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집에서 불법을 잘 펼치세[處家弘法]
여래의 설법은 항상 중생에 맞춰 이루어졌소. 부모에게 자애를 말하고 자녀에게 효도를 말하오. 밖으로 인륜을 다하고 안으로 감정과 생각을 녹임으로써, 본래 갖춘 진실한 마음을 회복한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불제자라오. 어찌 꼭 머리카락을 두고 따지겠소?
더구나 심산 벽촌에 불법을 아는 자도 적을 테니, 이런 좋은 마음을 지니고 힘을 다해 불도를 배우면, 그 이익이 적지 않을 것이오. 효도와 우애를 닦아 마을 사람들이 감화되고, 재계(齋戒)를 지켜 살생과 도둑이 점차 사라진다면, 그보다 훌륭한 홍법(弘法)이 어디 있겠소?
정토 법문을 연구하면 고해를 벗어날 요령이 분명해질 것이오. 그걸 자녀와 친지들에게 일깨워 주는 것이오. 생사 문제가 가장 큰데, 내 뒷사람들을 긍휼히 여겨 이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오? 다른 곳을 특별히 정할 필요도 없이, 가정이 곧 도량이오. 부모·형제·처자·친지들을 모두 도반으로 삼아, 스스로 수행하며 남들을 교화시키고, 몸으로 솔선수범하며 입으로 자꾸 권하는 것이오. 그래서 주위의 인연 있는 사람들이 모두 생사고해의 윤회를 벗어나 극락정토에 왕생하도록 이끈다면, 바로 머리 기른 고승 대덕이요, 진실한 재가 불자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오.
노부모가 집에 계시면, 정토 법문과 감응 실례들을 수시로 들려드려, 환희심을 내고 믿음으로 봉행하도록 해드리시오. 이보다 더 큰 효도가 어디 있겠소? 설령 세간의 효도를 죄다 받들어 행해도, 부모에게 궁극으로 이로운 게 얼마나 되겠소? 우(禹) 임금같이 위대한 성인도 자기 아버지 곤(鯀)의 정신이 황내(黃能: 세 발 달린 큰 자라)로 변하여 우연(羽淵)에 들어가는 것을 구해내지 못했다고 역사는 전하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소? 부모의 정신이 연지해회(蓮池海會)에 참여하여 아미타여래의 설법을 친히 들으며, 본래 마음에 갖추고 있는 무량수 광명을 증득하시도록 이끌어야 하지 않겠소?
고행도 좋지만, 정토 법문의 종지를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오. 남자 몸을 타고나거나 천상에 올라 복락을 즐기려는 마음을 철저히 놓아 버려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세간의 작은 복락 때문에 무한한 이익을 잃을 수가 있소. 뜻과 발원이 결정코 흔들림 없어야 하오.
무릇 한 사람을 정토 왕생하도록 권하면, 곧 한 중생을 성불시키는 것이오. 그렇게 성불하면 반드시 무수한 중생을 제도할 것이니, 나로부터 비롯한 그 공덕과 이익이 얼마나 크겠소? 스스로 정토 법문을 수행하면서, 모름지기 처자·친지 등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함께 발심하도록 권하는 것이오. 이러한 막대한 이익을 놓아두고 깊은 사랑[深愛]이니 큰 자비[弘慈]니 떠드는 것은, 모두 유명무실할 따름이오.
그리고 노부모의 연세가 너무 많아 친히 염불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주위에서 도와주는 염불[助念]법이 있소. 집안의 며느리나 가정부·유모 같은 여자들이 조를 짜서 번갈아 가며 옆에서 염불을 해드리는 것이오. (요즘에는 염불 테이프나 CD로 대신 들어도 좋을 것임.) 염불 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노인께서 직접 따라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소. 그러나 마음을 두고 귀를 기울여 듣기만 해도, 부처님한테서 떠나지 않게 되오. 염불하는 사람도 그리 힘들이지 않고 효도를 다하면서 자신의 선근과 복덕을 심게 되니, 일석이조가 아니겠소?
노부모께서 정토 법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에는, 육도 윤회의 고통과 극락정토의 즐거움을 대비하여 자주 들려 드리시오. 인간 세상은 향상 전진하여 초탈하기는 몹시 어려워도, 타락하기는 정말 쉽소. 그래서 극락정토에 왕생하지 못한다면, 인간 세상 다시 태어나기도 믿을 수 없거니와, 천상 세계에 올라가도 복덕이 다하면 금세 삼악도로 다시 떨어진다오.
불법을 모른다면 어찌할 수 없소. 그러나 지금 불법을 대강 알게 되었으면서, 이처럼 막대한 이익을 남에게만 양보하고, 자신은 기꺼이 육도 윤회의 고통을 달게 받겠다는 것이오? 혹시라도 이런 말을 듣고, 숙세의 선근이 피어 나와 진실로 믿고 받들어 행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소.
