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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육은 인생의 기초

인광대사가언록. 재가 수행 정진하세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2. 12. 30.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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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정교육은 인생의 기초

 

집안이 일어나려면 반드시 엄정한 가훈부터 비롯하고, 집안이 기울려면 반드시 가훈이 퇴폐해지는 법이오. 자제들이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라면, 모름지기 자신이 하는 행실부터 법도가 있어 자제들의 모범이 될 수 있어야 하오. 이는 틀림없는 이치라오.

특히 지금 일과 노력을 효율적으로 착수하려면, 마땅히 인과응보 법칙을 먼저 말해 주어야 하오. 일찍부터 천성이 되도록 습관을 들여야, 나중에 엄청난 짓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소. 이는 진실로 세상을 맑히고 백성을 다스리며 집안을 거느리고 자녀를 가르치는, 최고 제일의 미묘한 법이오.

자제들의 성장은 오직 가정교육에 달려 있소. 자녀는 모름지기 어려서부터 효제충신과 근검공경으로 가르쳐야 하오. 그래야 자라서 학교에 입학해 글공부할 때 진실한 이익을 받을 기초가 닦이게 되오. 가령 어려서부터 제 성질대로 굴도록 버릇이 든다면, 타고난 자질이나 후천 교육이 없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자질과 교육이 제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결국 문자 공부에 매달리는 썩은 유생이 되고 말 것이오.

세상에 재주가 북두성만큼 높고, 학문이 다섯 수레 책을 읽을 만큼 풍부한 지식인이 많소. 그러나 그들이 하는 행실을 보면, 모두 그런 류의 총명만 믿고 뭇 생명에게 해악만 끼치며 도의(道義)를 망치는 자들이 많소. 그 원인은 모두 한결같이 처음에 가정교육이 제대로 없었기 때문이오.

문왕(文王)은 아내에게서 법도를 취해, 형제와 집안·나라까지 다스렸다오. 대학(大學)에서,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부터 시작하라고 가르친 말씀과 똑같은 취지라오. 이것이 유교 문하에서 사람들에게 성현이 되라고 가르치는 위없는 비결이오. 이를 놓아두고 달리 찾는다면, 모두 말단 지엽일 따름이오.

자녀가 말을 할 줄 알고 사물을 분별할 때부터, 집안에서 먼저 글자[漢字] 익히기를 도와주면 좋소. 한 장의 종이에 한 글자씩만 쓰되, 앞뒤 양면으로 쓰지는 마시오. 앞뒤로 쓰면 기억에 혼동을 일으킬까 염려스럽기 때문이오. 이렇게 하루에 몇 글자씩만 익숙하게 익힌다면, 1년이 채 못 되어 제법 많은 글자를 알게 될 것이오. 나중에 글공부할 때 이미 익힌 자들은 금방 쉽게 알아 볼 것 아니겠소?

그리고 자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스스로 몸을 놀려 부지런히 익히도록 시키고, 음식이나 의복은 화려하지 않게 주의하시오. 곡식을 떨어뜨리거나 기물을 파괴하는 경우에는, 가격의 귀천(고하)을 가릴 것 없이 그것이 만들어져 우리 앞에 오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또 낭비와 훼손이 자신의 복록과 수명을 얼마만큼 덜어내게 되는지, 잘 타일러 주어야 하오. 그런 뒤에도 다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거든, 결코 그냥 보아 넘기지 말고, 틀림없이 회초리나 벌을 받도록 해야 하오. 이렇게 습관을 들이면, 스스로 검소하고 절약하여, 훗날 호화 사치나 낭비는 하지 않을 것이오.

글공부를 할 수 있게 되면,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이나 음질문(陰騭文)을 익숙하게 읽도록 하고, 자구에 따라가며 글 뜻을 풀어주면 좋겠소. 그러면서 일상 행위가 선()한 경우 두 글의 선행에 따라 칭찬해주고, 선하지 못한 경우 두 글의 불선(不善)에 따라 꾸지람을 하는 것이오. 그러면 쇳물을 틀에 붓는 것과 같아, 그릇이 안 될 수가 없게 되오. 또 강물에 둑을 쌓는 것과 같으니, 제멋대로 넘쳐흐를 리가 없을 것이오. 사람이 사람 되는 기본이 바로 여기에 있소. 이렇게 하지 않으면서 어찌 온전한 사람이 되길 바랄 수 있겠소? 혹시 맹자 이상의 천부적 자질을 타고난 자라면 모르겠소.

