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토(염불) 위에 법문 없소
위대하도다! 정토(염불) 법문의 가르침이여! 이 마음으로 부처를 삼고[是心作佛] 이 마음이 곧 부처라며[是心是佛], 사람 마음을 곧장 가리키는[直指人心] 자도, 오히려 정토의 기특함에는 손색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즉념으로 부처를 생각하고[卽念念佛] 즉념으로 부처를 이룬다며[卽念成佛], 오랜 세월 동안 수행 증득하는[歷劫修證] 자는, 더욱이 정토의 고상한 기풍을 드날려야 할 것이오.
상중하 모든 근기의 중생에게 두루 가피를 주고 율종·교종·선종을 통틀어 포섭함이, 마치 때맞춘 단비가 만물을 윤택하게 적셔 주고, 바다가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소. 편협하고 원만한[偏圓] 교리나 돈교와 점교[頓漸]를 포함한 일체의 법문이, 바로 이 법계(法界: 정토 법문)로부터 흘러나오지 아니한 게 없소.
[편협과 원만[偏圓]: 교리의 우열을 판별하는 명칭으로, 편(偏)이란 공(空) 내지 중도(中)에 치우쳐 편협하게 설하는 교리이며, 원(圓)이란 일체 모든 것을 원만히 갖춘 교리를 말한다. 보통 소승을 편, 대승을 원이라고 구분하지만, 더 나아가면 대승 가운데도 편협과 원만이 갈라진다. 그 경우, 화엄종이나 천태종에서 말하는 원교(圓敎)만이 원만에 해당하고, 나머지 통별(通別)이나 종돈(終頓) 같은 교리는 편협에 속한다.]
[돈교(頓敎)와 점교(漸敎)의 구분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처의 설법 일대기를 획분하는 표준으로, 화엄종의 청량(淸凉) 대사가 『화엄경』을 돈교, 『법화경』을 점돈교(漸頓敎)라 부른 것이 이에 해당한다. 점오(漸悟) 보살은 먼저 소승을 익힌 뒤 마음을 크게 돌려 대승을 배우는데, 부처가 이러한 근기의 중생에게 설법한 경전은 모두 점교에 속한다. 녹야원 이하의 대소승 경전이 그것인데, 이 가운데 소승은 점교소승, 대승은 점교대승이라고 부른다. 돈오(頓悟)에 곧장 들어가는 보살은 곧바로 부처가 되기 위해 발심 수행하는데, 이러한 근기의 중생에게 설법한 대승경전이 돈교로 『화엄경』이 여기에 속한다. 『법화경』이나 『열반경』은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점교에 포함된다. 천태종에서 화의(化儀)상 법화 이전의 경전을 돈교와 점교로 나누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둘째는 천태종 특유의 화법(化法) 상 구분으로, 지자(智者) 대사가 지관(止觀)을 판별하는 다섯 쌍의 범주 가운데 하나인데, 법문의 본체를 논한 것이다. 원교(圓敎)는 단박에 족하고 단박에 지극한[頓足頓極] 성불의 법문이기 때문에 돈교라 부르고, 장교(藏敎), 통교(通敎), 별교(別敎)의 세 가지는 점차로 성불에 진입하는 법문이므로 점교라고 부른다. 따라서 천태종의 입장에서 보면, 『법화경』만이 순수하게 원만한 법문으로 유일하게 돈교라고 부를 수 있다. 『화엄경』은 화의(化儀) 상으로는 비록 돈교이지만, 화법(化法) 상으로는 원교와 별교를 아울러 말하기 때문에, 돈교로서 점교를 겸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화엄종의 관점에서는, 『화엄경』이 교화한 중생의 근기도 돈(頓)이고, 설한 법문도 또한 돈(頓)이기 때문에, 돈교 중의 돈교(頓頓)가 된다. 『법화경』은 설한 법문이 돈(頓)이지만, 교화한 근기가 점(漸)이기 때문에, 점교 중의 돈교(漸頓)라고 할 수 있다.]
또 대승과 소승 및 권의와 실체[權實]를 비롯한 일체의 수행이, 모두 이 법계로 귀결하지 아니함이 없소.
[권실(權實): 일시적인 상황에 적합하여 잠시 사용했다가 그만두는 방편 법문을 권(權)이라 하고, 궁극 본체인 항상 불변의 법을 실(實)이라고 부른다. 천태종의 지관(止觀)에서는 권모(權謀)와 실록(實錄)이라고도 명명하는데, 조금 낯익은 표현으로는 권변(權變)·권의(權宜)와 실체(實體) 정도가 괜찮을 듯하다. 권실의 구분은 모든 법문과 종파에 두루 통용하지만, 특히 천태종에서 열 쌍과 세 종류의 권실을 상세히 체계화하여, 법문의 사리(事理)와 여래의 지혜 및 여래가 설한 교법(敎法) 등에 대해 권실을 따지는 이론이 가장 중요하다. 권법(權法)의 차별에 통달함이 여래의 권지(權智)이고, 그 실상(實相)의 일리(一理)에 통달함이 여래의 실지(實智)이다. 『금강경』에서 “일체 성현은 모두 무위법으로써 차별을 나톤다[一切賢聖, 皆以無爲法而有差別.].”는 구절이 바로 이러한 의미 맥락이다. (‘나토다’는 본디 ‘화현(化現)’의 뜻을 지닌 고어(古語)인데, 우리 불교계에선 흔히 ‘나투다’로 잘못 쓰고 있다.)
여래가 처음에 권지(權智)로써 삼승(三乘)의 교화를 펼친 것이 권교(權敎)이고, 나중에 일승(一乘)의 이치를 보인 것이 실교(實敎)이다. 천태종의 4교로 보면, 장교(藏敎), 통교(通敎), 별교(別敎)가 권교에 해당하고, 원교(圓敎)는 실교에 속한다. 또 화엄종의 5교로 보면, 돈교(頓敎) 이하가 모두 권교에 해당한다.
한편, 권(權)은 일찍이 중국 고대 유가에서, 평상의 원칙과 정도(正道)를 변화 융통하여, 특별하고 긴급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임기응변의 방편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쓰였다. 예컨대, 맹자(孟子)에 따르면, 남녀간에는 수건조차 손으로 직접 주고받지 않는[男女有別] 것이 원칙상의 예법(禮)이다. 하지만 형수가 물에 빠져 죽게 생긴 위기 상황에서는, 시동생이 손으로 직접 건져 살리는 것이 권(權)으로서, 인정(人情)과 천리(天理)에 모두 합당한 방편법이라고 강조한다. 권(權)의 상대어로는 보통 경(經)이 쓰인다. 또 중국 철학상 본체[體]와 작용[用]이라는 범주도 실권(實權)에 상응한다.]
미혹과 업장을 다 끊지 않은 채로 부처의 후보 자리에 오를 수 있으니, 금생에 단박 보리(菩提: 깨달음)를 원만히 이루게 되오. 구계(九界: 十界 중 부처의 경계를 제외한 보살·벽지불·성문 및 육도 중생계를 가리킴) 중생은 이 법문을 떠나서는 위로 부처의 도를 원만히 이룰 수 없고, 시방 모든 부처님도 이 법문을 놓고서는 아래로 뭇 중생을 두루 이롭게 할 수 없소.
이러한 까닭에, 화엄해회(華嚴海會)의 대중들이 모두 십대원왕(十大願王)을 따르고, 『법화경』에서는 한결같이 모두 모든 법문의 참모습[諸法實相]을 증득했다고 일컫는다오. 정토 염불이 가장 뛰어난 방편 수행임은, 마명(馬鳴) 보살이 『기신론(起信論)』에서 보여 주었소. 또 정토 염불이 가장 쉽고 빨리 도달하는 길임은, 용수(龍樹) 보살이 『바사(婆沙: 說)』에서 밝히고 있소. 석가모니불의 후신(後身)이라는 지자(智者) 대사가 십의론(十疑論)을 설하면서 오로지 서방극락에 초점을 맞추었고, 아미타불의 화신(化身)이라는 영명(永明) 대사는 사료간(四料簡)을 지어 종신토록 염불을 행하며 가르쳤소.
삼승(三乘)과 오성(五性)을 막론하고, 모두 진실하고 항상스런 법[眞常]을 증득하도록 모으고, 최상의 성인부터 최하의 범부까지 함께 피안(彼岸)에 오르도록 인도한다오. 그래서 구계 중생이 모두 귀의하고, 시방 제불이 함께 찬탄하시며, 천경(千經)과 만론(萬論)이 나란히 밝히고 있소. 그러니 정말로 부처님의 한평생 교화[一代時敎] 가운데, 가장 지극하고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일승(一乘)의 가르침이라고 일컬을 만하오. 착한 공덕의 뿌리를 심지 않으면 영겁토록 만나기 어려운 법문이거니와, 일단 보고 들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부지런히 닦고 익혀야 할 것이오.
[삼승(三乘): 네 가지가 있으나, 보통은 대승불교의 성문·벽지불·보살승을 가리킨다.
성문승(聲聞乘)은 소승이라고 부르며, 빨리는 3생(生), 늦게는 60겁(劫) 동안 공법(空法)을 닦아, 마침내 현세에 여래의 육성 가르침을 듣고 사제(四諦: 苦集滅道)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아라한의 과위(果位)를 증득하는 자이다. 벽지불승(辟支佛乘)은 중승(中乘)으로 연각승(緣覺乘)이라고도 부르며, 빨리는 4생(生), 늦게는 백 겁(劫) 동안 공법(空法)을 닦다가, 마지막 생에 이르러 여래의 친신(親身) 설법을 듣지 않고도, 꽃 피고 잎 지는 바깥 사물의 인연을 보고 홀로 12연기법(緣起法)을 깨달아, 벽지불의 과위를 증득하는 자이다. 보살승(菩薩乘)은 대승이라고 부르며, 3무수겁(無數劫) 동안 6바라밀을 수행하고, 다시 백 겁 동안 부처의 32상(相) 복덕 인연을 심어,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하는 자이다. 흔히 이 삼승을 양·사슴·소가 끄는 수레에 비유하기도 하고, 토끼·말·코끼리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한다.]
[오성(五性): 법상종(法相宗)에서 일체 중생의 근기를 다섯 가지로 나눈 성품.
1. 정성성문(定性聲聞)은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는 무루(無漏: 번뇌 없음) 종자를 지닌 자임.
2. 정성연각(定性緣覺)은 벽지불과를 얻을 수 있는 무루 종자를 지닌 자임.
3. 정성보살(定性菩薩)은 불과(佛果)를 얻을 수 있는 무루 종자를 지닌 자임.
4. 부정성(不定性)은 일정하지 않은 성품이란 뜻으로, 두세 가지의 무루 종자를 지닌 자임.
5. 무성(無性)은 이상 삼승의 무루 종자를 전혀 가지지 못하고, 단지 인간과 천상의 유루(有漏: 번뇌 있음) 종자만 지닌 자임. 법상종은 이러한 오성의 이론으로 화엄종이나 천태종과 서로 어깨를 나란히 했기 때문에, 오성종(五性宗)이라고도 한다. 현장(玄奘) 법사와 자은(慈恩) 법사가 특히 여기에 진력했다.
또 『원각경(圓覺經)』에서, 모든 중생이 구체적인 사장(事障: 보고 생각하는 두 가지 미혹, 見思惑)과 추상적인 이장(理障: 근본상의 塵砂無明)을 얼마나 빠르고 철저히 끊을 수 있는지에 따라, 다섯 단계로 나눈 성품으로 오성(五性)이 있다.
1. 가끔 선행이나 베풀면서 터럭 끝만큼의 미혹도 끊지 못하는 평범한 범부성(凡夫性), 2. 보고 생각하는[見思] 미혹의 사장은 끊지만 근본상의 진사무명인 이장은 끊지 못하는 성문과 벽지불의 이승성(二乘性), 3. 이사(理事) 두 가지 업장을 점차 모두 끊어 크고 원만한 깨달음[大圓覺]을 증득하는 보살성(菩薩性), 4. 부정성(不定性)으로 돈점이성(頓漸二性) 또는 돈초여래성(頓超如來性)이라고도 함, 5. 삿된 학설을 따르며 부처의 정도(正道)를 모르는 외도성(外道性). 원각경은 “일체 중생이 탐욕으로 무명(無明)을 떨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다섯 성품의 단계를 드러낸다.”고 밝힌다.]
가르침과 이치와 수행과 과위[敎理行果]는 불법의 으뜸 강령이며, 부처를 그리워하고 부처를 생각함[憶佛念佛]은 실로 불도를 얻는 지름길이라오. 예전에는 인연 따라 어느 한 법문을 수행해도 이 네 가지가 모두 갖추어졌지만, 지금 세상에서는 만약 정토(염불) 법문을 놓을 것 같으면 과위의 증득[果證]은 전혀 없게 된다오. 진실로 성인이 떠난 시간이 이미 오래 되었고, 사람들의 근기가 보잘 것 없이 하찮아서,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지하지 않으면 해탈하기가 절대로 어렵소.