보살이 중생을 제도함에는 근기와 인연에 따르는 법이오. 맨 처음에는 갈고리로 꿰어 끌어당겨, 나중에 부처님 지혜로 들어오도록 기다리기도 하오. 효도와 우애를 힘써 닦고, 정토 법문으로 자기 권속과 인연 있는 사람들 모두를 인도하고 권장하여 다 함께 연지해회의 도반이 된다면, 그보다 더 큰 공덕도 없을 것이오.
무릇 효자가 부모를 섬김에는, 근본을 앞세우고 말단 지엽을 나중에 해야 하오. 육체를 봉양하고 정신을 잘 인도해야 할 것이오. 그런데 보통 유교에서 말하는 효도처럼, 육체적인 수고를 도맡아 하며 물질적 봉양으로 편안히 모시고, 세속 학문으로 출세하여 부모 명예를 드높여 집안의 영광을 가져 오는 것만 안다면, 어찌 되겠소? 상주(常住) 무생(無生)의 도와 염불 왕생의 법으로 수행하여, 살아생전에는 부처님 명호를 염송하고 돌아가신 뒤 극락정토에 왕생하시도록 이끌지 못한단 말이오? 그렇다면 이는 가깝고 작은 세속의 효도만 보고, 멀고 큰 도덕의 효도를 보지 못한 중인(中人)의 식견에 불과하오. 통달한 선비[達士]의 안목이 될 수 없소.
부모님과 가족 모두 자신과 함께 사바 고해를 벗어나 안양(安養: 극락) 국토에 왕생하여, 생사 환영(幻影)의 고통을 벗어나고 무량 광명과 수명을 얻어 적멸(寂滅)의 법열을 누려야 하지 않겠소? 함께 아미타불의 법왕자가 되고 인간과 천상의 대도사(大導師)가 되어, 시방 세계를 두루 다니며 중생 교화의 불사를 펼치고, 마음에 본디 갖춰진 불성을 철저히 증득할 때, 비로소 효도와 자비의 마음을 다할 수 있을 것이오.
효도라는 것은 바깥이 없을 정도로 커서, 모든 선행을 포함하오. 그러나 세간과 출세간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는 있소. 세간의 효도는 물질 봉양이든, 뜻을 받들고 영광을 돌려 드리든, 모두 색신(色身) 주변의 일에 불과하오. 설사 제아무리 큰 효도로 하늘을 감동시킨다고 할지라도, 부모의 심성과 생사 해탈에는 별로 보탬이 되지 않소. 결국 효도의 흉내만 내는 것이지, 그 근본은 행하지 못하는 것이오. 하물며 살생하여 부모를 봉양하거나 제사 지내면, 그 원한을 부모님께 돌려 영겁토록 빚을 갚느라 허덕이실 것이오.
출세간의 효도도, 부모를 섬기는 일은 일반 유가의 세속적 효도와 다를 게 없소. 그러나 근본으로 들어가면 비교할 수 없이 달라지오. 여래의 큰 법으로 부모님이 감화 받고 몸소 닦으시도록 도와드리는 것이오. 살아 계신 동안 채식하면서 염불하여 서방 정토 왕생을 발원하시도록 간곡하게 권유해야 하오. 채식을 하면 살생의 죄업을 짓지 아니하고, 숙세의 업장과 재앙도 점차 소멸하게 되오. 또 염불을 하면 부처님의 지혜와 미묘한 도에 은연중에 상통하고 합쳐질 수 있소.
부모님께서 정말로 깊이 믿고 간절히 발원하신다면, 임종 때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구품 연화에 왕생할 것이오. 그러면 생사윤회를 벗어나 성인의 경지에 훌쩍 뛰어 올라, 사바 고해를 영원히 작별하고 극락세계의 복덕을 누리게 되오.
또 만약 부모님께서 이미 작고하셨다면, 부모를 위해 정토 염불 법문을 독실하게 수행하여 회향 기도해 드리는 것이오. 그 마음이 정말로 진실하고 간절하다면, 선망 부모께서 그 이익을 친히 받으실 것이오. 아직 왕생하지 못하셨다면 곧바로 왕생하실 수 있고, 이미 왕생하셨다면 그 품계가 높아질 것이오.
이와 같이만 발심한다면, 사홍서원과 상응하고 보리도(菩提道)에도 계합할 것이오. 어찌 부모님만 그 이익을 얻겠소? 자신의 공덕과 선근도 연화 품계를 더욱 높고 수승하게 향상시킬 것이오. 하물며 몸소 설법하여, 주위의 동학들이 함께 효도심을 일으키도록 권장한다면, 그 공덕이 오죽하겠소?
