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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에 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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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2. 11. 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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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간(雲間: 강소성 松江府에 옛날 별칭)에 사한운(謝漢雲)은 어려서부터 만성 고질병을 껴안고 살았다. 그러다가 모든 악업(惡業) 가운데 녀색(女色)이 가장 범하기 쉬운 허물임을 생각하고, 마침내 번양(繁陽) 붕태사(馮太史)가 편집한 ?불가록(不可錄)?을 구해다가, 다시 출판하여 널리 전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목판 조각을 거의 다 완성할 무렵에 이르러, 고질병이 돌연히 깨끗하게 나아 버렸다. 그 뒤 그에 아들과 손자들도 모두 명망을 크게 드날렸다. 성문(星門)하헌(霞軒)체삼(體三) 등이 대를 이어 높이 등용되었으며, 집안에 책 향기(書香)가 끊이지 않고 길게 이어졌다.

 

2. 서신선(徐信善)은 양홍(楊宏)과 글공부를 같이 한 동창생이었다. 한번은 둘이 나란히 과거시험을 보러 가서, 같은 집에 묵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한 고승(高僧)이 그들에 관상을 보더니, ‘양홍은 크게 존귀해지고, 서신선은 가난하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날 밤 양홍은, 묵고 있던 숙소 안에서 몹시 아름다운 처녀를 우연히 보고는, 그만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서 막대한 뇌물을 써서 그녀를 간음하려고 계획하였다. 이를 안 서신선은 준엄한 말로 그를 꾸짖으며 힘써 막았다. 그런데 이튿날 그 고승이 서신선을 다시 만나더니, 크게 놀라면서 감탄하는 것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금방, 이렇게 강한 음덕(陰德)에 무늬가 크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빈천한 운수가 부귀하게 뒤바뀌어, 앞으로 크게 영달하겠소.”

그리고 이어 양홍에 관상도 다시 살피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어찌 기색(氣色)이 어제만 훨씬 못하오. 서신선과 함께 높이 두드러지기는 하겠소만, 명망에 차례가 조금 뒤떨어지겠소.”

과거시험 급제자 명단이 발표되자, 과연 스님이 한 예언과 같았다.

 

3. 송나라 때 간주(簡州)에 진사인 왕행암(王行庵), 행실이 방정(方正)하고 절도가 있었으며 대범하였다. 외사촌 아우인 심()아무개와 바로 이웃 사이였는데, 심씨가 본디부터 사음을 좋아하는 줄 알고, 루차(屢次) 권고하였다. 심씨는 그 권고를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 머슴에 아내한테 왕공(王公)을 유혹하도록 은밀히 지시하였다. 왕공이 준엄하게 이를 물리치자, 이어 다시 한 예쁜 하녀를 골라 왕공을 로골(露骨)로 유혹하도록 시켰다. 그러나 왕공은 역시 단호하게 이를 물리쳤다. 심씨는 왕공에 절도 있는 계행(戒行)을 깨뜨린 뒤, 비웃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루는 왕공과 심씨가 함께 외출했다가 도적을 만났다. 그런데 심씨가 탄 배는 작다는 이유로 도적들이 표적에서 제외하였다. 그리고 왕공이 탄 배만 도적들에게 붙잡혔다. 그런데 삽시간에 천둥과 번개가 번갈아 크게 내려치더니, 도적들이 깜짝 놀라 두려움에 떨며 그만 슬그머니 도망치고 말았다. 그래서 왕공은 하나도 빼앗긴 물건 없이 평안히 되돌아왔다.

그 뒤 한번은 심씨가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통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그래서 연장을 들어 그들을 내리치려고 하였는데, 갑자기 손을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멍하니 선 채, 노한 눈빛으로 그들을 째려보며, 발만 동동 굴렀. 그러더니 크게 한숨을 내쉰 뒤 그만 죽어 버렸다.

한편, 왕공은 나이 50세 때 큰 병에 걸려, 도사(道士)를 초빙하여 재()를 올렸다. 도사가 천지신명께 상소문(上疏文)을 고하고 불살라 올린 뒤, 한참 동안 엎드려 절하더니, 마침내 회답(回答)이 내려왔다.

