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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의 연유를 아는가?

인광대사가언록. 염불과 참선은 본디 둘이 아니건만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3. 1. 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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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재앙의 연유를 아는가?

 

사바세계의 고통은 다 말할 수 없소. 설령 시운(時運)이 평안한 때라도, 매일 고뇌 속에 살아야 하오. 중생이 하도 오래 익숙해져, 당연히 여기고 잘 모르는 것뿐이오. 근래 중국은 누차 병란(兵亂)을 거치면서, 이미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하오. 서양 각국도 세계대전으로 죽은 사람만 천만에 가까워, 개벽 이래 제일 처참한 병란이라고 하오. 그런데 전세가 아직도 치성하여, 언제 끝날 줄도 모를 지경이오.

차분히 생각해 보면, 정말로 무섭고 두려운 일이오. 그런데 저들은 다른 나라를 완전히 멸절(滅絶)시킬 방도만 힘써 찾고 있소. 해당 국가 중생이 과거에 지은 죄업으로 초래한 악보라고 하지만, 어찌 이토록 극도로 처참할 수 있단 말이오?

지금 이러한 말을 듣는다면, 마땅히 크게 분발하는 마음으로, 어서 바삐 극락왕생하길 구해야 하리다. 왕생한 뒤 다시 사바세계에 되돌아와, 일체 중생을 두루 제도해야 하오.

경전에 보살은 원인을 두려워하고, 중생은 결과를 두려워한다[菩薩畏因, 衆生畏果.].”는 말씀이 있소. 보살은 악한 결과를 초래할까 두려워, 미리 악한 원인을 끊기 때문에, 악한 결과가 생겨날 수가 없소. 그런데 중생은 다투어 악한 원인을 짓기 때문에, 악한 결과를 받게 되오. 그래도 과거의 악업을 참회할 줄은 모르고, 도리어 다른 악업을 새로이 지어 대응하기 일쑤라오. 그래서 원한의 앙갚음이 오랜 겁토록 그치지 않고 서로 되풀이하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고 두렵지 않을 수 있겠소? 이러한 이치를 알고도 서방 극락에 왕생하길 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장부가 아니리다.

세상이 겁탁(劫濁)에 속하여, 서로 해치고 죽이기를 일삼소. 그렇기 때문에 호신부(護身符)가 없으면, 영원히 재앙이 없기가 결단코 어렵소. 내가 말하는 호신부란, 다른 게 아니라 단지 지성으로 예경(禮敬)을 다해 나무 아미타불을 염송하는 것일 따름이오.

그리고 관음대사(觀音大士: 관세음보살)는 자비의 서원이 무척 크고 깊어, 부르는 소리를 찾아가 중생의 고난을 구제해 주시며, 수시로 즉각 감응하신다오. 그러니 아침저녁 염불할 때, 관세음보살 명호를 덧붙여 염송하는 게 좋겠소. 그러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그윽한 가피를 틀림없이 입어, 재앙이 도리어 복으로 바뀌고, 환난을 당해도 상서롭게 변할 것이오.

천하가 평안히 다스려지지 못하는 데는, 모든 범부 중생의 책임도 있소. 만약 모든 사람마다 각자 정성스런 마음으로 효성과 우애를 다하고, 자비 선행을 베풀어 어렵고 불쌍한 이웃을 도우며, 산 목숨을 죽이지 않고 놓아 주고, 채식을 하며 염불을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사람들이 선으로 감동[]시키는 데 대해, 하늘이 복으로 응답[]할 것이오. 자연히 비바람이 순조롭고, 백성이 평안하며, 오곡과 만물이 풍성하리다. 그리고 늘상 닥치던 홍수나 가뭄·병충해·전염병·폭풍·지진 따위의 천재지변은 결코 내리지 않을 것이오.

