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천보다 서방 정토가 확실한 선택
일곱 번째 의문
미륵보살님께서는 일생보처(一生補處)에 계시면서 바로 다음 생에 성불하실 분입니다. 우리 중생이 열 가지 착한 일[十善]5)을 닦아 상품(上品) 수행이 되면, 미륵보살님께서 계시는 도솔천(兜率天)에 생겨날 수 있습니다.
[십선(十善):십악(十惡)을 범하지 않는 일. 즉, ① 산 목숨을 해치지 않고[不殺生], ②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으며[不偸盜], ③ 배우자 아닌 이성과 간음하지 않고[不邪淫], ④ 거짓말 하지 않으며[不妄語], ⑤ 이간질하는 두 말을 하지 않고[不兩舌], ⑥ 거친 말(욕설) 안 하며[不惡口], ⑦ 음란하고 번지르르한 말 않고[不綺語], ⑧ 탐욕 부리지 않으며[不貪欲], ⑨ 성(화) 내지 않고[不瞋迷], ⑩ 어리석고 삿된 생각 갖지 않는[不邪見:不愚癡] 열 가지 선행을 뜻함. ]
거기서 미륵보살님을 친견하고 수행하다가, 미륵보살님께서 사바세계에 내려오실[下生] 때 함께 따라 내려오면, 세 차례의 법회[龍華會上] 교화를 받아 저절로 성인의 과위[聖果: 아라한과]를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꼭 서방 정토에 왕생하길 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답변
도솔천에 생겨나길 구하는 것도 또한 도를 듣고 부처님을 뵙는 것[聞道見佛]이라고 말들 하니, 외형상 얼핏 보기에는 서방 정토에 왕생하는 것과 비슷하게 여겨질 듯하오. 하지만 좀더 세밀히 비교하자면, 우열의 차이가 아주 크게 벌어진다오. 그 논거로 두 가지만 들어보겠소.
첫째, 설령 열 가지 선행을 닦아 지닌다 해도, 꼭 도솔천에 생겨난다는 보장은 없는 것 같소. 왜 그런가 하면,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에 뭇 삼매를 수행하여 올바른 선정에 깊이 들어야만 바야흐로 (도솔천에) 생겨날 수 있다[行衆三昧, 深入正定, 方始得生]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오. 이걸 보면 미륵보살님께서는 그밖에 달리 특별히 중생을 이끌어 맞아들이는 방편법문을 갖지는 않으신 것이오.
이와는 달리, 아미타부처님께서는 본래 서원의 힘과 광명의 위신력을 바탕으로, 단지 부처님을 생각하고 명호를 염송하는 중생이 있기만 하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거두어 받아들이신다오. 게다가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구품(九品)련화의 방편법문으로 중생들을 교화하시면서, 서방 정토에 왕생하도록 은근하게 이끄시고 간곡하게 당부하셨소.
그래서 단지 중생들이 아미타부처님을 생각하면서 그 명호를 염송하기만 하면, 근기와 정성이 두 부처님의 자비 원력 및 가르침에 서로 감응하여 반드시 서방 정토에 왕생할 수 있소. 마치 우리 세간에서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사모할 때, 그 상대방이 사모하는 사람을 받아들일 마음만 내면, 서로 의기(意氣)가 투합(投合)하여 틀림없이 그 인연이 이루어지는 것과 똑같은 리치라오.
둘째, 도솔천도 기껏해야 욕계(欲界)에 속하기 때문에, 수행의 경지에서 후퇴하는 자가 많다오. 그리고 극락세계처럼 중생들이 듣고서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고 번뇌를 여의며 보리심을 낼 수 있도록 일깨워 주는 물 소리·새 소리·나무 소리·바람 소리 같은 미묘한 교향 음악도 있지 않소. 또 거기에는 여인이 존재하여, 뭇 천상 인간들한테 다섯 가지 욕망[五欲]6)에 애착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오.
[오욕(五欲):사람의 욕심을 일으켜 진리를 더럽히는 빛깔[色]·소리[聲]·냄새[香]·맛[味]·느낌[觸]의 다섯 경계[五境]를 가리킴. 또 이와 달리 재물욕·여색욕·음식욕·명예욕·수면욕을 가리키기도 함.]
게다가 도솔천의 여인들은 매우 미묘하고 아름다워서, 뭇 천상 인간들이 그들과 어울려 놀고 즐기기에 정신 팔려, 수행에 힘쓸 수가 없을 정도라오.
