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윤옥(藍潤玉)은 스무 살 약관(弱冠)에 이미 재주가 몹시 빼어나고, 풍만한 자태에 훤칠하고 준수한 모습을 갖추었다. 그래서 동학들이 모두 그는 금마(金馬)-주1) 나 옥당(玉堂)-주2) 을 기약할 수재(秀才)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에 집 바로 이웃에 아무개 상서(某尙書) 댁이 있었다. 그 상서에게는, 이미 혼인을 허락한 뒤 아직 시집가지 않은 딸이 하나 있었다. 그 딸은 재주와 미색 모두 당대에 손꼽힐 정도로 아주 빼어났다. 한번은 우연히 그 딸이 마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람(藍) 서생이 바라본 적이 있었는데, 집에 돌아오자 애타게 생각나고 그리워지는 것이었다.하루는 뒤뜰(後園)을 한가로이 거닐다가, 문득 담장 건너편에 녀자 목소리가 나는 것을 알아들었다. 이내 사다리를 타고 담장 너머를 엿보았더니, 바로 지난번 마차에 올라탔던 딸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몰래 담장 아랫부분에 벽돌 반절을 뚫어 빼낸 뒤, 매일같이 그 구멍으로 딸에 모습을 살며시 훔쳐보았다. 그렇게 반년쯤 지나면서, 그 딸은 마침내 출가(出嫁)해 버렸다. 그러자 람 서생은 다시는 담장 구멍을 엿볼 일이 없어졌다.이에 몹시 서글프고 애달픈 마음으로 ‘길이 사모하는 시(長相思詞)’를 지었다. 그런데 그 시를 한 친구에게 내보여 주었더니, 그 친구는 보자마자 불 속에 집어 던져 태워버렸다. 그리고는 그러한 일이나 글은 덕행(德行)을 크게 훼손하므로, 다시는 딴 사람에게 말하지도 말라고 엄중히 경고하였다. 그러나 람 서생은 친구에 훈계를 듣고는, 공연한 소리한다며 피식 웃고 말았다.그 뒤 과거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시험 전날 밤 꿈에, 한 신이 나타나 자기 눈을 찌르는 것이었다. 깨어나서도 눈이 어찌나 몹시 아프던지, 마치 누군가가 바늘로 두 눈동자를 계속 찌르는 것만 같았다. 눈꺼풀을 열어 눈을 뜰 수조차 없어서, 결국 텅 빈 하얀 답안지를 제출하고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통증이 그치지 않더니, 마침내 두 눈이 멀고 말았다. 그런데 과거 급제자 명단을 발표하고 보니, 사모하는 시를 적은 글을 불사른 친구는 수석으로 합격하였다.주1) 금마(金馬): 본디 한대(漢代)에 궁궐문 이름인 금마문(金馬門)에 약칭으로, 문 옆에 구리로 만든 말(銅馬)이 있어 붙여짐. 한대에 인재를 뽑아 등용할 때, 모두 공거(公車)라는 관서(官署)에서 황제 조서(詔書)를 기다리도록 정해져 있었는데, 그중에 재능이 특출하게 우수한 인재는 예외로 금마문(金馬門)에서 조서(詔書)를 대기하였다고 함.주2) 옥당(玉堂): 한대(漢代)에 관서 명칭으로, 황제 조서(詔書)를 받드는 곳임. 당대(唐代)에는 한림원(翰林院)이 그 기능을 대신하면서, 옥당(玉堂)이라는 별칭을 얻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