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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 속에서 도를 닦세[居塵學道]

인광대사가언록. 극락왕생에 요긴한 나침반(경전)들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2. 12. 3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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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홍진 속에서 도를 닦세[居塵學道]

 

염불은 진실로 오롯이 한 마음 집중[專一]하는 게 귀중하오. 하지만 위로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 처자식을 거느리는 재가 거사로서, 분수 밖의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건 옳지 않소. 꼭 모든 것을 다 내팽개친 뒤에야 비로소 수행하는 것은 아니오. 분수 안에서 해야 할 일을 힘써 행하는 게 마땅하오.

만약 모든 것을 내팽개쳐도 부모와 처자식의 부양이 별 문제 없다면, 괜찮소. 그렇지 않으면, 효도와 어긋나게 되고, 비록 수행이라고 하지만 실지로는 부처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것이오.

그리고 모름지기 정토 법문으로 부모님과 가족들을 이롭게 해야 하겠소. 염불로 서방 정토 왕생을 발원하도록 권하여, 만약 믿고 받아들여 행하기만 한다면, 임종에 틀림없이 왕생할 것이오. 일단 왕생하면, 그 자리에서 생사 해탈하고 평범을 벗어나 성인의 경지에 들게 되오. 아미타불을 직접 뵙고 성불할 때까지 물러남이 없게 되니, 세간의 어느 효도가 이에 견줄 수 있겠소?

또 주위의 아는 사람들에게도 두루 알려, 각자 자기 부모님들을 극락왕생하시도록 권한다면, 그 공덕이 얼마나 크겠소? 자기와 부모님의 연화 품계가 훨씬 더 높아질 것이오. 시경에도 효자에게는 부족함이 없을지니, 영원토록 그 무리에게 복덕을 내리리라.”고 하였소. 부모님께 효도하려는 사람은 깊이 생각하시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같지 않소. 그대의 처지로 본다면, 출가의 이익이 작고 재가 수행의 이익이 훨씬 크오. 그대 조상한테 물려받은 가업(家業)이 자못 쓸 만큼 여유 있고, 위로는 모실 자친(慈親: 어머님)이 계시며, 가운데로는 의지할 형제가 있고, 아래로는 거느릴 처자식이 있지 않소? 또 그대 형님은 불법을 자못 깊게 믿고, 두 아우 또한 모두 도와 크게 어긋나지는 않지 않소?

그러니 그대가 집에서 정토 법문을 독실하게 수행한다면, 자친께서도 믿음을 내어 염불하시고 생사 해탈의 길로 나아가실 것이오. 또 형제가 함께 밖에서 집안일을 처리하며, 각각 처자식들을 거느리고 모두 정토 법문을 닦아 온 가족이 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계책이 또 어디 있겠소?

그리고 밖으로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에게도 인연 따라 인도하며, 집안을 도량으로 삼으면 좋겠소. 자친과 형제·처자식·친척·친구들이 모두 함께 불법의 권속이 되어, 분수껏 힘닿는 대로 솔선수범하고 교화를 펼칩시다. 그러면 그 지방의 미혹한 중생이나 사견(邪見)을 품은 사람들이, 모두 함께 불법 가운데 지극히 원만한 정토 법문의 큰 화로에 들어와, 훌륭한 법기(法器)를 이루게 될 것이오.

모두 함께 정토 법문을 닦아 장래 연화 정토에 오르고 보리도를 증득한다면, 어찌 그대 혼자 출가하여 스님이 되는 것만 못하겠소? 가족을 버리고 멀리 떠나면, 처자식은 의지할 데 없어진 원한을 품을 것이고, 자친은 못난 자식 한탄해 마지않을 것이오. 그리고 지극한 이치를 잘 모르는 보통 사람들은, 불법이 세간 도덕과 크게 어긋난다고 비방을 일삼을 것이오. 이런 사람들이 구업(口業)을 지어 삼악도에 떨어진다면, 그대의 출가 이익이 나타나기도 전에, 온갖 큰 손해만 먼저 당하는 셈 아니겠소? 그래도 괜찮겠소?