[교리행과(敎理行果): 성도(聖道)의 문 안에서 스스로 힘써 수행하며 과위(果位)를 얻는 단계. 교(敎)는 아함(阿含)의 번역으로, 부처가 설한 가르침이다. 마음에 있는 것을 법(法)이라 하고, 법을 말로 표현하면 교(敎)라 부르는데, 흔히 교법(敎法)이라고 통칭한다. 리(理)는 가르침(敎法) 안에 담긴 도리(道理), 이치를 뜻하고, 행(行)은 그 이치에 따라 수행함이며, 과(果)는 수행의 원인으로부터 얻는 성인의 지위를 가리킨다. 이 가운데 리(理)를 교(敎)에 함축하여 생략하고, 과(果)를 증득 행위로 대체하면, 교행증(敎行證)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의 진종(眞宗)에서는 다시 여기에 믿음(信)을 덧붙여, 교행신증(敎行信證)으로 일컫는다. 교(敎)는 『무량수경(無量壽經)』, 행(行)은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염불 수행, 신(信)은 나무아미타불에 대한 믿음, 증(證)은 극락왕생을 각각 뜻한다고 한다.]
옛 사람들이 말씀하시기를, “사람 몸 얻기 어렵고[人身難得], 문명의 한 가운데 태어나기 어려우며[中土難生], 부처님 법 듣기 어렵고[佛法難聞], 생사윤회 끝마치기 어렵다[生死難了].”고 하셨소. 우리들은 다행히 사람 몸 얻어 문명의 한 가운데 태어났고, 부처님 법까지 듣고 있소. 다만 불행히도 죄악이 많고 업장이 무거워, 스스로 미혹을 끊고 삼계를 벗어나 생사윤회를 벗어날 힘이 없으니, 몹시 부끄러울 따름이오.
그런데 또다시 천만다행으로, 우리 여래께서 철두철미한 대자대비심에서 임기응변의 대방편 권법(權法)을 설하셨소. 천하의 모든 중생에게 업장을 짊어진 채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정토 법문(淨土法門)을 열어 놓으신 것이오. 이를 보고 듣는 것은, 정말로 행운 중의 막대한 행운이오. 무량겁 이래로 착한 뿌리를 깊이 심어온 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처럼 불가사의한 법문을 들으며, 나아가 단박에 진실한 믿음을 내어 극락왕생을 발원할 수 있겠소?
내가 듣건대, 정토는 부처님의 본래 회포를 궁극으로 다 털어놓으신 법문으로, 일체의 선종·교종·율종 등의 법문을 훨씬 초월할 뿐만 아니라, 이들을 모두 총망라한다고 하오. 간략히 말하자면 한 마디 한 구절이나 한 게송 한 경전으로 남김없이 포괄하지만, 자세하게 널리 말하자면 비록 삼장(三藏) 12부(部)의 심오한 교법이나 오종(五宗) 역대 조사들의 미묘한 논설로도 다 해석할 수 없다오.
[삼장(三藏): 경(經)·율(律)·논(論)의 세 가지로, 문자 의미를 통해 불법을 싸서 저장(包藏)한다는 뜻에서 붙인 명칭. 경은 선정[定], 율은 계율[戒], 논은 지혜[慧]를 각각 설하기 때문에, 이 삼장과 삼학에 통달한 수행자도 삼장이라고 한다. 특히 진제(眞諦)·현장(玄奘) 같은 경전 번역 법사를 일컫는 칭호로도 쓰인다. 경은 수다라(修多羅)인데, 성인의 말씀이 모든 법을 일관회통하는 게, 마치 실로 꽃을 꿰어 화환을 이루는 것과 같다고 하여, 처음에는 선(線) 또는 연(綖)이라 옮겼다. 그러다가 항상 불변의 가르침이라는 뜻에서, 중국 고유의 고전과 같은 경으로 바꾸었다. 율은 비나야(毗奈耶)인데, 몸·입·생각의 삼업(三業) 죄악을 소멸시킨다는 뜻에서, 멸(滅)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논은 아비달마(阿毗達磨)인데, 진리를 대하여 관찰하는 뛰어난 지혜라는 뜻에서, 대법(對法)이라고도 번역하였다. 모든 법의 성상(性相)을 논하여 뛰어난 지혜를 낸다는 의미에서 논이라고 한다.
보통 삼장은 소승에 특유한 구분 명칭이고, 대승은 한결같이 수다라[經]장이라고 한다. 대승 가운데도 실질 내용상, 『화엄경』 등은 경, 『범망경(梵網經)』 등은 율, 아비달마경(阿毗達磨經) 등은 논으로 각각 분류한다.]
[12부(部):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모든 경을 12종류로 분류한 기준이다.
1. 수다라(修多羅: 梵sūtra): 계경(契經); 2. 기야(祇夜: 梵eya): 중송(重頌), 응송(應頌), 계경 본문에서 설한 내용을 다시 정리해 읊은 게송; 3. 가타(伽陀: 梵gāthā): 풍송(諷誦), 고기(孤起), 계경 본문 없이 직접 게송으로 읊은 교설; 4. 니다나(尼陀那: 梵nidāna): 인연(因緣), 붓다의 설법 인연을 적은 서품; 5. 이제목다가(伊帝目多伽:梵itivṛttaka): 본사(本事), 본생담 이외의 붓다 및 제자들의 전생사; 6. 사다가(闍多伽: 梵jātaka): 본생(本生), 붓다가 전생에 대자비를 행한 보살행; 7 아비달마(阿毗達磨: 梵adbhuta-dharma): 희법(希法), 붓다와 제자들의 희유한 법; 8. 아바다나(阿波陀那: 梵avadāna): 비유(譬喩; 9. 우바제사(優婆提舍: 梵upadeśa): 논의(論議); 10. 우다나(優陀那: 梵udāna): 자설(自說),『불설아미타경』처럼 누구도 물을 수 없어 붓다가 스스로 설한 법; 11. 비불략(毗佛略: 梵vaipulya): 방광(方廣), 광대하고 심오한 교의를 설함; 12. 화가라(和伽羅: 梵vyākaraṇa): 수기(授記), 기별(記別), 본디 교의 해설을 뜻하는데, 나중에 제자들의 미래 수행과위에 대한 증언을 가리킴.
이 가운데 처음 3부는 경문(經文) 상의 체재(體裁)이고, 나머지 9부는 모두 경문이 싣고 있는 개별 사항(내용)에 따라 붙인 명칭이다.]
[오종(五宗): 대승불교에서는 천태(天台)·화엄(華嚴)·법상(法相)·삼론(三論)·율(律)종을 가리킨다. 선종(禪宗)에서는 오조(五祖) 홍인(弘忍) 문하가 북종(北宗) 신수(神秀)와 남종(南宗) 혜능(慧能)으로 양분한 뒤, 육조 혜능에서 다시 분파한 위앙(僞仰)·임제(臨濟)·조동(曹洞)·운문(雲門)·법안(法眼)종을 가리키는데, 흔히 선종 오가(五家)로 불린다. 여기에 황룡(黃龍)과 양기(楊肢)를 합쳐 7종으로 부르기도 한다.]
설령 천하의 모든 중생이 함께 정각(正覺)을 이루어, 광장설(廣長舌)을 드러내고 신통력과 지혜력으로 한 티끌 한 찰나마다 쉼없이 치열하게 말한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다할 수 있으리오? 진실로 정토 법문이 본디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라오.
한번 경전을 보시오. 『화엄경』은 삼장 가운데 임금이라고 일컬어지는데, 맨끝 편에서 십대원왕으로 귀착하지 않소? 또 『법화경』은 심오하고 미묘하여 모든 경전의 으뜸이라고 꼽히는데, 듣는 즉시 극락왕생하여 등각(等覺) 보살과 가지런한 지위에 오른다고 설하지 않소? 그러니 천경(千經) 만론(萬論)이 도처에서 정토로 귀의하도록 가리키는 것도, 모두 유래가 있지 않소?
그래서 문수보살이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보현보살이 권장 격려하며, 여래께서 『대집경(大集經)』에서 “말법 시대에는 이 법문이 아니면 중생을 제도할 수 없다.”고 수기(授記)하셨소. 또 용수(龍樹) 보살도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說)』에서 “행하기 쉬운 길이니 빨리 생사윤회를 벗어나라.”고 간명하게 보이셨소. 역대 고금의 성현마다 한결같이 정토로 귀향하는 것이, 어찌 터무니없겠소? 진실로 부처님의 한평생 설법이 모두 염불 법문의 주석(註釋)이나 다름없소.
이뿐만 아니오. 무릇 눈·귀·코·혀·몸·생각의 육근(六根)이 산하대지나 명암(明暗) 색공(色空) 등 일체의 경계(境界)에 대해, 보고 듣고 맛보고 느껴 아는, 빛·소리·향기·맛 등인들, 어느 하나 정토를 드러내어 알리는 문자가 아니겠소? 추위와 더위가 서로 번갈아 닥치고, 늙음과 질병이 육신을 핍박하며, 홍수·가뭄·질병·전쟁이나 악마·사견(邪見) 등이 잇달아 생겨나는 현실은, 또 어느 하나 사람들에게 한시 바삐 극락왕생하길 간절히 발원시키는 채찍[警策]이 아니겠소? 그러니 넓게 말하자면 끝이 있겠소?
한 글자로 총괄할 수 있다 함은, 이른바 ‘정(淨: 맑음·청정)’이오. 맑음이 지극하면 빛이 통하나니, 미묘한 깨달음[妙覺]에 이르지 않고서는, 이 한 글자를 어찌 쉽사리 감당할 수 있으리오? 육즉불송(六卽佛頌)을 연구해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오.
[육즉불(六卽佛): 보통 대승보살의 수행지위[行位]는, 『화엄경』 등에서 설하는 십신(十信)·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십지(十地)·등각(等覺)·묘각(妙覺)의 52위(位)로 구분한다. 천태종에서는 이를 별교(別敎)보살의 단계로 보고, 별도로 원교(圓敎)보살에 해당하는 육즉불의 수행 지위를 설정하였다.
1. 리즉불(理卽佛):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으며, 부처가 세상에 있든 없든 불성은 항상 존재하며, 어떠한 빛이나 냄새 하나도 중도(中道) 아닌 게 없다. 이치상 불성은 그렇지만, 이를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범부 중생은, 단지 이치상 성품상으로만 부처와 같다.
2. 명자즉불(名字卽佛): 선지식과 경론 등을 통해 그러한 이치를 보고 들어, 명자(문자지식·개념) 상 모든 게 불법이고, 일체 중생이 성불할 수 있음을 아는 자.
3. 관행즉불(觀行卽佛): 문자 지식상의 이치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여 마음의 관조가 밝아지고, 이치와 지혜가 서로 호응하며, 말하는 것과 수행이 서로 일치하는 자. 『법화경』에서 말하는 수희독송(隨喜讀誦) 등 오품(五品)관행을 수행하기 때문에, 오품제자위(位)라고도 부르며, 외품(外品)에 속한다.
4. 상사즉불(相似卽佛): 비로소 별교의 십신(十信) 지위에 들어서, 진짜 무루(眞無漏)에 비슷한 관행을 하는 자. 『법화경』에서 말하는 육근청정(六根淸淨)의 공덕을 얻기 때문에, 육근청정위(位)라고도 부르며, 내품(內品)에 속한다. 리즉불과 명자즉불 단계는 바깥 범부(凡夫)라 하고, 관행즉불과 상사즉불 지위는 안쪽 범부(內凡)라 하기도 한다.
5. 분진즉불(分眞卽佛): 상사즉불 단계의 관행 힘에 의해 진실한 지혜(眞智)를 발하여, 비로소 약간의 무명(無明)을 끊고 보물창고(寶藏)를 열어 진여(眞如)불성을 드러내는 자. 이를 발심주(發心住)라고 한다. 이때부터 9주(住)에서 등각(等覺)에 이르기까지, 41지위를 거치며 41품(品)의 무명을 깨뜨리고, 법성을 차례로 나누어 드러낸다. 이 단계는 성인(聖因: 성인이 되는 준비 인연)이라고 한다.
6. 구경즉불(究竟卽佛): 제 42의 원품(元品) 무명까지 깨뜨리고, 궁극의 원만한 깨달음의 지혜(覺智)를 드러내는 자. 묘각(妙覺)에 해당하고, 성과(聖果)라 부른다.
청화(淸華) 큰스님의 법어집인 『마음의 고향』 제17집(1995년 미국 삼보사 동안거 설법 정리. 금륜회 발행)에 ‘육즉불(六卽佛)’의 법문이 실려 있으니, 참고 바람.]
