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수행인들이여, 힘써 노력하세!
인간 세상은 여덟 고통이 두루 갖추어져 있소. 설령 천상에 생겨난다고 할지라도, 복덕이 다하면 다섯 쇠퇴[五衰] 현상을 피할 수가 없다오. 오직 서방 극락세계만이 어떠한 고통도 없이, 뭇 즐거움을 받는다오. 그래서 경전에도 말씀하지 않소?
[다섯 쇠퇴[五衰]: 천상 중생[天人]들의 수명이 다해 사망하려 할 때 나타나는 다섯 가지 쇠퇴 현상. 첫째 옷이 지저분하게 때가 끼고, 둘째 머리 위의 꽃이 시들며, 셋째 몸이 더러워지고 악취가 나며, 넷째 겨드랑이에서 땀이 나고, 다섯째 천상의 자기 자리가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느껴진다.]
삼계가 불타는 집처럼 편안하지 못하며, 三界無安 猶如火宅
뭇 고통이 가득 차 있으니 몹시 무섭고 두렵네. 衆苦充滿 甚可怖畏
사람 목숨 덧없어 번갯불처럼 빨리 지나니, 人命無常 速如電光
마지막 한계 닥치면 서로 돌아보지도 못하네. 大限來到 各不相顧
일체의 현상 세계 유위법은 一切有爲法
꿈 같고 허깨비 같으며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네. 如夢幻泡影
이런 경전 말씀에서도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정토 염불 수행에 힘쓰지 않는다면, 목석(木石) 같은 무생물과 함께 천지간에 오래 뒹굴어야 하리다. 피가 흐르고 성질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생전에 걸어 다니는 고깃덩어리나 시체[走肉行尸] 노릇이나 하다가, 죽어서는 초목과 함께 썩어 문드러져도 좋다고 여기겠소?
성인의 경지는 너무 고상하다고 위로 밀쳐둔 채, 스스로 평범하고 어리석은 중생으로 자처하면서, 커다란 경책(警策)을 만나도 분발할 줄 모르고, 성현과 부처·조사의 도를 듣고도 행하려 들지 않는단 말이오? 그러고도 하늘이 인간을 돌보지 않는다고 원망하겠소?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하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겠소?
마음이 두근거리며 악몽을 자주 꾸는 것은, 숙세의 악업이 나타나는 조짐이오. 현재 나타나는 경계는 비록 선과 악이 엄연히 존재할지라도, 선과 악을 뒤바꾸는 일은 바로 자기에게 달려 있소. 악업이 나타날 때 일심으로 염불에 몰두하면, 악한 인연도 선한 인연으로 바뀐다오. 그러면 결국 숙세의 악업도, 도리어 금생의 나를 선으로 인도하는 스승이 되오. 안타깝게도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업장에 얽매여, 마치 우물 속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떨어뜨리는 격으로, 고통 위에 고통만 덧보태고 있구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요? 남북이 서로 공격하고, 우리나라와 외국이 서로 대적하여, 최근 삼사 년 사이에만도 죽은 사람이 사오천 만이나 되지 않소? 아마도 인류가 생긴 이래, 이처럼 참혹한 변란은 듣지도 못했을 것이오. 또 태풍과 가뭄·홍수·지진·전염병 등이 세계 각지에서 빈번히 발생하여, 천재지변의 피해도 엄청나오.
이러한 시대에 다행히 생명을 부지하면서도, 감히 힘을 다해 정토 염불 수행에 전념하여 극락왕생하려고 원하지 않는단 말이오? 요행히 얻은 사람 몸으로 그저 유유자적하니 세월만 보내면서, 한 법문에 정신 집중하지 않고, 시절 인연과 근기에도 맞지 않는 법문에다 한가하게 힘을 쏟는단 말이오? 그러다가 날숨 한 번 다시 들어오지 않는 때에는, 다시 이러한 지름길 법문을 듣고 싶어도, 결코 요행스런 기회가 없을 것이오.
몸은 고통을 불러들이는 근본이고, 사바 고해를 싫어하는 마음[厭離心]은 즐거움을 얻는 기초가 되오. 숙세의 업장이 두텁더라도 현생의 착함이 진하면, 오랜 겁 동안의 무거운 과보도 현세에 가볍게 받도록 바뀐다오. 마찬가지로, 험악한 재난을 당해서도 용맹스럽게 수행을 지속하면, 사바세계의 고통이 극락왕생을 인도하는 스승이 된다오.
숙세(전생)의 빚을 갚는다고 생각하면, 원통과 분노가 저절로 사라질 것이오. 그러나 혹시라도 원망하고 탓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죄악의 업장이 계속 일어나게 되오. 역경이 닥치더라도 순순히 받아들여야[逆來順受], 비로소 자기 분수를 알고 하늘의 뜻을 즐겨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소. 또 사바 고해를 싫어하고 극락세계를 그리워해야, 바야흐로 정토 염불을 수행하는 사람이 된다오.
