 셋째로 대인이 멀리 떠나는 공덕(第三大人遠離功德)에서는, 세 문으로 나누어 포섭하는 이치(三門攝義)를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첫째, 자성원리문自性遠離門에서는 본체가 나옵니다. 둘째, 수습원리문修習遠離門에서는 방편이 나옵니다. 셋째, 수용제견문受用諸見門에서는 항상 속박 당합니다.

(1) 우선, 자기 성품상 멀리 벗어나는 자성원리문自性遠離門에서는 네 가지 대치對治법을 내보입니다.

1)?汝等比丘, 若求寂靜, 無爲安樂?는, 아상집착장애(我相執著障)를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여기서,?寂靜?은 법에 내가 없는 공(法無我空)을 보이고,?無爲?는 모습 없는 공(無相空)을 보이며,?安樂?은 취사선택과 원함이 없는 공(無取捨願空)을 보입니다.

【절요】무아집착장애(無我執著障)를 다스리는 방법이니, 곧 세 삼매입니다.

 

2)?當離憒鬧?는 내 것 장애(我所障)를 다스리는 방법이니, 다섯 대중(五衆)이 순서 없이 뒤죽박죽 어지러이 일어남(亂起)이 바로?궤뇨憒鬧?입니다.

【절요】대중(제자, 문도)이 곧 내 것(我所)입니다. 그래서 아래 경문에서 자기 대중과 남의 대중을 모두 마땅히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중으로 인해 시끄럽고 어지럽기(憒鬧) 때문입니다.

 

3)?獨處閑居?는 앞에 두 모습 없음에서 생기는 장애(彼二無相障)를 다스리는 법입니다. 나(我)와 내 것(我所)은 본디 스스로 모습이 없는데, 이제 세 삼매를 닦아 모습 없는(無相) 진리를 뚜렷이 아니, 그 장애도 따라서 사라집니다.

【절요】그러한 즉, 오고 감(去來)을 품지 않고 잊는 자는 저자거리나 조정(市朝)에서도 강호江湖 같을 것이오, 삶과 죽음을 돌아보며 연연하는 자는 산림山林에서도 오히려 수갑과 족쇄(桎梏)를 찬 꼴일 겁니다. 이제 정성껏 초심初心으로 한가하고 고요함(閒靜)을 구해야 하며, 그래야 진리(道)를 관조해 쉽게 이루어집니다.

4)?靜處之人, 帝釋諸天所共敬重?은, 무위의 으뜸공덕 장애(無爲首功德障)를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고요함은 하늘조차 존중하는 법으로, 온갖 선법 가운데 최고으뜸이기 때문입니다.

【절요】?帝釋?은 온전히 말하면?석가인다라釋迦因陀羅?인데, 뜻으로 옮기면?능주能主?이니, 그가 능히 하늘 주인이 된다(能爲天主)는 뜻입니다. 수미산 봉우리 위에 거주하는데, 욕계 둘째 하늘(第2天: 忉利天)입니다.

【보주】 (론에서?아상집착장애(我相執著障)?라고 말한 걸 절요에서)?무아집착장애(無我執著障)?라 말한 것은, 본디?나?라고 집착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인데,?나?라는 이름(名)이 있어 장애가 됩니다. 여러 천상(諸天)에서는, 예컨대 허공에서 생겨 (텅 빈 듯 살며) 고요히 앉아(空生靜坐) 수행하는 일 같은 걸 공경합니다.

【강의】?무아?도?나?를 전제로 그 부정否定을 가리키니,?무아?에 집착함도 알고 보면?나?라는 이름(名)에 집착하는 장애인 셈입니다.?나?에 집착함이?색色?에 집착함이라면,?무아?에 집착함은?공空?에 집착함입니다. 색과 공, 나와 무아, 그 어디에도 걸림 없어야, 참된 중도실상中道實相이요 열반해탈입니다.

 

(2) 다음으로, 멀리 벗어남을 배우고 익히는 수습원리문修習遠離門입니다.

?是故, 當捨己衆他衆?은 나와 내 것을 멀리하여(遠離我我所) 다시는 모여듦이 생기지 않음입니다.?空閑獨處?는 법대로 여여하게 머물러(如法如住) 방편지혜(方便慧)를 성취함이며,?思滅苦本?은 일어날 원인을 아예 멀리하여(遠離起因) 선택지혜(善擇智)를 성취함입니다.

