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의 겸괘(謙卦)에 이런 말씀이 있다.
“하늘의 도는 가득 찬 것을 일그러뜨려 겸손한 자한테 보태주고,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변화시켜 겸손으로 흐르게 하며,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치고 겸손한 자를 복 주며, 사람은 가득 찬 것을 싫어하고 겸손한 자를 좋아한다.(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
이러한 까닭에 주역의 64괘 중 유일하게 겸괘(謙卦) 하나만이 여섯 효사(爻辭: 각 爻에 대한 占辭)가 모두 길하다. 또 서경(書經: 尙書)에는 “꽉 차면 덜어냄을 초래하고, 겸허하면 보탬을 받는다.(滿招損, 謙受益.)”는 말이 있다. 내가 여러 차례 여러 선비들과 과거에 응시하였는데, 매번 한미(寒微)한 선비가 장차 영달하려 할 때는, 반드시 몸과 마음(心身)으로 직접 감지할 수 있는 한 줄기 겸허의 광명(謙光)이 비치는 것을 보곤 하였다.
1. 신미(辛未: 1571)년에 과거시험 보러 상경(上京)했을 때, 나는 가선현(嘉善縣)의 절친한 동향(同鄕) 열 사람과 함께 있었다. 그 열 사람 가운데 오직 정빈(丁賓: 字는 敬宇)이 나이가 가장 어린데도 지극히 겸허했다. 그래서 내가 비금파(費錦坡)라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형(丁兄)은 금년에 반드시 합격할 것입니다.”
그러자 비금파가 반문했다.
“어떻게 그걸 알아보시오?”
이에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오직 겸허함이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형님, 보십시오. 열 사람 중에 경우(敬宇)만큼 공경을 다하고 정성스러우면서, 감히 남 앞에 나서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공경하고 순순하게 받들면서 조심하고 겸허하며 경외함이, 또 경우(敬宇)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모욕을 받으면서도 대꾸를 안 하고, 비방을 들어도 변론하지 않음이 경우만한 자가 또 있습니까? 사람이 정말 이와 같다면, 천지신명도 오히려 그를 보우(保祐)하러 나설진대, 어찌 뛰어나게 발휘하지 않겠습니까?”
합격자 방문(榜文)이 내 걸릴 때 보니, 과연 그 정씨(丁氏)가 급제했다.
2. 정축(丁丑: 1577)년에 서울에 있을 때는, 붕개지(馮開之)라는 사람과 같이 함께 머문 적이 있었다. 그가 자기를 겸허하게 비우고 용모를 단정히 가다듬으며, 그의 어린 시절 습관을 크게 바꾸는 모습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그에게는 리제암(李霽巖)이라는 강직하고 성실하며 도움이 되는 벗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 리제암이 붕개지의 잘못을 앞에 대놓고 공격하였으나, 그는 단지 평온한 마음으로 순순히 다 받아들일 뿐, 일찍이 한 마디도 말대꾸를 안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옆에 있다가,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복에는 복의 시작(실마리)이 있고, 화에는 화의 전조(前兆: 징후)가 있는 법이오. 이 마음이 정말 이렇게 겸허하다니, 하늘이 반드시 도울 것이오. 붕형(馮兄)은 금년에 반드시 과거에 급제할 것이오.”
그런데 그는 과연 내 예언대로 그해 과거에 합격하였다.
3. 유봉(裕峰) 조광원(趙光遠)은 산동성(山東省) 관현(冠縣) 사람이었다. 그는 소년 시절 향시(鄕試)에서 거인(擧人)이 되었으나, 중앙의 과거시험에는 오랫동안 합격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그의 아버지가 가선현(嘉善縣)의 삼윤(三尹: 主簿)이 되자, 그 임지(任地)에 따라갔다. 그런데 그곳에 살던 전명오(錢明吾)라는 사람의 명망을 듣고 몹시 흠모하여, 자기 글을 가지고 방문해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에 명오가 써 온 글을 보고 붓으로 모조리 지워버렸다. 그런데도 조유봉은 전혀 성질 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마음으로 복종하면서 바로 고쳤다. 그러더니 다음해 마침내 과거에 급제했다.
4. 임진(壬辰: 1592)년에는 내가 조정에 들어가서 하건소(夏建所)라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대해 보니, 심기(心氣)가 텅 비고 그 뜻이 아주 낮아, 겸손한 빛이 사람을 압도할 정도였다. 그래서 돌아와 한 친구에게 이렇게 예언하였다.
“무릇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을 높이 들어 올려 성공시키려면, 아직 그 복을 드러내기 전에, 먼저 그 지혜를 드러내는 법이오. 이 지혜가 한번 터지기 시작하면, 붕 뜬 사람들은 더 이상 겉으로 사치하지 않고 저절로 내실을 채우게 되며, 방자하게 굴던 자도 스스로 추슬러 단속하게 되지요. 그런데 건소라는 사람은 성격이 온화하고 선량하기가 진실로 이와 같으니, 반드시 하늘이 그를 열어 줄 것이오.”
그 뒤 과거시험 방문(榜文)을 내걸 때 보니, 과연 그가 합격했다.
5. 강음현(江陰縣)에는 장외암(張畏巖)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학문을 많이 쌓고 문장을 잘 지어, 문예계(文藝界)에서 명망이 제법 있었다. 그가 갑오(甲午: 1594)년에 남경(南京) 향시(鄕試) 때 한 사찰에 잠시 기숙했는데, 급제자를 발표할 때 자기 이름이 명단에 없자, 시험관을 몹시 호되게 욕하며 눈이 삐었다고 비난했다. 그때 한 도인(道人)이 옆에서 빙그레 웃었다. 이에 장씨(張氏)의 분노는 갑작스레 자기를 비웃은 그 도인에게 옮겨갔다. 그러자 도인이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의 관상을 보아 하니, 시험 답안 문장이 틀림없이 아름답지 못하겠소.”