그리고 글공부를 시킬 때는 곧바로 신식 학교에 들여보내지 마시오. 몇 집이 함께 모여 학문과 덕행을 겸비하고 인과 법칙을 깊이 믿는 스승을 초청해서 먼저 사서(四書: 논어·맹자·대학·중용)와 오경(시경·서경·역경·춘추·예기)을 가르치는 게 좋겠소. 그렇게 배움의 터전이 어느 정도 다져지고 문자 이치가 좀 통하여, 삿된 세속의 논설에 더 이상 미혹하지 않게 된 다음에 학교에 들어가도 늦지 않소.

이렇게 가르치면, 천부적 자질을 타고난 자는 스스로 뭔가 할 수 있게 되고, 그런 자질이 없는 자도 비뚤어지지 않고 선량하게 자랄 수 있소. 맹자가 뜻을 얻지 못하면 자신을 홀로 착하게 닦고, 뜻을 얻으면 천하를 두루 착하게 한다고 한 말이나, 우리 불교에서 자신을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한다는 말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게 된다는 말이오. 이것이 노승이 늘상 하는 평범한 말이오.

자녀 교육은 근본에 착수해야 하오. 근본이란 부모님께 효도하며 대중을 구제하고, 인욕과 독실한 행실로 몸소 본을 보이며, 덕행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오. 마치 쇠를 녹여 주물 틀에 부을 때, 틀이 반듯하면 모형도 반듯하고, 틀이 굽으면 모형도 굽는 것과 같은 이치라오. 주물의 크기와 두께도 붓기 전에 미리 알 수 있지 않소? 부모는 자녀 교육의 틀과 같소.

근래 세상인심은 이러한 이치를 대부분 내팽개치고 거들떠보지도 않소. 그러다 보니, 천부적 자질이 뛰어난 자제들은 대부분 미쳐 날뛰거나 패륜을 일삼고, 천부적 자질이 없는 자제들은 완고하게 비열해지기 십상이오. 어렸을 적에 그런 모범의 틀을 벗어나는 것은, 마치 쇳물을 녹여 나쁜 틀에 부어 나쁜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소. 쇠의 자질은 똑같은데, 만들어진 그릇은 천양지차이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소?

부처님은 나 없음[無我]을 가르침으로 주셨소. 요즘 사람들은 조금만 지견(知見)이 생기면, 곧 눈으로 은하수나 쳐다보기 일쑤라오. 그러다 보니, 문자상의 이치를 불법의 전부로 아는구료. 자신을 닦고 마음을 정화하여 나라는 모습[我相]을 없애버리며, 선정과 지혜를 힘써 닦아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려고 정진하는 게 불법인 줄은 까마득히 모른단 말이오.

내 보기에 부모의 자식 사랑은 너무도 지극하여 이르지 않는 곳이 없을 지경이오. 오직 질병과 환난에는 더욱 갓난아기 대하는 마음이오. 어린애가 말할 수 있는 때부터 즉시 나무 아미타불과 나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염송하도록 가르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 것이오. 그러면 설사 숙세의 공덕이 별로 없더라도, 염불의 선근으로 화가 싹트기 전에 사라지고, 복이 모르는 사이에 찾아들며, 각종 살기(煞氣)나 질병 같은 위험한 고난도 염려할 필요가 없게 되오.

그리고 조금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충실·용서·인애·자비의 덕목을 가르치며, 살생을 금지하고 방생(放生)을 일깨우며, 삼세인과의 분명한 사례들을 일러줄 필요가 있소. 이와 같은 덕목이 천성이 되도록 습관을 들이면, 어릴 때부터 미세한 벌레나 개미 한 마리 잔혹하게 죽이지 못할 것이며, 자라서는 간사한 죄악을 저질러 부모 조상의 치욕거리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오.

자제들 가운데 재주가 뛰어난 자는 잘 가르치면 쉽게 올바른 그릇이 될 수 있소. 그러나 잘 가르치지 못하면, 오히려 실패한 부류로 타락하기 쉽소. 지금 민생이 어렵고 국가가 몹시 어지러운 것도, 알고 보면 재주는 뛰어난데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못한 자들이 점차 빚어낸 결과라오.

재주가 없는 자들을 성실하도록 가르쳐야 함도 당연하지만, 재주가 뛰어난 자들도 더욱 성실하도록 가르쳐야 마땅하오. 그러나 성실이란 것도 거짓으로 꾸며댈 수가 있소. 그래서 맨처음에 인과응보 법칙과 사람의 마음 품음과 생각 움직임 하나하나를, 천지신명이 모두 굽어보고 훤히 안다는 사실부터 가르쳐야 하오.