나무 아미타불 명호 하나에 대장경의 가르침이 조금도 빠짐없이 모두 포함되어 있소. 그래서 선종과 교법에 두루 통달한 사람이라야, 바야흐로 진실한 염불 수행인이 될 수 있소. 또 반대로 하나도 아는 게 없고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단지 입으로 말이나 할 줄 안다면, 그 또한 진짜 염불 수행자가 될 수 있소. 이 두 종류의 사람을 뺀 나머지는, 진실한 염불자가 되든 진실하지 못한 염불자가 되든, 모두 가르침에 의지하는지 여부와 자기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오.
정토 법문은 부처님 말씀을 믿고 따를 수만 있으면, 의심할 나위 없이 확실하오.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으로 실다운 수행을 한다면, 틀림없이 왕생하여 극락세계의 대중이 될 것이오. 하물며 이처럼 엄청난 재난이 눈앞에 닥친 위험천만한 말법시기에, 유한한 정신력으로 그리 급하지도 않는 법문과 사무에 너저분히 손대어, 박통(博通)한 대가라는 명성이나 듣고 체면이나 세우려고 든단 말이오? 그러다가 자신의 전념 수행은 결국 어물쩡하니 흐리멍덩해지고 말텐데….
보현보살의 십원(十願)과 문수보살의 일행(一行)을 전념으로 수행할 수만 있다면, 다른 경론(經論)을 전혀 꿰뚫지 못하더라도, 사바 고해의 울타리를 단박에 벗어나 연지해회(蓮池海會)에 참여할 수 있소. 그러나 여기서 부처님 힘에 의지하는 법문을 진실하게 믿지 못하거나, 확고히 의지하지 못한다면, 설사 선종과 교법에 심오하게 통달했을지라도, 단지 구두 삼매(口頭三昧)에 지나지 않게 되오. 그런 구두 삼매로 생사윤회를 벗어나려고 바라는 것은, 정말로 떡을 그려 쳐다보고 굶주림을 채우려는 짓과 똑같이 어리석기 짝이 없소. 그런 사람은 반드시 중도에 몹시 후회할 것이나, 그때는 이미 후회해도 소용없게 되오. 지금 세상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도 모르는 판인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세월(수명)을 가지고, 급하지도 않은 일에 낭비할 수 있겠소?
옛 사람들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소.
“적지만 알찬 게, 많지만 허약한 것보다 낫다[少實勝多虛.].”
“큰 기교가 작은 졸렬함만 못하다[大巧不如小拙.].”
“한 길을 말해도 한 치를 몸소 나아가는 것만 못하다[說得一丈, 不如行取一寸.].”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이들은, 이 말들을 잘 생각하고 음미해 보기 바라오.
정토 법문은 믿음[信]과 발원[願]과 염불 수행[行]의 세 가지를 기본 요건으로 삼소. 오직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을 함께 갖춘 경우에만, 비로소 독실한 염불 수행이 있게 되오. 재앙과 해악이 급박하게 닥치면 (발 등에 불이 떨어지면) 정성스럽고 간절하다가도, 별일 없이 평안해지면 그만 느슨하게 풀어지는 것이, 범부 중생의 공통된 병폐라오.
그렇지만 지금 시대 상황은, 마치 높이 쌓아 올린 땔감 위에 편안히 누워 있는 꼴과 같소. 아래에서 이미 불이 붙어 맹렬히 타오르고 있는데, 아직 맨 위에 누워 있는 우리 몸까지 타오르지 않은 것뿐이오. 눈 깜박할 사이에 온 장작더미가 치열한 불길에 휩싸이면, 온 주변 세계에 달아날 곳이 없는 것이오. 그런데도 아직까지 유유자적하니 세월이나 보내면서, ‘나무 아미타불’ 명호 한 구절에 전념으로 매달려 구제를 청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지견(知見)이 얼마나 짧고 얕겠소?
숙세에 혜근(慧根)을 심어 금생에 정토 법문을 만난 인연만 해도, 정말 결코 쉽지 않은 일이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만난 법문에, 정신 집중하여 몸소 증득(결정코 극락왕생함을 뜻함)까지 하고 싶지 않단 말이오? 이는 마치 정성 들여 진흙으로 빚은 그릇을, 유약을 발라 굽기 전에 비를 맞혀, 그만 흐물흐물 풀어져 버리게 놔두는 것과 같게 되오.
세월은 몹시 빠른데, 사람 목숨이 얼마나 길겠소? 날숨 한 번 다시 들어오지 않으면, 곧 내세로 넘어 가오. 그러면 아직 도를 증득하지 못한 사람은, 설령 깨달았더라도 다시 미혹으로 빠지는 경우가 만 명 가운데 거의 만이 다 되고, 깨달음 위에다 깨달음을 덧보태 가는 경우는 억 명 가운데 한둘도 없다오. 더할 나위 없는 법의 그릇[無上法器]을 차마 부서지도록 내버려 두어, 내생의 비를 맞고 다시 진흙으로 되돌아가게 하고 싶단 말이오?