【절요】?衆?은 4인 이상을 가리킵니다. 자기 대중은 제자 및 동학을 이르니, 남의 대중은 알 만합니다.

【보주】?衆?에는 두 차원의 의미가 있습니다. 구체 사물로 보면, 자기 및 남의 제자무리를 각각 가리킵니다.(절요 해석) 추상 이치로 보면, 오온五蘊이 자기대중이고, 일체 번뇌가 남의 대중입니다. 오온에 미혹하여 집착하기에 온갖 번뇌가 모여들어 생사고해를 윤회하므로, 마땅히 멀리 떠나야(遠離) 합니다.

【해설】자기 대중(己衆)은 오음五陰과 심心과 심소법心所法이고, 남의 대중(他衆)은 스승이나 제자나 동학을 가리킵니다.

【강의】?衆?의 본디 글자는?众?으로, 사람?人?자를 세 개 포개놓은 모습(众: 현재 중국에서 간체자로 쓰는 형상)인데, 문자학(어원론)에서는 글자대로 3인 이상을 가리킵니다. 당률唐律을 비롯한 전통 율령은 3인 이상을?衆?으로 정의(定義: 입법해석)합니다.

 

(3) 마지막으로 온갖 견해를 받아쓰는 수용제견문受用諸見門입니다.

1)?若樂衆者, 則受衆惱?는, 나와 내 것을 모으기 좋아하면(樂集我我所), 나와 남의 분별이 생겨, 마음과 경계(心境)가 서로 괴롭힘을 뜻합니다.?譬如大樹, 衆鳥集之, 則有枯折之患?은, 온갖 견해가 모여 생기면, 결국 자신을 해치게 됨이 마치 큰 나뭇가지와 비슷하다는 비유법입니다.

【절요】자기 대중과 남의 대중은 능히 괴롭히는 주체로서 경계(能惱境)이고, 뭇 고뇌를 받는 자는 곧 괴롭힘을 당하는 마음(所惱心)입니다. 마음이 이미 괴로움을 받으면, 곧 온갖 견해가 모여들어 생기고, 생긴 다음에는 스스로 해칩니다. 이어 큰 나무로 비유하는데, 큰 나무는 자기 마음을 상징하고, 뭇 새는 자기 대중과 남의 대중을 비유하며, 썩어 부러짐은 온갖 견해가 모여들어 생김을 비유합니다.

【보주】남을 이롭게 함(利他)을 보살이라 이름하고, 홀로 제 몸만 착하게 함(獨善其身: 自利, 利己)을 성문이라 부릅니다. 헌데 어찌하여 대중 즐겨함(樂衆)을 괴로움 받는다(受惱)고 합니까?

답변: 자여子輿씨 말대로, 사람들 근심(우환)은 남의 스승노릇하길 좋아함에 있습니다. 그 뜻풀이는 이렇습니다. 학문이 넉넉해 사람들이 자기한테 자문을 구하고 배워가는 건 마지못해(不得已) 호응하는 것이지, 만약 남의 스승노릇하길 좋아한다면, 그게 바로 근심거리 원인이 된답니다. 그 근심이 좋아함(好)에서 생기듯이, 지금 이 경문에서 근심은 즐겨함(樂)에서 생깁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스스로 이로움(自利)과 남을 이롭게 함(利他)이 한 덩어리로 함께 한 그루 커다란 나무를 이루어, 천하 사람들한테 쉬어 갈 수 있는 서늘한 그늘을 드리운다면, 이거야말로 참말 커다란 이로움(大利)이니, 무슨 근심걱정이 있겠습니까?

【강의】평소 제 체험으로 느끼던 상념을 련지대사 보주에서 만나니, 참으로 경이롭고 반갑습니다. 한 마디로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차이겠지요. 터럭 끝만한 마음씀 차이가 천양지차로 벌어지니, 자신 수행에 열심히 전념하여 도가 무르익고 덕이 쌓여 넘치면, 자연스런 결과로 도덕 향기가 널리 퍼져 주위 중생이 자발로 기꺼이 따르고 저절로 덕택德澤을 입을 것입니다.

