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본래 죄가 매우 커서,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젖도 먹지 아니하고 사흘 밤낮을 크게 울었습니다. 나중에 병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세 살이 되어서 또 이레 밤낮을 먹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살릴 수 없다고 여겨서, 그냥 내버려두고 목숨이 끊어지면 갖다 내버리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저희 아버지께서 밖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떤 한 노인을 만나서 특이한 비방祕方을 받아오셨는데, 그게 아주 효험이 있었습니다. 저는 비록 살아나기는 했지만, 계속 병을 앓아서, 도대체 이 집안사람들이 저한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습니다.
일곱 살이 되어 학교에 가야 해서, 모毛씨 성을 가진 의사가 제 이름을 지어줬는데, 몸이 너무 좋지 않다고 하여, 길게 편안하라는 뜻으로 장녕長寧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제 어머니께서는 부처님을 믿고 채식을 하셨는데, 저도 어머님 영향을 받아서 함께 부처님께 예배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위 이웃들이 모두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일반 아이들과 다르다.?
?항상 문 밖에 나오지 않고 혼자서 집에서 부처님께 절만 한다.?
저희 누나는 저를 몹시 꾸짖었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조그마한 녀석이, 어휴, 이걸 정말…!?
우리 집 후원後院에 진흙으로 만든 관세음보살상이 한 분 계셨는데, 아무도 공양을 올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여러 차례 졸랐는데도, 어머니는 가서 관세음보살님을 모셔 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제가 밥을 먹지 않고 사흘간 연속해서 떼를 쓰자, 부모님께서도 어찌할 줄을 모르시고, 저희 아버님은 저한테?왜 밥을 먹지 않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그래서 관세음보살상을 모셔오도록 요청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그 말씀을 들으시더니, 바로 알아들으셨는지 후원에 가서 관세음보살님을 모셔 왔습니다.
나는 매우 기분이 좋아서 오전 내내 갈고 닦고, 오후 내내 갈고 닦고, 학교에서 돌아온 뒤에는 책보를 한 쪽에 던져두고는 곧 부처님께 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제가 학교 공부나 숙제를 하지 않고서,?관세음보살님께 푹 빠졌다?고 생각을 하셔서, 바로 관세음보살님을 감추어 버리셨습니다.
제가 어떻게 조르고 요구해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성질이 조급해지고 몹시 화가 나서, 학교도 가지 않고 떼를 썼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몹시 화가 나셔서 저를 몹시 때리면서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저는 큰 병이 났습니다.
매일같이 아주 주눅이 들고 우울하게 지냈습니다.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보살님께 기도할 줄을 몰랐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내기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절하는 그 곳에 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상이 없는데도 땅바닥에 절을 하였습니다. 저희 어머니는?이 녀석은 도대체 방법이 없다.?고 생각을 하셔서 나중에는 관세음보살상을 다시 내어다 주셨습니다. 이때 저는 열두(12) 살 이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방 안에 틀어박혀서 바깥사람들과 왕래할 줄도 이야기할 줄도 모르고, 한결같이 부처님께 절만 올렸습니다. 제가 지금 부처님께 예배 올리는 수행을 하는 것도, 어렸을 적에 부처님께 예배하였던 것과 상관이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부처님께 절하기를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열여섯(16) 살이 되어서 폐렴을 앓았는데, 그 수액 주사(링거액)가 과민반응을 일으켜서, 의원에 가서 응급처치로 5시간 치료를 받았으나, 의사가 살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저를 껴안고서 대성통곡을 하셨습니다. 이때 저는 마치 꿈속에 든 듯 몽롱하였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들 밖에 뛰어다니면서, 사다리를 높이 올라가 담장에 오르기도 하고, 담 위에서 지장보살님께서 방광放光하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장보살님이신 줄은 지금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눈을 뜨지도 않은 채 손이 마비가 되어서, 그 사다리로부터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때 실은 제가 의원醫院에 병상 위에서 뛰어내렸던 것입니다.
