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曰:
최고최상의 증명에 들지 못한 자들을 분별함(分別未入上上證)은, 먼저 최상 법에 들지 못한 자를 셋으로 나눕니다.
(1)?於此衆中, 所作未辦者, 見佛滅度, 當有悲感?은, 작위가 있는 진리(有作諦)에서 아직 수행단계(修道)에 있기에 최상의 법에 들지 못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절요】?未辦者?는 곧 안팎 범부 및 아라한이 안 된 세 과위를 가리킵니다. 세 과위는 생각하는 미혹이 남아 있어 슬픔이 북받칩니다.
【보주】천상과 인간이 눈물을 비 오듯 흘리고, 아난이 근심 걱정한 것이 그러합니다.
【해설】초과(初果: 수다원)ㆍ이과(二果: 사다함)ㆍ삼과(三果: 아나함)를 가리키니, 생각하는 미혹(思惑)을 다 끊지 못하여, 아난이 근심 걱정한 것처럼 슬픔(悲感)이 북받치기 마련입니다.
(2)?若有初入法者, 聞佛所說, 卽皆得度?는, 작위가 없는 진리(無作諦)에서 이제 막 도를 본 단계(見道)이므로, 신속히 결정決定 단계에 이를 수 있는 자로서, 수행단계의 법과 다르지만, 최상의 법과는 아직 한참 멀리 떨어져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譬如夜見電光, 卽得見道?는, 길을 보고 알아차리는 게 눈 깜박할 사이에 결정해야 한다는 뜻을 비유로써 나타냅니다.
【절요】?初入法者?는 곧 앞에 나온 할 일을 아직 다하지 못한 사람(所作未辦者)이니, 지극한 과위를 바라보는 사람은 통틀어?初入?이라 부릅니다.?得度?는 두 가지가 있으니, 범부로부터 성인에 든 자와 성인으로부터 지극한 경지에 이른 자를 모두?得度?라 일컫습니다. 그 다음 비유는 길을 봄이 지극히 빠름을 결정코 확인하는 뜻을 나타냅니다.
【해설】안팎 범부를 가리킵니다. 관찰수행의 힘이 깊기에, 이제 막바지에 한번 불법을 들어 재빨리 신속하게 길(道)을 보고, 더 이상 미적거리거나 늦장부리지 않습니다. 도를 보는 게(見道) 일심一心이나 16심心이나 1찰나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의】경문에?마치 한밤중에 번개가 치면, 그 불빛에 의해 갈 길을 보듯이?는, 속담을 빌리자면,?번갯불에 콩 튀겨 먹듯? 민첩한 기동성이 있어야 도를 찾아 닦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3)?若所作已辦、 已度苦海者, 但作是念, 世尊滅度, 一何疾哉?는, 위 두 모습과는 달리 전혀 힘씀이 없고, 더 이상 배울 게 없는 도(無學道) 가운데 있는 자로서, 최상의 법계法界에 머물러 단지 미세한 의심만 있고, 또 자기 경지에서 부처님이 너무 빨리 적멸에 드심을 보고 약간 이상히 여김을 나타냅니다.
【절요】?已辦者?는 무학無學 지위에 올라서, 보고 듣는 미혹을 이미 다 끊어 삼계 괴로움을 벗어난 자입니다. 소승에서는 비록이미 끝냈다(已辦)?고 하지만, 실은 소지장所知障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부처님이 재빨리 열반하심을 보고 탄식합니다. 생겨도 본디 생김이 없고, 사라져도 본디 사라짐 없으며, 생멸이 곧 생멸이 아님을 완전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보주】경전에서?아, 괴로울세라! 대성 세존께서 진여에 드심이 어찌 이리도 빠르단 말입니까??라는 탄식이 이것입니다. 또?모든 부처님은 세상에 나오시지도 않고, 또한 열반이 있지도 않다.?고 말하는 것은, 생기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뜻을 명료히 깨달음입니다.
【해설】아라한을 가리킵니다. 보고 생각하는 미혹이 모두 다 끊어져, 삼계고해를 영원히 벗어나, 더 이상 감정 애착이 없어 슬퍼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처님이 진실로 사라지(열반하)지 않은 줄은 모르기에,?어찌 이리 일찍 열반하셨을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