왕공에 천수(天壽)는 본디 50세에 그쳐, 그만 세상을 하직해야 할 운수였다. 그런데 왕공이 두 차례나 사음에 유혹을 물리치고 진실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권장하여, 천상 조정(天曹)에서 특별히 3(三紀: 36)에 수명을 더 늘려준다는 것이었다.

왕공은 이 말을 듣고 움찔 놀랐는데, 나중에 정말 86세까지 장수하였으며, 자손들이 누리는 부귀영화도 자기 눈으로 직접 보았다.

(): 여기에 왕행암과 앞에 서신선은, 모두 단정한 계률(戒律)로 자기를 지키면서, 나아가 올바른 덕행으로 남을 사랑한 모범들이다. 옳게 권고해서 들으면, 사람들이 그 덕택을 입을 것이다. 설사 듣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을 교화하려는 권선징악에 열성만으로도, 이미 하늘을 감동시켜 복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사람들이여! 또 무엇을 꺼려 행하지 않는단 말인가?

 

4. 가흥부(嘉興府)에 학교에 다니던 아무개 서생은, 본디 남에 죄악을 숨겨주고, 선행을 드러내어 칭찬해주는 천성이었다. 남에 집 자제나 친구들이 규방(閨房) 안에 녀자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곧장 정색(正色)을 하고 호되게 꾸짖으며 경고하곤 하였다. 그러다가 구얼계문(口孼戒文)(입으로 짓는 죄악을 경계하는 글)을 지어, 후학들을 훈계하기에 이르렀다. 나중에 과거시험 보러 갔는데, 급제자 명단을 발표하기 하루 전날 밤 꿈에, 자기 아버지가 나타나 이렇게 일러주는 것이었다.

너는 전생에 어린 나이에 진사가 되어, 그만 자기 재주만 믿고 남들에게 오만을 부렸다. 그래서 상제(上帝)께서 니가 계속 과거시험에 난관에 걸려, 끝내 입신출세하지 못하도록 벌을 내리셨다. 그런데 마침 지난달 어떤 선비 하나가, 본디 이번 과거시험에 향시(鄕試)와 전시(殿試)에서 연달아 급제할 운수였으나, 집안에 녀자를 간음한 죄로 그만 제명(除名)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에 문제(文帝: 文昌帝君)께서, 니가 구얼계문(口孼戒文)을 지어 사람들을 권선징악한 음덕이 몹시 크다고 아뢰면서, 니 이름을 그 자리에 대신 보충하자고 주청(奏請)하셨다. 그래서 니가 이번 과거시험에서 반드시 연달아 급제할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더욱 공덕을 닦아, 천지신명께서 베푸신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이에 그 서생은 깜짝 놀라면서도 몹시 기뻐하였다. 그리고 과거에 급제한 뒤에도, 평소보다 배나 더 조심하고 공덕 쌓기에 힘썼다. 나중에 벼슬은 어사(御史)까지 이르렀다.

 

5. 석광(席匡)은 어려서부터 특출하게 총명했다. 하루는 어떤 관상쟁이를 만났는데,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대 관상은, 세로 줄무늬가 입으로 들어간 것을 보니, 굶어죽을 상()이오. 그 시기는 마땅히 내년이 되겠소.”

이 말을 들은 석광은 몹시 근심하였다. 그러던 중, 하루는 어떤 사람이 남에 명예와 정절(貞節)에 관련하여 규방(閨房) 일을 이야기하였다. 이걸 본 석광은 정색을 하고 그에게 불끈 성을 내었다. 그래서 이야기하던 사람이 내심 부끄러워하며 슬그머니 말꼬리를 감춰, 그 일이 잠잠히 가라앉았다. 그때부터 한 해가 넘도록 석광에게는 아무런 탈도 생기지 않고 평안하기만 했다. 나중에 그 관상쟁이를 다시 만났는데, 그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그토록 큰 음덕을 쌓게 되었소? 어찌하여 타고난 상()이 갑자기 확 달라질 수 있단 말이오?”

나중에 석광은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까지 올랐다.

