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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든 사람 헤어진들, 공(功)든 탑이 무너지랴? - 선행을 쌓는 방도(積善之方)

운명을 뛰어 넘는 길. 료범사훈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2. 12. 2. 11:53

본문

주역(周易)에 “선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남아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말씀이 있다. 옛날에 공자(孔子)의 외할아버지인 안씨(顔氏)가, 장차 자기 딸을 숙량흘(叔梁紇: 孔子의 父親)에게 아내로 주려고 할 때, 먼저 그 집안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숙량흘의 조상(祖宗)들이 대대로 오래도록 선행을 쌓아 그 복덕이 몹시 큰 것을 보고, 그 자손들이 반드시 흥성할 줄 미리 알았다. 그리고 공자(孔子)는 순(舜) 임금의 큰 효도(大孝)를 이렇게 칭찬하셨다.
“종묘(宗廟)에서 순 임금을 제사 지내고, 자손들이 그를 대대로 보전하네.(宗廟饗之, 子孫保之.)”
이는 지극히 올바른 평론이다. 이런 것들을 이제 지나간 일들로 고증해 보자.


1. 선행 공덕의 대표 사례

1. 소사(少師: 관직명)인 양영(楊榮)-주1)은 복건성(福建省) 건녕(建寧) 사람인데, 그 집안은 대대로 뱃사공으로 강에서 길손들을 건네주는 일을 해 왔다. 한번은 비가 오래 와서 강물이 불어 넘치고, 마침내 제방이 무너져 민가가 온통 물에 잠겼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이 물살을 따라 하류로 떠내려 오자, 다른 배의 주인들은 모두 떠내려 오는 재물만 건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오직 양소사의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만은 사람을 구하는 데 힘쓰고, 재물은 하나도 건지지 않았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그들을 비웃었다. 그러나 소사의 아버지가 태어날 때 이르자 집안이 점점 부유해졌다.
어떤 신선이 도인(道人)으로 변화(變化)하여, 그 아버지에게 이렇게 일러주었다.
“그대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음덕(陰德)을 많이 쌓아, 자손들이 틀림없이 부귀영달(榮達)을 누릴 것이니, 어디에 묘지를 쓰는 것이 좋겠소.”
마침내 그가 손가락으로 가르쳐 준 곳에 묘 자리를 썼는데, 바로 지금의 백토분(白免墳)이다. 그 뒤 아버지가 소사를 낳았는데, 스무 살의 약관(弱冠)에 과거에 급제했다. 그리고 그 지위가 삼공(三公)에까지 이르러, 그 증조부와 조부, 아버지의 삼대(三代)가 소사의 관직에 맞추어 벼슬을 추증(追贈) 받았다. 그 자손들이 몹시 부귀하고 흥성하여, 지금도 유명한 자가 많다.

2. 절강성(浙江省)의 은현(鄞縣) 사람인 양자징(楊自懲)은 처음에 현(縣)의 아전이 되었는데, 마음가짐이 어질고 후하며 법을 공평하게 지켰다. 마침 당시의 현감이 매우 엄숙했는데, 우연히 한 죄수를 매질하여 피가 땅바닥을 흥건하게 적시는데도, 현감은 분노가 식지 않았다. 이에 양자징이 무릎을 꿇고 간언(諫言)하여, 현감의 마음을 너그럽게 풀어 주려고 하였다. 그러자 현감이 대뜸 반문했다.
“이 자가 법을 어기고 이치를 어그러뜨렸는데, 내가 어떻게 화가 나지 않겠느냐?”
이에 양자징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윗사람이 올바른 도를 잃어 백성들이 흩어진 지 오래입니다. 따라서 만일 범죄 사실이 드러나면,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기뻐하지 말아야 합니다.(上失其道, 民散久矣. 如得其情, 哀矜勿喜.) -주2) 기뻐하는 것도 불가한데, 하물며 노할 수 있겠습니까?”
현감이 그의 정성과 설득에 감동하여 노함을 그쳤다.
양자징은 집안이 굉장히 가난했지만, 남이 선물로 보내는 것조차 하나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죄수가 양식이 궁핍한 것을 보면, 항상 여러 가지 방도를 다해 그들을 구제해 주었다. 하루는 새로 온 죄수 몇 사람이 밥 먹기를 기다리는데, 마침 양자징 집안에도 쌀이 떨어졌다. 죄인들을 주자니 집안에서 먹을 것이 없고, 자기 집안 식구를 돌보자니 죄수들이 몹시 불쌍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아내와 상의했다. 아내가 물었다.
“그 죄수들은 어디서 왔습니까?”
양자징이 대답하였다.
“항주(杭州)에서 왔소. 먼 길에 못 먹고 배고픔을 오래 참은 듯, 얼굴에 풀빛이 돌 정도로 무척 초췌하오.”
그래서 결국 자기네 쌀을 모두 꺼내 죽을 끓여서 죄수들에게 주었다. 그 뒤로 두 아들을 낳아, 장남은 수진(守陳)이라 하고, 차남은 수지(守址)라고 이름 지었다. 그런데 두 아들이 각기 명나라의 남경(南京)과 북경(北京)에서 이부시랑(吏部侍郞) 자리를 각각 하나씩 맡았다. 그 장손(長孫)은 형부시랑(刑部侍郞)이 되었고, 차손(次孫)은 사천성(四川省)의 염헌(廉憲)이 되었는데, 모두 다 명신(名臣)이었다. 지금의 초정(楚亭)과 덕정(德政)도 또한 그 후예들이다.
3. 옛날 명(明)나라 영종(英宗: 연호는 正統, 1435-1449, 1457- 1464 재위) 때 등무칠(鄧茂七)이라는 사람이 복건(福建)에서 난을 일으켰는데, 일반 선비나 백성들 가운데 도적 떼에 가담하는 무리가 몹시 많았다. 조정에서 은현(鄞縣)의 도헌(都憲)인 장해(張楷)를 기용하여, 남쪽으로 보내 도적들을 토벌하여 사로잡도록 꾀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포정사(布政司) 소속의 사도사(謝都事)에게 동쪽 지방에 있는 도적 떼들을 수색해서 모두 붙잡도록 명령했다.
사도사는 도적 무리 중에서 도적명부(黨籍)를 구한 뒤, 도적명부에는 정식으로 올라가지 않고 부화뇌동하여 일시 따른 사람들에게 은밀히 흰 수건과 작은 깃발(旗)을 주었다. 병사들이 오는 날을 기약해서, 문 앞에 깃발을 꽂도록 은밀히 분부한 것이다. 그리고 군대 병력에게는 이들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엄한 명령을 내려, 마침내 만여 명을 온전히 살렸다. 후에 사도사의 아들 천(遷)은 장원에 합격해서 재상이 되었고, 그 손자 비(丕)는 다시 탐화(探花)에 합격했다.