이러한 효도가 비로소 실질상 최고 궁극의 효도라오. 세간에서 단지 현세의 육신만 위하고, 심성과 미래의 생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효도와는 판연히 다르오. 불교는 효도를 근본으로 삼소. 범망경에도 부모와 은사 스님과 삼보께 효순(孝順)하라고 했소. 효순의 지극한 도로 말하면, 효는 곧 계율이라 할 수 있소.
살생·도둑·사음 등을 금하는 계율 가운데도 모두 “자비심과 효순심을 내야 한다.”고 말하오. 예컨대, 모든 남자는 나의 아버지이고 모든 여자는 나의 어머니이니, 육도 중생이 모두 나의 부모라고 말씀하시오. 그러니 중생을 살해하여 먹으면, 나의 부모를 살해하는 것이오. 또 여자를 간음하면, 나의 어머니를 간음하는 것이 되오. 그래서 불교의 효도는 사생 육도에 두루 미치고, 시작도 없는 과거부터 끝없는 미래까지 영원히 걸치오. 이러한 이치를 안다면, 방생과 채식·염불을 하지 않는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지극한 궁극의 효도를 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소.
스스로 개과천선하면서 일심으로 염불하고, 주위의 모든 친지와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도 함께 하도록 권장하시오. 반대하는 사람이 있거든, 연민의 마음을 품되, 억지로 시키지는 마시오. 또 자신이 일심으로 염불한답시고, 어떠한 일도 거들떠보지 않은 것은 옳지 못하오. 세간의 법과 장애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불법과도 서로 부합하지 않소. 자신의 신분과 지위에 맞추어 수행하여야 비로소 원만해지오.
또 다른 사람들에게 염불하도록 권장하는 것이 정말 제일의 공덕이 되긴 하오. 그렇지만 우선 아래로 처자식이나 형제부터, 위로 부모·조부모께도 모두 권장해야 하오. 가정에서 권속들에게 간곡한 방법으로 생사 해탈의 불가사의한 미묘 법문을 전하지 못하고, 밖으로 남에게만 권장한다면 되겠소? 근본은 놓고 말단만 좇으며, 먼 남만 이롭게 하고 가까운 친족은 생각지도 않는다면, 말이 되겠소.
한 집안 사람들은 한가하고 일 없을 때 완곡하고 간절하게 사리를 일깨워 줄 필요가 있소. 마음에 시비와 가부의 분별이 서면, 부지불식간에 조금씩 변화할 것이오. 그러나 어리석고 오만한 성질을 부릴 때는 조심해야 하오. 다스릴 수 있을 정도면 지극한 이치와 명언으로 심기(心氣) 평온한 가운데 타이르되, 그렇지 않으면 다스릴 생각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시오. 오기와 성질이 가라앉은 뒤, 다시 평온한 심기로 시비곡직을 분간하는 게 낫소. 그렇게 오래 지속하다 보면, 점차 감화할 수 있을 것이오. 만약 거칠고 강한 수단으로 억지로 밀어붙이면, 오히려 역효과만 나게 되니, 절대 주의하시오.
요즘 정법은 약하고 악마가 강한지라, 불법을 보호 유지하기가 세속에서 오히려 쉽고, 승가에서는 더욱 어렵소. 만약 오계를 엄격히 지키면서 아미타불을 오로지 염송하며, 극기복례로 말과 행실이 상응한다면, 굳이 출가를 고집할 필요가 없소. 그렇게 하여 중생을 널리 교화하고 이익을 두루 펼친다면, 스승의 지위에 있지 않아도 저절로 좋아질 것이며, 돈이나 재물을 받을 필요도 없이 저절로 이익이 넘칠 것이오.
집안에서 한 가족을 위해 법을 연설하고, 바깥에서는 인연 따라 대중에게 설법하는 것이오. 사람들이 모두 그 덕을 우러르며 그 말을 믿고 따른다면, 그것이 바로 공자가 말한 대로,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진다[其身正, 不令而行.].”는 경지요. 자신이 몸소 솔선수범하면, 풀 위에 바람 불 때 풀이 바람 따라 눕는 것과 같소.
내 일찍이 이런 대구를 지어 봤소.
“서방 지름길 놔두고 구계 중생이 위로 어떻게 불도를 원만히 이룰 것이며, 정토 법문을 떠나면 시방 제불이 아래로 도대체 중생을 두루 이롭게 할 수 없다[捨西方捷徑, 九界衆生, 上何以圓成佛道? 離淨土法門, 十方諸佛, 下不能普利群萌.].”
그대 대 용맹심을 발휘하고 크게 정진하여, 이 법을 짊어지길 바라오. 옛 사람들이 정토 법문을 크게 펼쳤던 핵심 언론들을 간추려, 주위 사람들에게 두루 전하시오. 홍진에 거처하면서 물들지 아니하고, 세속에서 진여의 도를 닦아간다면, 그야말로 진실한 재가 불자가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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