 

6. 남송(南宋) 말엽 단종(端宗: 1276~8재위) , ()나라 군대가 대만(臺灣)을 공격하였다. 그때 해안에 살던 한 백성에 아내 왕씨(王氏)가 몹시 아름다운 자태를 지녔는지라, 원나라 군사가 그를 략탈(掠奪)하여 군대 안으로 끌어오게 되었다. 왕씨를 본 천부장(千夫長), 그에 시부모와 지아비를 모두 살해한 뒤, 왕씨를 첩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왕씨는 죽어도 그 뜻을 따르지 않기로 맹서(盟誓)하고, 거짓으로 조건을 요청하였다.

제가 시부모와 지아비를 위해 한 달간만 상복(喪服)을 입도록 말미를 주십시오. 그러신다면 그 뒤에 어르신을 모시겠나이다.”

부장은 그 청이 죽게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 청을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그래도 혹시나 념려(念慮)스러워, 포로로 잡힌 다른 아낙한테 함께 지내면서 감시하라고 시켰다.

원나라 군사가 정벌을 마치고 되돌아가게 되자, 천부장은 왕씨를 데리고 갔다. 행진이 승현(嵊縣: 절강성 동부에 있음)에 청풍령(淸風嶺)을 지날 때, 왕씨는 마침내 하늘을 우러러 구슬피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이제 제가 죽을 곳을 얻었나이다.”

그리고는 곧장 손가락을 깨물어, 흐르는 피로 바위 위에 시구(詩句)를 쓰고 나서, 그대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지금으로부터 이미 팔구십 년이 지난 옛날 일이다. 하지만 바위 위에 썼던 피 글씨는 무덤처럼 솟아올라, 모진 비바람에도 씻겨 지워지지 않은 채, 오히려 이제 막 흘린 것처럼 아직도 새롭기만 하다.

일찍이 어떤 선비 하나가 왕씨가 쓴 시를 보고, 이렇게 비아냥거리는 시를 지었다.

 

손가락 깨물어 시를 쓴 건 애처로운 듯하지만,

嚙指題詩似可哀

얼룩덜룩 빛바랜 흔적에 푸른 이끼만 끼었네.

斑斑駁駁上靑苔

애시당초 시구 중에 남긴 뜻이 정말 있었더라면,

當初若有詩中意

원나라 장군 따라 말 타고 여기까지 왔겠는가?”

肯逐將軍馬上來

 

그러더니 시를 지은 그 선비는, 나중에 대를 이을 자손이 끊어지고 말았다. ()나라 때 양렴부(楊廉夫)도 역시 비아냥대는 시를 지었다.

 

군대에 말과 노새낙타 떼 백리 길 행진 따라,

甲馬駃馱百里程

청풍령에 이른 새벽 피 글씨가 이루어졌네.

淸風後夜血書成

단지 류신(劉晨)과 원조(阮肇) -주1) 처럼 복사꽃 냇물에나 즐기지,

只應劉阮桃花水

어찌 파릉(巴陵) -주2) 에 한수(漢水)처럼 맑기만 바랐던고?”

不似巴陵漢水淸

 

이 시를 지은 양렴부도 나중에 자식을 두지 못하였다. 그런데 하룻밤에는 꿈에 한 부인이 나타나 이렇게 책망하는 것이었다.

 

그대는 왕씨 절부(節婦)가 남긴 시를 기억하시오? 비록 절개를 지킨 부인에 명예까지 훼손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절개를 비방하는 글만으로도 그 죄가 몹시 중대하오. 그래서 하늘이 그대 후손을 끊는 것이라오.”

 

꿈에서 깨어난 양렴부는 뒤늦게 깨닫고 참회한 뒤, 반대로 왕씨를 칭송하는 시를 다시 지었다.

 

하늘은 땅을 따라 늙건만 첩은 군사를 따르나니,

天隨地老妾隨兵

하늘땅은 무정도 하건만 첩은 정한이 가득하네.

天地無情妾有情

손가락 깨물어 피 터지니 노을 낀 절벽 붉게 물들고,

指血嚙開霞嶠赤

이끼 낀 흔적 절로 변하여 눈 내린 강물 맑게 흐르네.