하물며 그대 자친께서 출가를 허락하시지 않는데, 어찌 부모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이런 생각을 품는단 말이오? 만약 그대 자친께서 그대의 수행 자체를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그대가 출가하려는 것이 그래도 이해할 수 있겠소. 그러나 그대 자친께서 그대의 수행을 몹시 기뻐하시는데도, 어찌 굳이 자친을 떠나 수행하겠다는 거요?

불법 가운데 육도만행의 각종 공덕 수행은, 모두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오. 그대가 출가하지 않으면 자친께 큰 이익이 있소. 단지 이 한 가지 일만으로도, 자친의 마음에 완곡히 순응하여 홍진 속에서 도를 닦는 것이 천만 번 이롭고 옳소. 자친이 그대 곁에서 몸소 익숙히 보고 느껴,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불법을 믿고 따르시게 감화시킨다면, 그 막대한 공덕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소? 하물며 자친 한 분에 그치지 않고, 주위 가족 친지에게 두루 영향을 미칠 텐데, 오죽하겠소?

그리고 부모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출가는 다시 생각하지도 마시오. 부처님 계율 가운데, 부모님께서 출가를 허가하지 않는데 자기가 임의로 출가하려는 자는, 제자로 받아 머리를 깎아 주고 계율을 주는 것이 허용되지 않소. 이를 어기고 임의로 출가하면, 받아 준 스승과 출가한 제자 모두 죄가 되오.

지금은 세상이 많이 좋아지고 개방되어, 집에서도 연구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이 수풀처럼 많소. 또 서방 왕생의 이익을 얻는 사람도 흔해졌소. 어찌 꼭 부모를 떠나 출가하려고 고집하오? 출가는 절대 찬성하지 않소. 요즘 수행은 집안에 있는 사람이 훨씬 유리하오. 왜냐하면 일체 모든 게 걸림이 없기 때문이오. 출가인의 장애가 재가인보다 훨씬 많다는 걸 아시오. 그래서 진실로 보리도심을 발하여 출가한 자가 아니면, 모두 못된 하류로 전락하여 불법에 보탬이 안 되고, 부처님께 흠집만 내고 만다오.

만약 세간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굳이 꼭 별도의 화로와 부엌을 지어야 할 필요는 없소. 단지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번뇌 업습을 다스려,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이 제거하면 되오. 비록 몸이 속세에 있더라도, 미혹을 끊고 진여의 도를 증득하여 생사윤회를 벗어나 성불의 길로 드는 데는, 조금도 장애가 없소. 서역의 유마(維摩) 거사나 중국의 부() 대사(大士)·() 장자·() 거사 등이 그 훌륭한 실례가 될 것이오. 설사 힘이 좀 못 미치더라도, 또 부처님의 자비 가피력에 의지하여 서방 정토에 왕생하는 법문이 있으니, 믿을 만하지 않소? 어찌하여 꼭 모든 사람이 세속을 버리고 출가해야 바야흐로 불제자가 될 수 있단 말이오?

 

[() 대사(大士): 성은 부씨이고, 이름은 흡(), ()는 현풍(玄風). 남제(南齊) 건무(建武: 明帝 연호) 4(497)에 태어나, ()나라 선제(宣帝) 태건(太建) 원년(569) 입적함. 출신 지명을 따 동양(東陽) 대사라고도 부르며, 선혜(善慧) 대사로 자칭했는데, 대사(大士)는 보살의 의역(意譯). 16세에 류() 씨를 아내로 맞아 보건(普建보성(普成)의 두 아들을 둠. 24세에 인도 승려 숭두타(嵩頭陀)를 만나 전생의 인연을 알고, 송산(松山)의 쌍둥이 도수(禱樹) 사이에 암자를 지어 7년간 고행하다가, 석가·금속(金粟: 유마 거사의 前身佛이라고 전함정광(흔히 定光으로 쓰는데, 錠光이 올바른 표기라고 함: 燃燈佛) 세 부처를 친견함. 신통 기적이 있어 양() 무제(武帝)가 공경 존중했음. 윤장(輪藏)을 창시하여 대장경에 포함됨. 부대사의 심법 요체는 천태종의 일심삼관상과 완전히 같음. 전기와 어록 4권이 전해 옴.]