태상감응편 음질문은 반드시 익숙히 읽도록 시킬 것이오. 불교 책이 아니라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되오. 범부의 눈으로 보니까 그저 평범하고 얕은 내용 같지만, 원대하고 심오한 이치로 본다면 제대로 이해하고 체득하기가 쉽지 않은 글들이오. 이들 책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읽어서 이익 안 될 게 없소.

덕에는 고정된 일정한 스승이 없고, 선행에 힘쓰는 게 바로 스승이라오. 부처님께서는 시체나 분뇨·독사 등을 가지고 관찰하라고 가르치셨소. 그런 관찰법으로 아라한과를 증득한 불자도 갠지스 강 모래알 수보다 훨씬 많소. 하물며 태상감응편이나 음질문같이 구구절절 절실하고 수양과 성찰을 일깨우는 문장이야 오죽하겠소?

범부 중생의 경지에서는 질병이 없을 수 없으며, 그 질병을 그냥 방치하고 고치지 않을 수도 없소.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힘을 덜 들이고 가장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묘안은, 바로 질병을 의약으로 삼는 것이오. 질병을 의약으로 삼으면, 더 이상 질병에 허덕이지 않을 수 있소.

특히 부모로서 자녀를 사랑하는 병은 결코 끊을 수 없소. 그런데 이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자녀에게 살아생전에는 올바른 사람이 되고 죽은 다음에는 극락정토에 왕생하도록 바란다면 어떻겠소? 그렇게만 한다면, 세간 범부의 감정에 불과한 사람이 출세간의 성인 과위를 이룰 수 있지 않겠소?

만약 부모의 사랑을 잘 쓰지 못하여 자식이 제멋대로 자라도록 방치한다면, 자식의 몸을 죽이는 것보다 백천만억 무량무변 배 이상 더 큰 허물이 될 것이오.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나라가 멸망의 위기에 처한 것도, 알고 보면 이렇듯 세상 사리를 잘 모르는 부모들이 빚어낸 결과라오. 어찌 슬프지 않겠소?

자손이 타락의 길로 빠지지 않고 정도에 들어서길 바라는 사람들은, 마땅히 태상감응편 음질문을 지남침(나침반)으로 삼아야 하리다. 음덕(陰德) 두 글자가 포함하는 뜻은 매우 넓은 줄 알아야 하오. 다른 사람 자제들을 성현의 영역에 들도록 인도하는 것은 진실로 음덕에 속하는 것이오. 하지만 자기 자제들을 성현의 영역으로 이끄는 것도 음덕에 속한다오.

반대로 남의 자제든 자기 자녀든, 잘못 인도하는 것은 모두 손덕(損德)이오. 가정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성현이 되는 모범을 보여야 하오. 이른바 세속에서 진리의 도를 닦으며, 거사의 몸을 나토어 설법을 한다는 게 이것이오. 이러한 뜻으로 서로 격려하여, 자신이 서고자 하면 남을 먼저 세우고, 자기를 이롭게 하면서 남을 이롭게 하는 수행을 함께 해나가길 바라오.

()나라의 건국은 삼태(三太: 삼대에 걸친 어진 왕비)에서 비롯하였으며, 문왕의 거룩함도 태교에서 말미암았소. 이를 보면, 세상에 성현의 선비가 없는 것은, 바로 그런 성현의 어머니가 없기 때문임을 알 수 있소. 가령 세상 어머니가 모두 삼태와 같다면, 그 자녀는 설령 왕계(王季문왕(文王주공(周公)같이 훌륭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간사한 죄악을 저지르진 않을 것이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딸을 귀여워할 줄만 알아, 교태와 아양만 떨도록 내버려 두고, 모성의 위의(威儀)를 가르칠 줄은 모르고 있소. 이것이 우리나라의 커다란 불행이오. 사람이 어릴 때 늘상 어머니 곁에 붙어 다니기 때문에, 어머니한테 배우고 물드는 게 가장 많고 깊기 마련이오. 지금의 딸들이 앞날의 어머니가 되오. 집안과 나라를 잘 가꾸고 다스리려면, 딸을 제대로 가르치는 게 급선무라오. 어차피 남의 집으로 시집가면 출가외인이 될 사람한테, 내가 왜 근심과 수고를 다하느냐고 따지지 마시오. 천지 만물을 위해서 분수를 지키는 선량한 백성 하나 키운 공덕이 얼마나 막대한 줄 아시오? 하물며 딸은 앞으로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 그 자녀의 모범이 될 존재이니, 그 영광이 오죽하겠소?

