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 29일 존귀한 서신을 받고, 일체 그간 사정을 다 알게 되어 한없이 기쁘고 위안이 됩니다. 서신 안에 “념불기도가 삼칠(21)일이 지나도록 아직껏 부처님 상호를 뵙지 못했습니다.”는 구절이 있습디다. 이처럼 간절히 마음 쓰고 용맹스럽게 수행 정진하시는 걸 보면, 이번 백일 기한 내에 반드시 불가사의한 큰 성취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수행하는 이 때는 어떤 효험을 기대하는 마음을 미리 간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간직하면 조급한 설레임만 증폭시켜 도리어 장애가 됩니다. 이는 수행 법문 가운데 아주 미세한 마음의 병폐인지라, 잘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름지기 곧장 “마음 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마음이 없으며, 온 마음이 바로 부처이고 온 부처가 바로 마음이며, 한 생각이 앞에 나타나면 곧 한 생각이 상응하고, 생각생각마다 앞에 나타나면 곧 생각생각마다 상응한다[心外無佛, 佛外無心, 全心卽佛, 全佛卽心, 一念現前, 卽一念相應, 念念現前, 卽念念相應].”는 진리를 깊이 믿고 철저히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다만 이 생각이 늘상 바로 지금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이것이 바로 진실한 효험입니다. 이 생각을 떠나서 밖에서 따로 효험을 구한다면, 이것이 바로 중간에 끊김[間斷]이며, 곧 절실하지 않음이고, 바로 샛길로 빠지는 것입니다. 경전에 “이 마음으로 부처가 되고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다[是心作佛, 是心是佛].”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를 일컬은 것입니다. 고루한 제 소견은 이러합니다만, 거사님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장수(長水) 자예(子璿) 강사(講師)의 질문과 낭야(琅孟) 혜각(慧覺) 선사의 답변에 대해서인즉, 그 예봉(銳鋒)이 솔직하고 간단 명료하여 더 이상 사족(蛇足)을 달 수가 없습니다. 과연 이 문답에서 올바른 안목[正眼]이 확 트일 수 있다면, 낭야를 한눈에 깨뜨리고[看破] 장수를 한 손에 때려 눕힐[捉敗] 것이며, 『릉엄경』의 대의 요지를 거의 대부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다 할지라도, 바로 다른 세계를 향해 힘껏 내팽개쳐 버리고서, 스스로 일심으로 념불에 매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약 조그만 이해의 길이나 열겠다고 말씀하신다면, 더 이상 수고롭게 거론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시자록(柴紫錄)』은 그 이름은 들은 지 오래되었으나, 아직 그 책을 본 적이 없어서, 근거 없이 함부로 판단 평가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절 안[寺中]은 요즘 유일하게 가원(嘉園) 거사가 20일 만에 더러 한 번씩 올 뿐, 그 밖의 다른 손님의 자취는 없습니다. 불혜(不慧: 지혜롭지 못한 이, 자기 겸칭)는 매일같이 여러 납자(衲子: 스님)들과 먼지나 휘날리며 경전을 담론하고, 그게 끝나면 향을 사르고 편안히 좌선에 듭니다. 더러 『화엄경』을 교정하기도 하고, 더러 『정토진량(淨土津梁)』을 검열하기도 하는데, 그 밖에 다른 일은 없습니다.
『수릉엄경』은 이미 6권까지 강론을 마쳤는데, 대략 다음 7월까지는 전부 강론을 원만히 마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건대, 반년 안에 이 경전을 두 번 마치는 일도, 또한 우리 염부제 인생의 일대(一大) 통쾌한 일 같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줄 한 줄 따라가며 먹물 흔적이나 헤아린 것일 뿐, 한 글자도 새로 얻은 것은 없습니다. 답신 말미에 덧붙여 한바탕 웃음거리나 선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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