 

[() 거사(居士): 이름은 온()이고, ()는 도현(道玄). 상양(襄陽: 원음이 인데, 우리는 으로 바꿔 읽음) 출신으로, 부친이 형양(衡陽) 태수를 지내 성 남쪽에 거주함. 당나라 정원(貞元) 년간에 석두(石頭) 화상을 알현하고 온갖 법[萬法)과 짝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자, 석두 화상이 황급히 그의 입을 손으로 틀어 막는 순간, 활연히 깨달았다고 함. 나중에 마조(馬祖)를 알현하고 다시 온갖 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자, 마조가 그대가 한 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다 들이키고 나면, 내가 그대에게 말해 주겠다.”고 답하여, 방거사가 그 말을 듣고 그윽한 뜻을 단박 깨달았다고 함. 전 가족이 모두 득도(得道)했는데, 딸 영조(靈照)의 근기와 예봉이 특히 민첩함. 입적할 때 자사 우적(于頔)이 찾아가 보았는데, 방 거사가 우적의 무릎을 베고 단지 모든 있는 것을 텅 비우고 싶을 따름이니, 어떠한 없는 것도 행여 채우려 말게나[但願空諸所有, 愼勿實諸所無.].”라고 말했다고 함. 나중에 우적이 그의 어록 1권을 편집함.]

 

홍진에 거처하여 도를 닦고 세속에서 진리를 추구함은, 통달한 유명 인사나 어리석은 범부 중생 할 것 없이 누구나 할 수 있소. 힘써 수행하면서 집안에서 봉착하는 온갖 번뇌와 속박일랑, 선지식이 내리치는 몽둥이()나 고함()으로 여기시오. 오랫동안 이러한 세속을 싫어하고 떠나고 싶은 마음을 내면서, 흔연히 극락왕생하고 싶은 뜻을 즐거이 키워 간다면, 병으로 양약을 삼고 막힘으로 통달을 이루는 게 될 것이오. 위로 부모님의 기쁨을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 처자식의 의탁을 끊지 않으면서, 주위의 모든 사람한테 청정한 믿음을 북돋워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어디 있겠소?

인간 세상에서 뭔가 하는 일이 없을 수 없소. 다만 자신의 분수와 도리를 다할 뿐, 분수 밖의 요행이나 망상은 결코 품어서는 안 되오. 사농공상이 각자 자신의 직업에 힘쓰며, 자신과 집안을 부양하는 근본으로 삼아야 하오. 그리고 분수껏 힘닿는 대로 부처님 명호를 염송하여, 서방 왕생을 결연히 발원해야 하오. 무릇 능력이 미치는 각종 선행일랑, 더러 밑천을 대고, 더러 좋은 제안을 하여 힘껏 도웁시다. 그럴 힘도 없거든 따라 기뻐하는 마음[隨喜心]만 내어도 공덕이 된다오. 그러한 선근 복덕을 심어 극락왕생의 보조 수행으로 삼으면, 마치 물결과 바람에 순응하여 돛을 올린 것처럼, 피안에 더욱 쉽게, 그리고 빨리 안착할 것이오.

만약 크게 통달한 대가라면, 참선과 정토 염불을 함께 닦아도 좋되, 반드시 정토를 위주로 해야 하오. 그리고 보통 사람 같으면, 반드시 심오한 경론(經論)을 두루 연구할 필요도 없소. 단지 어떠한 죄악도 짓지 아니하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하면서, 일심으로 염불하여 극락왕생을 구하면 그만이오.