한 구절이란 ‘믿음[信]·발원[願]·수행[行]’이오. 믿음이 아니면 발원을 이끌어 낼 수 없고, 발원이 아니면 염불 수행을 인도할 수 없기 때문이오. 또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지송(持誦)하는 미묘한 염불 수행이 아니면, 발원을 원만히 성취하여 믿음을 증득할 수 없기 때문이오. 정토에 관한 모든 경론(經論)은 한결같이 이 묘지(妙智)를 밝혀 적은 교법일 따름이오.
한 게송이란 찬불게(讚佛偈)를 가리키오. 정보(正報: 또는 正果, 기본 과보, 주요 과보)만 거론하여 의과(依果: 또는 依報, 의지 과보, 부수 과보)를 망라하고 교화 주체[化主: 아미타불]를 언급하여 교화 대중[徒衆: 보살·성문 제자]까지 포괄하고 있소. 그래서 비록 여덟 구절밖에 안 되는 짤막한 게송이지만, 실지로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의 대강 요점을 모두 함축하고 있다오.
[찬불게(讚佛偈)
阿彌陀佛身金色 아미타부처님의 황금빛 찬란한 몸,
相好光明無等倫 상호와 광명 비길 데 없이 눈부시네.
白毫宛轉五須彌 백호는 다섯 바퀴나 수미산을 휘어 감싸고,
紺目澄淸四大海 검푸른 눈은 사대 바다를 맑게 비추네.
光中化佛無數億 광명 속에 부처님 화신 수없이 나토시고,
化菩薩衆亦無邊 보살 대중의 화신 또한 끝없이 많네.
四十八願度衆生 48대 서원을 세워 중생을 제도하여,
九品咸令登彼岸 아홉 품계 따라 모두 피안에 오르게 하시네.]
[정보(正報)와 의과(依果): 중생이 과거의 업장으로부터 받는 마음과 몸[心身]의 생명 자체를, 기본 또는 주요 과보라는 뜻에서 정보(正報) 또는 정과(正果)라 부른다. 그리고 그 몸과 마음이 의지해 거주 생활하는 세간의 일체 사물, 예컨대 세계국토·가옥·의복·음식 등의 환경을 의보 또는 의과라고 부른다.]
한 책이란 바로 ‘『정토십요(淨土十要)』’를 가리키오. 이 책은 글자마다 모두 말법시대의 나루터와 다리이고, 구절마다 연종(蓮宗: 정토종)의 보배와 거울이라오.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고 심장을 갈라 피를 뿌리는 듯한 심정으로, 중생의 성품에 걸맞게 서술하고, 말세의 근기에 따라 가리키고 있소. 물에 빠져 죽으려는 사람을 건져내고, 불에 타 죽으려는 인간을 구해낸다는 표현으로도, 그 비통하고 간절함은 비유할 수 없을 지경이오. 이것을 놓아버리면, 올바른 믿음[正信]이 생겨날 길이 없고, 삿된 견해[邪見]가 사라질 수 없을 것이오.
[『정토십요(淨土十要)』: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영봉(靈峯) 우익 대사(본명은 智旭, 스스로 八不道人이라 일컬음)가 정토 염불 수행에 가장 긴요한 논저 9종을 선정하고, 자신이 지은 『아미타경요해(要解)』를 합쳐 펴낸 방대한 저술. 대사의 문인 성시(成時) 법사가 요약본을 유통시켰는데, 민국(民國)초 인광(印光) 대사가 원본을 찾아 왕생론(往生論)과 왕생론주(往生論註) 및 연화세계시(蓮華世界詩) 등을 부록으로 첨부하여 새로이 펴냈다.
『아미타경요해』 외에, 송나라 때 자운(慈雲) 화상의 왕생정토참원의(往生淨土懺願儀), 청나라 때 성시(成時) 법사가 편집한 관무량수불경초심삼매문(觀無量壽佛經初心三昧門), 수(隋)나라 때 천태(天台) 지자(智者) 대사가 지은 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 당나라 때 비석(飛錫) 화상이 지은 염불삼매보왕론(念佛三昧寶王論), 원(元)나라 때 천여(天如) 유칙(維則) 화상이 쓴 정토혹문(淨土或問), 명나라 때 초석(楚石) 화상이 지은 서재정토시(西齋淨土詩), 명나라 때 묘협(妙) 화상이 쓴 보왕삼매념불직지(寶王三昧念佛直指), 명나라 때 화남(和南) 화상이 지은 정토생무생론(淨土生無生論), 유일하게 재가거사 작품으로 명나라 때 석두 도인(石頭道人)이라고 자칭한 원굉도(遠宏道)의 서방합론(西方合論) 등이 『정토십요』에 들어 있다. ]
우리들이 시작도 없는 태초 이래로 지어 온 악업은 한량없고 끝없소. 『화엄경』에서 말한 대로, “가령 악업이 몸통과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시방 허공계로도 다 수용하지 못할 것”임을 모름지기 알아야 하오. 그러니 어찌 한가로이 유유자적하는 수행으로 그 악업을 다 소멸시킬 수 있겠소? 그래서 사바세계의 석가모니불과 서방정토의 아미타여래 두 교주(敎主)께서, 중생이 스스로 미혹과 악업을 끊을 힘이 없음을 비통하게 여기시고, 오로지 부처님의 자비 가피력에 의지하여, 업장을 짊어진 채 극락왕생하는 정토 법문을 하나 특별히 열어 두신 거라오. 그 대자대비에 비하면, 천지(天地)나 부모라도 갠지스 강[恒河] 모래알의 총 개수 가운데 하나로 비유할 수조차 없을 것이오. 단지 부끄러운 마음과 참회하는 마음만을 기꺼이 낸다면, 저절로 부처님의 자비 가피를 받아 업장이 소멸하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오.
선도(善導) 화상께서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소.
[선도(善導) 화상: 당나라 때 광명사(光明寺) 화상으로, 하서(河西)의 도작(道綽) 법사에게서 정토 법문의 관경(觀經) 설법을 듣고 염불 법문 하나에 마음을 둔 뒤, 지성을 다하고 정신을 다 바쳤으며, 향불로 머리 지지기를 세수하듯 하였다. 장안에 올라가 출가 및 재가 수행자들에게 오로지 극락왕생을 발원하도록 적극 격려했다. 30여 년 동안 침실이 따로 없었고, 목욕할 때가 아니면 옷도 벗지 않았으며, 눈을 들어 여자를 쳐다보는 법이 없었고, 부귀공명이나 이해득실에는 조그만 염두도 일으키지 않았다. 『아미타경』을 10만여 권이나 사경(寫經)했고, 정토의 경관을 몸소 그린 담벽만도 3백여 곳이나 되었으며, 부처님 명호를 염송할 때는 입에서 광명이 발하기도 하였다. 고종(高宗) 영륭(永隆) 2년(681) 절 앞의 버드나무에 올라가 투신하여 입적했다. 사후 고종 황제가 광명사(光明寺)라는 편액을 하사했다. 저서에는 관경소(觀經疏), 왕생예찬(往生禮讚), 법사찬(法事讚), 관념법문(觀念法門), 반주찬(般舟讚) 등이 있다.]
“이해(理解) 차원의 배움 같으면, 범부의 지위에서부터 부처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법을 어느 하나 배워야 하지 않을 것이 없다. 그러나 만약 수행(修行)을 배우려고 한다면, 마땅히 진리에 부합하면서도 자신의 근기에 적합한 하나의 법문을 선택하여, 정신을 집중하고 전심전력해야, 바야흐로 실질 이익을 빨리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몇 겁이 지나도록 여전히 생사윤회를 벗어나기 어렵다.”
여기서 ‘진리에 부합하면서도 자신의 근기에 적합한 법문’이란, 믿음과 발원을 가지고 부처님 명호를 지송하면서 극락왕생을 구하는 정토 법문에 지나지 않소. 『아미타경』, 『무량수경』,『관무량수불경』을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라고 하는데, 정토의 연기(緣起)와 사리(事理)를 전문으로 설하고 있소. 그 밖의 주요 대승경전에서는, 모두 정토를 도처에서 수시로 함께 언급하고 있소.
예컨대, 『화엄경』은 여래께서 처음 정각(正覺)을 이루신 뒤 41분 법신대사(法身大士: 大士는 보살의 별칭)를 위해, 일승묘법(一乘妙法)을 있는 그대로 설하신 방대한 법문이오. 그 마지막에 선재(善財) 동자가 50여 대 선지식을 두루 참방(參訪)하여 부처의 깨달음 경지에 가지런히 이른 뒤, 보현보살이 그에게 십대원왕(十大願王)을 설해 주면서, 선재동자와 화장해회(華藏海會) 동참 대중 모두로 하여금 한결같이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부처의 과위(果位)를 원만히 성취하도록, 두루 권하는 내용으로 끝마치고 있소.
그리고 관경(觀經)의 하품하생(下品下生: 연화 9품 중 최하위에 속하는 중생)에 보면, 오역십악(五逆十惡)을 범하고 온갖 죄를 지은 악인으로, 설령 임종에 지옥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선지식이 염불을 가르쳐 주는 인연을 만나 그 가르침대로 부처님 명호를 염송하면, 열 번을 다 마치기 전에 곧 아미타불 화신이 나타나 친히 손을 내밀고 극락왕생을 인도해 주신다고 적혀 있소.
[오역(五逆): 도리(道理)에 지극히 거슬리는[逆] 다섯 가지 중죄로, 사후에 무간(아비) 지옥에 떨어져 막대한 고통을 받는다는 뜻에서,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고도 한다. 관경에 따라 대략 네 종류가 있으나, 보통 삼승(三乘)에 통용하는 소승의 오역을 일컫는다. 부친 살해, 모친 살해, 아라한 살해, 부처님 몸에 유혈 상해, 승가 화합 파괴가 그것이다. 이 다섯 죄악에 각각 상응하는 동류(同類) 오악으로, 모친이나 무학(無學) 비구니의 간음, 선정에 든 보살의 살해, 유학(有學)의 성현 살해, 부처님 부도탑의 파괴, 승가 화합의 인연 방해 등을 거론하기도 한다.
십악(十惡): 살생, 도둑질(주지 않는 물건을 가지는 것), 사음, 망어(거짓말), 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악구(惡口: 험담, 욕설), 기어(綺語: 음담패설), 탐욕, 진에(瞋: 성냄), 사견(邪見: 인과응보를 부정함)의 십불선(十不善)을 가리킨다. 수(隋)·당(唐) 이래 중국 율령에도 모반(謀反), 모대역(謀大逆), 모반(謀叛), 악역(惡逆), 부도(不道), 대불경(大不敬), 불효, 불목(不睦), 불의(不義), 내란(內亂: 근친 간음)의 십악 죄목이 별도로 있었다.]
또 『대집경(大集經)』은, “말법 시대에는 억만 사람이 수행을 하더라도, 그 중 하나도 도를 얻기가 어려우며, 오직 염불에 의지하여야만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고 설하고 있소.
이러한 경전의 가르침을 종합해 보면, 염불 법문이 최상의 성인으로부터 최하의 범부에 이르기까지 다 함께 수행하는 크나큰 도이며, 어리석은 자나 지혜로운 이 모두 누구에게나 두루 통하는 법문임을 알 것이오. 손대기가 쉬우면서 성공률이 매우 높고, 힘은 적게 들이면서 효험은 아주 빠르게 보게 되니, 이는 오로지 부처님의 자비 가피력에 의지하기 때문이오. 그래서 그 이익이 수승(殊勝)하며, 다른 모든 가르침을 훨씬 초월한다오. 옛 사람들이 “다른 법문으로 도를 배우는 것은 개미가 높은 산에 기어오르는 것 같지만, 염불 법문으로 극락왕생하는 것은 순풍에 돛단배가 물살 따라 나가는 듯하다.”고 말씀하신 비유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하겠소.
크게 깨달은 세존께서, 모든 중생이 자기의 본래 심성을 잃고 육도 윤회하면서, 무수 겁을 지나도록 헤어나지 못함을 불쌍히 여기셨다오. 그래서 무연자비심(無緣慈悲心)과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을 일으켜, 인간 세상에 몸을 나토시고 정각(正覺)을 이루신 뒤,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여러 가지 법문을 두루 설하셨소. 그러나 그 대강을 간추리자면, 크게 5종(五宗)으로 요약할 수 있소.
다섯 종파란, 바로 율종(律宗)·교종(敎宗)·선종(禪宗)·밀종(密宗)·정토종(淨土宗)을 가리키오. 율(律)이란 부처님 몸[佛身: 행동]이고, 교(敎)란 부처님 말씀[佛言]이며, 선(禪)이란 부처님 마음[佛心]이오. 부처님이 부처님인 까닭도 바로 이 세 가지 법문에 있으며,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도 바로 이 세 가지 법문일 따름이오. 중생이 정말로 부처님의 계율과 교법과 선정에 따라 수행한다면, 중생의 삼업(三業)이 곧장 그대로 모든 부처님의 청정한 삼업으로 승화한다오. 삼업이 승화하면, 번뇌가 바로 보리(菩提)이며, 생사(生死)가 곧 열반이 되오.
