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광 약력
인광대사가 친히 쓴 약력
: 민국 28년(1939:79세) 외국인(일본인들)과 필담(筆談)한 내용.
1. 경력
: 청말(淸末) 광서(光緖) 7년(1881) 출가, 8년 수계(受戒). 12년(1886) 북경 홍라산(紅螺山)에 갔다가 17년(1891) 북경 원광사(圓廣寺)로 옮김. 19년(1893) 절강성(浙江省) 보타산(普陀山) 법우사(法雨寺)로 가서 한료(閑寮 : 監院과 같이 財務 담당인 듯)를 맡았으나 그 뒤 30여 년 동안 어떠한 감투도 쓰지 않음.
민국 17년(1928) 광동(廣東)의 귀의 제자가 홍콩[香港]으로 가기를 청하여 보타산을 떠나 잠시 상해(上海) 태평사(太平寺)에 머물음. 18년(1929) 봄 출발하려 했으나 책 인쇄 작업 때문에 못 가고, 19년 이래 소주(蘇州) 보국사(報國寺)에 와서 폐관(閉關: 結利) 수행하였음. 26년(1937) 10월 난리를 피해 영암산(靈岩山)에 온 지 이미 2년이 넘었음. 지금은 아침에 저녁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으로 죽을 날만 기다림.
이것이 59년 동안의 경력임. 평생 동안 남과 더불거나 사회와 인연을 맺지 않았으며, 중국불교회(中國佛敎會)에도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음.
2. 근래의 움직임[動靜]
: 영암산에 온 이후로 어떠한 명승지도 찾아가 유람한 적이 전혀 없음. 오직 극락왕생에만 뜻을 두고, 명승고적에는 개의치 않기 때문임.
3. 일상생활
: 매일 자신의 능력껏 염불(念佛)하면서 대비주(大悲呪)를 지송(持誦)하여 스스로 이로울 뿐만 아니라 남도 이롭게 하는[自利利他] 수행으로 삼으며, 평생 삭발한 출가제자는 한 명도 받지 않았고 어떠한 절의 주지도 맡은 적이 없음.
4. 주의(主義)와 염불의 교의(敎義)
: 모든 사람에 대하여 한결같이 믿음과 발원으로 염불하여 극락왕생을 구하라고 권장하며, 출가 승려나 제가신자를 가리지 않고 각자 자신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일러줌. 부모에게는 자애를 말하고, 자녀에게는 효성을 가르치며, 형제에게는 우애와 공경을 일깨우고, 부부에게는 화목과 순종을 일러주며, 주인은 어질고 하인은 충성하도록 가르치는 등, 귀천과 빈부를 따지지 않고 한결같이 이러한 인륜도덕으로 권고함. 모든 사람이 먼저 세상의 현명하고 착한 사람 노릇을 한 다음 부처님의 자비 가피를 받아 평범을 뛰어넘고 성현의 경지에 들어서[超凡人聖]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도록 인도할 뿐이며, 사람들에게 행하지도 못할 거창한 말은 결코 하지 않음.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소개할 때는, 세상의 그 많은 재능 가운데 한 가지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단지 죽과 밥만 축내는 중[粥飯僧]이라고 말함. 이것이 내 일평생의 대략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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