장씨가 더욱 화가 나서 따져 물었다.
“당신이 내 문장을 보지도 않고서, 어찌 아름답지 않다고 단언하시오?”
이에 도인이 점잖게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문장을 짓는 데는, 심기(心氣)가 화평(和平)한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오. 지금 당신이 그렇게 험악하게 욕하는 소리를 들으니, 글 쓸 때도 심기가 평정(平靜)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오. 그러니 거기서 나온 문장이 어찌 훌륭하겠소?”
장씨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복(感服)해서, 그에게 다가가 가르침을 청했다. 그러자 도인이 이렇게 일러주었다.
“합격은 전적으로 운명에 달려 있소. 그러므로 운명이 합격하지 않게 되어 있으면, 비록 아무리 문장이 뛰어나도 아무 이로움이 없소. 따라서 모름지기 자기가 스스로 운명을 바꾸어야 하오.”
이 말을 듣고 장씨가 되물었다.
“그것이 운명이라면, 어떻게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도인이 다시 말하였다.
“운명을 처음에 안배하는 것은 하늘이지만, 그 운명을 개혁해서 다시 수립하는 것은 자신이오. 착한 일을 힘써 행하고 음덕(陰德)을 널리 쌓으면, 세상의 어떠한 복인들 구할 수 없겠소?”
이에 장씨가 다시 물었다. “나는 가난한 선비인데, 어떻게 공덕을 쌓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마침내 도인이 이렇게 점잖게 타일렀다.
“착한 일은 모두 다 마음으로 지으니, 항상 이 마음을 간직하면 그 공덕이 무한하오. 또한 겸허한 예절 같은 공덕은 돈을 전혀 안 써도 되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시험관을 욕한단 말이오?”
장씨는 이로 말미암아 자만심(自慢心)을 꺾고 스스로 자기를 지키면서, 선행을 날로 닦고 공덕도 날로 두텁게 쌓아 갔다. 그 뒤 정유(丁酉: 1597)년에 한 신기한 꿈을 꾸었다. 그 꿈에서 자기가 높은 방에 이르러 시험 합격자 명단을 한 권 얻었는데, 그 가운데 빈 줄이 많은 것을 보았다. 그래서 옆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그것이 이번에 치르는 과거의 합격자 명단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장씨가 다시 어찌하여 이렇게 빠진 이름들이 많은지 물었다. 그가 이렇게 대답해 주는 것이었다.
“과거시험을 시행함에는, 무형(無形: 陰間) 세계에서 3년에 한 번씩 심사와 비교 평가를 실시한다오. 그래서 모름지기 평소에 덕을 쌓고 허물이 없는 자라야, 바야흐로 급제자의 명부에 이름이 끼게 되오. 앞에 빠진 칸들은 원래 모두 시험에 합격해야 할 사람들이었는데, 새로 합격명부를 작성하면서 중간에 빼버린 자들이오.”
그리고는 뒤이어 한 줄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일러주는 것이었다.
“그대는 3년 동안 몸가짐을 자못 신중히 조심했으므로, 어쩌면 이 자리에 후보로 들어갈 것도 같소. 그러니 다행으로 여기고 자중자애 하시오.”
그런데 이 시험에서 그는 과연 제105등으로 합격했다.
이러한 실례로 미루어 본다면, 머리 위로 세 자(三尺) 허공에 반드시 신명(神明)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길함에 나아가고 흉함을 피하는 것은 단연코 우리 자신으로부터 말미암는다. 모름지기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잘 간직하고 행동을 통제하면서, 터럭만큼도 천지신명께 죄를 짓지 않도록, 마음을 텅 비우고 자신을 굽혀야 한다. 그래서 천지신명으로 하여금 때때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여야만, 바야흐로 복을 받을 밑바탕(福田)이 있게 된다.
저 기세등등한 자들은 틀림없이 원대(遠大)한 그릇이 아니다. 설사 합격하는 운이 트이더라도, 높이 중용(重用) 받지는 못할 것이다. 조그마한 식견(識見)이라도 있는 선비는, 결코 자신의 도량(度量)을 스스로 비좁게 줄여서, 자기 복을 스스로 물리치는 어리석은 짓은 차마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겸손하면 가르침을 받을 여지가 있고, 선을 끝없이 얻을 수 있음에랴! 더욱이 학업과 도업을 닦는 사람들은 결코 조금이라도 겸손의 덕을 잊거나 덜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공명에 뜻이 있는 자는 반드시 공명을 얻을 것이고, 부귀에 뜻이 있는 자는 반드시 부귀를 얻을 것이다.”라는 말이 전해 온다. 사람에게 뜻이 있는 것은, 나무에 뿌리가 있는 것과 같다. 이 뜻을 단단하게 세우고서, 모름지기 한 생각 한 생각마다 늘 겸허하고, 한 티끌 한 티끌마다 적절한 방법을 행해 나가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천지를 감동시키고, 자기가 스스로 복을 지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요즈음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라는 자들은, 애초부터 그렇게 진실한 뜻도 가지지 않고, 그 뜻이 단지 한 때의 생각과 감흥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감흥이 날 땐 열심히 구하다가, 감흥이 시들해지면 구하려는 뜻도 따라서 그만 둔다. 맹자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왕이 음악을 몹시 열심히 좋아한다면, 제(齊)나라는 왕도(王道) 정치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나는 과거 합격도 또한 그러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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