집안과 나라가 흥성하려면, 현모양처 없이 절대 힘을 얻을 수 없소. 세상에 현모양처가 없으면, 나라에 선량한 백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 착한 자녀도 없게 되오. 그리고 불법 문중에서 부처님 이름 팔아 먹으면서 생계나 꾸리고 있는 건달 스님들도, 알고 보면 어느 하나 좋은 어머니 소생이 없소. 만약 그의 어머니가 정말 현명하고 좋은 사람이라면, 그 자식이 이처럼 최하의 비열한 인간이 되지는 결코 않았을 것이오.

그러므로 누이든 딸이든, 집안의 여자들에게는 수시로 인과응보와 염불의 이익을 말해 주어야 하오. 그래서 모든 여자들이 각각 마음속으로, 자기 마음이 천지신명은 물론 자비로운 아버지 아미타불과도 항상 서로 통해 있음을, 스스로 알도록 일깨워야 하오. 그래야 사악한 생각을 끊고 올바른 믿음이 자라나게 되오. 그러면 그들이 바로 현재에 좋은 아내가 되고 장래에 어진 어머니가 될 것이오. 이러한 기풍이 온 마을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면, 바로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 법륜(法輪)이 될 것이오.

보살은 세속에 따라 중생을 이롭게 할 뿐, 특별한 화로나 부엌을 만들지는 않소. 병에 대해 약을 처방하여, 각자 고향 집으로 되돌아가도록 길을 가리켜 줄 뿐이오. 요즘 신식 학교 다니는 부녀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어떻게 하면 정권을 잡고 사회에서 행세할까 하는 이상하고 헛된 꿈만 꾸는 것 같소. 각자 본분을 지켜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 천하태평의 근본임을 모르고 있는 듯하오.

앞서 말한 것처럼, 옛날 주()나라 왕업은 바로 삼태(三太)에서 터전이 잡혔다오. 태강(太姜태임(太任태사(太姒) 세 분은 여자 가운데 성인이오. 그런데 모두 음으로 남편을 도우면서, 태중(胎中)부터 자식 가르치는 일에만 오로지 전념했소. 요즘 여자들은 이러한 현모양처의 모범은 배울 생각도 안 하고, 엉뚱한 궁리만 하고 있으니, 천하를 어지럽힐 재앙의 싹들만 키우고 있소.

세상에서 인간은 설령 하늘이 내린 성인일지라도, 어진 어머니와 어진 아내가 그 도덕을 잘 보필하고 내조해야 성공할 수 있소. 하물며 그 아래 보통 사람이야 말할 게 있겠소? 예컨대, 태임(太任)의 훌륭한 태교가 있어서 문왕이 나면서부터 성덕(聖德)을 타고 났소. 또 태사(太姒)의 덕이 문왕의 도를 보필하고 내조하기에 충분했소. 두 등불이 서로 마주 비추어야 광명이 더욱 빛나고, 두 손이 서로 비벼 씻어 주어야 깨끗해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요.

그러고 보면, 세상에 어진 사람이 적은 이유는, 바로 어진 어머니와 어진 아내가 적기 때문이오. 아내가 음으로 남편을 잘 돕지 못하고, 어머니가 자녀를 잘 가르치지 못한 탓이오. 자녀는 태어나서 몇 년간은 매일같이 어머니 곁에 붙어살지 않소?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부지불식간에 어머니한테 거의 모든 것을 배우는 것이오.

그래서 나는 늘상 여자를 가르치는 게 집안을 거느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라고 말하오. 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하게 만드는 권능의 절반은 여자가 쥐고 있다고 말하오. 선천 자질이 뛰어난 사람을 어진 어머니가 잘 훈육하고 어진 아내가 잘 보필해 준다면, 저절로 그 뜻이 정성스러워지고 마음이 올바르게 되어, 밝은 덕을 밝히고 지극한 선에까지 이를 것이오. 그래서 비록 뜻을 얻지 못해 곤궁에 처해도 적어도 자신 하나는 착하게 수양할 것이고, 뜻을 얻어 영달하면 천하를 두루 착하게 만들 것이오.