이를 보고 집안 식구들은 몹시 기뻐하였고, 늘그막한 의사는?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오는 녀석은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듯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경험은 저를 매우 성장시켰습니다. 나중에 치아가 모두 빠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이가 솟아났습니다. 이는 어쩌면 아마도 환골탈태換骨脫胎인가 봅니다.
열여덟(18) 살 때, 저는 하얼빈 리공理工대학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였는데, 졸업하려고 할 적에 아버님께서 3년 동안 몹시 심한 중병을 앓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 된 도리로서 아버님을 위해서 도대체 무엇을 해야, 그 노장을 대신해 제가 그 고통을 받을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비로소 채식하기를 발원하면서, 아버님을 위해서 제가 대신 고통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한 달이 못 되어서 아버님 병은 치료하지도 않았는데 씻은 듯이 나아버렸습니다.
저는 졸업한 뒤에 한 국유공사國有公司에 취직해 판매를 관리하게 되어, 부사장(부총경리)을 맡았습니다. 저는 채식을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하면 이렇게 열악하고 시끌벅적한 세계에 대처해 나갈지 몰라서, 저는 매우 소극적으로 침잠하였습니다. 나중에 침상 앞에 제가 승복(가사袈裟)을 입고 있는 모습의 환영이 나타나서 어른거렸습니다. 그때 저는 곧장 직감으로 알아차렸습니다.
?아, 내가 출가해야 하는구나!?
그래서 부모님께 한번 말씀드렸으나, 아버님은 들은 척도 안하시고 어머님도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그러자 저희 누나가 제게 말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내가 너를 보니, 너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어.?
하여 저는 곧 편지 한 통을 써서 쌀 포대 위에다 올려놓고 나왔는데,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존경하는 두 노인 어르신께.
당신들께서 이 편지를 열어볼 즈음에는, 불효자식은 이미 출가의 길을 걷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제 일과 생활을 대처해 감당할 방법이 없어서, 오직 출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한 평생 이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바라옵건대, 저를 찾으려고 하지 마시고, 제가 저 스스로 잘 안배하여(알아서) 인생을 살아갈 테니, 당신들께서는 마음을 푹 놓으십시오.
부처님 법은 신심이 없는 사람한테는 어디에 그 미묘함이 있는지를 모르지만, 저한테는 오히려 가장 좋은 귀의처입니다. 몸소 자식 된 도리로서, 저는 비록 부모님께 몸으로 효도를 다하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저는 반드시 마음으로 효도를 다하여, 두 어르신께서 저를 양육해주신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어머님, 초나흘(4일)은 당신 생일이십니다. 제가 비록 당신 곁에 있지 못하지만, 당신은 반드시 즐거우셔야 합니다. 그래야 집안 식구 모두 즐거우실 겁니다. 모든 어머님들은 죄다 자식들이 자기 곁에서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지만, 그러나 당신 아들인 제가 출가의 길을 선택한 것은, 오로지 이 세상에 더욱 더 많은 어머님들이 사바고해를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하기 위함입니다. 인간 세상에 즐거움은 잠시입니다. 제 고통도 잠시입니다.
어머님, 불효 아들은 갑니다. 당신은 반드시 당신을 꿋꿋하게 지키시고, 관세음보살님을 아주 많이 염念하십시오. 어머님! 당신은 부처님 법에 신심이 매우 깊으십니다. 당신께서 한 자식을 출가하도록 놓아주실 수 있다면, 저는 확신하건대, 당신께서 당신의 탐욕ㆍ욕망과 요구를 모두 놓으실 수 있으시리라고 믿습니다.
모두 다 내려놓으시고, 총명한 재가불자在家佛子가 되십시오.
부모님! 두 어르신께 청하옵건대, 부디 마음을 놓으십시오. 저는 부모님과 조상님들께 결코 부끄럽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또한 어쩌면 앞으로 오랜 세월 소식이 없을 것이나, 당신들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출가인은 마땅히 일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전심專心, 전념으로 수행을 하여야 합니다. 저는 저 자신을 스스로 잘 관리할 터이니, 부디 마음 푹 놓으십시오.
불효자 장녕.
어머니 생일에 이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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