그런데 부처님은 또, 중생이 숙세 업장이 너무 두터워, 행여라도 쉽게 소멸·승화하지 못할까, 몹시 걱정하셨소. 그래서 다라니(陀羅尼), 삼밀(三密), 가지(加持)의 힘으로 자꾸 반복 훈습(薰習)하여, 불성(佛性)을 도야(陶冶)하도록 배려하셨소. 이는 마치 나나니벌[蜾蠃]이 뽕나무 벌레[螟蛉]에게 ‘나를 닮아라, 나를 닮아라’ 하고 축원 기도하면, 이레만에 나나니벌로 변화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오. 그래도 부처님은 또, 중생이 더러 근기가 너무도 형편없어 해탈을 얻지 못하고, 다시 한번 생명을 윤회하면 미혹과 타락을 면하기 어려울 것까지 염려하셨소.
[ 다라니(陀羅尼): 다라나(陀羅那)·다린니(陀隣尼)라고도 하며, 지(持)·총지(總持)·능지(能持) 등으로 번역한다. 좋은 법은 흩어지지 않게 잘 지니고, 나쁜 법은 일어나지 못하게 잘 지니는 힘(작용)을 뜻하는데,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부처님의 교법을 듣고 잊지 않게 지니는 법(法)다라니, 또는 문(聞)다라니
둘째, 불법의 의미와 이치를 잊지 않게 모두 지니는 의(義)다라니
셋째, 선정 중에 피어나는 비밀스런 말[秘密語]로 신령스런 효험을 지니는 주(呪)를 잃지 않게 잘 지니는 주(呪)다라니
넷째, 법의 실상(實相)에 안주하는 인(忍)을 잘 지니는 인(忍)다라니가 그것이다. 이 네 가지는 지니는 대상인 법이다. 지니는 주체의 관점에서 보면, 법과 의는 염력[念]과 지혜[慧]가 본체이고, 주다라니는 선정(定)이 본체이며, 인다라니는 분별 없는 지혜[無分別智]가 본체이다.
여기서는 특별히 밀종[眞言敎]의 주다라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람(주체)의 관점에서는 불보살의 선정력(禪定力)이 부처님의 공덕을 지니고, 법(객체)의 관점에서는 신령스런 주문(진언)이 무한히 심오한 의미와 무량공덕을 동시에 지닌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경전 가운데 나오는 주다라니는 다라니·명(明)·주(呪)·밀어(密語)·진언(眞言)의 다섯 명칭이 있는데, 뒤의 넷은 모두 의역인 셈이다]
[삼밀(三密): 신밀(身密)·어밀(語密)·의밀(意密)을 가리키는데, 여래께서 스스로 증득한 삼밀과 중생이 수행하는 삼밀로 나누어진다. 여래의 삼밀이란, 몸·말·뜻의 삼업이 본래 평등하여, 몸이 말과 같고 말이 뜻과 같아 법계에 두루 충만하므로, 법불평등(法佛平等)의 삼밀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모든 형색(形色)이 신밀이고, 모든 음성이 어밀이며, 모든 이치가 의밀이 된다. 이러한 의미는 법불(法佛)이 증득한 경지로, 범부 중에 해당 사항이 없기 때문에, ‘밀(密)’이라고 한다. 또 우리도 일체 평등으로 본래 갖추고는 있지만, 미혹과 업장으로 오염되어 깊숙이 숨어 있기 때문에 ‘밀(密)’이라고 일컫는다.
밀교의 수행은, 우리가 이미 법불의 삼밀을 갖추고 있으나 미혹과 오염으로 증득할 수 없기 때문에, 부처님의 대자비심으로 중생과 부처가 본래 평등한 삼밀을 행하도록 가르친다. 몸의 자세[印契]는 신밀이고, 입으로 염송하는 진언은 어밀이며, 생각으로 그 종자나 본존(本尊)을 관상(觀想)함이 의밀이다. 이 삼밀을 수행하면, 여래 삼밀의 가지(加持)를 받아 중생의 삼업이 여래의 삼밀과 구별없이 혼연일체가 되는데, 이를 삼밀상응(三密相應)이라고 하고, 이에 의해 모든 공덕을 성취한다.]
[가지(加持): 부처님의 힘을 연약한 중생에게 덧보태 주어, 중생을 붙들어[任持] 준다는 뜻이다. 또 부처님이 보태 주는 삼밀의 힘이 중생의 삼업을 붙들어 줌도 뜻한다. 기도(祈禱)도 부처님의 힘이 믿는 자에게 덧보태어져, 믿는 자가 그 힘을 받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기도는 곧장 가지라고 부른다. 가피(加被)와 의미가 대략 상통하나, 부처님과 중생의 상호 교감 관계를 다소 강조하는 느낌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완(小宛) 시의 “뽕나무 벌레의 자식을 나나니벌이 업어 가네, 내 그대 자식을 가르치리니, 나를 잘 닮아 가거라[螟蛉有子, 蜾蠃負之. 敎誨爾子, 式穀似之.].”는 구절에서 인용한 비유다. 나나니벌이 뽕나무 벌레를 잡아다가 그 몸속에 자기 알을 낳고 땅속에 묻어두면, 알에서 부화한 나나니벌 새끼가 그 벌레를 숙주로 먹고 자라 벌의 성충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옛 사람들이 그만 오해하여, 뽕나무 벌레가 나나니벌의 양자(養子)로 둔갑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螟蛉(子)’을 양자의 대명사로 써 왔다. 필자도 2008년경 무등산 길가에서 나나니벌이 저보다 몸집이 훨씬 큰 애벌레를 사냥해 끌고 가 흙속의 구멍(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감탄한 적이 있다.]
그래서 특별히 믿음과 발원으로 염불하여 극락왕생할 수 있는 방편 법문을 열어 놓으신 것이오. 부처님께서는 성현이나 범부나 할 것 없이, 나란히 현생에 서방정토에 왕생하길 바라셨소. 성현은 왕생하는 대로 금방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할 것이고, 범부라도 일단 왕생하면 생사윤회의 굴레를 영원히 벗어나게 된다오. 부처님의 자비 가피력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 공덕과 이익이 이처럼 불가사의하게 큰 게오.
그러나 계율은 교종·선종·밀종·정토종의 밑바탕이 되오. 따라서 금지하는 계율을 엄격히 지키지 않으면, 교종·선종·밀종·정토종의 진짜 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하오. 만 길 고층 누각을 지으면서, 그 터를 견고히 다지지 않는다면, 다 세우기도 전에 무너지고 말 것이오.
반면 정토는 율종과 교종·선종·밀종의 총 귀착지임을 알아야 하오. 마치 모든 강물이 다 바다로 흘러 모이는 것과 같은 이치오. 정토 법문은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위로 불도(佛道)를 이루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신 핵심 방편으로, 시작인 동시에 끝인 법문이라오.
[이는 신약성경 계시록(啓示錄) 끝부분에서, 하느님께서 스스로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며, 시작이요 끝이다.”(21:6)라고 말씀하신 내용과 같은 뜻이다.]
그래서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善財)동자가 보현보살의 가피와 계도(啓導)를 받아 등각(等覺)의 경지를 이미 증득한 다음,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십대원왕(十大願王)으로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부처의 과위[佛果]를 원만히 성취하도록 일깨우고, 나아가 모든 화장해회(華藏海會) 중생에게도 똑같이 권한 것이오.
그리고 『관무량수불경』에 보면, 하품하(下品下)의 중생은 이른바 오역십악(五逆十惡)을 저질러 장차 아비(무간)지옥에 떨어질 죄인인데도,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고 임종시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이나 단지 몇 번만 염송하고 목숨이 다하더라도,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적혀 있소.
이를 보면, 위로는 등각(等覺) 보살도 정토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으며, 아래로는 극악무도한 죄인조차도 정토 안에 들어갈 수 있소. 그 공덕과 이익은 부처님 한평생 모든 가르침의 위에 초월해 있소. 부처님의 한평생 모든 가르침이 한결같이 자기 힘[自力]에 의해 생사고해를 벗어나는 법문인 데 반해, 정토 법문만은 미혹을 끊지 못한 자라도 부처님의 자비 가피력에 의지하여 업장을 짊어진 채 극락왕생하며, 이미 미혹을 끊은 이는 최상의 경지를 금방 증득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법문이라오. 그래서 일반 보통 법문과 함께 나란히 비교할 수가 없다오.
원래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은 모두 오랜 옛날에 중생을 건지려는 큰 서원을 세우셨소. 다만 한 분은 혼탁한 사바 고해에서 더러움과 고통으로 완고한 죄악 중생을 조복(調伏)시켜 내보내시고, 한 분은 청정한 서방에서 평안히 거처하면서 정토 극락으로 왕생하길 발원하는 선량한 중생을 받아들여[攝受] 수행시키시는 것이오.
그대들은 단지 평범한 남정네와 어리석은 아낙네들도 염불할 수 있다는 사실만 알고, 그만 정토를 무시하고 마는데, 어찌하여 경전의 부처님 설법은 보지 않소?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보현보살이 선재 동자와 화장해회 대중 모두에게, 한결같이 십대원왕으로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권하지 않소? 화장해회 대중에는 범부나 성문·벽지불이 하나도 없고, 41분 법신대사(法身大士)는 모두 무명(無明)을 깨뜨리고 법성을 증득하여, 본래의 원력으로 부처가 없는 세계에 부처로 몸을 나톨 수 있는 분들이오.(‘나토다’는 본디 ‘화현(化現)’의 뜻을 지닌 고어(古語)인데, 우리 불교계에선 흔히 ‘나투다’로 잘못 쓰고 있다.) 또 화장해(華藏海) 세계에는 정토가 무수히 많은데도, 반드시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회향하는 것을 보시오. 과연 극락왕생이야말로 고해를 벗어나는 현묘한 법문이며, 부처가 되는 지름길임을 알 수 있소. 그래서 예로부터 지금까지 선종·교종·율종의 모든 총림(叢林)에서, 아침저녁으로 예불하며 부처님 명호를 지송하여 서방 왕생을 발원해 오고 있는 것이오.
일체의 중생이 본래 여래의 지혜 덕상(智慧德相)을 지니고 있소. 다만 진짜를 놓치고 허깨비를 좇아 깨달음을 등진 채 홍진에 빠진 결과, 온통 번뇌 악업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오. 그래서 오랜 세월토록 생사윤회를 되풀이한다오. 여래께서 이를 불쌍히 여겨, 온갖 법문을 설하신 것이오. 중생이 허깨비로부터 진짜로 되돌아와, 홍진을 훌훌 털고 깨달음에 이름으로써, 그 번뇌 악업이 다시 통째로 지혜 덕상을 회복하여, 미래세가 다하도록 고요한 광명[寂光]에 안주하기만 바라셨소. 마치 물이 응결하면 얼음이 되고, 얼음이 녹으면 다시 물이 되듯이 말이오. 본체는 다르지 않지만, 작용은 실로 하늘과 땅 차이라오.
그런데 중생은 근기의 상하가 다르고, 미혹의 정도도 가지각색이라, 각각 근기와 인연에 맞추어 실익을 얻도록 해야 하오. 그래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이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수없이 많소. 그 가운데 지극히 원만하고 지극히 단박 성취하며[頓], 가장 미묘하고 가장 심오하면서도, 손대기는 쉽고 성공률은 높으며, 힘은 적게 들이고 효과는 빨리 얻으며, 아울러 상중하 모든 근기의 중생에 두루 적합하고 모든 법문을 총망라하여, 최상의 성인이나 최하의 범부가 함께 수행하고 나란히 공덕을 성취하는 법문은, 정토만큼 수승한 게 없다오.
어찌 이렇게 말하겠소? 일체의 법문은 비록 돈오나 점수, 권변(權變)이나 실체(實體)의 차이가 나지만, 모두 수행의 공덕이 깊어져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해야만, 생사고해를 벗어나 성인의 경지에 들 수가 있소. 이는 오로지 자신의 힘에 의지하고 달리 의탁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가령 미혹이 조금만 남아 있어도 여전히 윤회하게 되오. 그리고 이 모두 이치가 몹시 심오하여, 쉽게 학습 수행할 수 없소. 때문에 숙세의 영민한 근기와 특수한 인연이 없는 자는, 단 한 번의 금생으로 증득하기 몹시 어렵소.
오직 정토 법문만이 빈부귀천이나 남녀노소·지우승속(智愚僧俗)·사농공상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익혀 수행할 수 있소. 아미타불께서 대자비의 원력으로 사바고해의 중생을 모두 맞이해 주시기 때문에, 다른 모든 법문과 비교해도, 공덕을 성취하고 과보를 얻기가 가장 쉽다오.
