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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업 중생도 극락왕생할 수 있는 도리

의심끊고 염불하세. 천태지자대사 정토십의론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3. 1. 1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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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업 중생도 극락왕생할 수 있는 도리

 

 

여덟 번째 의문

우리 중생들은 시작도 없는 아득한 옛날[無始]부터 한량없는 악업을 지어 왔습니다. 금생에 다행히 사람 모습을 타고나긴 했지만 참다운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였고, 그래서 또 다시 죄악이란 죄악은 짓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모든 죄업을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臨終] 나무 아미타불 명호 열 번만 염송[十念]해 내면, 곧장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시방 삼계를 벗어나고 생사 륜회의 악업을 끝마칠 수 있다고 하십니까? 도대체 어떠한 도리로 해명하시렵니까?

 

답변

중생들이 시작도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어 온 선행과 악업의 종자가 얼마나 많고 얼마나 강한지는 결코 알 수 없소. 다만 목숨이 다할 때 선지식을 만나 (그 가르침을 믿고 따라) ‘나무 아미타불 명호 열 번만이라도 염송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숙세(宿世)의 선행공덕[善業]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에 비로소 림종에 선지식을 만나 열 번 념불[十念]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오. 만약 악업이 많은 중생이라면, 그런 선지식을 만날 수조차 없는 법인데, 하물며 어떻게 목숨이 끊어지는 그런 순간에 (정신을 집중하여) 열 번의 념불을 성취할 수 있겠소?

또 그대가 (질문하는 걸 보니) 시작도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어온 악업만 아주 무겁게 생각하고, 목숨이 다할 때 나무 아미타불 염송 열 번 해내는 공덕은 가벼이 여기는 모양인데, 이제 세 가지 도리(道理)로 비교해 본다면, 악업과 공덕의 경중이라는 게 일정하게 정해지는 것도 아니고, 또 그 시간(세월)의 길고 짧음이나 수량의 많고 적음에만 달린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소.

그 세 가지 도리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마음[]에 달려 있고, 둘째는 연분[]에 달려 있으며, 셋째는 의지 결정(決定) 여하에 달려 있소.

첫째, 마음에 달려 있다 함은 이렇소. 중생이 죄악을 지을 때는 허망(虛妄)하고 앞뒤가 뒤바뀐[顚倒] 번뇌망상으로 말미암지만, 념불(念佛)하는 것은 선지식으로부터 아미타부처님의 진실하고 공덕(功德) 원만한 명호에 대해 설법을 들음으로써 비롯되오.

이렇듯이 하나(죄업)는 허망하고 하나(념불 공덕)는 진실하니, 어떻게 둘을 서로 나란히 비교할 수 있겠소? 비유하자면, 마치 만 년 동안 깜깜했던 암실(동굴)에 햇빛이 잠시만 비쳐 들어도 암흑은 단박에 사라져 버리는 것과 같소. 어찌 오래된 암흑(죄업)이라고 해서 순간의 햇빛(념불 공덕)에 사라지지 않을 리가 있겠소?

둘째, 연분에 달려 있다 함은 이러하오. 죄악을 지을 때는, 허망하고 어둡고 어리석은 마음이 허망한 경계의 연분을 만나 본말이 뒤바뀌어 죄악을 짓게 되오. 그러나 념불하는 마음은 부처님의 청정하고 진실하며 공덕 원만한 명호를 듣고서 더할 나위 없는 보리심[無上菩提心]을 연분으로 생겨나게 마련이오.

이처럼 하나는 거짓되고 하나는 진실하니, 어떻게 둘을 서로 나란히 비교할 수 있겠소?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독화살에 맞았는데, 독이 극렬하고 화살이 깊이 박혀 근육을 손상시킴은 물론 뼈까지 파괴되었으나, 한번 독약을 말끔히 사라지게 하는 신령스런 북[藥鼓] 소리를 듣자마자, 금세 화살이 저절로 뽑혀 나오고 독 기운도 풀려 버리는 것과 같소. 그런데 이 경우 화살이 좀 깊이 박히고 독이 극렬하다고 해서, 어찌 안 빠지고 해독 안 될 리가 있겠소?

셋째, 의지 결정에 달려 있다 함은 또 이러하오. 죄악을 지을 때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상황에서 이거 한번 해볼까 하는) 한가한 마음[閒心] (나중에 뉘우치고 속죄할 기회가 있겠지 하고) 뒷날을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後心]이 으레 있게 마련이오.

하지만 념불할 때는, 지금 당장 숨 넘어가면 생명이 끝날 판인데, 그런 한가한 마음과 뒷날을 기대하는 마음이 도대체 있을 수 없소. 그래서 착한 마음[善心]으로 맹렬하고 예리하게 정신 바짝 차려 념불하게 되므로, 곧장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오.

비유하자면, 열 겹으로 묶은 밧줄은 천 사람도 끊을 수 없지만, 어린애가 칼 한번 휘두르면 순식간에 두 동강 나는 것과 같소. 또 천 년 동안 쌓아 놓은 장작더미가 콩알만한 불씨를 가지고도 짧은 시간에 죄다 타버리는 것과 같소. 그리고 반대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한평생 동안 열 가지 선행[十善業]을 꾸준히 닦아 마땅히 천상에 올라가야 할 인연인데, 림종 때 한 순간의 결정(決定)적인 삿된 생각[邪見]을 품음으로써 곧장 아비지옥에 떨어지는 것도 마찬가지 리치라오.

악업이라는 게 허망한데도 불구하고, 림종 때 한 생각이 맹렬하고 예리했던 까닭에, 오히려 한평생 동안의 선행 공덕을 죄다 물리치고 지옥이라는 악도(惡道)에 떨어지게 만든 것이오. 하물며 림종 때 맹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념불한다면, 한가한 생각 없는 진실한 마음의 선행 공덕은 오죽하겠소?