이러한 사람은 집안의 직업을 전폐하지 않으면서도, 출세간의 법을 동시에 닦는 게 되오. 비록 지극히 평범하여 별 기특한 게 없는 듯하지만, 그 실질 이익은 정말 불가사의하오. 어리석은 듯 충직하게 일심으로 염불하면, 범부 중생도 부처님의 지혜와 미묘한 도에 그윽이 상통하여 하나로 합치한다오. 크게 통달했다는 대가가 하루 종일 분별하고 생각해서 식신(識身)을 조작하는 일에 비하면, 그 이익은 훨씬 크고 많소. 우직한 범부가 염불에 전심하면,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오.

크게 통달한 대가도 온 몸을 놓아버릴 수만 있다면, 물론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소. 그러나 오직 의미와 이치로 따지고 계산하면, 이익을 얻기는커녕 도리어 병만 얻게 되오. 도를 얻지도 못했으면서 얻었다고 자칭하여 미쳐 날뛰는 무리들도 없지 않소.

참선 수행법은 요즘 사람들이 따라 배울 게 아니오. 어설프게 참선한다고 해 봤자, 단지 문자상의 지견(知見)이나 얻을 뿐, 자기 마음을 단박에 밝히고 본래 성품을 친히 볼 수는 결코 없소. 왜냐하면, 첫째는 꾸준히 이끌어 주고 결연히 깨우쳐 줄 선지식이 없고, 둘째는 배우는 사람들이 참선의 소이(所以: 도리)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오. 말은 참선이라고 하지만, 실지로는 오해에 불과하오.

수계(受戒)는 남자가 출가해 스님이 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법당 안에 들어가 정식으로 의식을 익혀야 하오. 그래야 총림(叢林)의 법도를 알고 승려의 위의(威儀)를 갖추어, 사방에 다니며 행각(行脚)해도 전혀 장애가 없게 되오. 그렇지 않으면 시방 총림에 머무를 수가 없소.

만약 재가의 여자 신도로 가산이 풍족하고 자신의 생활에 자주성이 있는 경우에는, 절에 나가 계율을 받는 것도 괜찮을 것이오. 그러나 자신과 집안이 곤궁한 경우에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소. 단지 부처님 앞에 지성으로 간절하게 과거의 죄업을 참회하길 일주일간 지속한 다음, 스스로 서원하고 계율을 받으면 되오. 칠 일째 되는 날 부처님 앞에서 스스로 다음과 같이 서원하면 되오.

제자 저 아무개는 오계를 전부 받아 온전히 지키는 우바이(優婆夷: 淸信女·淨信女)가 되길 서원합니다. 이 목숨 다하도록 살생하지 않겠으며, 이 목숨 다하도록 도둑질하지 않겠으며, 이 목숨 다하도록 사음하지 않겠으며, 이 목숨 다하도록 거짓말하지 않겠으며, 이 목숨 다하도록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위와 같이 세 번 반복하여 서원하면, 곧 부처님한테 계율을 받는 게 되오. 단지 자신의 마음과 뜻으로 받아 지니기만 하면, 그 공덕은 스님을 통해 의식을 갖추어 수계하는 것과 전혀 우열의 차이가 없소. 스스로 서원하여 계율을 받는 게 불법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되오. 이는 범망경(梵網經)에 나오는 여래의 거룩한 가르침이기 때문이오.

삼귀의와 오계는 불법에 입문하는 첫 관문이오. 다른 법문을 수행하는 데도 모두 여기에 의지해 시작해야 하거늘, 하물며 금생에 단박 생사 해탈할 수 있는, 지극히 간단하고 쉬우면서, 지극히 원만하고 빠른 불가사의한 정토 법문이야 말할 게 있겠소? 삼업(三業)을 반성하지 않고 오계를 지니지 않으면, 인간 몸도 다시 받을 수가 없거늘, 하물며 극락정토 연화에 상호(相好) 원만한 광명의 몸으로 생겨날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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