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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비(燃臂)

인광대사가언록. 궁금증 풀고 정견으로 정진하세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2. 12. 31.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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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연비(燃臂)

 

연비(燃臂)란 팔뚝에 향불로 지지는 것이오. 영봉(靈峯) 노인은 매일 같이 능엄경 범망경(梵網經)을 지송했기 때문에, 연비도 자못 빈번히 하였소. 정말로 모든 중생이 자기 몸을 애지중지 아끼고 보호하지 않는 자가 없소. 남한테는 그 목숨을 뺏어 그 고기를 먹고 마음껏 즐거워하면서도, 자기한테는 모기가 피 좀 빨려고 물어도 그 고통을 참거나 받기 어려워하오.

 

[연비는 중국에서 보통 비향(臂香)이라고 부른다. 요즘 중화민국 대만 스님들은 대개 머리 정면 한 가운데 향불로 지진 자국이 눈에 띄게 크고 뚜렷하다.]

 

여래께서는 법화경이나 능엄경, 범망경 등의 대승 경전에서 고행(苦行)을 높이 칭찬하면서, 팔뚝이나 손가락 같은 육신을 불살라 뭇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일을 많이 언급하셨소. 탐욕심이나 자신을 애지중지 아끼고 보호하는 마음 좀 잘 다스리라는 방편의 하나라오. 이러한 수행은 육바라밀 가운데 보시바라밀에 속하오. 그런데 보시에는 안과 밖이 있소. 밖으로는 나라와 성곽·처자식을 보시하고, 안으로는 머리··골수·뇌까지 보시한다오.

연비처럼 향불로 몸을 사르는 공양도, 모두 자신을 내버리는 것[]이오. 반드시 지극한 정성과 간절한 마음으로 삼보의 가피를 기도하며, 오직 자신과 남들의 업장이 해소하여 지혜가 밝아지고, 죄악이 소멸하여 복덕이 늘어나기만을 위해서 발원해야 하오.(비록 자신을 위하는 일이지만, 모름지기 그 공덕을 법계 중생 모두를 위해 회향해야 한다는 뜻이오.)

연비를 하면서 터럭 끝만큼이라도 명성과 소문을 구하거나, 세간과 천상의 복락을 구하는 마음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되오. 오직 위로 불도(佛道)를 구하여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행한다면, 그 공덕은 불가사의하게 무한할 것이오. 이른바 보시 삼륜(三輪)의 본체가 텅 비고, 사홍서원이 두루 망라된다는 경지를 뜻하오.

 

[보시에서 보시하는 자, 보시 받는 자, 보시 물건을 삼륜(三輪)이라고 한다. 마음속에 이 삼륜의 형상이 있으면 진실한 순수 보시행이 못 되고, 아무런 형상이 없이 무심하게 베풀어야 금강경의 무주상보시로 청정한 보시라는 뜻이다. 심지관경(心地觀經)에 나오는 삼륜청정게(三輪淸淨偈)가 그 정신을 잘 함축하여, 보시 때 염송하곤 한다. 그래서 보시게라고도 한다.

베푸는 주체와 베풂 받는 객체와 베푸는 물건은 能施所施及施物

삼세 가운데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네. 於三世中無所得

우리들은 이처럼 가장 뛰어난 마음에 안주하여 我等安住最勝心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께 두루 공양 올리네. 供養一切十方佛]

 

공덕은 마음의 발원으로 무한히 커지며, 과보는 마음의 발원으로 신속히 얻어지게 되오. 혹시라도 마음에 헛된 명예를 그리워한다면, 단지 집착하는 마음을 가지고 집착을 덜어내는 수행(보시)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오. 그러면 연비는 말할 것도 없고, 설사 온몸을 통째로 불사른다 할지라도, 전혀 이익이 없는 고행일 뿐이오.

집착하는 마음으로 헛된 명예를 구하는 생각 때문에, 보시 삼륜의 본체가 텅 비었음도 깨닫지 못하고, 사홍서원이 두루 망라되는 마음도 느낄 수 없소. 여래께서 자신의 견해를 타파하여 제거하라고 가르쳐 주신 법으로, 도리어 자신의 견해를 더욱 견고하게 증대시키는 꼴이 되고 마오.

죄와 복은 마음에서 갈라지고, 과보 또한 마음에서 달라지오. 화엄경에서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만드는데,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든다. 지혜로운 자가 배우면 열반을 증득하지만, 어리석은 자가 배우면 생사만 증가시킨다[牛飮水成乳, 蛇飮水成毒, 智學證涅槃, 愚學增生死.].”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러한 뜻이라오.

보살의 마음은 우주 허공과 같아 포괄하지 않는 게 없소. 중생을 이롭게 하려고 각종 방편을 고안하여, 처음에는 갈고리로 꿰어 끌어당긴 다음, 부처의 지혜에 들도록 이끌기도 하오. 그래서 범부 중생의 지식 견해로 보살의 행실을 함부로 추측하고 판단해서는 안 되오.

보살은 이미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했기 때문에, 나와 남이라는 생각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소. 오직 모든 중생을 다 받아 들여, 여래의 커다란 깨달음 법문 안에 들여 놓으려는 발원뿐이오. 만약 계산이나 비교가 있다면, 이는 곧 감정견해[情見]에 속하여, 나와 남이 없는 도와는 결코 들어맞을 수가 없소.

보살이 머리··골수·뇌를 보시했다고 말한 것은, 진실로 그러하오. 그러나 노래하거나 춤추거나 그림 그리는 여자들을 보시했다는 것은, 보살의 보시하는 마음을 넓히기 위한 방편이므로, 자구에 얽매여 본 뜻을 왜곡해서는 안 되오. 판에 박힌 듯이 문자 그대로 고수한다면, 아승기 세계에 그런 여자들이 가득 차게 한다는 경전의 글귀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소?

이는 보살이 안팎으로 모두 내버려, 탐냄이나 아낌이 전혀 없음을 드러내는 것일 따름이오. 안팎으로 어느 것 하나 탐착하지 않기 때문에, 생사윤회 가운데 홀로 해탈을 얻을 수 있는 것이오. 또 그렇게 보살한테 보시를 받은 사람도 보살의 원력에 포섭되어, 때로는 즉시, 때로는 후세에 몸소 커다란 이익을 받고 생사를 벗어날 수 있게 되오.

예컨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전생에 보살로 계셨을 적에,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 가리왕(歌利王)에게 보시했는데, 그가 바로 나중(금생)에 석가모니께서 성불하신 뒤 맨 처음 제도하신 교진여(憍陳如)라오. 이렇듯이 우주 허공처럼 무한히 크고 넓은 보리심을, 어떻게 범부 중생의 조그만 식견으로 헤아릴 수 있겠소?

아직 무생법인을 얻지 못한 범부 중생은, 마음속으로는 보살의 도를 사모해야 마땅하지만, 그러나 구체적인 수행 방법은 일반 범부의 평상적인 이치에 따라야 마땅하오. 그렇지 않으면, 법도(法道)를 지니고 지키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소. 만약 무생법인을 증득하지 못하여 법도를 확고히 지니고 지키지 못한다면, 보살이 머리··골수·뇌 따위를 보시한 수행을 본받아서는 안 되오. 자신의 수행력이 부족하여 그러한 보시를 감당할 수 없어서, 자신이나 남에게 모두 이익이 없기 때문이오. 범부 중생은 모름지기 범부의 능력에 맞추어 수행하면 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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