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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을 펴내면서

불가록(不可錄) 부록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2. 11. 2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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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을 펴내면서
[불가록] 초판을 펴낸 지 어언 12년이 되고, 재판을 손질한 지도 8년이 지났다. 현대감각에 맞게 전면 손질하고 싶은 바람은 오래 되었으나, 이번 개정판은 문구를 좀 간결하게 다듬고, 앞에 ‘일러두기’에서 밝힌 대로 한자어 두음법칙을 폐기하고 원음 그대로 적으며, 현행 표준어맞춤법상 소유격 조사인 ‘­의’를 훈민정음 당시에 쓴 ‘­에’로 바꾸는 실험적 표기를 선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인 훈민정음에 사라진 글자들을 복원해, 세종대왕께서 본래 베푸신 자비와 지혜가 온전히 되살아나 민족정기 회복과 국운창성에 힘찬 발판이 마련되길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
아울러 올해 찾은 흥미로운 ‘성황신(城隍神) 재판(裁判)’ 하나를 옮겨 ‘추록’으로 덧붙인다. 음욕(성욕)이란 생물학으로는 유전자가 자기복제하는 본능이며, 물리학으로는 전기(電氣)와 자기(磁氣)에 음양(陰陽)이 서로 끌어당기는 이성(異性)흡인 원리니, 참 거스르기 어려운 자연법칙이다. 도교에서도 자연에 순응하면 생명을 낳아 륜회하고, 거센 물살을 거슬러 닦아야 도덕을 이룬다고 ‘역수(逆修)’를 일깨운다. 수행도 학문처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에 비유한 것이다.
헌데 사람한테는 생물적 본능과 물리적 법칙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계산심리까지 뒤엉키니 남녀관계가 아주 복잡해진다. 예로부터 ‘미인박명(美人薄命)’이란 격언이 전해온다. 젊고 예쁜 녀자한테는 뭇 남자들이 찝쩍거리기 때문이다. 또 예로부터 왕이나 권력자나 재벌이 녀자를 많이 거느림도 녀자들이 그런 능력을 선호하는 탓이기도 하다. 물론 그 안에서도 서로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려고 시기질투가 불꽃 튄다. ‘녀자 안 낀 살인 없다’고 하는데, 인류 력사(歷史)상 적지 않은 싸움과 전쟁도 정말이지 직간접으로 녀자(관계)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흔히 ‘사바고해(娑婆苦海)’라고 부른다. ‘사바’는 본디 산스크리트(梵語)에 ‘sah’를 음역한 것으로 ‘沙訶’、‘娑呵’、‘索訶’로도 표기하며, 참고 감당한다는 ‘감인(堪忍)’、‘능인(能忍)’, 참는 곳이라는 ‘인토(忍土)’를 뜻한단다. 이 세계는 오탁악세로 삼악도와 륙도륜회 속에 온갖 죄악이 들끓는 ‘불타는 집(火宅)’인데도, 중생들은 벗어날(빠져나올) 생각조차 안 하고 온갖 번뇌와 고통을 용케도 잘 참고 편안히 지낸다는 뜻이란다. 또 불보살님이 무외(無畏)와 자비(慈悲)로 중생을 교화해 제도하면서 스스로 온갖 고뇌를 잘 참고 감당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중생이든 불보살님이든 어쨌든 잘 참고 지내야하는 괴로운 바다인데, 모든 번뇌와 고통은 어리석은 무명(無明)에서 치솟는 탐욕 때문에 생긴단다. 모든 게 꿈이나 아침이슬、물거품、아지랑이、허깨비처럼 덧없이 변하는, 실체 없는 텅 빈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데, 우리 중생이 눈에 보이는 현상을 실재하는 걸로 착각해 애욕을 느끼고 집착하는 데서, 온갖 번뇌와 괴로움과 슬픔이 생긴단다. 마음에 드는 것(順境)은 좋아하여 탐욕을 부리고, 마음에 거슬리는 것(逆境)은 싫어하여 분노를 내뿜는데, 또 좋은 것을 애착하여 지 맘대로 안 되면 화(逆情)가 난다. 분노와 화로 모든 흉포한 죄악이 저질러지고, 좋은 것에 으뜸은 남녀 애정과 성욕이니, 음욕은 모든 죄악에 원흉이라고 해도 거의 틀림이 없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이는 마음에 거슬리는 극한에 분노와 화를 잘 참아야함을 뜻한다. 헌데 맘에 드는 것은 가랑비에 속옷 젖는 줄 모르듯이 부드럽게 녹아들기에, 뿌리치기도 힘들 뿐 아니라 사실 알아차리기도 몹시 어렵다. 그러니 참기는 더더욱 참말 어렵고도 힘들다. 그래서 음욕은 살인보다 백천만 배나 더 참기 어렵다고, 련지(蓮池)대사께서 기막힌 비유로 설법하신 것이다. 담담한 반야지혜(般若智慧: 통찰력)로 현상세계에 환락과 애욕을 철저히 꿰뚫어보고 초연히 해탈해야, 비로소 저절로 참는 온전한 참음이 된다. 불교 6바라밀에서 인욕(忍辱)수행을 강조함도, 바로 중생인(衆生忍)과 법인(法忍)을 고루 갖추는 참된 감인(堪忍) 경지에 이르기 위함이다. 그것이 우리가 사바고해에 공부(수행)하러 온 목적이란다.