4. 복건성(福建省) 보전현(莆田縣)의 림씨(林氏)는 조상대(先代)에 늙은 어머니가 선행을 아주 좋아했다. 항상 가루로 둥근 음식물(粉團)-주3)을 만들어서 사람들한테 대접했는데, 누가 와서 달라고 하면 아낌없이 바로 주며 꺼리는 기색이 없었다. 한 신선이 도인(道人)으로 변화(化)하여 매일 예닐곱 개씩을 요구했는데, 그 어머니가 매일같이 싫증내지 않고 달라는 대로 주었다. 3년이 다하도록 하루같이 이렇게 주므로, 이에 신선이 그 정성에 감동했다. 그래서 도인이 그 노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그대의 음식(粉團) 공양을 3년간 받아먹었소. 내가 무엇으로 보답하면 좋겠소? 부(府) 뒤에 한 뙈기 땅덩어리가 있는데, 거기에 묘를 쓰면 자손들이 깨 한 됫박만큼이나 관직을 얻을 것이오.”
그래서 도인이 점지해 준 대로 그 아들이 묘를 썼는데, 첫 대(代)에 아홉 사람이나 등제(登第)했다. 대(代)를 이어 머리에 비녀를 꽂고 갓끈을 매는 관원이 몹시 많이 나왔다. 그래서 복건 지방에는 “림씨 가운데 과거에 합격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풍문이 나돌 정도였다.

5. 붕탁암(馮琢菴)이라는 태사(太史)의 아버지가 현립학교(邑庠)의 학생일 적이었다. 한번은 한겨울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가던 길에, 어떤 사람이 눈(雪) 속에 거꾸러져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급히 그 사람을 흔들어 보았으나, 몸은 벌써 반쯤 얼어붙어 거의 시체가 된 상태였다. 그래서 곧 자기의 속옷과 가죽옷을 벗어서 그에게 입혀 주고, 그를 업어 집에 데려온 뒤 응급조치로 소생시켰다. 꿈에 한 신(神)이 나타나 그에게 이렇게 일러주었다.
“그대가 한 사람 목숨을 지성스러운 마음으로 구했기 때문에, 내가 한기(韓琦)-주4) 를 그대의 자식으로 보내주겠다.”
이에 탁암(琢菴)을 낳자, 드디어 이름을 기(琦)라고 지었다.

6. 절강성(浙江省)의 태주(台州)에 성이 응씨(應氏)인 상서(尙書)가 있었는데, 젊었을 때 산 속에서 학업을 닦았다. 밤에 귀신들이 꽥꽥 소리를 지르며 모여들어 이따금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이 사람(應公)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루 저녁에는 귀신이 기뻐하며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떤 여자의 남편이 오랫동안 객지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그 시부모가 개가(改嫁)시킬 때 받을 폐물을 탐내어, 그 여자를 다른 사람한테 시집보내려고 자꾸 종용한다. 그래서 그 아낙이 내일 밤 마땅히 여기 와서 목매 죽을 운수니, 드디어 내가 그 여자의 몸을 대신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응공이 그 말을 듣고, 몰래 자기 밭을 팔아서 은(銀) 네 냥을 마련한 다음, 거짓으로 남편의 서신을 만들어 은 네 냥과 함께 그 집으로 부쳤다. 그러자 그 부모는 그 서신을 받아보고는, 필체가 비슷하지 않다며 의심했다. 그러나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글씨는 남한테 부탁하거나 남이 거짓으로 흉내낼(假託) 수 있지만, 네 냥의 은까지 설마 다른 사람이 거짓으로 주겠는가?”
그래서 자기 아들이 별 탈 없는 줄로 여기고, 마침내 며느리한테 억지로 시집가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과연 그 아들이 나중에 돌아와서, 부부가 신혼 때 같은 금슬을 되찾았다.
그 뒤 응공이 또 그 귀신의 말을 들었다.
“내가 그때 마땅히 그 여자 몸을 대신할 판인데, 정말 이 젊은이(秀才)가 내 일을 다 망쳐버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귀신이 반문하였다.
“그렇다면 너는 왜 이 젊은이에게 해코지하지 않느냐?”
이에 그 귀신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의 마음이 하도 착해서 (옥황)상제께서 음덕상서(陰德尙書)에 임명하셨으니, 내가 어떻게 그에게 화풀이할 수 있단 말이냐?”
응공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더욱 스스로 노력하고 분발하여, 선행을 날로 닦고 공덕을 더욱 두텁게 쌓아갔다. 흉년을 당하면 자기 곡식을 풀어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친척에게 위급한 일이 생기면 바로 어떻게 변통해서 생활을 유지시켜 주었다. 또 자신이 갑작스런 사고나 역경(逆境)을 당하면, 스스로 반성하여 자신을 책망하고 기쁜 마음으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의 자손 가운데 과거에 합격한 자가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7. 강소성(江蘇省) 상숙현(常熟縣)에 호가 봉죽(鳳竹)인 서식(徐拭)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아버지는 본디 부자였는데, 어느 해에 흉년이 들자,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으로 소작농의 소작료(조세)를 덜어주면서, 모두 그렇게 하자고 제창(提唱)했다. 그리고 또 자기 곡식을 풀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구휼(救恤)해 주었다. 그런데 밤에 귀신이 문 앞에서 이렇게 외쳐대는 것을 들었다.
“천 번 만 번 틀림없이 절대 거짓말이 아닌데, 서씨 집안의 수재(秀才)는 거인랑(擧人郞)에까지 이를 것이다.”
그렇게 계속 부르짖기를 며칠 밤 동안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해에 과연 봉죽은 향시(鄕試)에 합격했다.
이로 말미암아 그 아버지는 더욱 부지런히 덕을 쌓으며,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부서진 다리를 수리하고 길을 포장하며,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대중을 대접하며, 무릇 사소한 일이라도 남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마음을 다하지 않는 바가 없었다. 나중에 또 귀신이 문 앞에서 이렇게 노래 부르는 것을 들었다.
“천 번 만 번 틀림없이 절대 거짓말이 아닌데, 서씨 집안의 거인(擧人)은 곧바로 도당(都堂: 都察院의 고위 관직)에 이를 것이다.”
그런데 봉죽의 관직은 마침내 양절(兩浙: 오늘날 절강성 전체)의 순무(巡撫: 외성의 최고 관직)에까지 이르렀다.

8. 가흥부(嘉興府: 절강성의 한 府)의 도강희(屠康僖) 공(公)이 처음에 형부주사(刑部主事)가 되었다. 감옥에서 숙직하면서 여러 죄수들의 정상(情狀)을 자상하게 물어보아, 죄가 없는 자가 몇 명 들어 있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러나 도공(屠公)은 그것을 자기의 공(功)으로 만들지 않고, 은밀히 그 일을 글로 적어 당관(堂官: 직속관할 최고관직)인 형부상서(刑部尙書)에게 아뢰었다. 그 뒤 조정에서 심리(審理: 재판)할 때, 당관이 그 말(도강희가 알린 내용)을 지적하여 여러 죄수들을 신문(訊問)하였다. 그 결과 심복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이에 원통하고 억울한 10여 명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당시 황제 주위에 있던 관료들이 모두 상서(尙書)의 현명함을 일시에 칭송하였다.
그러자 도공(屠公)이 다시 아뢰었다.
“황제의 계단 아래서 직접 재판하는데도 이처럼 억울한 사람이 많은데, 하물며 드넓은 사방 천하의 억조창생(億兆蒼生) 중에 어찌 억울한 자가 없겠습니까? 마땅히 5년마다 형벌을 감해 주는 특사(減刑官)를 파견해서, 진실을 되살피고 억울함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에 상서가 그러한 내용으로 주청(奏請)을 올리자, 황제가 그 의론(議論)을 윤허(允許)하였다. 그래서 조정에서 감형특사(減刑官)를 파견하였는데, 도공(屠公)도 한 사람으로 끼었다. 꿈에 한 신선이 나타나서 이렇게 알려주었다.
“그대의 운명에는 본래 자식이 없는데, 지금 감형의 논의를 제안하여 억울한 죄수들을 풀어주는 일은 하늘의 마음(天心)에 깊이 부합하므로, 상제(上帝)께서 그대에게 세 명의 자식을 내려주시기로 하였다. 그들은 모두 다 자줏빛 옷을 입고 금빛 허리띠를 찰 것이다.”
이날 밤 부인이 임신을 하였다. 후에 응훈(應塤), 응곤(應坤), 응준(應埈)을 차례로 낳았는데, 과연 모두 저명한 관리가 되었다.