苔痕化作雪江淸

차라리 상강(湘江: 호남) 거문고 소리에 춤추다 죽을지언정,

願隨湘瑟聲中死

결코 오랑캐 갈대피리 박자에 장단 맞추며 살지는 않으리.

不逐胡笳拍裏生

삼월에 두견새는 끊어진 피가 서러워 우짖으며,

三月子規啼斷血

눈물 없는 가을바람 애도하는 시가 구슬퍼 소슬하네.”

秋風無淚寫哀銘

 

그러자 나중에 바로 그 부인이 다시 꿈에 나타나 감사하더니, 그 뒤 얼마 안 있어 양렴부는 아들 하나를 얻었다.

 

7. 예전에 주유(周裕)는 일찍이 좋은 벗들을 함께 모아, 사음을 끊겠다는 발원문 서식을 만들어 인쇄한 뒤, 동호인 모임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매 회원은 한 사람이 한 장씩 가져가, 각각 열 사람씩에게 권장하도록 결의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각자 고향본관출생년월일을 적고, 서명 날인해 발원문을 작성한 뒤, 문제(文帝: 文昌帝君)와 무제(武帝: 武聖帝君. 關羽 天上化神) 앞에 불살라 올려 서원을 표시했다.

그 뒤로는 말과 행동은 물론, 한 순간 생각까지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며 삼가고 되살폈다. 그래서 감히 조금이라도 사음과 관련되는 일이 없도록 힘썼다. 혹시라도 불행히 이러한 사음에 계률(戒律)을 저지른 자가 있으면, 진실로 부끄러워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간절히 일으키자고 다짐했다. 그러는 순간, 하늘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허물이라도 충분히 녹여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히 이 계률(戒律)을 범한 적이 없는 사람은, 앞으로도 더욱 굳건히 지켜, 혹여 순결한 흰 옥에 조그마한 흠집이라도 내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서로 다짐하고 채찍질하였다.

렇게 시종일관 변함없이 계(戒律)을 지키면서, 주위에도 널리 권장해 나가자!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죄악에 뿌리를 영원히 끊어버리고, 모두 올바른 길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주. 그런다면, 그 공덕이 얼마나 무성하고, 그 복록은 얼마나 크겠는가?

 

8. 락계화(駱季和)가 이렇게 말하였다.

예로부터 선현들이 전해오는 격언에, “만 가지 죄악 가운데 사음이 가장 우두머리고, 온갖 덕행 가운데 효도가 최고으뜸이다.(萬惡淫爲首, 百行孝爲先)고 말씀하셨다.

나는 일찍부터 이 두 구절을 궁리하여, 그 뜻을 음미해 보았다. 그런데 상반된 두 구절이, 오히려 상호 보완하는 짝이 됨을 알았다. 여기서 그 리치(理致)를 간단히 따져보면 이러하다.

무릇 사음이 만 가지 죄악에 우두머리가 된다면, 사음하지 않음이 온갖 덕행에 밑바탕이자 전제조건이 될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효도가 온갖 덕행에 최고으뜸이라면, 불효가 만 가지 죄악에 근본 원인이 될 것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이 두 구절로 서로 뒤집어 대비해 보기만 해도 충분하거늘, 이 말을 더 분석하고 음미하는 것은 무슨 리유(理由)일까?

대저 사음을 좋아하면, 효도를 다할 수가 없다. 또 효도를 다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사음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옛날에 성인께서 혼례(婚禮) 법도를 세우면서, 매파로 다리를 놓고, 륙례(六禮: 혼인에 여섯 가지 절차)로 결합하도록 정하셨다. 작게는 집안에서 후손들이 대를 이어 조상 제사를 받들고, 인륜을 밝혀 화목한 덕행을 뒷받침하는 출발로 삼으며, 크게는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스럽게 만드는 근본으로 삼기까지, 누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효도를 다하도록 바라신 것이다. 그래서 군자에 도는 부부관계에서부터 비롯한다고 말한다.

