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明)나라 세종(世宗) 가정(嘉靖: 1521~1566년 재위) 년간에 일이다. 어떤 서생이 동쪽 이웃집 아낙이 몹시 요염한 자태에 반하여, 루차(屢次) 눈독을 들이고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하루는 자기 지아비가 멀리 외출한 틈을 타서, 그 아낙이 담장 틈새로 그 서생을 불렀다. 서생 또한 마음이 동(動)한지라, 어떻게 가면 좋을지 물었다. 그러자 아낙이 빙긋이 웃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글공부한다는 선비라면서, 어찌 ‘동쪽 집 담장을 넘는다’는 시구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서생은 사다리를 놓고 담장 위로 올라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을 돌렸다.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하늘까지 속일 수는 없다.”
그리고는 곧장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이웃집 아낙이 다시 아까 담장 틈새로 와서 애교부리며 서생을 꾀었다. 서생은 다시 정념(情念)이 강하게 움직여, 아까처럼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담장까지 걸터앉았다. 막 넘어 가려고 하는 순간, 또다시 문득 마음을 되 돌이켜 생각했다.
“하늘을 끝내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속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황급히 사다리를 내려온 뒤, 대문을 걸어 잠그고 외출해 버렸다. 이듬해 서생은 향시를 치르러 북쪽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시험을 주관하는 책임관이,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날 밤 등불을 밝히고 홀로 고요히 앉아 있는데, 문득 귓가에 누군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맴도는 것을 들었다.
“이번 시험에 장원은 담장을 올라탄 사람이다.”
급제자 명단(榜)을 발표한 뒤, 장원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연유를 캐물었다. 과연 전에 그러한 사정이 있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