9. 가흥(嘉興)의 포빙(包憑)은 자(字)가 신지(信之)다. 그 아버지는 지양(池陽)의 태수(太守)로, 일곱 아들을 낳았는데, 빙이 가장 어렸다. 그의 아버지는 평호(平湖)의 원씨(袁氏)에게 처가살이를 했는데, 우리 아버지(袁了凡의 부친)와 교분이 몹시 두터웠다. 박학하고 재주가 뛰어났으나, 누차 과거에 응시하여 낙방하고, 불교와 노장(老莊: 老子와 莊子, 즉 道家)의 두 학문에 마음을 두었다. 하루는 동쪽으로 묘호(泖湖)를 유람하는데, 우연히 한 마을의 사찰에 이르러 관음상(觀音像)이 비바람에 갈라지고 허물어진 채 서 있는 걸 보았다. 이에 그는 바로 주머니를 풀어 황금(黃金) 열 냥을 꺼내 주지승(住持僧)에게 주면서, 관음상 모신 건물을 수선하도록 당부하였다.
그러나 주지승은 정중하게 사양하였다.
“수선해야 할 일이 너무 커서, 당신이 준 돈으로는 턱없이 모자라기에 일을 완공할 수 없습니다.”
빙(憑)이 다시 송포(松布) 네 필(四匹)과 자기가 가지고 다니던 상자(봇짐)에서 옷 일곱 벌을 꺼내 스님에게 함께 다 주었다. 속옷은 이제 막 새로 만든 것인데, 그의 하인이 그것은 주지 말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빙이 말하였다.
“단지 관음상에 탈만 없다면, 내가 비록 벌거벗는다고 할지라도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이 말을 들은 주지스님이 몹시 감동하여 눈물을 떨어뜨리면서 말하였다.
“금은과 베․의복을 버리는 것은 오히려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단지 이 한 점 마음(一點心)을 어떻게 쉽게 얻을 수 있겠소?”
그 뒤 공사가 원만히 이루어져서, 빙이 노부(老父)를 모시고 함께 이 절에 와서 묵게 되었는데, 포공(包公)의 꿈속에 가람(伽藍) 수호신이 나타나서 사례하였다.
“그대의 자손들은 마땅히 대대로 복록을 누릴 것이오.”
나중에 과연 아들 변(汴)과 손자 청방(檉芳)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이름난 관리가 되었다.

10. 절강성 가선현(嘉善縣)의 지립(支立)은 그 아버지가 형방(刑房) 아전이었다. 그런데 어떤 죄수가 무고(無辜)한데도 억울하게 몹시 중한 죄에 걸려든 것을 알고, 진심으로 그를 불쌍히 여겨 구제하고자 하였다. 그러자 죄수가 이를 알고 그 아내에게 이렇게 당부하였다.
“지공(支公)이 나를 살려주려는 호의를 가지고 계신데, 내게 보답할 것이 하나도 없어 부끄럽소. 내일 그분을 마을로 모셔다가 당신이 몸으로써 섬기시오. 그분이 만약 당신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살아날 수 있을 것이오.”
그 아내는 울면서 남편의 명을 받들었다. 지공이 마을에 이르자, 그 아내가 스스로 나와 술을 권하면서 남편의 뜻을 모두 알렸다. 그 말을 들은 지공은 그 청은 듣지 않고, 마침내 자신의 힘을 다하여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죄수가 출옥(出獄)한 뒤, 아내와 함께 관문(官門)에 올라와 머리를 조아려(叩頭) 감사하면서, 이렇게 간청하였다.
“공(公)이 이처럼 후덕하심은 말세(末世)에 매우 보기 드문 일입니다. 그런데 공(公)은 아직도 슬하(자식)가 없으신데, 저희에게 어린 딸이 하나 있으니, 공에게 키질하고 비질하는 첩(妾)으로 바치고자 청합니다. 이 정도는 떳떳하게 통할 수 있는 예(禮)라고 여깁니다.”
그러자 지공이 예를 갖추어서 그 딸을 받아들였고, 그 뒤 지립(支立)을 낳았다. 지립은 약관의 나이에 과거에 장원으로 합격하였고, 관직이 한림공목(翰林孔目)에 이르렀다. 립(立)은 고(高)를 낳았고, 고는 록(祿)을 낳았는데, 모두 학박(學博: 州學이나 縣學의 敎官)으로 공천을 받았다. 록은 대륜(大綸)을 낳았는데, 역시 과거에 합격했다.

2. 선행의 종류 구분

무릇 이 열 가지 고사(故事)에서 주인공들이 각자 행한 일은 비록 서로 같지 않지만, 모두 한결같이 선(善)에 귀결할 따름이다. 그러나 같은 선이라도, 만약 다시 이것을 정밀하게 부연하자면, 여러 가지로 나눠진다. 선에는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으며, 단정한 선도 있고 굽은 선도 있다. 남 몰래 베푼 음덕(陰德)도 있고 드러낸 양덕(陽德)도 있으며, 옳은 선도 있고 그른 선도 있다. 한 쪽으로 치우친 선도 있고 똑바른 선도 있으며, 반쪽 선도 있고 완전한 선도 있으며, 큰 선도 있고 작은 선도 있으며, 어려운 선도 있고 쉬운 선도 있다.
그러니 이러한 차이를 마땅히 깊이 살피고 분별해야 한다. 선을 행하면서 이치를 궁구(窮究)하지 않으면, 스스로 선을 행하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도리어 죄를 짓는 줄은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헛되이 고심(苦心)하면서 백해무익한 결과만 가져오는 것이다.

