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明)나라 무종(武宗: 1505~21 재위) 정덕(正德) 년간에 사명부(四明府)-주1) 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떤 수재(秀才)-주2)가 죽은 뒤, 아들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하였다.
“생전에 간음죄를 범하여, 내일 남성(南城)에 사오랑(謝五郞) 집에 있는 개한테 강아지로 태어나게 되었다. 한시 바삐 착한 일을 많이 해서, 나를 위해 참회하고 공덕을 쌓아주기 바란다.”
그 말을 마치자마자, 한 귀졸(鬼卒)이 그 목을 끌어 잡아당기고, 다른 귀졸 하나는 흰 가죽을 그 머리에 덮어씌웠다. 그러자 그는 구슬피 울면서 머뭇거리다가 떠나갔다. 그 아들이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났다. 이튿날 사씨 집에 찾아갔다. 과연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온 몸이 여린 흰색이었다. 그 아들은 흰 강아지를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와, 그를 위해 좋은 일을 널리 베풀었다. 오륙 년이 지난 뒤, 개는 밥을 먹지 않다가 죽었다. 그런데 그 뒤 다시 한 달쯤 지나자, 집안에 어린 하녀 하나가 쪼그려 앉더니만, 마치 생전에 수재(집주인) 모습처럼 큰 소리로 집안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아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실제로는 일찍이 간음을 범한 적이 없다. 다만 18세 때 형수님 방 앞을 지나는데, 형수님이 마침 침대를 씻다가 반지를 땅에 떨어뜨린 뒤, 내게 주워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때 내가 반지를 주워 드리면서 감정이 움직인 적이 있을 따름이다. 그 뒤로도 형수님이 때때로 나한테 웃으면서 말을 건네 왔다. 그래서 하마터면 인륜을 깨뜨릴 뻔한 위험도 있었으나, 형수님이 마침내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 뒤로는 나도 정신이 어지럽고 심사가 산만해졌는데, 그러다가 그 이듬해 나도 죽은 것이다. 죽은 뒤 귀졸이 나를 결박시켜 한 관청 뜨락으로 끌고 갔는데, 그때 나는 이미 두 손을 땅바닥에 갖다 대고, 마치 개 모습처럼 변해 있었다. 이제 너희가 착한 일로 공덕을 쌓아, 나를 위해 회향 기도해준 까닭에, 내 전생 죄업이 소멸할 수 있었다. 앞으로 나는 곧 산동(山東)에 조의사(趙醫士) 집안에 다섯째 아들로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온 집안 식구에게 작별하였다. 그 말을 마치자, 어린 하녀는 땅바닥에 쓰러졌다가 이내 깨어났다.
주1) 사명부(四明府): 절강성에 옛 행정 구역인 녕파부(寧波府)를 일컫는 별칭. 관할 지역 안에 사명산(四明山)이 있어 붙은 별칭인데, 사명산(四明山) 위에 사면으로 창이 뚫린 듯하여, 그 안에 해와 달․별들에 빛이 통하는 네모난 바위가 있다고 전해짐.
주2) 수재(秀才): 무재(茂才)라고도 일컫는데, 한대(漢代)에 인재를 천거 등용하는 한 과목으로 설치하였음. 그 뒤 남북조 시대에 가장 중시했으며, 당나라 때도 설치했으나 점차 유명무실해지면서, 일반 글공부하는 선비나 서생을 일컫는 명사로 변함. 명나라 태조 때 천거 등용법을 다시 채택하여, 수재 수십 명을 뽑아 지부(知府) 등 관직에 임명하였음. 그러나 나중에는 부(府)나 주(州)나 현(縣)에 학교에서 공부하는 생원을 주로 일컫는 말이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