우리들이 부처님 제자[佛子]가 되었다면, 마땅히 부처님의 행실(수행)을 본받아야 할 것이오. 설령 부처님처럼 활연(豁然)히 무명(無明)을 깨뜨리고, 단박에 불성의 본바탕을 회복하여 곧장 미묘한 깨달음의 과보까지 얻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어찌하여 세 마음[三心]을 두루 갖추어 정토 법문을 독실하게 닦아가지도 않는단 말이오?
[세 마음[三心]: 정토왕생을 위해 발하는 지성심(至誠心)․심심(深心)․회향발원심(迴向發願心)으로, 아미타불48원 가운데 제18원인 지심(至心)․신락심(信樂心)․욕생심(欲生心: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에 해당함. 삼심(三心)의 해석에는 이설이 많음. 정영(淨影)스님의 『관무량수경의소(觀無量壽經義疏)』는 권말에서, 성심(誠心)은 수행이 허망하지 않고 진실한 마음으로 법을 구함이고, 심심(深心)은 극락을 믿음이 은근하고 지극하여 왕생하고자 함이며, 회향발원심은 곧장 구하려 달려듦이 원이고 선행을 닦아 그걸 갖고 구하려듦이 회향이라고 풀이한다. 선도(善導)화상은 「왕생예찬게(往生禮讚偈)」에서 이렇게 풀이한다. 지성심은 몸으로 아미타불께 예배하고 입으로 아미타불을 찬탄하며 뜻으로 아미타불을 전념(專念) 관찰하여, 이 삼업이 반드시 진실해야한다. 심심이란 곧 진실한 신심으로, 자신이 온갖 번뇌에 뒤덮인 범부로서 선근이 적어삼계화택을 윤회하며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믿고, 이제 아미타불의 크나큰 본래 서원을 알고 그 명호를 열 번만 간절히 불러도 결정코 왕생할 수 있음을 믿으며, 한 생각도 의심이 없음을 뜻한다. 회향발원심은 자신이 짓는 모든 선근을 죄다 극락왕생에 회향 발원함이다. 그밖에 많은 주석은 이 삼심을 대승기신론의 직심(直心)․심심(深心)․대비심(大悲心)과 같은 걸로 보는데, 십신(十信)의 마지막 마음에서 발한 게 된다. 대체로 신원행(信願行)과 일치한다.]
금생의 육신에서 번뇌와 미혹을 끊어버리고, 이 마음의식[心識: 영혼·정신]을 연화세계에 기탁하여, 아미타불의 제자와 거룩한 보살 대중의 도반이 된 뒤, 고요한 열반[寂滅]에 안주하여 시방 불국토를 다니면서, 위로 불도를 닦아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고 싶지는 않소?
자신이 힘써 노력하지는 않으면서, 성현의 경지는 위로 높이 내밀쳐 버리고, 스스로 어리석은 범부라고 자처할 셈이오? 반평생의 수행이 힘들고 수고로울까봐 두려워, 영겁토록 윤회 고해에 빠져 허우적거릴 고초를 달게 받아들일 작정이오? 자기 옷 속에 달려 있는 구슬을 잊은 채 굶주리고, 보물 산에 올라왔다가 그냥 빈손으로 돌아갈 생각이오?
한량없는 공덕과 지혜·신통·상호(相好)가 두루 갖추어진 미묘한 진여성품(妙眞如性)을 가지고, 끝없는 생사윤회 속에서 번뇌 업장의 허망한 지극 고통을 당하는 것이, 억울하고 분하지도 아니하오? 어떻게 정신을 잃고 미친 사람처럼, 향상 승진을 싫어하고 후퇴 타락을 즐거워할 수 있소? 살아생전에 걸어 다니는 고깃덩어리나 시체 노릇을 하다가, 죽은 뒤 초목과 함께 썩어 문드러지고 싶단 말이오?
이러한 중생을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께서, 가련하고 불쌍한 자라고 일컬으셨다오. 우리 모두 각자 잘 생각하고 힘써 닦아야 할 것이오.
요즘처럼 위험천만한 세상에는, 흉금(胸襟: 가슴)과 안목(眼目: 시야)을 활짝 열어 놓고, 정토 염불 수행에 힘쓰는 것이 좋겠소. 모든 길흉화복(吉凶禍福)일랑 전혀 따지거나 신경 쓰지 말고, 인연에 따라 변화 적응하면 그만이오. 설령 막대한 재앙이 눈앞에 닥친다고 할지라도, 나와 똑같이 이 재앙을 당한 사람이 몇 천만억이나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 보시오.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도, 아직 믿고 의지할 만한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이 계시는데, 무엇이 두렵겠소? 염불과 관세음보살 염송으로 두려움 없는 밑바탕을 삼는 거요.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고, 미리 두려워하거나 지레 겁먹지만 않는다면, 질병도 저절로 낫고 몸도 자연히 안락해질 것이오.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위험한 경계가 닥치기도 전에 자기가 먼저 위험 가운데 빠져 버리면, 비록 불보살이라도 구제할 수가 없게 되오. 그래서 군자는 평소 환난에 처한 마음가짐으로 환난에 대처하기 때문에, 어디에 들어가든 자유자재로 행할 수 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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