중생의 일념 심성은 부처와 둘이 아니오. 비록 미혹 속에 빠져 깨닫지 못하고, 망상을 일으켜 악업을 짓더라도, 본디 갖추고 있는 불성은 조금도 줄어들거나 변하지 않소. 비유하자면, 마니보주(摩尼寶珠)가 측간 밑에 떨어져 똥 속에 묻힌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소. 어리석은 자는 보배구슬인 줄 모르고, 똥과 같이 취급하고 말 것이오.
[마니보주(摩尼寶珠): 마니(摩尼)는 말니(末尼)라고도 표기하며, 보통 주보(珠寶)·이구(離垢: 티끌을 떠남, 청정)·여의(如意: 뜻대로 됨) 등으로 번역한다. 따라서 마니보주란 흔히 말하는 ‘여의주’로 이해하면 된다. 참고로 『본업영락경(本業瓔珞經)』에서 삼현십성(三賢十聖: 十地의 성자를 10성이라 하고, 그 이전 단계의 30位를 3현이라 부른다)의 과보를 철륜왕(鐵輪王) 등의 명칭으로 비유하는데, 천태종에서 이 경의 내용에 바탕을 둔 6륜을 세웠다. 즉 철륜(鐵輪)은 십신(十信), 동륜(銅輪)은 십주(十住), 은륜(銀輪)은 십행(十行), 금륜(金輪)은 십회향(十廻向), 유리륜(琉璃輪)은 십지(十地), 마니륜(摩尼輪)은 등각(等覺)의 경지에 각각 상응한다. 참고로, 단군의 제천(祭天)의식을 봉행하는 민족의 성지 참성단(塹星壇: 의미상 參聖壇이나 參星壇?)이 있는 강화도 마니산이 바로 이 뜻이다. 헌데 기독교 광신자들이 이 ‘마니산’을 ‘마리산’으로 바꾸려고 억지횡포를 부렸는데, 어느 신심 돈독한 불자님의 적극적인 호법(護法)항거로 가까스로 저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그것이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보배[無價之寶]인 줄 알고서, 똥이 더럽다고 싫어하는 마음 없이 그것을 측간 속에서 건져 올려, 갖은 방법으로 깨끗이 씻고 닦아 높은 깃대 위에 걸어 놓을 것이오. 그러면 곧 커다란 광명을 발하면서, 사람이 원하는 대로 각종 보물을 쏟아내게 되오. 그때사 어리석은 자는 그걸 보고서야, 비로소 보배임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오.
크게 깨달으신 세존께서 중생을 보시는 것도 이와 똑같소. 설사 제아무리 혼침하고 미혹하여, 오역십악의 죄를 다 짓고 영원히 삼악도에 떨어진 중생이라도, 부처님은 한 순간 한 생각도 그를 내 버리시는 마음이 없소. 반드시 시기와 인연이 무르익길 기다려, 그윽한 가피력과 현저한 설법을 베푸시어, 중생이 허망한 미혹의 악업을 끊고 항상 진실한 불성을 깨달아, 무상보리를 원만히 증득하도록 이끄시고야 만다오. 극악무도한 죄인에게도 오히려 이러하시거늘, 하물며 악업이 작은 자나 계율과 선행을 함께 닦은 자와 선정의 수행력이 깊은 이는 말할 것이 있겠소?
무릇 삼계(三界) 안에서는, 비록 몸과 마음을 잘 추슬러 견고히 다잡고 모든 번뇌와 미혹을 조복시킨 사람이라도, 감정의 종자[情種]가 아직 남아 있기 마련이오. 때문에 그도 복덕의 과보가 일단 다하면, 하계(下界)로 내려오게 되오. 그러면 각종 경계와 인연을 만나, 다시 미혹을 일으키고 악업을 짓게 되며, 그로 말미암아 고통을 불러오고 육도 윤회가 그칠 날이 없게 되오.
그래서 『법화경』에서 “삼계가 편안치 못함이 마치 불타는 집과 같으니, 뭇 고통 충만함이 몹시도 두려워할 만하다.”고 말씀하셨소. 업장이 다하고 감정이 텅 비어,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한 자가 아니라면, 이 삼계를 벗어날 가망이 없소.
그런데 오직 정토 법문만큼은, 단지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만 갖추고 나무아미타불의 명호를 지송하면, 부처님의 자비 가피력에 의지해 서방 정토에 왕생할 수 있소. 일단 왕생하면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 부처님과 똑같이 받아 쓰게[受用] 된다오. 범부의 감정과 성인의 견해 둘 모두 생겨나지 않으니, 천만 번 확실하고 견고하며, 만에 하나도 누락하지 않는 특별 법문이라오. 지금 말법시대에 즈음하여, 이 법문을 놓고서는 별다른 방도가 없음을 알아야 하오.
불광(佛光)이란, 십법계(十法界)의 평범한 중생과 성인 부처가 마음 자체에 본래 지니고 있는 지혜의 본체[智體]라오. 이 본체는 영명(靈明)스럽고 통철(洞徹)하며, 맑고 고요히 항상 존재하오.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소. 세로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를 관통하여 시간을 구분지으며, 가로로 시방 세계에 두루 퍼져 공간을 감싸 버린다오. 텅 비었다[空]고 말하기에는 만 가지 공덕을 너무 원만히 나토며, 있다[有]고 말하기에는 한 티끌조차 전혀 세우지 않는다오. 일체의 법(法)에 스며있으면서, 일체의 모습[相]을 떠난 것이오. 범부라고 줄어드는 법도 없고, 성인이라고 더 늘어나지도 않소. 비록 오안(五眼)으로도 볼 수 없고, 사변(四辯)으로도 표현할 수 없지만, 법(法)마다 모두 그 힘을 이어받고, 도처에서 누구나 그를 만날 수 있소.
[십법계(十法界): 보통 현교(顯敎)에서는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육도 중생(凡)과 성문·벽지불·보살·부처의 4성인을 통칭한다. 밀교(密敎)에서는 아수라가 빠지고, 대신 부처가 권불(權佛: 화신불)과 실불(實佛: 법신불)로 나눠진다.]
[오안(五眼): 육안(肉眼)·천안(天眼)·혜안(慧眼)·법안(法眼)·불안(佛眼). 경전에 따라서는 더러 혜안과 법안의 순서가 뒤바뀐 경우도 있음.]
[사변(四辯): (보살이) 법의 의미를 막힘없이 잘 설하는 네 가지 재주로, 보통 말[口業]의 관점에서 사무애변(四無礙辯)이라고 하나, 두뇌[意業]의 관점에서 사무애지(智) 또는 사무애해(解)라고도 한다. 첫째, 문구로 해석하는 교법(敎法)에 막힘없는 법(法)무애, 둘째, 교법이 해석한 의미와 이치를 막힘없이 아는 의(義)무애, 셋째, 각 지방의 언사에 통달하여 자유자재로운 사(辭 또는 詞)무애, 넷째, 앞의 세 가지 무애지로 중생에게 막힘없이 설법하기를 즐겨하는 낙설(樂說: ‘요설’로 읽을 수 있음)무애 또는 변설(辯說)무애가 그것이다. 또 바른 이치[正理]에 들어맞는 막힘없는 말을 변무애(辯無礙)라고 한다.]
다만 중생이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불광(佛光)을 받아 쓸 수 없는 것이오.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 불가사의한 힘을 받아 미혹을 일으키고 악업을 지으며, 업장으로 말미암은 고통을 당하면서 끊임없이 생사윤회를 되풀이하는 거라오. 항상 존재하는 진실한 마음[眞心]을 가지고, 나고 죽는 허깨비 같은 과보[幻報]를 받는 셈이라오.
비유컨대, 사람이 술에 몹시 취하면 천지가 빙빙 도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천지는 돌지 않는 것과 같소. 또 길손이 길을 잃으면 사방이 뒤바뀐 듯 생각하지만, 역시 사방은 바뀌지 않은 것과 같소. 이는 완전히 허망한 업장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따름이지, 진실한 법[實法]은 얻을 만한 게 하나도 없소. 그래서 석가세존께서 부처의 도를 성취하여 불광(佛光)을 완전히 증득하셨을 때, 이렇게 탄식하신 것이오.
“참으로 기이하고 또 기이하도다. 일체의 중생이 모두 여래의 지혜 덕상을 갖추고 있건만, 단지 망상과 집착 때문에 증득할 수 없구나.”
만약 망상과 집착만 떠난다면, 일체의 지혜[一切智], 자연의 지혜[自然智], 막힘없는 지혜[無礙智]가 저절로 앞에 나타날 것이오. 또 『능엄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소.
“미묘한 성품, 원만한 광명, 모든 이름(개념)과 모습(형상)을 떠나 있으니, 세계니 중생이니 본래 존재하는 게 아니다. 단지 허망으로 말미암아 생겨남이 있고,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사라짐이 있다.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허망이라 부르고, 이러한 허망이 사라지는 것을 진실이라고 한다.”
이는 여래의 더할 나위 없는 보리[無上菩提]와 대열반이라는 두 전의(轉依)를 일컫는 호칭이오. 한편 반산(盤山) 스님은 이렇게 읊었소.
[전의(轉依): 보리와 열반의 두 과보를 가리킨다. 전(轉)은 사물의 인연에 따라 생기는 변화를 뜻한다. 제 8식(아뢰야식)에는 번뇌와 알음알이[所知]라는 두 장애의 종자와 함께, 무루지(無漏智: 보리)와 열반이라는 실성(實性)이 동시에 갖추어져 있다. 여기에서 두 장애의 종자를 놓아버리고[轉捨] 보리와 열반을 얻는[轉得] 수행이, 제 8식에 의지해 일어나는 전환 변화라는 의미에서, 전의(轉依)라고 부른다. 또 이렇게 얻은 보리와 열반의 미묘한 과보를 가리키기도 한다. 즉, 미혹의 의지처[迷依]를 깨달음의 의지처[悟依]로 전환[轉]시킨다는 의미이다. 법성종에서는 법상종의 제 8식 대신에 진여(眞如)라는 개념을 쓰기도 한다.]
“마음의 달 홀로 둥그러니 떠, 그 빛 만물을 다 집어 삼키네.
빛이 경계를 비추는 것도 아니고, 경계 또한 존재하지도 않네.
마음과 경계 모두 존재하지 않는데, 다시 무슨 물건이 있으랴?”
그리고 위산(潙山) 선사는 이렇게 말했소.
“신령스런 빛 홀로 빛나면서,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을 모두 벗어났네.
그 자체 항상스런 진리[眞常]를 드러내며, 말과 글에 구애받지 아니하네.
마음과 성품은 물듦이 없이 본디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져 있으니,
단지 잡념 망상만 떠나면 그대로 여여부동(如如不動)한 부처인 것을!”
이렇게 보면,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갖가지 설법과 가르침은, 한결같이 중생이 본디 지니고 있는 심성을 미혹에서 깨달음으로 되돌이켜, 원래 근본 자리를 찾으라고 가리킴을 알 수 있소. 그런데 중생은 근기의 우열이 상당히 다르고, 미혹의 정도도 각양각색이오. 그래서 갖가지 가르침으로 일깨워 주고 다양한 법문으로 고쳐 주지 않으면, 미혹의 구름이 텅 빈 본성을 뒤덮고 있을 터이니, 어떻게 하나하나 자기 마음의 달을 분명히 보게 만들 수 있겠소?
그래서 여래께서 맨 처음 불도를 이루신 뒤, 『대화엄경』을 연설하사 곧장 사바세계 바깥의 큰 법을 말씀하셨소. 먼저 숙세의 근기가 뛰어나고 인연이 무르익은 법신대사들에 한하여, 항상스런 진리를 증득하여 깨달음의 언덕에 오르도록 이끄신 것이오. 그 다음 근기가 둔한 중생을 순순히 잘 유도하시면서, 그들에게 걸맞는 오계(五戒) 십선(十善)을 연설하여, 인간과 천상의 두 부류에게 불도에 들어가는 훌륭한 인연을 맺도록 하셨소. 또 사제(四諦)·십이인연(十二因緣)·육도만행(六度萬行)으로, 성문·벽지불·보살의 세 부류에게 불도를 빨리 증득하는 인연을 베풀기도 하셨소.
이렇게 아함경(阿含經)으로부터 시작하여 반야경(般若經)에 이르기까지, 중생의 근기에 따라 맞추어 설법하지 않음이 없소. 이는 모두 점차 수행을 증진하여, 본래 심성의 집에 되돌아가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이오. 그러나 이때는 부처님의 본래 회포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 은밀히 감추어져 있었소.
법화회상(法華會上)에 이르러, 권법을 열어 실법을 드러내고[開權顯實], 흔적을 열어 본체를 드러내셨소[開迹顯本]. 여기에서 비로소 인간과 천상, 권법과 소승을 모두 일승(一乘)으로 포용하여, 세 근기의 중생에게 두루 수기(授記)를 내리시고, 출세간(出世間)의 본래 회포를 크게 펼치셨소. 그래서 맨 처음의 『화엄경』과 수미쌍관(首尾雙關)을 이루면서 처음과 끝이 서로 부합하게 되었으니, 하나의 대사인연(大事因緣) 전체를 남김없이 모두 전하고 당부하신 셈이오.