시대가 평화롭고, 해마다 풍년이 들며, 사람마다 자기 직업을 즐겨 생산에 힘쓰고, 나아가 자비와 평화·인애·겸양을 서로 행하고 본받아 미풍양속을 이룬다면, 설령 어쩌다 열에 한둘 정도 어리석고 완고한 사람이 있을지라도, 저절로 착하게 감화될 것이오. 대들보 위를 넘어 오는 군자[梁上君子]를 불쌍히 여기면 그가 도둑질을 영원히 끊을 것이고, 방안에 숨어 들어온 좀도둑에게 선뜻 베풀어 주면 그 뒤로 금방 착한 선비가 될 것이오.

옛 사람들은 인애와 자비로 정치를 하여, 백성들을 친자식처럼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사랑했다오. 심지어 다른 종류의 중생까지 감화시켜, 호랑이가 영역 안에 들어오지 않고, 물고기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따위의 상서로운 조짐이 자주 나타났소. 역사책에 기록으로 전해지는 사례만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많소. 정말로 각자 자비와 선량으로 대하기만 한다면, 불량배나 도적들이 창칼을 들고 양민을 약탈하거나 유린하는 난리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불법에서는 인과응보의 법칙이, 아래로 배워서 위로 통달하고[下學上達: 論語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 인용], 처음부터 시작하여 끝까지 마치는, 가장 중요한 도()임을 반드시 알아야 하오. 그런데 지금 세상은 위로는 존경할 만한 도()가 없고, 아래로는 준수할 만한 법()이 없이, 서로 해치고 죽이는 짓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소.

단지 자기의 뜻만 통쾌하길 꾀하면서, 국가 민족의 존망이나 민생의 고통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행태들은, 모두 인과응보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빚어진 폐단들이오. 그래서 나는 늘상 인과(因果)야말로 세간과 출세간을 막론하고, 성인이 천하를 평안히 다스리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대권(大權)이다.”라고 강조한다오. 지금 세상에 만약 인과응보의 법칙과 생사윤회의 이치를 주창하지 않는다면, 설령 부처님과 조사들, 성현들이 한꺼번에 나오신다고 할지라도, 천하가 태평스럽고 백성들이 안락하도록 다스릴 방도가 달리 없을 것이오.

세상에 도덕이 쇠퇴하고 인심이 각박해진 것은, 지금까지 속된 유생(儒生)들이 도덕이 실천궁행에 있는 줄은 모르고, 줄곧 말단 지엽만 좇아 왔기 때문이오. 무릇 유가에서 가장 중요한 극기복례(克己復禮: 자기 감정 욕망을 이기고 예의로 돌아감)’ 한사존성(閑邪存誠: 사악함을 막고 정성을 간직함)’같은 이치는 내팽개치고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이오.

그리고는 오직 사장(詞章: 詩詞文章)을 암송하여, 과거에 합격하고 출세하는 밑천으로 삼았소. 다시 말해, 성인이 천지자연의 이치를 참구하여 만물 중생을 교화 양육하던 근본적인 도(), 명리(名利)와 부귀영달을 얻는 수단적인 기예[]로 전락해 버린 것이오. 성인을 모독하고 멸시하며, 천지를 위배하고 거역함이 지극히 막심하오.

그래서 글공부하는 사람들이, 마음으로는 글의 의미도 모르고, 몸으로는 글의 이치를 실행하지 않았소. 글을 지을 때는, 으레히 효도[우애[충실[신의[예절[정의[청렴[수치[]의 도덕을, 터럭만큼도 빠뜨리지 않고 기막히게 표현해 낸다오. 하지만 실제 마음 쓰고 일하는 것을 살펴보면, 그러한 분위기가 전혀 없는 것이오. 정말 배우가 연극하는 모습과 똑같소.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즐거움을 꼭 진짜처럼 연출해 내지만, 사실은 자기의 속마음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는 가식일 따름이오.

이런 폐단이 한번 시작한 뒤 점차 극심해져, 진위(眞僞)와 본말이 분간조차 하기 어렵게 뒤섞이고 말았소. 그래서 천부의 자질을 타고난 인재들이, 대부분 망령되고 미친 짓들을 익숙히 배우면서, 순 임금이나 주공(周公공자 같은 성인의 발자취를 본받아 따르기를 아주 수치스럽게 여겨 왔소.