그러니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정토와 같겠소? 극락세계에는 물 소리·새 소리·나무 소리·바람 소리 등의 교향 음악이 울려 퍼지는데, 중생들이 이 소리들을 들으면 모두 한결같이 부처님을 생각하고 보리심을 내기 때문에, 번뇌가 일어날 수도 없다오.
또 여인도 없고 성문(聲聞)이나 벽지불(陽支佛: 緣覺) 같은 이승(二乘: 小乘)의 마음이 전혀 없이, 오로지 순수한 대승보살들만이 청정하고 선량한 도반으로 계신다오. 이러한 까닭에 번뇌망상이나 죄악업장이 언제까지라도 조금도 일어나지 않고, 마침내 무생법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오.
이것만 비교해도 그 우열이 현저히 판가름 나거늘, 어찌 다시 의심할 나위가 있겠소? 예컨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시면서 몸소 교화하실 때에도, 부처님을 직접 뵙고 가르침대로 수행했으면서 성인의 과위(聖果: 아라한)를 얻지 못한 이들이 갠지스 강 모래알만큼이나 많았소. 앞으로 미륵부처님께서 세상에 내려오실 때에도 또한 마찬가지로, 친견하고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 이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오. 그러니 어찌 아미타부처님의 서방 정토에 견줄 수 있겠소? 극락세계에는 단지 왕생하기만 하면, 모두 무생법인을 얻게 되고, 어느 한 사람도 다시 삼계에 떨어져 나와 생사 륜회의 업장에 묶이는 법이 없다오.
또 『서국전(西國傳)』7)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소.
[서국전(西國傳): 서역(西域: 인도)의 조사와 고승대덕들의 행적을 적은 전기인 듯함.]
세 보살이 계셨는데, 한 분은 무착(無著)이고, 다른 한 분은 세친(世親)이며, 또 다른 한 분은 사자각(師子覺)이셨소. 이 세 분은 서로 마음과 뜻이 맞아, 다 함께 도솔천에 생겨나 미륵보살님을 친견하기로 결의하고서, 누구든지 먼저 죽어 미륵보살님을 친견하는 자가 남아 있는 이한테 그 소식을 알려 주기로 서약하였소.
그러다가 사자각이 먼저 죽었는데, 한번 가더니만 몇 년이 지나도록 도무지 캄캄 무소식이었소. 그 뒤에 세친이 가게 되었는데. 림종 때 무착이 “만약 자네가 미륵보살님을 친견하거든, 곧장 되돌아와서 알려 주게나.” 하고 신신당부를 했다오. 그런데 세친이 간 뒤로 3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찾아왔길래, 무착이 이렇게 물었다오.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찾아온단 말인가?”
그러자 세친이 이렇게 대답했다오.
“거기 도솔천에 올라가 미륵보살님의 설법을 한 바탕 듣고서, 곧장 되돌아 내려와 소식 전하는 것일세. 거기 도솔천은 하루가 매우 길어, (거기서 잠깐 머물렀는데도) 여기서는 벌써 3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라네.”
그래서 무착이 “그러면 사자각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라고 묻자, 세친의 대답이 참으로 가관이었소.
“사자각은 도솔천의 즐거움을 누리고 다섯 욕망[五欲]을 즐기느라, 이미 바깥 권속이 되어 버렸네. 한번 도솔천에 올라간 뒤로 여태껏 미륵보살님을 뵌 적도 없다네.”
보살들도 경지가 낮으면 거기 도솔천에 생겨나서 이처럼 천상의 미묘한 오욕(五欲)에 빠지기 십상이거늘, 하물며 보통 범부 중생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소? 이러한 까닭에,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해서 틀림없이 불퇴전(不退轉)의 경지에 이르겠다고 발원해야 하며, 도솔천에 올라가서 미륵보살님 뵙기를 구해서는 안 된다오.
【옮긴이 보충 해설: 도솔천(兜率天)은 ‘지족(知足)’으로 번역하는데, 그 곳 천상인간들은 오욕의 경계에 부딪쳐 만족할 줄 알고 그칠 줄 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욕계에 속한 천상이라, 욕망에 빠져 즐기느라 수행할 본분을 잊는다는 것입니다.
도솔천의 하루(밤낮)는 인간 세상의 4백 년에 해당하여, 도솔천의 1년은 인간 세상의 14만 4천 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륵보살님이 도솔천 내원(內院)에서 4천 년을 머문다고 하는데, 인간 세월로 57억 6백만 년이 지나 이 세상에 내려오시어, 룡화수(龍華樹: 꽃가지가 용의 머리 같아 붙여진 이름) 아래서 정각을 이루어 부처님이 되고, 세 차례 법회[龍華會]를 열어 상·중·하 세 근기의 중생들을 제도하신다고 합니다.
