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산 대사(憨山大師)
념불절요(念佛切要)
념불에서 가장 요긴한 것
념불 수행으로 극락정토에 왕생하길 구하는 법문은, 원래 생사 륜회를 끝마치려는 큰 사업[大事]입니다. 그래서 “념불로 생사 륜회를 끝마친다[念佛了生死]”고 말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마음을 내는 것[發心]도, 생사 륜회를 끝마치기 위하여 바야흐로 념불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부처님께서 (념불이) 생사 륜회를 끝마쳐 주실 수 있다고만 말할 뿐, 도대체 생사 륜회의 뿌리를 알지 못한다면, 결국 어느 곳을 향해 념불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만약 념불하는 마음이 생사 륜회의 뿌리를 끊어 버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생사 륜회를 끝마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도대체 어떤 게 생사 륜회의 뿌리란 말입니까? 옛 사람께서 말씀하시길, “업장이 무겁지 않으면 사바고해에 태어나지 아니하고, 애욕(애착)이 끊어지지 않으면 극락정토에 왕생하지 못한다[業不重不生娑婆, 愛不斷不生淨土].”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애욕의 뿌리[愛根]가 생사 륜회의 뿌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체 중생이 생사 륜회의 고통을 받는 것은 모두 애욕의 허물(대가)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 애욕의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 보면, 금생에 비로소 생긴 것도 아니고, 과거 한두 생이나 서너 생 전부터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이는 시작도 없는[無始] 까마득한 옛날에 최초로 생사가 있는 때부터 줄곧 세세생생(世世生生) 끝없이 몸을 받았다가 다시 버리기를 되풀이해 온 것으로, 이 모두가 애욕 때문에 돌고 또 돌아 오늘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그러니 이전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지금까지 어느 한 순간이라도 이 애욕의 뿌리를 떠난 염두가 있었겠습니까? 이와 같이 애욕의 뿌리와 종자가 한없는 세월 동안 줄곧 깊어지고 두터워졌기 때문에, 생사 륜회도 끝이 없이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에사 바야흐로 념불 좀 하겠다고 마음을 내면서, 단지 부질없이 서방 정토에 왕생하기만을 기원하며, 애욕이 생사 륜회의 뿌리라는 말조차 모른다면, 어떻게 한 순간이라도 그 뿌리를 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생사 륜회의 뿌리를 모른다면, 한쪽에서는 열심히 한답시고 념불하더라도, 다른 한쪽에서는 생사 륜회의 뿌리가 계속 자라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념불하는 것은 생사 륜회와 서로 아무 상관도 없으며, 이러한 념불은 여러분이 어떻게 하시든지 간에, 림종 때까지 꾸준히 념불하더라도, 림종 때에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단지 생사 륜회하는 애욕의 뿌리일 것입니다. 그때사 비로소 념불에 아무런 힘도 얻지 못함을 알게 되고, 부처님이 전혀 영험하지 않다고 원망해 봤자, 그때는 후회해도 늦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권하노니, 이제 념불하는 사람들은 먼저 애욕이 생사 륜회의 근본임을 알고, 지금부터는 념불할 때 일념일념마다 이 애욕의 뿌리를 끊어 나가십시오. 지금 당장부터 눈앞에서 바로 해 보십시오.
집에서 념불하는 재가불자들한테는, 눈에 보이는 자녀·손자·재산 등 어느 것 하나 사랑(애착)스럽지 않은 게 없습니다. 그러한즉, 어느 한 가지 일이나 어느 한 순간도 생사 륜회에 대한 산 교훈이 아닌 게 없습니다. 마치 온몸이 불구덩이 속에 떨어져 타오르는 것처럼!
보통사람들은 념불하는 순간에도 마음속에 있는 애욕의 뿌리를 한 순간도 염두에서 놓아 버린 적이 없는 줄조차 모릅니다. 그러한 념불은 하더라도 절실하지 못한 념불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념불은 겉보기에만 념불일 따름이며, 실질상 애욕이 주된 알맹이입니다. 단지 입으로만 념불한다고 할 뿐, 생각으로는 애욕이 자꾸 자라나는 것입니다.
가령 념불할 때 자녀들에 대한 애정이 눈앞(마음 속)에 나타나거든, 마음의 빛(지혜광명)으로 스스로 되돌이켜 보면서, 이렇게 물어 보십시오.
“이 념불 소리가 과연 이 애정을 이겨낼 수 있을까? 과연 이 애정을 끊어 버릴 수 있을까? 만약 이 애정을 끊어 버리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생사 륜회를 끝마칠 수 있을까?”
