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둘째로 대인지각공덕(第二大人知覺功德)을 설합니다.
經曰:
汝等比丘! 若欲脫諸苦惱, 當觀知足! 知足之法, 卽是富樂安隱之處. 知足之人, 雖臥地上, 猶爲安樂; 不知足者, 雖處天堂, 亦不稱意. 不知足者, 雖富而貧; 知足之人, 雖貧而富. 不知足者, 常爲五欲所牽, 爲知足者之所憐愍. 是名知足.
?비구 여러분! 만약 온갖 고통과 번뇌를 벗어나고 싶거든, 만족할 줄 아는 법을 관찰하십시오. 만족할 줄 아는 법이 바로 부유하고 즐거우며 평안한 곳입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맨땅 위에 눕더라도 오히려 안락하지만,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록 천당에 가더라도 오히려 불만입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자는 설사 부유하더라도 실은 가난하며,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설령 가난하더라도 정말 부유합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자는 항상 오욕에 이끌려 헤매므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이들을 가엾이 여깁니다. 이것이 바로 만족할 줄 앎(知足)입니다.?
論曰:
2. 둘째로 대인의 지각공덕(第二大人知覺功德)은, 만족할 줄 아는 수행을 성취함(成就知足行)입니다.
(1)?汝等比丘, 若欲脫諸苦惱, 當觀知足?은 고뇌의 인과를 대치(對治苦因果)하는 법이다. 여기서?苦惱?의?惱?는 번뇌의 허물이 괴로움으로부터 생김(煩惱過從苦生)을 나타냅니다.
【보주】번뇌가 괴로움에서 생긴다(惱從苦生) 함은, 예컨대 도둑질할 마음이 굶주림과 추위에서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2)?知足之法, 卽是富樂安隱之處?는 청정한 인과를 성취하는 대치법(淸淨因果成就治法)을 뜻합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여기 지족知足과 앞에 지각知覺은 똑같이 알아차림인데, 양자가 서로 어떻게 다를까요? 앞에?知覺?은 외부 다른 경계의 사물을 멀리함(遠離他境界事)이고, 여기?知足?은 자기 일(自事)에서 멀리함(遠離)을 뜻합니다.
【보주】밖으로 탐하여 구함이?他?이고, 안으로 안락함이?自’입니다.
(3)?知足之人, 雖臥地上?이하에서 분별 해설한 바와 같이, 만족할 줄 알고 모르고(知足不知足) 차이를 나타내는, 세 가지 차별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1) 어떠어떠한 곳(處)에서 받아쓰는가에 따라 지상과 천당에 차별이 납니다.
【절요】땅바닥에 누워도 감옥보다 훌륭하게 여기면 마음이 안락하며, 금당金堂에 살아도 더 나은 요대瑤臺를 부러워하면 찡찡거립니다.
【보주】꾀하는 신하도 베옷을 편안히 여기면 몸을 보전하고, 전륜성왕도 천왕 자리를 바라다간 땅에 떨어진답니다.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 어떠어떠한 일(事)에서 받아쓰는가에 따라 부자와 가난한 자에 차별이 생깁니다.
【절요】왕융王戎은 상아 주산으로 매양 재산을 셈했으며, 안회는 누추한 거리에 살면서도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무릇 만족할 줄 모르는 자는, 진귀한 보배가 많지 않음을 한탄하고, 토지가 넓지 않음을 못마땅해 하며, 가옥이 화려하지 않음을 수치로 여깁니다. 무릇 하는 일마다 마음에 늘 모자라게 여기니, 이야말로 참말 가난한 게 아니고 무엇일까요?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베옷을 입어도 여우 갖옷(모피옷)보다 따뜻하며, 비록 꽁보리밥을 먹어도 기름진 쌀밥보다 맛있으며, 비록 띠풀 집에 살아도 큰 기와집보다 편안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족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열반경》에서 만족할 줄 아는 게 최고제일에 즐거움이라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런 뜻인가요?!
【보주】왕융王戎은 진晉나라 사람으로, 지위가 삼공三公에 이르렀으면서도 스스로 상아 주산을 잡고 재산을 회계했는데, 만족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옥夏屋은 큰 집인데,《시경》에 나오는?夏屋渠渠?가 그것입니다.
【강의】지족知足은 로자도 아주 강조하는 중요한 수양도덕인데, 지족知足이나 부지족不知足은《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60번 나오고,《고려대장경》에 무려 2676번이나 나옵니다.?夏屋?은?廈屋?과 같은데, 요즘 같으면 빌딩을 가리킵니다.
3) 어떠어떠한 법 가운데서 받아쓰고 자타自他로 이익이 있나 없냐에 따라, 욕망에 끌리는 자와 연민하고 동정하는 자는 차별이 있습니다. 욕망에 끌리면 자리自利가 없고, 욕망에 끌리지 않으면 자리自利가 있으며, 나아가 만족할 줄 모르는 자를 연민‧동정할 수 있으면 이타利他가 있습니다.
【절요】욕망에 끌린다 함은, 빛을 사랑하고 소리를 탐하여 그칠 줄 모름입니다. 이미 자리自利도 없거늘, 어떻게 남을 연민할 수 있겠습니까? 만족할 줄 알면 두 가지 이로움이 있습니다. 첫째 욕망에 끌리지 않음은 자리自利요, 둘째 남을 연민할 수 있음은 이타利他입니다. 마음에 연민하면, 반드시 가르쳐 일깨움이 될 것입니다. 로자도 “착하지 못한 사람은 착한 사람에 밑천(반면교사)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보주】?만족할 줄 아는 이가 연민한다?는 말의 올바른 뜻은, 이들 어리석은 자가 지혜로운 사람의 연민을 받음을 일컫습니다. 정원법사가 소疏에서?남을 연민할 수 있음은 이타利他다?고 풀이한 것은, 대개 그 뜻을 완곡하게 펴서 밝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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