첫째, 무엇을 진짜 선과 가짜 선(眞假)이라고 일컫는가?
옛날에 여러 명의 유생(儒生)이 중봉 화상(中峰和尙)을 친견(親見)하고 여쭈었다.
“불가(佛家)에서는 선악의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논할 때,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라다니는 것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사람은 선하면서도 그 자손이 흥성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악한데도 도리어 그 가문이 번창합니다. 그러니 부처님의 말씀은 돌아볼 가치도 없는 틀린 말입니다.”
그러자 중봉 스님이 대답하였다.
“무릇 세속의 인정(凡情)이 완전히 맑게 닦이지 않고 올바른 눈(正眼)이 아직 열리지 않았기에, 선을 악으로 잘못 여기고 악을 가리켜 선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이따금 있소. 그러면서 자기의 시비(是非)가 뒤바뀐(顚倒) 게 애석한 줄은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하늘의 보답에 차질이 있다고 원망하는 것이오.”
그러자 유생들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선악이 어찌하여 정반대로 뒤바뀌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까?”
이에 중봉 스님이 유생들에게 각자 생각하는 선악의 상태를 차례로 한 번씩 말해 보라고 일렀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에게 욕설하거나 남을 때리는 것은 악이고, 사람을 공경하거나 사람에게 예를 갖추는 것은 선입니다.”
그러자 중봉 스님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하였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오.”
또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재물을 탐하고 함부로 취하는 것은 악이고, 청렴결백하게 본분(계율)을 지키는 것은 선입니다.”
그러자 중봉 스님은 또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잘라 말했다.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각각 자기의 관점에서 선악을 구분해 말했지만, 중봉 스님은 한결같이 모두 ‘그렇지 않소.’ 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유생들이 가르침을 청하자, 중봉 스님은 이렇게 일러주었다.
“남에게 이로운 것이 선이고, 자신에게 이로운 것은 악이오. 남에게 이로우면 남을 때리고 남을 욕하는 것도 모두 선이고, 자기에게 이로우면 남을 공경하고 예의를 갖추는 것도 모두 악이오.”
이러한 까닭에 사람이 선을 행할 때,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공(公)이고, 공(公)이면 참(眞)이며, 자기를 위하는 것은 사(私)이고, 사(私)이면 가짜(假)다. 또 마음에다 뿌리를 두는 것이 참이고, 겉으로 형식과 모양만 내는 것은 가짜다. 그리고 무위(無爲)로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이 참이고, 유위(有爲)로 억지스럽게 하는 것은 가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스스로 잘 살펴야 한다.

둘째, 어떤 것을 단정한 선과 굽은 선(端曲)이라고 하는가?
지금 사람들은 근신(謹愼)하고 공손한 선비를 보면, 모두 한결같이 그가 착하다고 칭송하며 그를 본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성인은 차라리 거칠게 날뛰고(狂暴) 다듬어지지 않은 질박(質朴)한 자를 선택할지언정, 형식상 교양을 갖추어 근신하고 공경하는 선비들에 대해서는, 설령 한 동네 사람들이 모두 좋아할지라도, 반드시 덕의 적(德之賊)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세속 사람들의 생각이고, 분명히 성인의 선악과는 상반(相反)한다.
이 한 가지 실마리만 미루어 짐작해도, 세속의 판단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것은 그릇되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천지신명이 선에 복을 주고 음란함에 화를 내리는 일은, 모두 성인과 똑같은 시비선악의 판단 기준에 따르며, 세속의 취사선택과는 결코 함께 하지 않는다.
따라서 적선(積善)을 하려는 자는, 결코 세속의 이목(耳目)을 좇아서는 안 되고, 오직 마음의 근원 은밀한 곳으로부터 묵묵히 행해야 한다. 순수하게 세상을 구제하려는 마음이면 곧 단정한(端) 선이고, 만약 진실로 터럭 끝만큼이라도 세상에 아첨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는 굽은(曲) 것이다. 또 순수하게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면 곧 단정한(端) 선이고, 터럭 끝만큼이라도 세상에 분노하는 마음이 있으면 굽은(曲) 것이다. 그리고 순수하게 남을 공경하는 마음이면 곧 단정한(端) 선이고, 터럭 끝만큼이라도 세상을 가지고 노는 (장난치고 희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굽은(曲) 것이다. 이러한 것들도 모두 마땅히 섬세하게 잘 분별해야만 한다.

셋째, 무엇을 은밀한 선과 드러난 선(陰陽)이라고 일컫는가?
무릇 선을 행하여서 남들이 알아주는 것은 드러난 선(陽善: 陽德)이고, 선을 행해도 남들이 모르는 것은 은밀한 선(陰德: 陰善)이다. 은밀한 선행(陰德)은 하늘이 보답해 주고, 드러난 선행(陽善)은 세상의 명예를 누린다. 이름(名: 명예)도 또한 일종의 복(福)이다.
그러나 이름(名)이라는 것은 조물주(造物: 하느님)도 꺼려한다. 세상에서 성대한 명예를 누리면서도 그 실질(實)이 이름(名)에 부합하지 못하는 자는, 해괴망측(駭怪罔測)한 재난이 아주 많이 생긴다. 사람이 허물이나 잘못도 없이 갑자기 악명(惡名)을 뒤집어쓰는 경우에는, 그 보상(補償)으로 자손들이 순식간에 번성하는 일도 가끔 있다. 이처럼 음양 사이의 이치는 지극히 미묘하다.

넷째, 무엇을 옳은 선과 그른 선(是非)이라고 말하는가?
춘추(春秋)시대 로(魯)나라의 법에는, 로나라 사람들이 만약에 다른 나라 제후(諸侯)에게 붙잡힌 자기 나라 사람(신하 또는 첩)을 속죄(贖罪)시켜 구해내면,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받도록 규정했다. 그런데 자공(子貢)이 남을 대신 속죄시켜 주고 돈을 안 받았다. 공자(孔子)가 이 소식을 듣고 못마땅하게 여기며 탄식했다.
“아! 사(賜: 子貢의 이름)가 실수했구나! 무릇 성인이 일을 행함에는, 그 일로 세상의 풍속과 습관을 바꿀 수가 있다. 그러기에 가르침의 도(道)가 백성들에게 펼쳐질 수 있으며, 단지 자기한테 맞는다고 행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로나라에는 부자가 적고 빈곤한 자가 많은데, 보상금을 받는 일이 청렴하지 못한 짓으로 여겨진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서로 속죄시켜 주기를 기대하겠느냐? 아마도 앞으로 다시는 남을 다른 나라 제후로부터 속죄시켜 주는 사람이 없을까 두렵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로(子路)가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줬는데, 그 사람이 소(牛)를 사례로 주자, 자로가 이를 기꺼이 받았다. 그래서 공자가 기뻐하며 자로를 칭찬하였다.
“지금부터 로나라에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일이 매우 많아지겠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자공이 보상금을 받지 않은 처사가 훌륭하고, 자로가 소를 받은 일은 하찮게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공자는 자로를 칭찬하고 자공을 폄하했다.
그래서 성현은 사람의 선행을 논할 때, 현재 행해지는 것만을 따지지 않고, 그 뒤에 그로부터 말미암아 생길 영향까지 고려한다. 또 잠시 한순간을 따지지 않고, 긴 안목을 가지고 살핀다. 다시 말해서, 성현은 자기 한 몸의 청렴(獨善其身)을 따지지 않고, 천하 중생과 함께 하는 대승의 경지(兼善天下)를 염두에 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현재 행하는 것이 비록 선할지라도, 그로 말미암는 부작용이 너끈히 사람을 해칠 만하면, 설령 선처럼 보인다고 해도, 실제로는 선이 아니다. 반면 현재 행하는 것이 비록 선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로 말미암을 파급 효과가 넉넉히 남들을 구제할 수 있다면, 설사 선이 아닌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선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한 가지에 대해서만 살펴본 것일 따름이다. 그밖에도 겉보기에는 의리가 아닌 것 같지만, 실질로는 의리가 되는 것(非義之義)이 있다. 이와 비슷한 원리로, 예절이 아닌 예절(非禮之禮), 신의가 아닌 신의(非信之信), 자비가 아닌 자비(非慈之慈)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모두 다 똑같은 결단과 선택을 행해야 한다.