허나 자신의 지혜복덕 수양은 생각지 않고, 사사로운 저의底意에서 억지로 남을 끌어들여 ~체하며 따르게 하면, 마음속 비방(腹誹)과 저항으로 막대한 정신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마치 말 안 듣고 버티는 맴생이(염소)를 억지로 끌듯이! 공자도 부드러운 문덕文德을 닦아 저절로 찾아오게 만들라(修文德以來之)고 가르쳤고, 로자는 부득이한 무위자연을 최고 도덕으로 일깨웠습니다.

요즘은 자기 PR시대라고, 승속僧俗을 가리지 않고 너도나도 앞 다투어 자기 잘난 체하여, 한결같이?나를 따르라?고 외치면서 스스로 스승과 지도자가 되고자 나서니, 도처에서 수시로 교만심과 자존심이 충돌해 엄청난 혼란이 빚어지며,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한문 속담에?유심히 심은 꽃씨는 싹도 안트는데, 무심히 꽂은 버들가지는 무성한 그늘을 드리운다(有心種花花不開, 無心揷柳柳成蔭).?는 명언이 있습니다. 여기 有心과 無心이 바로 有爲ㆍ無爲의 개념에 가깝습니다. 계산적‧의도적 私心이 없는 無心이란 곧 天眞ㆍ自然을 뜻하는데, 이게 바로 로자의 無爲自然입니다.

2)?世閒縛著, 沒於衆苦, 如老象溺泥, 不能自出, 是爲遠離’는, 세간을 떨쳐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無出離相)은 결국 번뇌업장에 오염당하기 마련인데, 마치 늙은 코끼리(老象)가 진흙수렁에 빠지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비유법입니다.

【절요】늙은 코끼리(老象)는 속박에 얽매임(縛著)을 비유하고, 진흙수렁에 빠짐(溺泥)은 뭇 괴로움(衆苦)을 비유하는데, 코끼리(象)라 몸이 무겁고 속박에 얽매임(縛著)이 두터우며, 늙은(老)지라 진흙수렁에 빠져서도 관조 지혜가 희미합니다. 그래서 뭇 괴로움의 수렁(衆苦泥)에 빠져서도 스스로 헤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주】?世閒縛著?이라 함은, 홀로 거처하면 출세간법出世間法이고, 대중을 즐겨함은 세간법世間法이라는 뜻입니다.

【해설】자기 대중 관점에서 보면, 큰 나무는 제6식識을 비유하고, 뭇 새는 온갖 심소법心所法을 비유합니다. 남의 대중 관점에서 보면, 큰 나무는 비구를 비유하고, 뭇 새는 동학이나 제자들을 비유합니다. 이로부터 온갖 견해가 생겨남은 나뭇가지 부러짐을 초래한다는 비유입니다. 또 견해로 인해 업장이 이루어지고, 업장으로 인해 고통을 초래하니, 그래서 늙은 코끼리가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늙음?은 관찰지혜가 쇠미함이니, 미혹장애(惑障)이고; 코끼리는 몸이 몹시 크고 무거워서, 얽매임과 집착 감정이 두터움을 비유하니, 바로 업장이며; 수렁에 빠짐은 온갖 고통에 빠짐을 비유하니, 바로 보장報障입니다. 한번 멀리 떠나지 않아 세 장애가 항상 뒤엉켜 얽매니, 어찌 빠져나갈 요로要路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강의】대승보살도 원리遠離수행이 아주 중요합니다! 연꽃 상징비유에 눈이 멀어, 무조건 진흙탕 속에 들어감을 대승보살도로 오해‧착각하지 맙시다! 연꽃‧토란처럼 잎과 줄기가 천연 코팅된 완전방수 체질이 되고, 또 오리나 물새처럼 꽁무니에 지방샘 있어 수시로 깃털에 기름막을 쳐서 완전방수 처리할 수 있어야, 진흙탕이든 물속이든 들어가도 본디 청정함을 지키면서 자유자재로 노닐 수 있는 법입니다.

수행자도 연꽃이나 오리처럼 천연 방수체질을 갖춰야, 비로소 오탁악세 세속에 빠지거나 물들지 않고 여여히 노닐면서 중생을 건질 수 있겠지요. 그러려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 불퇴전不退轉 경지에 오른 다음에야 가능하겠지요. 헤엄도 칠 줄 모르면서 물속에 뛰어들어 남을 건지겠다니, 가능한 일인가요? 마음과 뜻(發願)은 가상하지만, 괜히 허풍 떨거나 나와 남을 속여 끝내 함께 빠져죽는 어리석은 만용蠻勇이 될까 저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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