심지어 성인의 경전을 내버리고 서양화를 숭상하여, 한 사람 제창에 백 사람이 부화뇌동하는 풍조가 크게 일고 있소. 마침내 사악하고 비열한 소인배들이 거리낌 없이 제 생각을 마음대로 자행하려고, 자기에게 장애가 되는 건전한 윤리강상(倫理綱常)을 봉건 유물로 매도하여 뒤집어엎고, 군중들에게 크게 해로운 도적질을 성급히 저지르려는 주장까지 제창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소.

그러니 백성들은 평안할 리가 없고, 천재지변과 인재(人災) 사고만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오. 국가 운명은 위태롭기 짝이 없고, 민생은 갈수록 도탄에 빠지고 있소. 이들의 짓은, 밤길을 가는데 등불을 없애고, 물길을 가는데 배를 빼앗는 것과 같소. 그러니 밤길에 넘어지지 않고, 물길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소?

근래 세상의 도덕과 인심이 극도로 타락하고, 천재지변과 인재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소. 세상을 걱정하는 지혜로운 선비들은, 이러한 과보가 모두 살생의 죄업으로부터 비롯한다고 생각한다오. 다른 동물도 살생해서는 안 되는 줄 안다면, 더구나 사람을 죽일 리는 절대 없을 것이오. 이로부터 각자 자비롭고 선량한 마음으로 서로 돕는다면, 저절로 풍속이 선량해지고, 천지자연도 화기(和氣)로 감응할 것이오.

방생(放生)은 원래 살생을 금지하는 것이고, 살생의 금지(戒殺)는 반드시 채식으로부터 시작함을 꼭 알아야 하오. 만약 사람마다 각자 살생을 금지하고 채식을 한다면, 집안 분위기가 자비롭고 선량해지며, 사람들의 행실이 예절 바르고 후덕해질 것이오. 풍속이 순박해지고, 날씨가 온화하며 농사가 풍년이 든다면, 어떻게 총칼을 들고 서로 해치는 병란이 생길 수 있겠소?

이것이 바로 천재지변과 인재 사고를 예방·해소하고, 근본 바탕을 청정하게 바로잡을 수 있는 제일 요긴한 방법이오. 무릇 집안이 화목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며, 천하가 태평스럽고 백성들이 안락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모두 살생을 금지하고 방생을 실행하며 채식으로 염불하는 가운데서 구하기를 부탁하오. 그렇게만 구한다면, 얻지 못할 리가 없을 것이오.

막심하도다. 근래 천재지변과 인재 사고가 빈번하고, 사람들의 죽음이 이토록 많고도 처참함이여! 어찌 천지자연의 도가 어질지 못해서 그러겠소? 실은 우리들이 현재까지 오랜 겁 동안 지어온 죄악의 업보로 초래한 것일 따름이오. 원인 없이 결과를 얻는 법은 결코 없으며, 또 착한 업을 지었는데 악한 결과를 얻는 법도 절대 없소.

다만 범부 중생의 지견(知見)으로는 숙세의 인연을 알아볼 수 없기 때문에, 흡사 얻지 않아야 할 결과를 얻는 것처럼 여겨질 따름이라오. 만약 우리가 오랜 겁 동안의 여러 생을 넓게 볼 수만 있다면, 우리가 받는 선악의 과보가 모두 하나하나, 소리에 메아리가 울리고 물체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조금도 어긋남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오.

지금 세상의 도덕과 인심은 이미 극도로 타락했소. 만약 인과응보와 생사윤회, 그리고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 아니라면, 이러한 타락을 결코 만회할 수 없소. 우리들의 일념 심성(一念心性)은 변함 없이 인연에 따르며, 또한 인연에 따르면서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오.

