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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왕생을 향한 착실한 준비

의심끊고 염불하세. 천태지자대사 정토십의론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3. 1. 1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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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왕생을 향한 착실한 준비

 

 

열 번째 의문

이제 결정코 서방 정토 왕생을 발원하여 구하렵니다. 그런데 어떤 수행 공덕을 닦아야 할 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종자(인연)로 그 나라(극락정토)에 생겨날 수 있습니까? 또 우리 세속에 사는 범부 중생들은 모두 처자식이 있는데, 음욕(淫欲)을 끊지 않아도 거기에 왕생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답변

결정코 서방 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음의 두 가지 수행을 갖추면 틀림없이 거기에 왕생할 수 있소. 첫째는 싫어하여 떠나는 염리행(厭離行)이고, 둘째는 흔연히 기뻐하며 바라는 흔원행(欣願行)이오.

우리 범부 중생들은 시작도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오욕(五欲)에 얽매여 오도(五道: 六道 가운데 阿修羅를 뺀 나머지 다섯. 문맥상 륙도와 같은 의미)를 륜회하면서 온갖 고통을 받아 왔소. 그러므로 이 오욕을 싫어하여 멀리 떠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 오도 륜회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소. 그러한 까닭에 늘상 이 몸뚱이 보기를, 피고름과 똥 오줌 등 온갖 불결하고 냄새 나며 더러운 오물 덩어리로서 관찰하는 것이오. 그래서 녈반경(涅槃經)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와 같이 육신의 성[身城]은 어리석고 멍청한 나찰(羅刹)이 그 안에 살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지혜가 있는 자라면 누가 이 몸을 좋아하고 즐기겠는가?”

또 경전에 이렇게도 말씀하셨소.

이 몸은 온갖 괴로움이 모인 곳으로, 일체 모든 것이 깨끗지 못하고; 온통 종기나 피고름 투성이로, 좋고 이로운 것은 근본적으로 없나니; 위로 아무리 높고 훌륭한 천상세계라 할지라도, 모두 이와 같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걷거나 앉거나 자거나 깨어 있거나 간에, 늘상 이 몸이 즐거움이란 조금도 없이 오직 괴로움뿐임을 관찰하여, 이 몸을 몹시 싫어하고 떠나 버리려는 마음을 깊이 내어야 한다.”

그리고 방사(房事: 부부관계, 성욕)는 설사 단박에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점차 싫어하고 멀리하는 마음을 내면서, 다음의 일곱 가지 부정관(不淨觀)을 하면 좋겠소.

첫째는, 이 음욕의 몸뚱이가 탐착과 애욕의 번뇌로부터 생겨났으니, 바로 그 근본 종자가 깨끗하지 못함을 관조하는 것이오.

둘째는, 부모가 성관계를 맺을 때에 붉은 피(난자)와 흰 정액이 화합하였으니, 이는 바로 생명을 받음[受生: 受胎] 자체가 깨끗하지 못함이오.

셋째는, 어머니 태[母胎] 속에서 머물 때, 위로는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 장기[生臟]가 짓누르고, 아래로는 소화되고 남은 음식물 찌꺼기 장기[熟臟]가 떠받치고 있으니, 이는 바로 거주하는 곳이 깨끗하지 못함이오.

넷째는, 또 어머니 태 속에 있을 때, 오직 어머니의 피를 통해 영양을 섭취했으니, 이는 곧 음식 섭취가 깨끗하지 못함이오.

다섯째는, 열 달이 꽉 차서 머리가 출산의 문을 향해 나올 때, 피고름이 함께 왕창 쏟아져 더러움과 피비린내가 흥건히 퍼졌으니, 이는 곧 출생이 깨끗하지 못함이오.

여섯째는, 얇은 살갗 한 겹으로 겉만 그럴듯이 뒤덮여 있을 뿐, 그 안은 어느 곳이나 온통 피고름으로 꽉 차 있으니, 이는 바로 온몸이 깨끗하지 못함이오.

일곱째는, 그러다가 나중에 죽은 뒤에는 시신이 부어 오르고 문드러져 뼈와 살이 사방으로 널려 여우나 이리 떼의 먹이가 되고 마니, 이는 바로 궁극까지 깨끗하지 못함이오.

이렇듯 자기 몸이 그러할진대, 남의 몸도 또한 그러할 것은 당연하오. 좋아하고 사랑하는 경계(境界)나 남녀의 몸 따위도 모두 그러하거니, 늘상 깨끗하지 못함을 관조하여 몹시 싫어하고 멀리 떠나려는 마음을 깊이 내어야 할 것이오.

만약 이와 같이 몸뚱이가 깨끗하지 못함을 관찰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음욕의 번뇌망상이 점점 줄어들 것이오. 이와 함께 경전에서 널리 말씀하고 계시는 열 가지 생각[十想] 등의 관찰법도 행하면 좋겠소.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원컨대, 제가 삼계에서 온갖 더럽고 냄새 나며 오욕에 탐닉하는 깨끗하지 못한 잡식성(雜食性) 남녀의 몸뚱이를 영원히 벗어나서, 극락정토의 법성의 몸[法性身] 받아 생겨나길 간절히 바라옵니다.’라고 발원하는 것이오.

이것이 바로 싫어하여 떠나는 염리행(厭離行)이오.

