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때 숙송현(宿松縣: 안휘성 서남부에 있음)에 현감이던 주유고(朱維高)가, 기유(己酉)년에 강남 지역 과거 시험관으로 참석하여, 어떤 훌륭한 답안 한 권을 뽑았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더니, “이 놈은 숨은 죄악이 있으므로 급제시킬 수 없다.”고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음(淫)’이라는 한 글자를 써서 자기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자세한 연유를 물으니, 더 이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주유고는 전날 밤 꿈은 금방 잊어버린 채, 자기가 뽑은 답안을 그대로 상부에 올렸다. 과거시험 위원장(主試)도 그 문장을 보고 탁월함을 감탄하며 아주 칭송하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 답안 안에 있는 문장 가운데서, ‘험난한 장애(險阻)’라는 두 글자를 붓으로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 현감이 여쭈었다.
“시험 답안 중에 이와 비슷한 글자가 적지 않은데, 지우지 않아야 좋을 듯합니다.”
이에 시험 위원장도 자기 행동을 후회하면서, 주 현감에게 자기가 방금 지운 부분을 물로 얼른 씻어내라고 분부하였다. 그래서 급히 씻었으나, 먹물이 번져 여러 줄이 그만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때마침 전날 밤 꿈이 불현듯 생각나서, 주현감은 마침내 그 답안을 등외로 밀쳐내고 말았다. 그렇지만 주 현감은 끝내 그 문장을 아껴, 특별히 그 답안 원고를 보존하였는데, 응시자 성명은 알 수가 없었다. 이 사실은, 주 현감이 그 대신 뽑아 추천한 답안을 쓴 오리성(吳履聲)이 전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