그런데 또 말세 중생은 근기가 너무도 형편없어,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는 사람이 거의 없소. 그래서 여래께서 다시 정토 법문 하나를 특별히 열어 놓으셨소. 상중하 모든 근기의 중생이 성현이나 범부를 가릴 것 없이, 현생에 곧장 이 사바 고해를 벗어나 저 극락세계에 왕생한 다음, 거기서 점차 무량 광명과 무량 수명의 부처를 증득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이오. 이러한 대자대비심은 실로 더할 나위 없이 지극하고 심오한 것이라오.
불법은 바다처럼 몹시 넓고 깊으니, 어떤 범부중생이 그 근원을 철저히 궁구하여 한 입에 싹 흡수할 수 있겠소? 그렇지만 올바른 신심을 낸다면, 각자 자기의 분수와 역량에 맞는 이익을 얻을 수 있소. 마치 코끼리나 모기가 바닷물을 들이킬 때, 각자 자기 배를 채우고 나면 그만이듯 말이오. 여래께서 세상에 나와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법하여, 각자 이익을 얻도록 하신 것도 이와 마찬가지오.
그런데 말세의 중생은 업장이 몹시 두터운데다가, 선근(善根)은 매우 얕고 마음은 좁으며, 지혜는 보잘 것 없고 수명은 짧기 그지없소. 게다가 선지식은 몹시 드물고, 악마와 외도는 종횡무진하고 있소. 다른 법문을 수행하여, 현생에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며 생사윤회를 벗어나기란, 실로 몹시 어렵고도 드문 일이오.
오직 정토 법문 하나만큼은 오로지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 수행의 성공이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했느냐를 따지지 않고, 다만 믿음과 발원에만 달려 있소. 믿음과 발원만 갖추면, 비록 아비지옥에 떨어질 극악무도한 죄인이라도, 열 번만 지극하고 간절히 염불하면, 부처님 자비 가피를 받아 극락왕생할 수 있다오. 여래의 대자대비가 한 물건도 남김없이 두루 제도하는 줄은 정말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가운데 이 정토 법문이 특히 가장 주도면밀하고 진지함은, 감탄스럽기만 하오.
염불 법문의 유래는 진실로 오래 되었소. 우리들의 일념 심성(一念心性)이 허공처럼 항상 불변하기 때문이오. 비록 항상 불변하지만, 또한 일념 일념이 인연에 따르지요. 그래서 부처 세계의 인연에 따르지 않으면, 아홉 중생계의 인연에 따르게 되고, 성문·벽지불·보살의 삼승 인연에 따르지 않으면 곧 육도 중생의 인연에 따르게 되며, 인간과 천상의 인연에 따르지 않으면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 인연에 따르게 되오.
따르는 인연의 청정과 오염이 다르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은 과보도 판이할 수밖에 없소. 비록 본체는 전혀 변하는 게 없지만, 그 작용과 형상은 천양지차가 나는 것이오. 비유하자면, 허공에 해가 비치면 밝고, 구름이 끼면 어두운 것과 같소. 허공의 본체는 비록 구름이나 해로 말미암아 늘거나 줄어드는 법이 없지만, 밝게 드러나고 어둡게 가려지는 모습은 함께 나란히 말할 수 없지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여래께서 중생에게 부처를 생각[念佛]하는 인연을 짓도록 두루 권하셨소.
“만약 중생의 마음이 부처를 기억하고[憶佛] 부처를 생각하면[念佛], 현재와 미래에 반드시 부처를 보게 되고, 부처와 멀리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부처와 여래는 법계의 몸[法界身]으로, 모든 중생의 마음 생각[心想] 가운데 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음으로 부처를 생각할 때, 이 마음이 곧 32상(相) 80수형호(隨形好)이다. 이 마음으로 부처를 지으면,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다. 모든 부처의 정변지(正 知) 바다도 마음 생각으로부터 생겨난다.”
[정변지(正徧知):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의 번역으로, 정변각(正徧覺)·정변지(正徧智)라고도 함. 의미상 삼먁삼보리(三藐三菩提)의 번역인 정등각(正等覺)과 비슷함.]
무릇 부처 세계의 인연에 따르면, 이 마음으로 부처를 짓고, 이 마음이 곧 부처가 되는 것이오. 반면 중생계의 인연에 따르면, 이 마음으로 중생을 짓고, 이 마음이 곧 중생이 되는 것이오. 이러한 이치를 알면서도 부처를 생각[念佛]하지 않을 자는 없을 것이오.
염불 법문은 여래의 만덕을 갖춘 위대한 명호[萬德洪名]를 인연으로 삼소. 아미타불(阿彌陀佛)이라는 명호는, 바로 여래께서 과보의 자리[果地]에서 증득한 위없는 깨달음의 길[無上覺道]이오. 아미타불이라는 과보 자리의 깨달음으로, 염불 수행이라는 원인 자리[因地]의 마음을 삼았소. 그때문에 원인은 과보의 바다를 포괄하며, 과보는 원인의 근원을 관철할 수 있는 것이오.
마치 향기가 밴 사람은 몸에서 향 내음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요. 또 나나니벌이 뽕나무 벌레를 업어다가 ‘나를 닮아라’고 으레 축원하면, 마침내 나나니벌로 변화한다는 옛 시구와도 비슷하오. 염불 법문이 현생에 부처를 짓고, 평범한 중생을 성인으로 탈바꿈시키는 기능과 힘은, 부처님이 한평생 설하신 모든 가르침의 법문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오.
다른 모든 법문은, 모두 자기 힘에 의지하여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해야, 비로소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있소. 하지만 염불 법문만은 자기의 힘[自力]과 부처님의 가피력[佛力] 두 가지를 모두 갖추었소. 그래서 이미 미혹을 끊고 업장을 소멸시킨 수행인은 법신(法身)을 금방 증득할 수 있고, 미혹과 업장을 아직 청산하지 못한 중생도 그대로 짊어진 채 극락왕생할 수 있다오.
이 법문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어서, 어리석은 아낙이나 머슴조차 그 이익을 직접 얻을 수 있소. 하지만 다른 한편 지극히 그윽하고 미묘하여, 등각(等覺) 보살이라도 그 범위 밖으로 벗어날 수 없다오. 그래서 어느 누구라도 수행하지 못하거나, 수행할 수 없는 사람은 전혀 없소. 손대기는 쉬우면서 성공률은 높고, 힘은 적게 들이면서 효험은 재빨리 얻게 되니, 실로 여래의 한평생 가르침 가운데 가장 특별한 법문이라오. 따라서 보통의 다른 교리나 수행 법문과 함께 비교하거나 평론할 수 없다오. 말법시대 중생이 복은 적고 지혜는 얕으며, 업장은 두텁고 죄악은 무거운데, 이 정토 법문을 수행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힘에 의지하여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한 뒤 생사윤회를 벗어나려고 생각한다면, 정말 천만번 어렵고 어려운 일이오.
불교가 중국에 전래한 뒤, 여산(廬山)에 백련사(白蓮社: 연화정토 결사)가 창설되어 한 사람이 제창하자 백여 명이 화답했소.
[동진(東晋) 때 혜원(慧遠) 대사가 도안(道安) 스승에게 대승 불교의 오묘한 뜻을 배운 뒤, 사회 혼란으로 형주(荊州)를 거쳐 여산에 이르렀다. 그의 사형제인 서림사(西林寺)의 혜영(慧永)이 자사(刺史) 환이(桓伊)에게 동림사(東林寺)를 창건하도록 권해, 혜원이 거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당대의 이름 높은 재가 거사 123인과 함께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여, 무량수불상 앞에서 정토 법문을 함께 수행하였다. 법성론(法性論)을 지어 열반상주(涅槃常住)의 설을 제창하였으며, 30년 동안 여산 밖으로 나가지 않다가, 안제(安帝: 서기 416년) 때 83세로 입적했다.]
그 뒤를 이어 많은 이가 정토 법문을 수행해 왔는데, 큰 공덕이 현저한 분으로 우선 북위(北魏)의 담란(曇鸞) 대사가 있소. 담란은 헤아릴 수 없이 신비한 분이오. 무슨 사정으로 남조(南朝)의 양(梁) 무제(武帝)를 만난 뒤 북쪽으로 돌아가자, 양 무제가 수시로 북쪽을 향해 머리를 조아려 절하며, “담란 법사는 육신 보살이시다.”라고 말했다는 거요.
[담란(曇鸞): 란은 더러 巒으로 씀. 안문(雁門) 출신으로, 처음에 사제(四諦)의 불성을 연구하여, 대집경(大集經)의 주해(註解) 작업을 하다가 중간에 질병에 걸렸다. 그래서 장생의 도[長生之道]로 불교의 이치를 연구하기 위해, 신선법[仙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대통(大通: 양 무제의 세 번째 연호. 527〜8년) 연간에 양(梁)나라에 가서, 도은거(陶隱居)를 만나 선경(仙經) 열 권을 얻은 뒤, 명산에 들어가 그 법대로 수행하려고 길을 가다가, 낙하(洛河)에 이르러 천축(天竺) 삼장인 보리류지(菩提留支)를 만나 물었다.
“불경 가운데도 이 선경보다 더 훌륭한 장생불사의 법이 있습니까?” 그러자 류지가 침을 땅에 뱉으며 대답했다. “이 무슨 말씀이오? 이 지방 어느 곳에 장생법이 있단 말이오? 설사 장생을 얻는다고 할지라도, 끝내 삼계에 윤회할 따름이오.” 그리고는 『관무량수경』을 담란에게 건네주면서, “이것이야말로 대신선의 방법[大仙方]이오.”라고 일러 주었다. 이에 담란이 머리 숙여 받은 뒤, 선경은 곧 불사르고, 일심(一心)으로 정토 법문을 수행하였다.
북위(北魏)의 임금이 그를 중히 여겨 ‘신란(神鸞)’이라는 호를 하사하고, 병주(幷州)의 큰 절에 거처하도록 분부했다. 만년에 북산(北山) 석벽(石壁) 현중사(玄中寺)로 옮겼다가, 동위(東魏) 흥화(興和) 4년(542) 평주(平州)의 요산사(遙山寺)에서 67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저서에 왕생론주(往生論註)와 찬아미타불게(贊阿彌陀佛偈)가 있고, 스스로 현감 대사(玄鑒大士)라 불렀다. 정토진종(淨土眞宗)의 제 3조(祖)이다.]
진(陳) 나라와 수(隋) 나라 때에는 지자(智者) 대사가 있었소. 또 당(唐) 나라 때는 도작(道綽) 대사가 담란 대사의 교화를 뒤이어 정토 법문을 전념으로 닦았는데, 한평생 정토삼부경을 강의한 횟수만도 2백 번이나 된다오. 도작의 문하에 선도(善導) 화상이 나왔으며, 승원(承遠)·법조(法照)·소강(小康)·대행(大行) 스님에 이르러서는, 연화정토의 기풍이 안팎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소.
[지자(智者): 천태종 지의(智顗) 대사의 덕호(德號). 7세 때 절에 갔다가, 스님이 입으로 전수해 주는 「관세음보살보문품」을 한 번에 독송하였으며, 18세에 출가하여 20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처음에는 혜광(慧曠) 스님으로부터 계율을 배우면서 방등경(方等經) 등을 익혔다. 진(陳) 문제(文帝) 천가(天嘉) 원년(560) 광주(光州) 대소산(大蘇山)에 머물던 사(思) 선사를 찾아가 절하자, 사 선사는 “옛날 영산(靈山)에서 『법화경』을 함께 들었더니, 숙세의 인연 따라 오늘 다시 찾아왔구려.”라고 반기면서, 보현도량법(普賢道場法)을 보여 주고 『법화경』 4안락행(四安樂行)을 설해 주었다. 이에 대사는 밤낮으로 정진하여, 14일째 “이것이 참 정진이며, 진법공양여래(眞法供養如來)라고 부른다.”는 구절을 독송하는 순간, 몸과 마음이 활연히 열리며 선정에 들어 법화세계를 관조하였다. 그러자 사 선사가 이렇게 감탄하였다.
“그대가 아니면 증득할 수 없고, 내가 아니면 알아줄 수 없으니, 그대가 들어간 선정은 법화삼매(法華三昧)의 전방편(前方便)이고, 그로부터 생기는 공덕은 초선다라니(初旋陀羅尼)일세. 설령 문자에 통달한 천만 대중의 스승이라도, 그대의 변재(辯才)를 다할 수 없으리니, 그대는 설법하는 사람 가운데 최고 제일이 되리라.”