자질이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도, 규범과 법도를 잘 지키고 분수를 아는 선량한 백성은 될 것이오. 적어도 이치에 어긋나고 분수에 넘치는 죄악을 저질러, 세상에 해를 끼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오. 그런데 애석하게도 세상 사람들은 깊은 꿈속을 헤매는 듯, 여자들에게 본분을 지키고 도리를 다하라는 가르침은 주지 않고, 매일같이 오직 화장과 치장에만 매달리도록 내버려두는구료. 이것밖에는 아무 것도 얘기해 주지 않으니, 나중에 남의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었을 때, 남편을 내조하고 자식을 잘 가르치기는커녕, 오히려 나쁜 사람이 되도록 망치기 일쑤라오.

이렇게 보면, 딸 가르치는 일이 아들 가르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함을 알 수 있소. 내가 여자 가르치는 것이 집안과 나라 다스리는 근본이고, 천하태평의 권한을 절반은 여자가 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진실하기 짝이 없는 말이오. 근세에 신식 학풍이 크게 불어 여자들도 죄다 입학하는데, 이런 가르침의 근본을 모르는 선생들이 여자들의 교육을 망치고 있소. 가정교육의 중요성은 누가 제창하고 실현한단 말이오?

세상에 어진 어머니가 있어야 비로소 어진 사람이 나올 수 있소. 예로부터 성인의 어머니는 태교에 치중했소. 생명이 시작할 때부터 좋은 습관을 들여 천성과 다름없이 만들어 준 것이오. 중국에서 여자(아내) 타이타이(太太)’라고 불러주는 것은, 바로 태강(太姜태임(太任태사(太姒)라는 세 성녀 때문이오. 이 삼태는 각각 자기 남편을 잘 내조하고 아들을 잘 가르쳐 주나라 800년 왕업을 열었기 때문에, 그들을 기려 타이타이라 일컫는 것이오.

그런데 요즘 여자들은 대부분 본분을 지키지 않고, 정권이나 휘어잡아 큰일을 하려고 함부로 나서고 있소. 집안에서 잘 가꾸고 도울 생각은 안하오. 속담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천하 온 나라의 쇠를 다 긁어모아도 이처럼 큰 착오[: 쇠로 만든 숫돌과 잘못이라는 뜻이 함께 있음]를 주조하지는 못하리라.” (어떻게 해도 이보다 더 큰 잘못은 생기지 않는다는 과장법)

세상 도덕과 인심이 갈수록 타락하니, 천재지변과 온갖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 경고하고 있소. 비록 중생의 공동업장으로 비롯한다고 하지만, 실은 가정교육의 상실에서 초래하는 결과라오. 그래서 타고난 재주가 뛰어난 자들은 미쳐 날뛰고, 재주가 없는 자들은 완고한 고집불통이 되고 있소. 집안에서 어진 어머니가 잘 감싸 가르친다면, 사람마다 모두 착한 선비가 될 것인데 말이오.

자식된 도리로 부모의 덕을 널리 드러내 알림은 마땅한 일이오. 다만 그 방법은 실천궁행에 치중해야 하오. 모름지기 극기복례하며 사악함을 막고 정성을 간직하며, 잘못을 알아차리면 반드시 고치고, 의로움을 보면 용기 있게 행하며, 인과 법칙을 분명히 인식하고 살생을 끊어 방생에 힘써야 하오. 어떠한 죄악도 짓지 말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하며, 믿음과 발원으로 아미타불 명호를 꾸준히 염송하여 나와 남이 함께 극락정토에 왕생하도록 교화해야 하오.

이와 같이만 행한다면, 사람들이 설령 그 부모의 덕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덕을 우러르면서 그 부모 조상의 덕도 함께 우러르게 될 것이오. 조상 대대로 음덕을 꾸준히 닦아 왔기 때문에, 이렇게 훌륭한 후손이 있다고 믿는 것이오. 설령 그 부모 조상에게 훌륭한 덕이 있는 줄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고 할지라도, 그 자손이 못된 짓을 하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의심할 것이오. 부모 조상이 비록 훌륭한 덕이 있지만, 혹시라도 사람들이 모르는 숨은 죄악이 있어서, 이런 못된 자손이 나온 게 아닐까 하고 말이오.