그리고 두 번째 흔연히 기뻐하며 바라는 흔원행(欣願行)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소. 첫째는 먼저 극락 왕생을 구한다는 뜻을 분명히 함이오. 둘째는 그 극락정토의 장엄들을 보고 믿어 흔쾌한 마음으로 왕생을 구하고 바라는 것이오.

우선 왕생의 뜻을 분명히 함은 이렇소.

정토 왕생을 구하는 까닭은 일체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함인데, 지금 자기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 나 자신은 아무런 힘도 없다. 이렇게 험악한 세상에서는 번뇌망상의 경계가 너무 강렬하여, 나 업장에 얽매여 삼악도에 떨어지고 한없는 세월이 지나도록 계속 륜회할 것이다. 시작도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륜회하며 여태껏 잠시도 쉰 적이 없는데, 어느 때나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할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이러한 까닭에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뭇 불보살님들을 가까이 하려고 구하는 것이오. 그래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해야만 바야흐로 험악한 세상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할 수가 있소. 그런 까닭에 왕생론(往生論)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보리심을 낸다[發菩提心] 함은 바로 부처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고, 부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란 곧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마음이며,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마음은 바로 중생들을 거두어들여 부처님 나라에 생겨나도록 이끌겠다는 마음이다.”

그리고 극락정토에 왕생하길 원하면, 모름지기 다음 두 가지 수행을 갖추어야 하오. 첫째는 보리문(菩提門)을 가로막는 세 가지 나쁜 법을 반드시 멀리 떠나야 하고, 둘째는 보리문으로 순조롭게 이끄는 세 가지 좋은 법을 모름지기 얻어야 하오.

보리문을 가로막는 세 가지 나쁜 법을 멀리함은 바로 이런 것이오.

첫째, 지혜의 법문에 의지하는 것이오. 자신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고, 내 마음이 나 자신에 탐착하는 걸 멀리 떠날 수 있는 법문이기 때문이오. 둘째는 자비의 법문에 의지하는 것이오. 일체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 주고, 편안치 못한 중생의 마음을 멀리 떠날 수 있는 법문이기 때문이오. 셋째는 방편의 법문에 의지하는 것이오. 일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려 하고, 자기 자신을 공경하고 공양하려는 마음일랑 멀리 떠날 수 있는 법문이기 때문이오.

이와 같이 하여 보리문을 가로막는 세 가지 장애를 멀리할 수 있다면, 바로 보리문에 순응하는 다음의 세 가지 법을 얻게 되오.

첫째는, 자기 자신을 위해 온갖 즐거움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물들지 않은 청정한 마음[無染淸淨心]을 얻게 되오. 보리(菩提)는 본디 물들지 않고 청정한 곳이오. 만약 자신을 위해 즐거움을 구한다면, 이는 곧 몸과 마음을 더럽게 물들이고 보리문을 가로막는 것이오. 그래서 물들지 않은 청정한 마음은 보리문에 순응하는 것이오.

둘째는, 중생의 고통을 제거해 주기 때문에, 편안스런 청정한 마음[安淸淨心]을 얻게 되오. 보리심은 일체 중생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하는 청정한 곳이오. 만약 일체 중생을 건져 생사 륜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이는 곧 보리문에 어긋나는 것이오. 그래서 편안스런 청정한 마음은 보리문에 순응하는 것이오.

셋째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대보리(大菩提)와 녈반을 얻게 하려고 바라기 때문에, 즐거운 청정한 마음[樂淸淨心]을 얻게 되오. 보리와 녈반은 궁극의 항상 즐거운[常樂] 곳이오. 만약 일체 중생들한테 항상 궁극의 즐거움을 얻게 해 주려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이는 보리문을 가로막는 것이오.(그래서 즐거운 청정한 마음은 보리문에 순응하는 것이오.)

그러면 이 보리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얻어지겠소? 핵심 요체는 바로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늘상 부처님 곁을 떠나지 않는 데에 있소. 거기서 무생법인을 증득한 다음에 다시 생사 륜회의 사바국토에 나와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되, 자비와 지혜가 안으로 혼융일체가 되어 선정으로 항상 사용하며 조금도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로운 것이 바로 참된 보리심이오.

이것이 첫 번째 극락정토 왕생을 구한다는 뜻이오.

두 번째 흔쾌한 마음으로 정토 왕생을 원한다 함은 이러하오.

극락 왕생을 바라는 마음이 흔쾌히 일어남은 아미타부처님의 인연 때문이오. 법신(法身)이나 보신(報身)이나 금색 광명 찬란한 가운데 8 4천 큰 모습[]을 나토시고, 큰 모습 하나하나마다 다시 8 4천 작은 모습[]을 나토시며, 작은 모습 하나하나마다 또 다시 8 4천 광명을 쏟아내시어, 항상 온 법계를 두루 비추시면서, 념불하는 중생들을 빠짐없이 거두어들이시는 것이오.

그러므로 우리 중생들은 극락정토의 칠보장엄(七寶莊嚴)과 미묘한 즐거움 등은 물론,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에 설해져 있는 16관법 등의 가르침을 잘 관찰하고 사유하여, 항상 념불삼매와 보시·지계 등의 모든 선행을 함께 닦아 나가야 하오. 그래서 그러한 수행 공덕으로 일체 중생들이 다 함께 극락국토에 왕생하도록 회향 기도하는 것이오. 그러면 결정코 틀림없이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소.

이것이 바로 흔쾌한 마음으로 극락 왕생을 원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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