그러면 음욕과 사음이 왜 천인공노(天人共怒)하는 죄악일까? 왜냐하면 누구나 미남미녀를 좋아하고 관계 맺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속담에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한다. 지가 갖고 싶은데 지 힘과 능력이 못 미쳐 얻지 못하고 남이 차지할 때, 그것도 잘 아는 가까운 사람이 갖게 되면, 중생은 대부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혼자 속으로 부러워(羨望)하면 그나마 점잖은 군자숙녀다. 마음에 불평스런 물결이 일기 시작하면, 시기(猜忌)하는 감정이 솟구치고, 심하면 질투(嫉妬)와 비방(誹謗)까지 서슴지 않는다. (하여 불교에선 수희찬탄隨喜讚嘆이 아주 큰 공덕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입이 가만있으면 심심해서 뭐라도 씹고 싶어 한다. 그러니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남에 일도, 남녀관계라면 호기심과 정의감(?)이 절로 용솟음친다.
례법에 따라 혼인한 정당한 부부인데도, 호걸이나 미녀면 다른 사람이 탐내 빼앗으려고 간통과 살인까지 저지른 일은 력사 현실에서 숱하게 벌어진 다반사다. 하물며 불륜에 외도나 간통이라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보가 여지없이 나타난다. ‘못 먹는 밥에 재나 부리자.’는 게 사바고해 중생사다. 바로 ‘자기가 하면 로맨스(浪漫)요, 남이 하면 스캔들(醜聞)이다!’
재고가 떨어져 책을 찾는 독자들 성화가 이어진다고 출판부에서 재촉하는데, 그간 안팎으로 힘겹고 어려운 일들이 많아 아가는 색신(色身)에 기력이 감당하지 못하여 미루다가, 갑오농민혁명 120주년에 만나기 드문 윤구월이 지나기 전에 가까스로 개정판 손질을 마치게 되어 무척 다행으로 여기며, 시판용 2천부와 함께 실비로 법공양 2천부를 선뜻 발행하는 출판 인연에 감사한다.
일제 때 강제징병에 끌려가 1년5개월 중국서 참전하신 선친(先親: 諱 永文)께서 남기신 급료 미수금 381엔(762,000원) 지급결정 통지가 온 시절인연에 즈음해, 선친과 본가 및 외가 직계조상、친족들과 맺은 혈연에 감사하며 관계에 얽힌 은혜와 원한을 보답하고 해소하길 념원하는 회향발원으로 특별히 2천권을 법보시하고자 한다. 초판부터 지금까지 ?불가록?은 인세 없이 싼값으로 펴내는데, 특히 이번부터 자원절약과 환경보존에 동참하는 뜻에서 조금 비싼 재생지로 인쇄하게 되어, 제작 및 류통 비용 증가로 정가를 좀 올리게 되었다. 독자들께서 너그러이 량해하고 널리 류포해 주시길 바란다.

2014.11.17. 甲午年 閏九月 스무닷새. 빛뫼 寶積 공경합장_()_
[후기(後記) : 근래 주객관상 여러 우환(憂患)이 닥치면서 몸과 맘이 몹시 곤궁한 가운데, 작년 여름부터 올 가을까지 책 2권을 펴내고 논문 3편을 쓰면서 과로한데다, 법전원 론술평가와 면접을 잇달아 수행하면서 ?불가록? 개정판 교정을 꼬빡 이레간 보아 11월 18일 마지막 손질을 마칠 때 왼눈에 이상한 느낌이 오더니, 숙환(宿患)인 이명(耳鳴)과 공화(空華)에 더해 이제는 ‘비문증(飛蚊症)’이 나타난다. 그간 눈을 혹사하고 과로한 결과이자, 숙세에 지은 업보(業報)로 알아 반성참회하고 근신자중하면서, 베토벤이 귀 먹은 채 마음귀로 천상에 선률(旋律)을 듣고 신악(神樂)을 작곡한 력사(歷史)를 거울삼아, 앞으로 남은 체력과 시력을 잘 아끼고 함양해 도덕진리를 펼치는 선서(善書)보급에 잘 선용(善用)하고픈 념원(念願)이 간절하다. 寶積 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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