다섯째, 무엇을 치우친 선과 올바른 선(偏正)이라고 하는가?
려문의공(呂文懿公)이 막 재상 자리를 사임하고 자기 고향으로 되돌아갔을 때,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마치 태산(泰山)과 북두성(北斗)처럼 우러렀다. 한번은 어떤 동네 사람이 술에 취해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는데, 려공(呂公)은 거기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인에게 “술에 취한 사람과는 더불어 따질 필요가 없다.”고 분부하며 문을 닫게 한 뒤, 아예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1년이 지나서 그 사람이 사형 죄를 저질러 감옥에 들어가자, 려공이 비로소 후회하며 탄식했다.
“만약 당시에 내가 그와 조금만 시비를 따지고, 그를 관가에 보내 따끔하게 혼내주도록 다스렸더라면, 작은 처벌로 큰 징계를 해 주었을 텐데……. 내가 그때는 후덕함만 마음에 두어, 그의 죄악이 커갈 줄은 전혀 몰랐더니, 지금 이처럼 사형을 당할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구나!”
이것이 바로 착한 마음(동기)으로 악한 일(결과)을 행한 것이다.
또 악한 마음으로 선한 일을 행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몹시 부유한데, 흉년이 들자 궁핍한 주민들이 대낮에 저자거리에서 곡식을 강도질했다. 이에 부자가 현(縣)에 고발했는데, 현감(縣監)이 전혀 다스리지 못해, 궁핍한 사람들이 더욱 방자해졌다. 마침내 그 부자가 스스로 자력(自力)을 동원해서 그들을 붙잡아 혼내주었고, 이에 대중들이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물론 착한 일이 올바른 것이고, 악한 일이 편협한 것이라는 사실은 모두 다 안다. 그러나 선한 마음(동기)으로 악한 행위(결과)를 한 경우는, 올바른 가운데 치우침이 있는 것(正中偏)이다. 또, 악한 마음으로 선한 일을 한 경우에는, 편협함 가운데 올바름(偏中正)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모름지기 이것까지 잘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여섯째, 무엇을 반 쪼가리 선과 완전한 선(半滿)이라고 하는가?
주역(周易)에는, “착함이 쌓이지 않으면 명예를 이루기에 모자라고, 악도 (봇물이 터질 만큼) 쌓이지 않으면 몸을 멸망시킬 수 없다.(善不積, 不足以成名; 惡不積, 不足以滅身.)”는 말씀이 적혀 있다. 또 상서(尙書)에는, “상(商: 殷)나라의 죄가 가득 넘쳐서, 마치 그릇에 물건을 가득 채운 것 같았다.(商罪貫盈, 如貯物於器.)”는 내용이 전해진다. 부지런히 쌓으면 차고, 게을러 쌓지 않으면 차지 않는다는 것이 한 해설이다.
옛날에 어떤 여자가 절에 들어가서 보시하고 싶었는데, 보시할 재물이 없고 단지 두 푼밖에 없었다. 그것을 탈탈 털어서 다 주자, 주지스님이 친히 그를 위해 참회기도를 해 주었다. 나중에 이 여자가 왕비인지 후궁으로 궁궐에 들어가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자, 수천 냥의 금(金)을 마차에 싣고 그 절에 가서 희사(喜捨)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지스님이 단지 제자 스님을 시켜 불공 좀 드려주라고 분부하는 데 그쳤다. 이에 그 여인이 서운해 하며 물었다.
“내가 이전에 두 푼을 보시할 때는, 법사(法師)께서 친히 참회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천 금을 희사했는데도, 법사께서 직접 회향해 주지 않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이에 법사가 대답했다.
“예전에는 비록 재물이 아주 적었지만, 보시하는 마음은 몹시 진실하였습니다. 그래서 만약 이 노승(老僧)이 친히 참회해 주지 않는다면, 그 진심의 덕에 보답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록 재물은 몹시 많지만, 보시하는 마음은 옛날처럼 그렇게 간절하지 못하니, 제자를 시켜 대신 참회해 드려도 넉넉합니다.”
여기에서 천금으로 베푼 공덕은 절반짜리 선행이고, 두 푼을 가지고 쌓은 적선은 꽉 찬 선행이다.
또, 옛날에 종리(鍾離)라는 도인(道人)이 도가(道家)의 단법(丹法)을 려조(呂祖)한테 전해 주면서, 무쇠(鐵)에 손을 대면 황금으로 변하는 도술(道術)로 세상을 제도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자 려조가 물었다.
“끝내 쇠로 안 변하고 금으로 남아 있습니까?-주5)”
이에 종리가 대답했다.
“500년 뒤에는 본래 모습(쇠)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러자 려조는 그 도술을 거절했다.
“만약 그렇다면, 500년 뒤에 가짜 황금을 가지고 있을 사람을 해치는 셈이 아닙니까? 그런 도술이라면 나는 원하지 않습니다.”
이에 종리가 려조를 극구 칭찬했다.
“도가의 도를 완전히 닦아 신선이 되려면 3천 가지 공덕을 쌓아야 하는데, 너는 지금 이 말 한 마디로 3천 가지 공덕의 수행이 완전히 차버렸다.”
이것도 또 한 가지 해설이다.
또, 선을 행하면서 마음이 그 선에 집착하지 않으면, 곧 성취하는 바에 따라 모든 것이 원만해질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이 선에 집착하면, 비록 종신토록 힘써 부지런히 행할지라도, 끝내 절반짜리 선에 머물고 만다. 안으로는 자기를 보지 않고, 밖으로는 남을 보지 않으며, 가운데로는 나와 남 사이를 매개하는 보시하는 재물조차 보지 않아야 한다. 이것을 가리켜 세 바퀴(三輪)의 본체가 텅 비었다고 말하고, 또 바로 일심청정(一心淸淨)이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보시를 불교의 금강경에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부른다. 옮긴이)
이러한 즉, 한 말(一斗)의 좁쌀로도 무한한 복록의 씨를 뿌릴 수가 있고, 한 푼 가지고도 천겁(千劫)의 죄를 다 소멸시킬 수가 있다. 그러나 가령 보시하는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집착한다면, 비록 황금 수십만 냥이라도, 복이 꽉 차지 않는다. 이것이 공덕에 관한 또 하나의 해설이다.