광대(光大: 陳廢帝 연호) 원년(567) 법희(法喜) 등 27인과 함께 처음으로 진나라 수도 금릉(金陵)에 이르렀다(30세). 태건(太建: 宣帝 연호) 원년(569) 심군리(沈君理)의 청으로 와관사(瓦官寺)에 머물며 법화경을 설하고, 전후 8년 동안 『대지도론(大智度論)』과 선문(禪門)을 강설하였다. 태건 7년(575) 처음 천태산(天台山)에 들어가 안거하였는데, 2년 뒤 황제가 조세로 절을 창건하도록 분부하고, 이듬해 수선사(修禪寺)라는 호칭을 내렸다. 황제의 요청으로 『석론(釋論)』과 인왕(仁王)·반야경/『인왕경』과 『반야경』 등을 강론하였다.
수(隋)나라 개황(開皇) 11년(591) 진왕(晋王)이 건강(建康: 금릉)을 평정한 뒤 대사를 초빙하자, 대사는 진왕과 숙세의 인연이 있다고 나아가, 보살계를 수여하며 총지(總持)라고 칭송하였다. 진왕은 대사에게, 불법의 등불을 전하니 ‘지자(智者)’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화답하였다. 이듬해 형주(荊州)에 이르러, 대지의 은혜(地恩)에 보답하기 위해, 옥천산(玉泉山)에 일음정사(一音精舍)를 건립하였다. 나중에 옥천사로 이름을 바꾼 뒤, 법화현의(法華玄義)와 마하지관(摩訶止觀)을 차례로 설하였다. 진왕이 조정에 들어가면서 대사도 천태산으로 되돌아갔는데, 개황 17년(597) 진왕이 번(藩)으로 돌아가면서 초빙하자, 산을 나오다가 질병을 만나 60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법공보각영혜존자(法空寶覺靈慧尊者)라는 시호를 받았다.]
[도작(道綽): 당나라 때 병주(幷州) 현중사(玄中寺) 스님. 문수(汶水) 출신이며 서하(西河)라 일컬었다. 14세에 출가하여 열반경을 강설하였는데, 석벽(石壁) 현중사에 갔다가 담란 대사의 비문(碑文)을 읽고 크게 감명받아, 그때부터 『열반경』 강설을 그만두고 오로지 염불 수행에 전념했다. 『관무량수경』을 2백여 번 강설하여 승속을 두루 교화하였으며, 『안락집(安樂集)』 두 권을 지었다. 당 태종(太宗) 정관(貞觀) 11년(645) 입적했으며, 연종(蓮宗: 정토종)의 제 4조(祖)로 불린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종파의 선지식들이 정토의 도로써 은밀히 닦아 두드러지게 교화를 펴면서, 자신과 중생을 두루 이롭게 하기 시작했소.
선종 같은 경우에는, 돈오의 지극한 향상일로(向上一路)만을 오직 제시[單提]하기 때문에, 한 법도 세우지 않아 부처조차 설 자리가 없소. 하물며 염불로 정토에 왕생하길 바라겠소? 이는 하나를 없애면 일체가 모두 없어지는 진제(眞諦)로서, 이른바 한 티끌도 받지 않고 성품의 본체[性體]를 드러내는 실제 진리의 자리[實際理地]라오.
그러나 수행을 확실히 논하자면, 한 법도 폐지할 수 없소.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한 끼 밥도 먹지 말라고 하는데, 하물며 염불로 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폐지하겠소? 이는 한 법을 세우면 모든 법이 다 서는 속제(俗諦)로서, 이른바 불교 문중에서는 한 법도 버리지 않고 성품의 모습[性具]을 드러낸다는 것이오.
만약 반드시 속제를 내버리고 진제를 말하겠다고 나서면, 이는 이미 진제가 이니오. 육신도 존재하지 않는데, 마음이 어디에 깃들어 있겠소? 속제에 부닥쳐서 진제를 밝히는 것이야말로, 진실한 진제일 것이오. 눈을 통해서는 보고 귀를 통해서는 듣는 것처럼, 사대와 오온을 통해서 심성이 드러나는 것이오.
이상이 예로부터 여러 조사들이 정토 법문을 은밀히 닦아온 대강의 요지라오. 다만 기록으로 널리 드러내어 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조사들의 본래 의도를 깊이 헤아려 알 수 없었던 게오.
그러나 백장(白丈) 선사는 병든 스님을 위한 기도와 입적한 스님을 화장하는 법을 모두 정토에 귀의하도록 규정하였으며, “수행은 염불이 든든하다.”고 말했소. 진헐(眞歇) 청료(淸了) 선사는 “정토 법문은 최상의 근기를 직접 받아들이며, 중하 근기의 부류도 함께 끌어들인다.”고 말했소. 또 “조동종(曹洞宗) 문하에서는 모두 은밀한 수행에 힘쓰는데, 정토 법문으로 부처를 보기가 선종에서는 더욱 간단하고 쉽기 때문이다.” “부처나 조사나, 교종이나 선종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정토 법문을 수행하여 한 근원으로 함께 돌아간다.”고도 말했소.
그리고 영명(永明) 대사는 고불(古佛)의 화신으로, 원력을 타고 세상에 나오신 분이오. 이 분이 바야흐로 뚜렷한 말로 가르침을 설하고, 글을 써서 널리 전하게 되었소. 그러고도 수행자들이 길을 뚜렷이 구별하지 못해 이해득실이 혼란스러워질까 두려워하여, 사료간(四料簡: 禪과 淨土의 有無를 네 범주로 나눈 간단한 법문)이라는 게송 한 편을 지어 간단명료하고 지극하게 설법하셨소. 이는 팔만대장경의 으뜸 요강이자, 갈림길을 바로 인도하는 스승이라 할 것이오. 수행자들에게 80자밖에 안 되는 짧은 게송으로, 생사윤회를 벗어나 열반을 증득하는 요긴한 길을 단박에 깨닫도록 이끄시니, 중생을 제도하려는 그의 노파심은 천고에 다시없을 것이오.
그 뒤로는 여러 종사(宗師)들이 모두 분명한 말로 이 정토 법문을 두드러지게 찬탄하는 가르침을 펼쳤소. 예컨대 천의(天衣) 의회(義懷: 989∼1060, 송대 운문종 선사), 원조(圓照) 종본(宗本: 1020∼1099, 의회 선사의 법사(法嗣, 신종과 철종의 조서를 받음), 대통(大通) 선본(善本: 종본 선사의 법사), 장로(長蘆) 종이(宗頤: 운문종 응부(應夫) 선사 제자, 참선과 정토의 겸수(禪淨兼修)를 주장, 저서 「선원청규(禪苑淸規)」 안에 아미타불십념법(阿彌陀佛十念法)을 규정함.), 중봉(中峯) 명본(明本: 1263∼1323, 원대(元代) 임제종 고봉 원묘 선사의 법사, 광록(廣錄) 30권이 대장경에 수록됨.), 천여(天如) 유칙(惟則: ?∼1354, 원대 임제종 명본 선사의 법사, 정토혹문(淨土或問)을 지어 염불 선양), 초석(楚石) 범기(梵琦: 1296∼1370, 원나라 말기 선사, 어록 20권과 서재정토시(西齋淨土詩) 3卷이 유명함), 공곡(空谷) 경륭(景隆: 명나라 임제종 선사) 등 여러 위대한 조사들께서, 비록 선종의 법맥을 이어 전하면서도, 정토 염불을 특히 두드러지게 찬탄하셨소.
연지(蓮池) 대사는 소암(笑巖) 선사를 참방하여 크게 깨달은 뒤, 바야흐로 선종을 접어두고 정토 염불을 위주로 삼았소. 정토 법문의 수행이 완성되면, 선종은 저절로 함께 얻어지기 때문이라오. 비유하자면, 큰 바닷물에 목욕한 자는 반드시 모든 강물을 다 쓴 셈이오. 또 몸소 함원전(含元殿: 당나라 때 長安 大明宮의 正殿) 안에 들어선 사람은 다시 장안을 물을 필요가 없는 거와 다름없는 이치라오.
그 뒤 우익(蕅益)·절류(截流)·성암(省庵)·몽동(夢東) 등 여러 위대한 조사들도 모두 다 그러하였소. 법도 시대에 따라 적응해야 하고, 교화도 근기에 맞추어 베풀어져야 함은 당연하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중생을 제도할 수 없기 때문이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이후로는 불법이 점차 쇠미해지고, 나라 상황도 어수선한 일이 많이 생겨, 법륜(法輪: 진리의 수레바퀴)이 거의 멈춰 버렸소. 비록 선지식들이 있긴 하였지만, 각자 자기 수행에만 몰두하느라 힘과 시간이 여유가 없어, 정토 법문을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소. 더러 이를 언급하는 이가 있다 할지라도, 듣는 사람들이 귀가 더러워질까 의심할 정도였소. 다행히 큰 마음을 품은 한두 스님이나 거사들이 법문 책을 간행하여 유포시킴으로써, 이들 조사들의 가르침이 끊이지 않고 명맥을 이어 왔소. 그래서 후대의 수행자와 철인(哲人)들이 계속 보고 들을 수 있으니, 실로 막대한 행운과 복덕이 아닐 수 없소.
불교가 중국에 전래한 뒤, 혜원(慧遠) 대사가 처음으로 정토 법문을 으뜸 가르침으로 삼았소. 본디 동문 형제인 혜영(慧永) 스님과 함께 나부산(羅浮山: 광동(廣東) 소재)으로 가려 했으나, 스승인 도안(道安) 법사가 붙잡아 혜영 스님만 먼저 혼자 가게 되었소. 심양(陽: 江西 소재 옛 지명)에 이르렀을 때, 자사(刺史) 도범(陶範)이 혜영 스님의 도덕 기풍(道風)을 흠모한 나머지, 서림사(西林寺)를 지어 드렸다오. 이때가 동진(東晋) 효무제(孝武帝) 태원(太元) 2년(377년) 정축년(丁丑年)이었소.
태원 9년(384년) 갑신(甲申年)에 이르러, 혜원 대사가 비로소 여산(廬山)에 왔소. 처음에는 서림사에 함께 거주했는데, 수행 도반들이 점차 많아져 서림사가 비좁아졌소. 이에 자사 환이(桓伊)가 산의 동쪽에 새로운 절을 지어 주었는데, 동림사(東林寺)라 불렀소. 태원 15년(380년) 경인년(庚寅年) 7월 28일, 혜원 대사는 마침내 스님과 거사 123인과 함께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여, 염불로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했소. 혜영 법사도 그 결사에 참여했는데, 서림사에 거주하면서 산봉우리에 별도로 초가 한 채를 짓고, 때때로 홀로 가서 선정에 잠기곤 하였다오. 그 방에 다가가면 문득 기이한 향기가 그윽이 풍겨, 향곡(香谷)이라 이름 부를 정도였다니, 그 인물됨을 가히 짐작할 수 있지 않겠소?(혜영 대사는 방에 호랑이와 함께 기거하였으며, 사람이 찾아오면 잠시 호랑이를 밖으로 내보냈다고 전한다.)
혜원 대사가 처음 결사를 시작할 때부터 참가했던 123인은 모두 불법 문중의 용과 코끼리 같은 존재로, 유가에서 말하는 태산(泰山)과 북두(北斗)나 다름없소. 이들은 혜원 대사의 도덕 기풍이 널리 퍼지면서 스스로 몰려든 대중들이라오. 혜원 대사가 입적할 때까지 30여 년 동안, 백련사에 들어와 정토 수행을 닦고 아미타불의 영접을 받아 극락왕생한 사람은, 셀 수도 없이 많다오.
그 뒤로 담란(曇鸞), 지자(智者), 도작(道綽), 선도(善導), 청량(淸凉), 영명(永明) 대사들도 모두 이 정토 법문으로 스스로 수행하고 대중을 교화하였소. 담란 대사가 지은 『왕생론주(往生論註)』는 고금에 둘도 없이 미묘한 저술이오. 지자 대사는 『십의론(十疑論)』을 지어 이해득실을 지극히 잘 설명했으며, 『관경소(觀經疏)』를 지어 관법(觀法)의 요체를 깊고 분명히 해설했소. 도작 대사는 정토삼부경을 2백 번 남짓 강론했으며, 선도 화상은 정토삼부경에 주석을 달아 대중들에게 전념 수행할 것을 적극 권장했소. 청량 대사는 「보현행원품」에 주석을 달아 궁극적인 성불의 도를 잘 밝혔고, 영명 대사는 사료간(四料簡)을 지어 생사윤회를 해탈하는 법문을 곧장 가리켜 주었소.
예로부터 모든 종파의 고승대덕들은 정토에 마음을 귀의하지 않은 분이 없었소. 오직 선종의 여러 조사들은 정토를 은밀히 수행하기에 힘쓰고, 밖으로 드러내어 펼치는 이가 별로 없는 편이오. 그러나 영명 선사가 사료간으로 정토와 참선 수행의 병행을 주창한 뒤로는, 선사들도 모두 분명한 말과 글자로 가르침을 펴며, 정토 수행을 절실하게 권하게 되었소. 그래서 사심(死心) 오신(悟新) 선사(1044~1115)는 정토 수행을 권하는 글[勸修淨土文]에서 이렇게 말하였소.