그러한 결연한 마음의 념불 공덕으로, 시작도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어온 악업을 말끔히 물리치고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없다면, 이는 정말 말도 안 되오.

또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한 순간의 념불 공덕으로 80억 겁 동안 생사륜회의 죄업을 소멸시킨다고 하는데, 이는 념불할 때의 마음이 아주 맹렬하고 예리하기 때문이오. 그렇듯이 악업을 말끔히 소멸시킨다면, 결정코 극락정토에 왕생할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소.

그리고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씀 가운데, ‘나무 아미타불 열 번 염송하는 공덕을 성취하는 걸 (금생에 과보를 얻는 게 아니라 내생을 기약하는 인연 종자 정도로) 다른 때[別時]의 의미로 판단하는 견해가 더러 있는데, 이는 결코 그럴 수 없소. 어찌 그런 줄 알겠소?

예컨대, 섭론(攝論)8)에는 오직 발원만 하는 까닭에 수행이 전혀 없다는 말씀이 나온다오.  잡집론(雜集論)9)에는, “만약 안락(安樂: 극락) 국토에 왕생하길 원하면 곧장 왕생할 수 있고, 만약 티없는[無垢] 부처님 명호를 들으면 곧장 아누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正覺]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모두 다른 때의 원인[別時之因]으로, 전혀 수행이 없다고 하고 있소.

[섭론(攝論): 무착(無著)보살이 지은 섭대승론(攝大乘論)]

[잡집론(雜集論): 안혜(安慧)가 짓고 현장(玄乍)이 번역한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의 약칭. 일명 대법론(對法論).]

그렇지만 (단지 발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림종의 순간에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한가한 생각 없이 맹렬하고 예리(간절)하게 열 번 념불하는 십념(十念)의 선행 공덕까지 (내생의 극락 왕생을 위한 인연 종자 정도로) 다른 때[別時]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오도(誤導)하는 커다란 잘못이 되겠소?

원컨대, 념불 수행자 여러분께서는 이 리치를 깊이 생각하여 자기 마음을 굳게 다잡아 결연히 행하고, 다른 견해를 잘못 믿어 함정에 떨어지는 일이 결코 없기를 간절히 바라오.

 

아홉 번째 의문

서방 정토는 여기서 십만억 불국토나 떨어져 있다는데, 열약(劣弱)한 중생이 어떻게 거기까지 갈 수 있습니까?  왕생론(往生論)10)에는, 여인과 신체 불구자와 성문·연각의 이승(二乘) 대중은 극락세계에 생겨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정말 이러한 가르침이 있다면, 여인과 신체 불구자들은 결정코 극락 왕생할 수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왕생론(往生論): 세친(世親)보살이 지은 무량수경우바제사원생게(無量壽經憂婆提舍願生偈) 일명 정토론(淨土論)]

 

답변

이는 범부 중생의 육안(肉眼)과 생사관(生死觀)을 향해서 설하신 법문일 따름이오. 그러한 관점에서 서방 정토는 여기서부터 십만억 불국토나 떨어져 있소. 그러나 정토 왕생의 선업(善業)이 무르익은 중생에게는, 림종 때 왕생하겠다고 결정된 마음이 바로 극락정토에 생명을 받는 마음이고, 그 생각을 움직이면[動念] 곧바로 정토에 왕생하는 때가 된다오.

그래서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서는 아미타불 국토가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고,  업력(業力)이란 불가사의하여, 한 생각[一念]에 곧장 그 곳(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으니 멀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소.

또 비유하자면, 사람이 꿈을 꿀 때, 몸은 비록 침대 위에 있지만 마음 의식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다른 모든 세계에 두루 돌아다니는 것과 같소. 극락정토에 왕생함도 또한 이와 같아서, (왕생하겠다는) 생각이 움직임과 동시에 곧장 이를 수 있으니, 이는 전혀 의심할 필요가 없소.

그리고 여인과 신체 불구자 및 성문·연각의 이승(二乘) 대중은 (극락세계에) 생겨나지 않는다고 하신 것은, 단지 극락국토에 생겨나는 대중 가운데는 여인도 없고 장님·벙어리·귀머거리 따위도 없다는 뜻이지, 이곳 사바세계의 여인이나 신체 불구자가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오. 만약 그렇게 말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경전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바보일 것이오. 예컨대, 위제희(韋提希) 부인 같은 분은 극락정토에 왕생하길 원하여 부처님께 설법을 청한 주인공이고, 또 오백 시녀(侍女)들도 모두 극락국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부처님께서 수기(授記)를 내리시지 않았소?

다만, 이 곳 사바세계의 여인과 장님·벙어리·귀머거리 등도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원하면 모두 극락국토에 왕생하여, 다시는 여인이나 신체 불구의 몸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오. 또 성문·연각의 이승(二乘) 대중도 단지 마음을 돌이켜 정토 왕생을 발원하면, 그 곳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성문이나 연각의 이승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게 된다오. 이러한 까닭에 여인과 신체 불구 및 이승 대중은 (극락국토에) 생겨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이오. 이 곳 사바세계의 여인이나 신체 불구자가 극락 왕생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게 결코 아니오. 그래서 무량수경 48()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셨소.

가령 내가 부처가 되어, 시방세계의 모든 여인이 내 명호를 부르면서 여인 몸으로 태어난 걸 싫어하는데도, (그 여인이) 목숨이 다한 뒤 다시 여인 몸을 받는다면, (나는 결코) 올바른 깨달음(부처)을 이루지 않겠나이다.”

하물며, 그 부처님 나라[극락정토]에 왕생하는데도 다시 여인 몸이나 신체 불구로 태어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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