애정의 인연은 대부분 아주 익숙하고 친한데, 우리의 념불 공부는 이제 마음을 내어 몹시 낯설고 어설프며 또 절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 힘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애정(애착·애욕)의 경계가 내 마음을 흔들어 대며 주인 노릇을 할 수 없어야만, 림종 때에도 그러한 애욕이 끝내 우리의 극락 왕생을 방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한 번 당부하노니, 념불하는 사람들은 제일 먼저 생사 륜회 때문에 념불한다는 마음(동기·목적)이 간절해야 되고, 생사 륜회를 끊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야 합니다.
그래서 생사 륜회의 뿌리를 일념일념마다 싹둑싹둑 잘라간다면, 이 한 순간 한 순간의 념불이 바로 생사 륜회를 끝마치는 때가 됩니다! 어찌 꼭 섣달 그믐날(림종 때)이 되길 기다려서 바야흐로 생사 륜회를 끝마친단 말입니까? 그러면 이미 때가 늦고도 아주 늦을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눈앞에 모두 생사 륜회의 일들이니, 눈앞에서 생사 륜회를 깨끗이 끝마치세[目前都是生死事, 目前了得生死空].”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듯이 일념일념마다 진실하고 간절하게 념불하여, 한칼한칼마다 섬뜩이는 피를 봅시다. 이렇게 마음을 써서 념불을 하는데도 만약 생사 륜회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으면, 모든 부처님들이 거짓말[妄言] 죄의 구덩이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가불자나 출가스님을 막론하고, 단지 생사 륜회의 마음만 제대로 안다면, 그게 바로 생사 륜회를 벗어나는 시절이 됩니다. 어찌 그밖에 달리 특별하고 미묘한 법문이 있겠습니까?
[함산(憨山) 대사(1546~1623): 휘(諱: 본명)는 덕청(德淸), 자(字)는 징인(澄印), 함산(憨山: 흔히 ‘감’산으로 잘못 읽음)은 별호이며, 속가의 성은 채(蔡)씨이고 전초[全椒: 현재 안휘(安徽)성에 속함] 출신이다. 명나라 가정(嘉靖) 25년에 태어나, 9세 때 절에서 글공부하다가 스님이 관음경(관세음보살보문품)의 “능구세간고(能救世間苦; 능히 세간의 괴로움을 구제하시며)” 구절을 독송하는 걸 듣고는 기뻐서 경을 얻어 암송했다. 19세 때 출가하여 각처를 유람하다가, 동해(東海) 로산(勞山: 牢山)에 거주하였다.
36세 때(만력 9년, 1581) 오대산에서 황태자의 탄생을 기원하는 무차법회(無遮法會)를 열어 500명 스님을 초청하여, 산중 대중과 함께 1천여 명이 일주일간 일사불란하게 성황리에 봉행하였다. 황실과 인연을 맺고 호국불교를 내세워 불사를 크게 일으키다가 마침내 모함을 받아, 만력 23년(1595) 사사로이 사찰을 건립한 죄로 광동(廣東) 뢰주(雷州)에 유배 가서 충군(充軍)되었다가 10여년 만에 풀려났는데, 광동에 있는 동안 조계(曹溪) 보림사(寶林寺)에 주석하여 선종을 크게 부흥시켰다.
천계(天啓) 3년에 세수 78세, 승랍 59세로 좌탈(坐脫) 입적했는데, 오래 지난 뒤에도 살아 계신 듯하여, 육조 혜능 대사처럼 육신상으로 보존되어 전해진다. 지욱(智旭) 대사는 “감산(墾山) 덕청(德淸) 대사는 조계의 조사 터전을 크게 부흥시켰으며, 만년에는 문을 걸어 잠그고 념불하여 밤낮으로 매일 6만 성(聲)씩 염송하셨다. … 마침내 육조와 마찬가지로 육신상을 남겨 인간과 천상의 숭앙을 받으시니, 애시당초 련종(蓮宗: 정토종)의 조사에 들지 않으신단 말인가?”라고 칭송했다.
저서에 법화통의(法華通義)·릉가필기(楞伽筆記)와 노자(老子)·장자(莊子)·중용(中庸)에 대한 주해서 등이 있으며, 몽유집(夢遊集) 55권과 함산어록(憨山語錄) 20권이 전해진다. 근래 함산노인자서연보실록(憨山老人自序年譜實錄)이 ‘감산자전’이란 제목으로 번역 소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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