미륵(彌勒)은 자씨(慈氏)라는 뜻인데, 과거에 수행할 때 자심삼매(慈心三昧)를 얻어 성불할 때의 명호로까지 정해졌다고 합니다. 보통은 미륵이 성(姓)이고, 무능승(無能勝: 누구도 이길 자가 없다. 仁者無敵의 뜻과 상통)의 뜻으로 번역되는 아일다(阿逸多)가 이름[名]이라고 하는데, 더러 성과 이름을 서로 맞바꾸어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배가 불룩하고 만면에 미소 짓는 미륵보살상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바로 큰 자비심과 넓은 아량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여겨집니다.
한편 무착(無著)과 세친(世親)은 부처님 녈반 후 9백 년쯤 지나 인도의 아유타(阿踰陀) 국에서 태어난 형제 보살로서, 형은 아승가(阿僧伽)인데 무착(無著)이라는 뜻이고, 아우는 바수반두(婆藪槃豆)로 천친(天親)이라고도 번역되었으나, 나중에 벌소반도(伐蘇畔度)로 세친(世親)이라고 옮겨지기도 했습니다.
형 무착(無著)은 『섭대승론(攝大乘論)』 등을 짓고, 아우 천친(天親)은 『구사론(俱舍論)』과 『유식론(唯識論)』 등 1천 부의 론장(論藏)을 지어, 형제가 함께 법상종(法相宗)의 시조가 되었는데, 그래서 법상종을 무착천친종이라고도 부릅니다.
『서역기(西域記)』에는 세친보살이 회심(回心)하여 론장을 저술하는 인연담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세친은 본디 천성이 총명하고 영민하였는데, 아직 시절인연이 닿지 않아 소승(小乘)을 일삼았다. 붓 끝과 혀끝이 미묘하고 유창한데다가, 날카롭기는 서릿발보다 준엄했다. 또 온갖 변론 재주가 강물을 걸어 놓은 듯 종횡무진하며, 별빛이나 칼날처럼 예리했다.
무착은 부처님께서 소승의 방편 가르침[權敎]으로 하근기의 중생들을 끌어들여 제도하시는 인연으로 알았다. 즉, 『법화경』에서 피곤한 길손들을 위로하기 위해 허깨비성[化城]을 나토시고, 궁박한 아들을 꾀어 잡기 위하여 똥 치는 일을 맡기시는 비유로 여긴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아우를 교화할 방편으로, 중병에 걸린 것처럼 병상에 누워 자기가 곧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아우를 불렀다.
세친이 그 소식을 듣고 하루도 안 되어 찾아오자, 무착이 아우를 보고 자기 병의 원인을 자세히 설명한 다음, 대승의 가르침을 설해 주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죽기 전에, 자기가 공부하던 경전이나 한 번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세친은 곧장 『화엄경』을 봉독했는데, 비로자나 법계와 보현행원의 바다가, 마치 햇빛이 눈부시게 온 천지를 비추고 제석천 구슬 그물[帝網]이 서로 영롱하게 머금은 것처럼, 생생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에 큰 믿음과 깨달음이 저절로 일어나면서, 결연히 탄식하였다.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내 혀뿌리를 잘라, 내가 지금껏 소승을 찬탄한 잘못이 얼마나 막중한지 증명해 보여야겠다!”
이에 형이 극구 만류했다.
“만약 사람이 땅에서 넘어졌으면, 또한 땅을 짚고 일어나는 법일세. 마찬가지로 지난날 아우가 혀로 대승을 비방했으니, 그 혀로 이제는 대승을 찬탄하면 될 걸세.”
그래서 마침내 산에 들어가 대승경전을 두루 열람하고 『십지론(十地論)』을 지었는데, 글이 완성되던 날 대지가 두루 진동하고 광명이 훤하게 충만했다. 이에 국왕이 찾아와 알현하며, “아라한과를 얻었습니까?”라고 묻자, 세친은 “얻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성인의 과위를 얻지 못했는데, 무슨 연유로 대지가 진동합니까?”라고 되묻자, 세친은 이렇게 대답했다.
“도가 얕고 덕이 보잘것없는 제가 젊은 시절 대승을 믿지 않고 비방하였다가, 이제 뉘우치고 진실한 마음으로 대승론을 지으니, 대지가 진동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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