청정한 깨달음의 인연에 따른다면, 성문·벽지불·보살의 삼승(三乘)은 물론, 부처의 법계까지 증득할 수 있소. 반대로 오염된 미혹의 인연에 따른다면, 인간과 천상 및 사악도(四惡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의 중생 법계를 윤회하게 되오.

비록 이러한 열 단계 법계를 오르내리며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하늘과 땅처럼 현격히 차이 나지만, 본래 지니고 있는 심성은 범부 중생의 차원에서도 전혀 줄어들지 않고, 성인의 경지에서도 결코 늘어나지 않소. 이러한 이치를 분명히 깨닫는다면, 설령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청정한 깨달음의 인연을 내버리고 오염된 미혹의 인연을 따라가서, 영겁토록 헤어날 수 없는 생사윤회를 되풀이하지는 결코 않을 것이오.

그래서 인과응보와 생사윤회 등의 법은, 말단 지엽의 증상과 근본의 원인을 동시에 치료하며, 성인과 범부 중생이 함께 공유하는 대도(大道)라오. 또한 세간과 출세간을 막론하고, 불보살과 성현이 천하를 태평스럽게 다스리고 중생을 제도·해탈시키는 대권(大權)이기도 하오. 지금 세상에 이 법을 내버린다면, 설사 요()()()() 성왕과 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공자(孔子)가 한꺼번에 나오더라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것이오.

법화경의 말씀대로, 삼계가 불타는 집처럼 평안하지 못하고, 뭇 고통이 충만하여 몹시 무섭고 두렵기 짝이 없소. 우리 중생은 몹시 어리석어, 항상 그 가운데 머물면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벗어날 생각조차 안 한다오. 비록 우리가 본래 불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잃어버리고 등지기 때문에, 미혹을 일으키고 악업을 짓는 근본이 되고 마오. 그래서 영겁토록 해탈할 길이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소?

지금 세상 도덕과 인심은 극도로 타락하여, 살생의 전란(戰亂)은 예전에 들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처참하오. 게다가 서양 신학문의 조류가 밀려 들어와, 인과응보의 법칙을 허무맹랑한 미신으로 부정해 버리고, 성현의 도덕을 어리석은 봉건 이데올로기로 배척하고 있소. 자기의 그릇된 편견을 거세게 주장하여, 소경이 눈 먼 대중을 이끌고 함께 불길 속으로 뛰어 들고 있소. 그래서 천재지변과 인재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니, 아무 것도 모르는 백성들만 정말 몹시 불쌍하오.

이에 뜻 있는 사람들이 세상 인심과 도덕을 구원하려고 분발하고 있다오. 이러한 과보는 모두 사리사욕만 알고, 삼세의 인과응보 법칙을 모르기 때문이오. 사람이 죽으면 신식(神識)도 곧장 소멸하기 때문에, 영혼이나 귀신 따위가 죄와 복의 인연에 따라, 인간과 천상이나 삼악도에 생사윤회하는 일은 결코 없다고 믿는 데서부터 비롯하오. 선하건 악하건 모두 똑같이 소멸한다면, 누구든 자기 멋대로 행동하며 몸과 마음의 쾌락만 추구하려 들지 않겠소? 그래서 천리(天理)를 거역하고 인륜에 어긋나는 죄악을 자행하여, 남을 해치고 자신의 이익만 도모하는 것이오. 심지어 생명을 죽여 자기 입맛을 즐기고 뱃속을 채우는 짓도 거리낌 없이 앞다투어 저지른다오.

만약 삼세의 인과응보 법칙을 안다면, 당장 그 과보를 받을까 두려워해, 정말 그런 나쁜 짓은 생각조차 싹트지 못하게 조심할 것이오. 하물며 그런 흉악한 일을 몸소 저지르겠소?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삼세의 인과 법칙과 생사윤회의 사리는 어두컴컴한 긴 밤을 밝히는 지혜의 태양이고, 염불로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길 구하는 정토 법문은 생사고해를 벗어나는 자비로운 배임을 알아야 하오. 재난과 액운을 줄이고 없애려면, 이 방법밖에 다른 길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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