세상이 타락하고 도덕이 희미해지는데도, 성현이 더 이상 계속 나오지 않으시니, 옛날 혼인에 깃든 본래 정신은 모두 사라지고, 례법(禮法)은 그저 빈껍데기 규정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래서 부부관계는 단지 욕정과 쾌락에 탐닉하는 도구로 변하였다. 젊은이들이 학업과 덕행을 채 이루기도 전에 아리따운 처녀나 사모할 줄만 안다. 그런데도 부모님들까지 자식들에 비위나 맞추고 마음이나 붙잡아 두려고, 모르는 척 따르거나 그냥 내버려두기 일쑤다.

더 나아가, 녀색 좋아하는 것은 인생에서 지극히 정당한 일이라고 공공연히 옹호하기도 한다. “혈통을 잇고 제사를 받든다.”는 명분을 크게 내세운다. 그러나 실질상으로는, 차츰 부부 사이에 정이 더욱 도타워질수록, 부모에 대한 봉양이 더욱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안사람에게만 잘 보이려고 정신 쓰다 보니, 부모를 멀리하고 크나큰 불효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마침내는, 반드시 깨진 항아리로 창을 가리고 새끼줄로 문설주를 엮은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이 아니라도, 어머니 -주3)를 간음하고 고모를 릉욕(凌辱)하는 패륜이 마치 풍속처럼 유행한 지 이미 오래 되었다.

선행으로 옮겨가기는 어려워도, 죄악에 물들기는 쉬운 것이 인지상정이다. 한번 부부관계를 욕정과 쾌락에 도구로 여기게 되면, 필연코 남녀 사이 형상에 집착하는 편견이 더욱 깊어지고, 녀색을 사모하고 사음에 탐닉하는 마음이 더욱 치열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새 사람을 만나면 옛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

, 부딪치는 곳마다 감정이 솟구쳐, 천하에 모든 남녀가 다 자신에 욕정과 쾌락을 채우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사음 풍조가 크게 유행하여, 서로 질투하고 서로 살상(殺傷)하여, 자신을 다치고 부모까지 욕되게 한다. 이로 말미암아 만 가지 죄악이 다발처럼 생겨나고, 온갖 덕행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러니 불효죄가 이보다 막대한 게 또 어디 있겠는가? 그 유래를 헤아려 본다면, 이는 부부관계를 음욕에 도구로 여긴 한 생각(一念)으로부터 싹튼 조짐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 두 구절은 겉보기에는 서로 반대되는 듯하지만, 실질상 의미로는 상호보완 관계라고 말한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러한 리치를 헤아리지 못한다. 그래서 단지 () 한 글자를, 올바른 음욕(正淫: 부부간에 성관계)과 그릇된 음욕(邪淫: 외도. 부부 아닌 자와 성관계)으로 억지로 구분한다. 인간에 음욕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견해가 옛 성현들이 가르치신 은밀한 뜻을 깊이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경전에 이르기를, “일체 중생이 모두 음욕으로 말미암아 목숨을 타고난다.”고 하였다. 욕정은 사랑(愛着)으로부터 생기고, 목숨은 욕정으로 말미암아 있게 된다. 중생이 목숨을 사랑(愛着)하는 것도, 결국 욕정에 근본(뿌리)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사륜회(生死輪廻) 사랑(愛着)이 그 근본(뿌리)임을 알아야 한다.

 경전에 이르기를, “욕정이 이는 경계(欲境)에 부딪쳐, 어긋나거나 따르는 (심리) 반응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부닥친 경계(주어진 상황)가 애착하는 마음과 상반되면, 미움(증오)과 질투를 일으켜 각종 악업을 짓고, 그로 말미암아 다시 지옥이나 아귀축생에 삼악도(三惡道)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음욕이야말로 우리 인생에 커다란 환난거리이며, 애시당초 그릇된 음욕과 올바른 음욕에 구분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들이 시작도 없는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오래도록 애욕(愛欲)을 바탕으로 이 몸을 받아왔다. 그 때문에 집이라는 감옥(家獄)이 철옹성처럼 견고하게 이루어져, 업장에 뿌리를 뽑아 버리기가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여래께서 우리 중생을 불쌍히 여기사, 특별히 방편법문(方便法門)을 열어주셨다. 그릇된 음욕만 저지르지 않도록 계률(戒律)을 지켜도, (극락정토) 련꽃(蓮華) 봉오리에 생겨날 수 있는 훌륭한 씨앗을 허락하신 것이다. (?계덕향경(戒德香經)?에 이르기를, “남에 아내를 범하지 않으면, 연꽃 봉오리에 생겨난다.”고 하였다.)