“아미타불은 염송하기 매우 쉽고, 정토는 왕생하기 매우 쉽다.”
“참선하는 사람이야말로 바로 염불하기 가장 좋으니, 근기가 더러 약하고 둔하여 금생에 확철대오할 수 없을까 의심스러운 이는, 아미타불의 원력을 빌어 정토 왕생하라.”
“그대가 만약 염불하여 정토에 왕생하지 못한다면, 이 노승은 (거짓말 한 죄악으로) 마땅히 혀를 뽑는[拔舌]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진헐(眞歇) 청료(淸了) 선사는 「정토설(淨土說)」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소.
“조동종(曹洞宗) 문하에서는 모두 정토를 은밀히 닦고 있는데, 그 까닭은 무엇인가? 정말로 염불 법문이 가장 빠른 지름길 수행이며, 대장경의 가르침에 바로 따라 최상 근기를 맞이할 뿐만 아니라, 중하 근기의 대중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선종의 대사들이 텅 비지도 않고 있지도 않은[不空不有] 법을 이미 깨닫고도, 정토 법문에 뜻을 굳게 두고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바로 정토 법문으로 부처를 친견하는 것이, 참선보다 훨씬 간단하고 쉽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부처나 조사나, 교종이나 선종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정토 법문을 수행하여 한 근원으로 함께 되돌아간다. 이 문에 들어가는 자는 무량 법문을 모두 증득하기 때문이다.”
장로(長蘆) 종이(宗頤) 선사는 연화승회(蓮華勝會)를 결성하여, 승가나 세속 거사 모두 염불로 극락왕생하도록 두루 권하였소. 그런데 보현(普賢)과 보혜(普慧) 두 보살이 꿈에 나타나 이 연화승회에 가입하기를 청하는 감응을 얻어, 두 보살을 회주(會主)로 삼았다오. 이것만 보아도 정토 법문이 이치에도 들어맞고 중생의 근기에도 부합하기 때문에, 모든 성현들도 그윽한 가운데 칭송 찬탄하심을 알 수 있소.
또 송(宋)나라 태종(太宗: 976〜997 재위)·진종(眞宗: 997〜1021 재위) 때에는, 성상(省常) 법사가 절강의 소경사(昭慶寺)에 주지로 있으면서, 여산의 혜원 대사 도행을 흠모하여 정행사(淨行社: 정토수행결사)를 결성하였소. 그런데 왕문정공(王文正公) 단(旦)이 맨 먼저 귀의하여 적극 선창 인도하니, 재상과 고관대작이나 학사대부(學士大夫)들이 제자로 자칭하여, 결사에 가입한 자가 120여 명이나 되었소. 스님들은 수천 명이었고, 서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소.
그 뒤 노공(潞公) 문언박(文彦博)은 인종(仁宗: 1022〜1063 재위)·영종(英宗: 1063〜7)·신종(神宗: 1067〜85)·철종(哲宗: 1085〜1100 재위)의 네 황제에 걸쳐, 50여 년 동안 벼슬을 하며 관직이 태사(太師)에까지 이르러, 노국공(潞國公)에 봉해진 분이오. 그분은 평생 불법을 독실하게 믿었는데, 만년에 구도심이 더욱 치열해져 오직 아미타불에 전념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걷거나 앉거나 간에 조금도 염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오. 그런데 그 분이 정엄(淨嚴) 법사와 함께 서울에서 십만 명 정토 왕생회를 결성하여, 수많은 사대부들이 그 감화를 받았소. 그는 92세까지 장수하다가 염불하면서 서거했는데, 그를 칭송한 이런 시도 있다오.
그대의 담과 기개는 알고 보니 하늘처럼 크구려. 知君膽氣大如天
서방 정토 왕생할 십만 인연 맺기를 발원하다니! 願結西方十萬緣
자기 몸 홀로 살아날 계산을 하지 않고서, 不爲自身求活計
대중 모두 고해 건너는 배에 함께 올라타자고! 大家齊上渡頭船
원(元)·명(明) 시대에는 중봉(中峯)·천여(天如)·초석(楚石·묘협(妙叶) 대사 등이 더러는 시가(詩歌)를 읊거나, 더러는 논변(論辯)을 지어, 이처럼 이치에도 맞고 근기에도 맞아, 최상부터 최하까지 두루 관통하는 법문을 적극 펼쳐 보였소. 특히 연지(蓮池)·유계(幽溪)·우익(蕅益) 대사 등이 더욱 진지하고 간절하게 정성을 다하였소.
청(淸) 나라 때에는 범천(梵天) 사제(思齊) 대사와 홍라(紅螺) 철오(徹悟) 대사가 다시 이 도를 힘써 펼쳤소. 범천 대사의 보리심 발하기를 권장하는 글[勸發菩提心文]과 홍라 대사의 대중에게 설하는 법어[示衆法語]는, 모두 옛 성현을 뒤잇고 후학을 이끌며, 천지신명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가르침이오. 후학들이 정말 이들 가르침에 따라 수행할 수만 있다면, 그 누가 이 사바세계를 기꺼이 하직하고 극락세계에 높이 올라, 아미타불의 제자가 되고 연화해회(蓮華海會)의 도반이 되지 못하겠소?
[『철오선사어록(徹悟禪師語錄)』과 ‘보리심 발하기를 권장하는 글[勸發菩提心文]’은 모두필자가 편역해 불광출판부에서 펴낸 『의심 끊고 염불하세』에 실려 있으니 참고하기 바람.]
중생과 기연(機緣)이 다하여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 다음에도, 대자비로 중생을 이롭게 하심은 끝내 다할 줄 모르셨소. 그래서 여러 위대한 제자들이 부처님의 사리를 나누어 전하고, 경전을 결집(結集)하여 사방에 두루 유통시킴으로써, 진리의 가르침이 중생을 윤택하게 적시도록 바랐다오. 동한(東漢: 후한) 때 위대한 가르침[大敎]이 비로소 중국에 전래하였으나, 아직 그 기풍이 크게 떨치지 못하고 북방에서만 퍼질 따름이었소.
그러다가 삼국시대 오(吳)나라 적오(赤烏: 大帝 孫權의 네 번째 연호) 4년(241), 강승회(康僧會) 존자가 특별히 교화를 펼치려고, 여래의 사리를 받들어, 건업(建業: 지금의 南京)에 왔소. 이에 손권(孫權)이 지극한 신앙심을 내어, 절을 짓고 탑을 쌓아 불법을 전하도록 했다오. 그래서 남방에 불교가 처음 전래하였는데, 진(晉)나라 때에는 고려·일본·미얀마·월남·티벳·몽고 등 주변 여러 나라에도 두루 퍼졌소.
그 후로 중천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교세가 점차 흥성하였는데, 당나라 때 이르러서는 여러 종파가 모두 갖추어져 전성기라고 할 만하오. 천태(天台)·현수(賢首)·자은(慈恩)은 교법(敎法)을 펼치고, 임제(臨濟)·조동(曹洞)·위앙(潙仰)·운문(雲門·법안(法眼)은 참선의 맥을 이었소. 또 남산(南山)은 율장(律藏)을 장엄 청정하게 전하고, 연종(蓮宗: 정토종)은 정토 수행에 전념하였소. 이는 마치 행정 각부가 직책을 분담하는 것과 같고, 또 육근이 서로 자기 기능을 발휘하는 것과도 비슷하오.
교법은 부처님 말씀이고, 참선은 부처님 마음이며, 계율은 부처님 행실이오. 실제로는 마음과 말씀과 행실의 세 가지를 결코 서로 떼어 구분하기가 어렵소. 다만 각자 전문으로 치중하는 내용에 따라, 교종·선종·율종의 명칭을 붙인 것에 불과하오.
그 가운데 오직 정토 법문만은, 그 출발이 범부 중생의 불도 입문을 안내하는 방편으로 시작하였으나, 실질상으로는 모든 종파 수행의 궁극 귀결점이 되는, 아주 독특한 가르침이라오. 그래서 아비지옥에 떨어질 극악 죄인도 맨 끝자리나마 참여할 수 있고, 부처와 다름없는 깨달음을 증득한 보살들조차도 극락왕생하기를 발원한다오.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천만 근기의 중생을 다 함께 교화시켜, 모든 갈래의 가르침이 하나로 융합하여 있었소. 그러나 부처께서 열반하신 뒤, 법을 전하는 제자들이 각각 자기가 가장 뛰어난 한 가지 법을 선택하여, 중생이 근기에 따라 한 법문으로 깊이 들어가[一門深入], 모든 법이 궁극으로는 서로 하나로 통함을 깨닫도록 인도하신 것이오.
비유하자면, 제망(帝網: 제석천궁의 因陀羅網)의 천 개 구슬이 각자 서로 뒤얽히지 않으면서도, 한 구슬이 천 구슬에 두루 비쳐지고 천 구슬이 모두 한 구슬에 모여들어, 서로 연결되나 뒤섞이지는 않고, 각자 독립하여 있으나 서로 떨어지지는 않는 것과 같소. 현상적인 자취에 얽매이는 자는, 일체의 법이 법마다 따로 떨어져 있다고 말한다오. 그렇지만 본질적인 이치를 잘 깨닫는 자에게는, 일체의 법이 법마다 서로 원융 회통하게 되오. 마치 성의 4대문이 열려 있고, 사람들이 자기에게 가까운 문을 출입하는 것과 같소. 문은 비록 다르지만, 성안을 드나드는 것은 다를 리가 없소.
만약 이러한 이치를 깨닫는다면, 어찌 오직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이 설하신 몹시 심오한 가르침만, 근본 진리에 도달하고 마음을 밝혀 성품을 보는 법이라고 집착할 수 있겠소? 세간의 오음(五陰)·육입(六入)·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칠대(七大) 등, 모든 것이 하나하나 근본 진리에 도달하고 마음을 밝혀 성품을 보게 하는 법이 될 것이오. 나아가 이러한 모든 것이, 각각 그 자체 진리이고 근본이며, 마음이고 성품이라오.
그래서 『능엄경(楞嚴經)』에서는 5음·6입·12처·18계·7대가 모두 여래장(如來藏)이며, 미묘한 진여성품(妙眞如性)이라고 말씀하시는 게오. 이렇게 본다면, 어느 한 법도 불법 아닌 게 없고, 어느 한 사람도 부처 아닌 이 없게 되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 중생은 구슬을 옷 안에 가지고서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단 말이오. 보배를 품 안에 품고서 걸식하는 중생의 곤궁은, 너무도 어처구니없고 억울하기 짝이 없소. 여래의 마음을 지니고서 중생의 죄업을 지으며, 해탈의 법을 가지고서 윤회의 고통을 받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그래서 불법을 전하는 보살들과 조사들이 천신만고의 어려움을 꺼리지 않고, 온갖 방편을 다 써서 중생을 일깨우고 가르치는 것이오. 그들이 10법계(法界)의 인과응보 원리를 이해하고, 자기 마음과 성품을 철저히 깨달아, 궁극에는 원만한 증득에 이를 수 있도록 이끌기 위함이오.
당나라 때부터 송(宋)·원(元)·명(明)을 거쳐 청(淸) 나라에 이르기까지 천 년이 충분히 되는 세월 동안, 조사들의 가르침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내려 왔소. 비록 당나라 전성시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에 버금할 만한 백중지세라고 볼 수 있소. 불행히 청나라 함풍(咸豊: 文宗 연호. 1851〜1861)·동치(同治: 穆宗 연호. 1862〜1874) 이래, 전란이 계속 이어지고 흉년 기근까지 겹친 데다, 고승대덕은 날로 드물어 가고 평범한 사람만 갈수록 많아졌소. 국가에서 불교를 발전시킬 만한 여유도 없었거니와, 승려들도 스스로 진작(振作)할 만한 능력이 없었소. 그래서 세간의 훌륭한 인재들이 불교를 제대로 연구해 보지 못한 까닭에, 한유(韓愈)나 우양수(歐陽修: 歐는 원음이 ‘우’이고, 우리도 1954년 世昌書館 발행 ‘國漢文新玉篇’에서는 분명히 ‘우’로 표기했는데, 언제부턴가 ‘구’로 잘못 읽음.) 같은 편협한 유학자들의 옛날 척불론(斥佛論)을 잘못 답습하여, 불교의 명맥은 더욱더 꺾여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소.
청나라 말엽에야 학문 세계가 크게 열리면서, 타고난 자질과 재능이 뛰어난 인물들이 불경을 뒤적여 펼쳐 보고 나서야, 비로소 도의 근본이 불교에 있는 줄 알게 되었소. 그래서 마침내 모두들 차분한 마음으로 불교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