일곱째, 무엇을 큰 선과 작은 선(大小)이라고 일컫는가?
옛날에 위중달(衛仲達)이라는 사람이 한림관(翰林館)의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잘못해서 염라대왕의 명부(冥府)까지 끌려갔다. 저승의 주무 담당관이 귀졸(鬼卒)한테 그 사람의 선악에 관한 두 기록을 모두 가져오도록 명했다. 두 가지 기록이 도착해 보니, 악에 관한 기록은 뜰에 가득 차는데, 선의 기록은 한 두루마리로 겨우 젓가락만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저울을 꺼내 두 기록의 무게를 달아보니, 뜨락을 가득 채우던 악의 기록이 오히려 가볍고, 젓가락 크기만한 것이 더 무거웠다. 이를 본 중달이 이렇게 물었다.
“소인 아무개는 나이가 아직 마흔도 채 안 됐는데, 제 죄악이 저렇게 많을 수 있습니까?”
이에 담당관이 대답했다.
“한 생각이 바르지 못하면 이것이 곧 죄악이니, 꼭 몸소 저지르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중달이 족자에 쓰여 있는 것은 무슨 일인지를 묻자, 담당관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조정에서 일찍이 큰 토목 공사를 일으켜 삼산(三山)에 돌다리(石橋)를 놓으려고 할 때, 그대가 상소하여 간언(諫言)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상소문 원고다.”
이에 중달이 말문을 열었다.
“저 아무개가 비록 상소하긴 했지만, 조정에서 따르지 않아 일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무게가 많이 나가는 공덕이 된단 말입니까?”
그러자 담당관이 이렇게 해설해 주었다.
“조정에서 비록 따르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당시 그대의 일념(一念)이 이미 만백성(의 이익)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만약 조정에서 그대의 말을 들었다면, 그 공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뜻이 천하 국가에 있다면, 그 선행이 비록 작은 것이더라도 공덕이 매우 크다. 반대로 오직 한두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비록 아무리 큰일이라도 그 공덕이 작게 된다.

여덟째, 무엇을 어려운 선과 쉬운 선(難易)이라고 일컫는가?
선유(先儒)들은 자기를 이김(克己)은 모름지기 이기기 어려운 것부터 이겨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자(孔子)께서도 인을 행함(爲仁)에 관해서 논하실 때, 또한 어려움을 먼저 하라(先難而後獲)고 말씀하셨다. -주6)
예컨대, 강서(江西)의 서옹(舒翁)은 2년 동안 근근이 얻은 속수(束修: 서당이나 학관의 수업료)의 미천한 봉급을 가지고, 관가에 바칠 은(銀)을 대신 배상해서 한 부부를 온전히 구해 주었다. 또 한단(邯鄲)의 장옹(張翁)은 10년 동안 쌓은 재물을 희사해서, 타인의 속죄(贖罪)용 은(罰銀)을 대신 완납하고, 그의 처자식(妻子)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이와 같은 경우들은, 모두 보통 사람들이 버리기 어려운 곳에서 자신의 재물을 과감히 내버린 선행이다.
그런가 하면, 진강(鎭江)의 근옹(靳翁)은, 비록 나이가 들고 자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린 처녀를 차마 첩으로 삼을 수가 없어서, 그를 이웃에게 되돌려 주었다. 이 같은 경우는 남들이 차마 하기 (참기) 어려운 데서, 자기의 욕망 감정을 절제하고 차마 행한 (잘 참은) 선행이다.
이러한 까닭에, 하늘이 그들에게 내린 복도 또한 아주 후하였다. 무릇 재력과 권세가 있는 사람들은 덕을 세우기가 아주 쉽다. 쉬운데도 행하지 않는 것은, 바로 자포자기(自暴自棄)다. 반면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은 복을 짓기가 낱낱이 매우 어렵다. 어려운데도 과감히 행하기 때문에, 이것이 더욱 고귀하게 돋보인다.


3. 선행의 주요 방법

인연에 따라 중생들을 제도하는 일은, 그 방법이 몹시 번잡하게 많다. 그러나 대강만 간추려서 말하자면, 대략 열 가지가 있다.
1. 남과 더불어서 선을 행하라.(與人爲善)
2. 사랑과 공경을 마음에 품어라.(愛敬存心)
3. 타인의 아름다움을 완성시켜라.(成人之美)
4. 남에게 선을 행하도록 권장해라.(勸人爲善)
5. 타인의 위급함을 구해주어라.(救人危急)
6. 대중을 위해 큰 이익을 일으켜 세워라.(興建大利)
7. 재물을 희사해서 복을 지어라.(捨財作福)
8. 정법을 보호하고 지켜라.(護持正法)
9. 웃어른을 공경하고 존중해라.(敬重尊長)
10. 사물과 생명을 사랑하고 아껴라.(愛惜物命)

첫째, 무엇을 일컬어서 남과 더불어서 함께 선을 행한다(與人爲善)고 하는가?
옛날에 순(舜) 임금이 뢰택(雷澤)에 있을 때, 고기 잡는 사람들이 모두 깊은 연못과 물풀이 잘 우거진 곳만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그래서 노약자들은 그런 좋은 자리에서 밀려나, 물살도 빠르고 수심도 낮은 급류에서 물고기를 낚는 것이었다. 이를 지켜 본 순 임금이 그들을 측은하게 여기고, 거기에 가서 그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았다. 그러면서 다투는 자들을 보면 그 잘못을 숨기고 이야기하지 않으며, 양보하는 자를 보면 곧 선행을 드러내 칭찬하여 모범으로 삼았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자, 물이 깊고 수초가 무성한 자리를 서로 양보했다. 무릇 순 임금처럼 명철한 성인이, 어찌 말 한 마디 내뱉어서 중생들을 훈계할 수가 없었겠는가? 그런데도 말로써 가르치지 않고 대신 몸소 솔선수범을 보였다.-주7) 이것이 바로 훌륭한 기술자의 쓴 마음(良工苦心)이다.
우리들은 말법(末法) 시대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자기 장점으로 남을 뒤덮으려 하지 말고, 자기의 선을 남에게 드러내어 과시하지 말며, 자기의 다재 다능을 뽐내 남을 곤궁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오직 자기의 재능과 지혜를 잘 거두어들여, 없는 듯 텅 비우고 감추어야 한다. 그리고 남의 잘못을 보면, 너그럽게 용서하여 그를 덮어주고 감싸주어야 한다. 그러면 한편으로는 그가 스스로 잘못을 고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스스로 되돌아보고 거리끼는 바를 깨달아, 감히 방종하지 못하게 된다.
남에게 본받을 만한 사소한 장점이나 기록할 만한 조그만 선이라도 있음을 발견하면, 곧장 홀연히 자기를 버리고 그를 따른다.(捨己從人) 아울러 그 선행을 아름답게 칭찬하고 널리 퍼뜨려서, 사람들이 본받도록 알려준다. 일상생활 속의 말 한 마디와 일 한 가지에서도, 결코 자기를 위해 염두를 일으키는 법이 없으며, 오로지 타인과 사물을 위해서 모범과 준칙을 세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대장부가 천하의 공평무사(公平無私)를 실현하는 법도(法度)다.