물론 내가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반드시 엄격한 금욕주의를 주장하여, 인지상정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계률(戒律)을 강요하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다만 인륜과 대의(大義)는 돌보지 않은 채, 그저 안방에 욕정과 쾌락을 탐닉하는 짓 자체만으로도, 이미 천리(天理)에 어긋남을 밝히는 것일 따름이다. 모든 동지들이 깊이 생각하고 깨닫도록 바라는 마음 간절하고 진실하다. 하물며 감정 내키는 대로 밖으로 바람피우고 다니면서, 외도(外道)를 보통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우리가 비록 그릇된 음욕(邪淫)에 계률(戒律)을 철저하게 힘써 지킨다고 할지라도, 이는 단지 인간 세계에 기본 오계 중 하나 밖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제멋대로 녀색을 가까이하고 바람피운다면, 반드시 삼악도에 떨어지고 생사륜회에 고통을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이러한 리치를 알아, 스스로 본성을 흔들어 일깨우고 정신을 진작하자! 안으론 집안을 꾸려나가는 근본을 바로잡고, 밖으론 다투거나 휩쓸리는 마음을 끊으며, 자신을 반성하고 근본 바탕자리를 찾아가자. 이러한 수행공부를 계속한다면, 머지않아 녈반(涅槃: nirva)도 바라볼 수 있고, 열 가지 죄악도 일시에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반녈반경(般涅槃經)?에 이르기를, “그릇된 음욕(邪淫)을 끊으면, 다섯 가지 큰 복(五增福)을 얻고, 녈반(涅槃: nirva)에 이르는 도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  ?법원주림(法苑珠林)?에 이르기를, “사음은 열 가지 죄악을 범한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진실한 말씀은 우리를 결코 속이지 않는다. 그러니 사음을 끊기로 맹서를 작정하고, 천지신명과 불보살님께 그 서원을 발하여, 자신에 청정한 성품을 지키고 밝혀나가야 할 것이다. 무릇 모든 불자(들과 다른 종교 신자)들은 똑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상 몇 마디 말을 서문에 갈음하니, 참고삼아 보시기 바란다.

 

주1) 류원(劉阮): 태평어람(太平御覽) 등이 인용하는 옛날 기록에 따르면, 동한(東漢: 後漢) 명제(明帝) 영평(永平: 57~75년 재위) 년간에, 섬현(剡縣) 사람인 류신(劉晨)과 원조(阮肇)가 함께 천태산(天台山)에 들어가 약초를 캐다가, 두 녀자를 만나 그들 집에까지 따라갔는데, 그곳은 기후와 초목이 모두 항상 봄날 같이 온화하고 살기 좋아, 반년쯤 머물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그 자손들이 이미 7()나 바뀌어 있었다는 민간전설이 내려온다.

주2) 파릉(巴陵): 호남성(湖南省) 악양(岳陽) 지역을 가리킴.

주3) 전통 례법상 자기를 낳아 준 친모(親母) 이외에, 적모(嫡母: 첩에 아들이 버지에 본처를 일컫는 호칭), 계모(繼母: 아버지에 후처), 양모(養母: 어려서 입양 교육한 어머니), 자모(慈母: 생모가 죽어 자기를 키워준 아버지에 첩), 가모(嫁母: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재가한 어머니), 출모(出母: 아버지에게 쫓겨난 생모), 서모(庶母: 아버지에 아들을 낳은 첩), 유모(乳母: 자기를 젖 여준 아버지에 첩) , 이른바 여덟 어머니(八母)도 각기 다른 등급에 상복(喪服)을 입어야 하는 인륜도덕상 어머니로 포함함.