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말엽 오하(吳下)에 진(秦)씨 서생이 있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재주도 많은 데다, 시사(詩詞)와 악부(樂府)를 특히 잘 지었다. 그러나 사람됨이 아주 경박하여 익살스런 말로 세상을 헐뜯고 풍자하기를 좋아했다. 더러 형체나 외모가 변변치 못한 사람을 보면, 얼굴을 처음 대하자마자 시 한 수가 금방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더러는 남들이 다소 우스꽝스러운 일을 행하면, 그 소식이 귀에 들어가는 즉시 노래 한 수가 벌써 불리기도 했다.
그에 동창 친구가 연줄을 타고 중앙에 있는 학교에 들어가게 되자, 유학시(遊學詩) 1백 운(韻)을 지어 축하하기도 했다. 또 이웃집 사람이 남녀 분별을 모르고 문란하게 생활하자, 꾀꼬리 새끼(黃鶯兒) 열 수를 지어 보내기도 했다. 그림자를 그리고 바람을 묘사하는 데도, 재주와 기교를 지극히 다하여, 사람 입을 오르내리며 사방으로 널리 퍼졌다. 그로 말미암아 자주 주먹질을 당하거나, 관가에 고소당하는 곤욕을 치렀다. 심지어는 여러 차례 옷과 이불을 빼앗기기조차 하였지만, 끝내 고칠 줄을 몰랐다.
만년에는 갑자기 학질(瘧疾)에 걸려 미친 기가 발작하더니, 스스로 자기 똥을 집어먹고 칼로 자기 혀를 자르려고 날뛰었다. 마침내 집안 식구들이 칼을 빼앗고 그를 빈방에 가두었다. 그는 방안에서 칼을 찾지 못하자, 이로 혀를 깨물어 잘게 부순 뒤 내뱉어 악취가 집 밖까지 진동하였다. 나중에 창틈으로 밖을 내다보다가, 마당 가운데 장작 패는 도끼가 놓여 있는 것을 보더니만, 갑자기 미친 듯이 창문을 뚫고 돌진해 나왔다. 그리고는 도끼를 들어 스스로 찍어 죽고 말았다.
평(評): 우각세(于覺世)가 이렇게 말하였다.
“진(秦)씨 서생과 같은 재주로, 풍속을 착하게 만들고 백성을 교화하는 데에 쓰기가 어찌 그리도 어려워, 이내 그처럼 자신을 살해하는 도구로 밖에 못쓴단 말인가? 이는 수후에 구슬(隨侯之珠)을 참새나 쏘아 맞히는 탄환으로 쓰고, 태아에 칼(太阿之劍)을 땔감이나 베는 낫으로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근래에 어떤 서생 하나는 특이한 재주만 뽐내고, 과거에 반드시 급제하리라고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경전(經典) 내용을 해학이나 익살 떠는 화제로 지껄이기 좋아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자주 천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시험에 뭔가 잘못 와전되어 번번이 탈락하고 말았다. 이는 성현 말씀을 모욕한 과보다.
세간에 재주 많은 선비들이 왕왕 이러한 죄과(罪過)를 범하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호라! 그렇게 글공부한다면, 광대가 연극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렇듯 성현 글(斯文)로 땅바닥을 쓸고 있는 것은, 모두가 그렇게 글공부하는 사람들이 초래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