그래서 자신을 똑바로 세워 도덕을 실행하는 일이, 바로 부모와 조상의 덕을 널리 펼치는 것이 되오. 자식된 도리로도 공경과 정성을 다해 홀로 있음을 조심하고 실천궁행에 힘써야 할 것이오. 단지 굶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으면 되었지, 굳이 백만금을 모을 필요가 있겠소? 자손에게 백만 황금을 물려주는 게, 경전 한 권 가르치는 것만 못한 법이오. 조상의 덕이 일그러진다면 부끄러워 죽어도 마땅하지만, 조상의 재산은 설령 흩어진다고 해도 무슨 상심할 필요가 있겠소?

부귀영화를 누리는 집 자제들이 대부분 훌륭한 인재가 못 되오. 그 원인은 자식 사랑이 제 도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오. 무조건 좋은 옷만 입히고 돈을 마구 퍼주어 제멋대로 쓰고 먹다 보면, 틀림없이 병이 나기 마련이오. 또 돈 때문에 부모를 미워하고 형제자매를 싫어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소. 이 모두 효도나 우애와 거리가 먼 일이오. 그리고 여자가 돈이 많아 시집가서 남편을 우습게 알고, 돈으로 남편에게 나쁜 일이나 하도록 잘못 돕는 경우도 허다하오.

자녀가 어진 사람이 되길 바란다면, 복덕을 쌓아 주어야 하지, 재산을 모아 주어서는 안 되오. 재산은 재앙[]의 근본이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맨손으로 자수성가 하였소? 모두 돈 한 푼 없이 근검절약으로 이룬 것이오. 반면 큰 부잣집이 오래 가지 못하고 집안이 텅텅 비는 일은, 또 얼마나 많소? 그래서 예로부터 황금 만 냥을 물려주는 것이, 경전 한 권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소. 글공부를 할 수 있으면 글공부로 선비가 되는 것이고, 글공부를 할 수 없으면 소질 따라 농업이나 공업·상업 가운데 직업을 택해, 자신을 세우고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으로 삼게 하면 되오. 또 여자가 돈이 있으면서 사리에 밝으면 그 돈이 도덕을 돕는 밑천이 되지만, 사리를 모르면서 돈만 있으면 여자 자신과 남편(사위)은 물론 그 자녀까지 해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하오.

인생의 한평생 성패는 모두 어린 시절 교육과 버릇에 달려 있소. 좋고 나쁨을 구별할 나이가 되면, 모름지기 효도와 우애, 충직과 성실을 배워야 하오. 청소년 시절에는 체력이 건장하고 정신이 왕성하므로 글공부에 힘써야 하오. 읽은 책은 그 내용을 잘 생각하여, 그를 본받아 실행하도록 하오. 그저 한번 읽고 내팽개치면 내용을 잘 음미할 수 없소.

특히 태상감응편이나 음질문은 늘상 읽고 생각하면서 개과천선하도록 하오. 그리고 틈이 있을 때는 나무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명호를 자주 염송하여, 업장을 해소하고 복덕과 지혜를 증진시켜야 할 것이오. 옛말에도 젊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늙어서 한숨과 슬픔만 나온다고 하였소. 황금 같은 세월 그냥 허송세월하면, 나중에는 설사 힘껏 노력해도 성취하기가 어렵소. 때가 지나면 기억력도 감퇴하고, 배우는 것도 힘은 더 들면서 효과는 떨어지기 때문이오. (우리 속담에도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교훈이 있음.)

첫째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오. 어진 이를 보면 그와 똑같이 되려고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을 보면 안으로 자신은 그러하지 않은지 반성하시오.

둘째는, 인과응보를 분명히 알고, 일거수일투족도 멋대로 뜻대로 굴지 마시오. 무슨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이 일이 나와 부모 친지와 남에게 이익이 되는지 여부를 먼저 생각하시오. 일을 할 때뿐만 아니라, 마음 씀과 생각 움직임 하나라도 모두 그리 해야 하오.

좋은 마음을 품으면 공덕이 되고, 나쁜 마음을 품으면 죄악이 되오. 좋은 과보를 얻고 싶거든, 반드시 좋은 마음을 품고 좋은 말을 하며 좋은 일을 행해야 하오. 그래서 남들과 사물에 이익만 되고 해가 없어야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좋은 과보를 받겠소?

비유컨대, 못난 얼굴을 밝은 거울 앞에 들이밀면, 결코 예쁜 얼굴이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소. 거울에 비치는 모습은 갖다 들이민 모습과 똑같을 수밖에 없소. 이러한 이치를 깊이 안다면, 장래 틀림없이 정인군자(正人君子)가 되어 모든 사람의 존중과 사랑을 받게 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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