둘째, 무엇을 일컬어서 사랑과 존경을 마음에 품는다(愛敬存心)고 하는가?
군자와 소인은 그 겉모습과 자취가 항상 서로 뒤섞여 헷갈린다. 오직 한 점 마음(一點心) 두는 곳에 따라 선과 악이 현격하게 동떨어지니, 소인과 군자는 마치 흑백처럼 판연히 다르다. 그래서 흔히 군자가 일반 사람과 다른 근본 이유는, 그 마음가짐(存心) 때문이라고 말한다. 군자가 가지는 마음은 단지 남을 사랑하고, 남을 공경하는 마음이다.
무릇 사람에게는 친근(親近)과 소원(疏遠), 부귀와 빈천, 지혜와 어리석음, 현명(賢明)과 못남(不肖) 따위가 있어, 그 성품이 천차만별이다. 그렇지만 모두 다 내 동포이며, 모두 나와 한 몸(一體)이다. 누구인들 마땅히 경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뭇사람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 곧 성현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또 중생들의 뜻에 통하는 자는, 곧 성현의 뜻에 통하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성현의 뜻은 본래 이 세상과 이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마땅한 자리를 얻도록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사랑에 일치하고 공경에 부합해서 한 세상의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면, 이것이 곧 성현을 위해 세상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셋째, 무엇을 일컬어서 타인의 아름다움을 완성시킨다(成人之美)고 하는가?
옥이 돌 가운데 내팽개쳐져 서로 부딪치고 뒤섞여 있으면, 기와 조각이나 자갈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지만 그걸 잘 가려서 조탁(彫琢)하면, 천자나 제후의 보옥(寶玉)이 될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 무릇 타인이 무슨 착한 일을 하려고 노력할 때, 더러 그 사람의 뜻이 가상(嘉尙)하고 그 자질이 정진(精進)할 만한 경우에는, 모름지기 그를 유인(誘引)하거나 어깨를 꽉 껴서라도 그를 완성시켜 주어야 한다.
그 방법이야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더러는 그를 격려하고 뭔가 빌려(보태) 주며, 더러는 그를 유지하고 보호해 주며, 더러는 그 사람의 억울함을 깨끗이 씻어주고 남들의 비방을 다 풀어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하고자 하는 선을 다 완성할 수 있도록 힘쓴다.
무릇 인간들이란 자기와 종류가 다른 사람은 서로 싫어하고 미워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반 세간에는 착한 이가 적고, 착하지 못한 자가 많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속세에서 스스로 서기가 아주 어렵다. 또한 호걸들이 아무리 쟁쟁할지라도, 자기 말이나 행동을 열심히 닦지 않으면, 대부분 흠이나 허물을 지적당하기가 쉽다. 이러한 까닭에 좋은 일은 항상 쉽게 실패하고, 착한 사람들은 항상 비방을 당한다. 오직 어진 군자와 덕 있는 원로(元老)만이 잘못된 것을 올바로 잡고, 나약한 이들을 붙들어 도와줄 수 있는데, 그 공덕이 최고로 크다.

넷째, 무엇을 일컬어서 남에게 착한 일 하도록 권한다(勸人爲善)고 하는가?
태어나서 사람이 된 자라면, 누가 양심(良心)이 없겠는가? 세간의 길은 사람을 피곤하게 부리기에, 허우적거리고 빠지기가 아주 쉽다. 무릇 남과 더불어 거처하는 경우에는, 서로적절한 방법으로 이끌고 일깨워 주며, 미혹한 점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비유하자면, 아주 긴 밤 큰 꿈을 꾸고 있는 사람에게, 그 꿈을 한번 크게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또는 아주 오랫동안 뜨거운 번뇌에 처박혀 있는 사람을 끌어내어 시원(淸凉)하게 흔들어 주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들이 은혜가 가장 넓고 크다.
한유(韓愈)는 일찍이 이렇게 말하였다.
“일시로 사람을 권할 때는 입(말)으로 하고, 백 세대를 두고 사람을 권할 때는 글로 한다.(一時勸人以口, 百世勸人以書.)”
이처럼 남에게 착한 일을 하도록 권함(勸人爲善)은, 앞서 말한 남과 더불어서 선을 행함(與人爲善)에 견주어 보면, 분명히 구체적인 모습과 자취가 있기 때문에, 좀 떨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여러 종류의 환자들에게 각자 병의 증상에 따라 서로 다른 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때때로 이 방법이 아주 기특하고 영험한 효과를 보일 수 있으니, 이것 또한 완전히 없앨 수가 없다. 말을 잃거나 사람을 잃는 경우에는, 마땅히 나의 지혜를 반성해야 한다. -주8)

다섯째, 무엇을 일컬어서 남의 위급함을 구제한다(救人危急)고 하는가?
천재지변의 환난(患難)이나 앞으로 자빠지고 뒤로 넘어지는 위기는, 사람이면 누구나 때때로 당하는 것이다. 우연히 남의 이러한 재난을 보게 되면, 마땅히 자신이 몹시 아픈 질병이나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여기며, 빨리 그를 풀어주고 구해주어야 한다. 때로는 말 한 마디로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갖가지 방법을 찾아서 연달아 닥치는 액운들을 구제해 준다.
최자(崔子)는 일찍이 “은혜는 크고 많은 게 중요하지 않으며, 사람이 위급할 때 베풀면 충분하다.(惠不在大, 赴人之急, 可也.)”고 말했다. 이야말로 정말 어진 사람의 말이로다.

여섯째, 무엇을 일컬어서 커다란 이익을 일으켜 세운다(興建大利)고 하는가?
작게는 한 마을 안에, 크게는 한 도시(邑) 안에, 무릇 중생한테 이익이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일으켜 세우기에 아주 적합하다. 더러 도랑을 만들어 물길을 트고, 더러 제방을 쌓아서 하천의 범람을 예방한다. 더러 다리를 놓아서 교통 왕래를 편리하게 만들고, 더러 음식물을 베풀어 굶주림과 목마름을 풀어준다. 인연(因緣)에 따라 서로 권장하고 인도해서, 함께 힘을 합쳐 세우고 닦되, 남의 혐오나 의심을 피하지 말고, 노고(勞苦)와 원망(怨望)을 사양하지 말라.

일곱째, 무엇을 일컬어서 재물을 희사해서 복을 짓는다(捨財作福)고 하는가?
불교 법문(法門)의 온갖 수행 가운데 보시(布施)가 으뜸이다. 이른바 보시라는 것은 단지 ‘버릴 사(捨)’ 한 글자일 따름이다. 통달한 자는 안으로는 육근(六根: 눈․귀․코․혀․몸․생각)을 버리고, 밖으로는 육진(六塵: 色․聲․香․味․觸․法)을 버리며, 가진 것을 일체 모두 버리지 않음이 없다. 철저히 그러할 수가 없다면, 먼저 재물로부터 보시하기 시작한다.
세상 사람들은 옷과 음식으로 생명의 수단을 삼기 때문에, 재물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내가 가장 중요한 재물을 버릴 수 있다면, 안으로는 나의 인색함을 깨뜨리고, 밖으로는 타인의 긴급함을 구제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억지로 힘써 시도하다가, 점차 습관이 되면 마침내는 태연해진다. 무엇보다도 보시로 사사로운 욕망 감정을 깨끗이 씻어내고, 집착과 인색함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수행 방법이다.

여덟째, 무엇을 일컬어서 정법을 잘 수호하고 지닌다(護持正法)고 하는가?
법이란 만세(萬世)에 걸쳐 전해지는 모든 중생의 눈(眼目)이요, 빛이다. 정법이 있지 않다면, 무엇으로 천지자연을 참구(參究)하며, 무엇으로 만물을 성취하고 다스릴 것인가? 또 무엇으로 속세 홍진(紅塵)을 벗어나고 인연의 속박을 떠나며, 또 무엇으로 세상을 경륜(經綸)하고 세상에 우뚝 설 것인가? 무릇 성현의 사당(祠堂)과 초상이나 경전․서적들은 모두 마땅히 존경하고 중시하여, 그것들을 잘 보존하고 정리해야 한다. 정법을 높이 들어 널리 선양하는 일은, 위로 부처님과 성현의 은혜에 보답하는 중요한 선행이기 때문에, 더욱 힘써 노력해야 한다.

