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송(宿松)에 양(楊) 아무개는 학교에서 유명한 서생이었다. 관성제군(關聖帝君) -주1) 을 지극한 정성과 공경으로 받들어 섬겼다. 하룻밤에는 관성제군이 자기에게 사각 인감(方印)을 내려주시는 모습을 꿈꾸었다. 그래서 내심 기뻐하며, 과거에 반드시 급제하리라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뒤 어느 루각(樓閣) 아래서 한 량가(良家) 규수를 간음하였다. 그리고 과거시험을 치르고 집에 돌아온 날 밤에, 다시 관성제군이 꿈에 나타나더니, 이번에는 지난번 주었던 사각인감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양 서생이, “인감은 저에게 내려주셔 놓고, 또 어찌하여 내놓으라고 요구하십니까?” 라고 항변하였다. 그러자 관성제군은 이렇게 답변하였다.
“단지 인감만 내놓을 게 아니라, 아울러 니 목숨까지 내놓아야겠다. 지난 몇 월 어느 루각 아래서 저지른 짓이, 너는 마음 편안하단 말이냐?”
그 뒤 한 달이 채 못 되어, 부자(父子)가 함께 죽고 말았다.
주1) 관성제군(關聖帝君): 삼국시대 촉(蜀)나라 대장군이었던 관우(關羽: ?~219)가 죽은 뒤, 그 정의로운 정신기개가 승화하여 천상에 신이 되었다고 전해지는데, 도교(道敎)와 민간신앙에서 그를 관공(關公)이나 관제(關帝), 또는 관성제군(關聖帝君)으로 존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