아홉째, 무엇을 일컬어서 웃어른을 존경한다(敬重尊長)고 하는가?
집안의 부모나 형제, 국가 사회의 통치자나 원로들, 그리고 무릇 나이가 많거나 덕이 높거나 지위가 높거나 식견이 높은 사람들은, 모두 마땅히 정성을 다해 받들고 섬겨야 한다. 집안에서 부모를 잘 받들어 모시는 효도는, 무엇보다도 마음속 깊은 사랑과 온화한 얼굴, 부드러운 목소리와 차분한 심기(心氣)를 습관화해서, 제2의 천성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그러한 온화한 기운이 바로 하늘에 이르는(和氣格天) 근본이 된다.
밖에 나아가서 통치자를 섬기고 나라와 겨레에 봉사하는 충성도 중요하다. 특히 관리(공무원)로서 한 가지 일을 행하더라도, 임금님(상관)이나 인민이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방자하게 구는 법이 없어야 한다. 또 법관으로 한 죄인에게 형벌을 내릴 때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함부로 권세를 부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임금님(국가 민족) 섬기기를 하늘을 섬기듯 하라(事君如天)는 옛 사람들의 지극한 말이 있다. 바로 이러한 곳이 음덕(陰德)과 가장 밀접히 관련한다. 한번 시험 삼아 충성하고 효도하는 집안을 살펴보라. 자손 대대로 오래 창성하지 않는 집안이 없다. 그러니 아주 신중히 행동해야 한다.

열째, 무엇을 일컬어서 만물의 생명을 아끼고 사랑한다(愛惜物命)고 하는가?
무릇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바로 중생을 측은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 때문이다. 인(仁)을 구하는 자는 바로 이것을 구하고, 덕(德)을 쌓으려는 사람은 바로 이것을 쌓아야 한다. 주례(周禮)에 보면, 맹춘(孟春: 음력 正月)에는 종묘(宗廟)나 왕궁(王宮)에서 희생(犧牲)을 쓸 때도 암컷을 쓰지 않는다. 또 맹자(孟子)는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한다.(君子遠庖廚)”고 말했다. 이는 바로 내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온전히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네 가지 먹지 않는 계율이 있었다. 도살하는 비명을 들은 고기는 안 먹고, 도살하는 것을 눈으로 본 고기도 안 먹으며, 스스로 기른 가축의 고기도 먹지 않고, 오로지 나를 위해서 도살한 고기도 먹지 않았다. 학문을 수양하는 자가 처음부터 육식(肉食)을 완전히 금할 수는 없겠지만, 마땅히 이 네 가지부터 조금씩 끊어가야 한다. 고기를 점점 끊어가다 보면, 자비로운 마음(慈悲心)도 점점 커진다.
특별히 살생(殺生)만을 경계할 것은 아니다. 꿈틀거리고 움직이며 영혼을 머금은 것은 다 만물의 생명이다. 비단실을 구하려고 누에고치를 삶고, 농사짓느라 쟁기나 괭이나 호미로 땅을 갈면, 자칫 그 안에 든 벌레를 죽이기 쉽다. 따라서 옷 입고 밥 먹는 일상생활의 유래가, 모두 다른 생명을 죽임으로써 내가 살아가는 인과관계임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물건을 함부로 부수거나 낭비하는 죄악은, 마땅히 자기가 직접 만물을 죽인 살생과 같이 여겨야 한다. 심지어 손이 잘못해서 다치게 한 것이나, 발이 잘못해서 밟은 것들은, 얼마나 되는지 숫자조차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도 모두 완곡하고 섬세하게 최대한 예방해야 한다.
옛날 소동파(蘇東坡)의 시(詩)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쥐를 사랑해서 항상 (쥐 먹을) 밥을 조금씩 남겨 두고, 나방이 죽을까 불쌍히 여겨 불을 켜지 않는다.(愛鼠常留飯, 憐蛾不點燈.)”
이 얼마나 어진 마음인가?
선행은 무궁무진하여 실로 다 서술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열 가지 일(방법)로부터 출발하여 점차 미루어 확대해 나간다면, 온갖 덕이 모두 갖추어질 수 있다. 

 

주1) 양영(楊榮: 1371-1440)은 명()나라 건문제(建文帝) 때 진사(進士)가 되고, 영락제(永樂帝) 때 문연각(文淵閣)에 들어갔다. 지략(智略)이 뛰어나고 과단성이 있어 성조(成祖)의 총애를 받았다. 여러 차례 황제의 북방 순행(巡行)을 수행하였으며, 문연각 대학사(大學士)에까지 이르렀다. 인종(仁宗)선종(宣宗)과 영종(英宗) 초년까지 계속 조정에서 정치를 보필하였으며, 영종 즉위 후에는 양사기(楊士奇)양부(楊溥)와 함께 조정의 정치를 보필하여, ‘삼양(三楊)’으로 일컬어졌다. 후에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하다가 도중에 사망하였는데, 북정기(北征記) 양문민집(楊文敏集)이 전한다.

주2) 이는 증자(曾子)가 맹씨(孟氏)의 사사(士師: 법관)가 된 양부(陽膚)에게 취임 격려사로 해 준 말인데, 논어(論語) 자장(子張)편에 실려 있다.

주3) 분단(粉團): 밀가루나 쌀가루를 되게 반죽해 둥근 원 모양으로 넓게 늘린 다음, 그 안에 콩고물이나 다른 양념반찬을 넣어 말아서 찌거나 지져 익힌 음식.

주4) 한기(韓琦: 1008-1075) : 북송(北宋) 시대의 유명한 대신(大臣)으로, 범중엄(范仲淹)과 함께 서하(西夏)를 방어하고, 여러 주()의 지사(知事)와 중앙 요직을 번갈아 가며 두루 거쳤다. 세 황제의 재상을 지냈으며, 사마광(司馬光) 등과 함께 왕안석(王安石)의 변법(變法)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여러 번 올렸다.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졌는데, 출신 지명을 딴 ?안양집(安陽集)?이 전해진다.

주5) 한기(韓琦: 1008-1075) : 북송(北宋) 시대의 유명한 대신(大臣)으로, 범중엄(范仲淹)과 함께 서하(西夏)를 방어하고, 여러 주()의 지사(知事)와 중앙 요직을 번갈아 가며 두루 거쳤다. 세 황제의 재상을 지냈으며, 사마광(司馬光) 등과 함께 왕안석(王安石)의 변법(變法)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여러 번 올렸다.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졌는데, 출신 지명을 딴 ?안양집(安陽集)?이 전해진다.

주6) 공자가 말한 선난이후획(先難而後獲)’은 본디 어려운 일(受苦)을 먼저 하고 나서 그 대가(보답, 이익)를 얻는 것이 어진 일()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어려운 일부터 먼저 하고, 쉬운 일은 나중에 하라고 말하는 듯한 어감(뉘앙스)과는 좀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

주7) 중국 속담에 말로 가르치면 따지고, 몸으로 가르치면 따른다.(以言敎則訟, 以身敎則從.)”는 명언이 있다. 인간의 내면 심리를 정확하게 찌르는 교훈이다.

주8) 공자는 더불어 말할 만한 사람인데 더불어 말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못한 사람인데 더불어 말하면 자기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도 잃지 않고, 말도 잃지 않는다.(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知者, 不失人, 亦不失言. - 論語, 衛靈公)”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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